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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글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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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5-10-01 14:55 조회 11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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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한글을 지켜낸 사람들

조선시대부터 오늘까지, 우리말을 가꾸고 알린 인물들

박일환 시인, 『국어사전이 왜곡한 한국사의 장면들』저자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이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지금처럼 쉽고 편하게 문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데는 많은 이들의 노력과 공헌이 있었다.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주시경, 최현배 같은 분을 비롯해 수많은 국어학자들이 애썼고, 한글로 작품을 써 온 작가들의 기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분들을 모두 거론할 수는 없는 일이고, 대표적인 몇 분의 업적만 시간순으로 따라가 보고자 한다.



조선~일제강점기 한글의 기틀 다듬어 널리 알리다


한글에 첫 숨을 불어넣은 조선의 여인들

조선 시대에 한글이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여성들이었다. 양반가의 부인이나 궁녀들은 한글로 편지를 써서 주고받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이 관찰하거나 겪은 일을 한글로 기록함으로써 내간체라는 문학 양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양반가의 일부 남성들도 한글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당시에 한글을 일컫는 별칭 중의 하나가 ‘암글’이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된 사용자는 여성들이었다. 그동안 문자 생활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이 훈민정음 반포 이후 빠르게 문자 생활에 적응하고, 두터운 사용자층을 형성하며 한글을 지켜 왔다는 건 창제 원리의 과학성은 물론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글이 그만큼 우수한 문자였음을 증명한다.



순한글로 신물 발행해 현대 한글 초석을 만든 독립협회

오랫동안 소외당하던 한글이 국가의 공식 문자로 채택된 건 1894년의 일이다. 그해 11월, 고종은 ‘모든 법률과 칙령은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삼으라’는 칙령을 내렸다. 더 이상 한자를 공식 문자 생활의 중심으로 삼지 않겠다는 고종의 칙령은 나라 안팎으로 급격한 변화가 시작되던 무렵의 정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양반 중심 체제가 흔들리면서 한자 대신 평민층이 향유하던 한글이 전면에 등장할 계기가 주어진 데다 외세의 각축장이 되어 가던 국제정세 속에서 당시의 조선은 자주 독립 국가의 위상을 다질 필요가 있었다. 정부의공문서를 한글로 대체하는 동시에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관문인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독립문 건립을 주도한 건 서재필을 중심으로 한 독립협회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독립협회가 수행한 역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독립신문> 발행이다. <독립신문>은 순한글 3면에 영문 1면의 형태로 발행했다. 창간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또 국문을 이렇게 구절을 떼어 쓴즉 아무래도 이 신문을 보기가 쉽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보게 함이라.”


첫 문장은 언어의 민주화와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무척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대중과 소통하는 도구로 한글만큼 뛰어난 문자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언론의 역사뿐

만 아니라 한글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두 번째 문장은 띄어쓰기에 관한 것으로 이 역시 한글 표기 방식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무렵을 전후해서 한글 연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한글과 구별되는 현대 한글이 정립되는 시기였다.



헐버트, 한글을 사랑한 미국인 선교사

독립신문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으니, 주시경과 미국인 선

교사 호머 헐버트(Hulbert, H. B.)이다.

1886년에 처음 조선 땅을 밟은 헐버트

는 육영공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와

함께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지리를

가르쳤다. 헐버트는 조선에 온 지 3년

만에 한국어와 한글을 완벽하게 익혀

한글로 된 최초의 교과서인 세계 지리

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1889년에 간

행했다. 그런가 하면 1892년부터 한글

을 주제로 한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자신이 책임자로 있던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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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출판사에서 독립신문을 인쇄해 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주시경을 만나 함께 한글표기법을 연구하며 띄어쓰기, 쉼표, 마침표 등을 도입하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한글의 우수성에 매료된 헐버트는 중국 사람들에게 어려운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익혀서 쓰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주시경, 후학을 기른 대표 한글 지킴이

현대 한글의 체계를 잡기 시작한 사람으로 흔히 주시경을 꼽

는다. 주시경에 앞서 유길준이 한글 문법서인 『조선문전』(후

에 『대한문전』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을 펴냈지만, 이어지는

연구가 없어 국어학자라기보단 개화사상가로서의 면모가

더 돋보인다. 그에 반해 주시경은 한글 연구에 오롯이 매

진했다는 점에서 근대 초기의 국어학 역사에 우뚝한 봉우

리를 이룬다. 배재학당에 입학하면서 국어에 관심을 갖고 연

구를 시작한 주시경은 서재필의 눈에 띄어 <독립신문> 제작에

관여하게 된다. 이때 주시경은 헐버트의 도움을 받는 한편 직

원들과 함께 조선문동식회(朝鮮文同式會)를 만들어 통일된 한

글 표기법을 마련하는 등 <독립신문>이 순한글신문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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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을 졸업한 주시경은 여러 학교에 강의를 나가면서 국어 연구를 이어가는 한편 학교 강의만으로는 한글 보급에 한계가 있다고 여겨 조선어강습원을 만들어 강습생

을 배출했다. 이때 주시경에게 배운 제자들이 한글과 국어 문법 연구의 중추로 성장했다. 유길준이 서양과 일본의 문법을 참조하면서 기초 이론을 세웠다면 주시경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말글 체계에 맞는 문법을 세우는 데 힘을 기울였다. 아쉬운 건 주시경이 제자들과 함께 최초의 한글 사전인 『말모이』 편찬을 시작했으나 주시경의 사망과 제자인 김두봉의 망명 등으로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흩어져 일부 원고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주시경이만 서른여덟의 나이로 일찍 타계한 탓에 이후의 연구는 제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조선어학회, 우리말 맞춤법의 골격을 만들다

일제에 의한 국권 찬탈 이후 한글 보급과 연구의 중심 역할을 맡은 건 조선어학회였다. 주시경이 만든 국어연구학회에 뿌리를 둔 조선어학회는 한글 보급과 맞춤법 통일안 제정, 사전 편찬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글 보급을 위해 1927년부터 기관지인 <한글>을 발행했으며, 1933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해서 발표했다. 그 후 몇 차례 변화의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그때 만든 맞춤법의 골격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안타까운 건 사전 편찬 작업을 마무리하고 출간만 앞두고 있던 1942년,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졌다는 점이다.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항일운동 단체로 몰아 33명의 조선어학회 회원을 검거했다. 사전 원고는 압수되었고, 모진 고문 끝에 이윤재와 한징 두 분은 형무소에서 옥사하고 말았다.



해방 이후 ~ 현대 한자는 한글로! 외국말은 우리말로!

한글로 꾸린 교과서 제작에 힘쓴 최현배

식민지 시기를 거쳐 해방 후까지 한글과 국어 연구의 중심 역

할을 수행한 사람은 주시경의 제자로 『우리말본』과 『한글

갈』 등을 간행한 최현배이다. 해방은 빼앗긴 국토만이 아

니라 우리말과 글을 되찾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자면 가

장 시급한 게 한글로 꾸린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

때 최현배가 미군정청 편수국장을 맡아 교과서 집필을 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미군정의 자문기관이던 조선교육심의

회에 참여해 공문서의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주장해서 통

과시켰다. 최현배의 이런 업적 덕분에 해방 후 한글세대가 새

롭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고루한 인식에 젖어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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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너도나도 세로쓰기를 주장했으며, 교과서가 아닌 다른 도서나 신문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한글과 한자를 병용하는 동시에 세로쓰기를 고수했다. 그런 관행을 다시 깬

건 1988년에 창간한 <한겨레신문>이었다. <한겨레신문>은 창간호부터 지면에서 한자를 몰아내고, 가로쓰기를 도입했다. 이후 다른 신문들도 시대 흐름에 맞추어 한글 전용과 가로 쓰기에 동참함으로써 지금처럼 읽기 편한 신문이 되었다. 최현배가 많은 힘을 기울였던 또 하나의 분야는 일본식 용어와 한자어를 밀어내고 고유어를 활용한 낱말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교과서 작업을 하며 가감승제(加減乘除) 같은 한자어 대신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처럼 쉬운 우리말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세모꼴과 사다리꼴, 지름과 반지름, 암술과 수술 같은 말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쓰는 방아쇠, 노리쇠, 개머리판 같은 말도 한글전용론자인 최현배의 고민 속에서 나왔다.


외국말 고쳐 쓰기에 평생을 헌신한 이오덕

이런 고민을 이어받아 한자어와 외래어 대신 우리말을 가꾼 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오덕과 백기완 같은 이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이오덕이 힘을 쏟은 분야는 일본식 한자어와 번역 투의 문장을 몰아내는 일이었다. 이오덕은 일하는 사람들의 말이 진짜 우리말이라고 보았으며, 지식인들이 즐겨 쓰는 한자어의 폐해를 줄곧 비판했다. 당연히 한자를 혼용해서 쓰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쉬운 우리말 사용을 권장했다. 근면하다 대신 부지런하다, 동공 대신 눈동자, 매년 대신 해마다 같은 말을 쓰자는 게 이오덕의 주장이었다. 그렇게 해야 우리말과 글이 살아난다고 보았다. 특히 접미사로 많이 쓰는 ‘-적(的)’과 일본어 ‘の’의 영향을 받아 ‘의’를 무분별하게 많이 쓰는 걸 싫어했다. 이오덕은 평생 ‘우리말 가꾸기와 우리글 바로 쓰기’에 바쳤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의 오랜 입말을 우리말로 굳힌 백기완

백기완 역시 한자어와 외래어 대신 민중들의 입말을 살려 쓰자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오염된 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게 백기완의 신념이었다. 그래서 백기완이 펴낸 책에는 한자어와 외래어가 거의 없다. 황해도를 고향으로 둔 백기완의 말뿌리는 어릴 적 고향에서 살아가던 민중과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들에 닿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에게는 생소한 낱말이 수시로 등장한다. 백기완이 만든 말 중에 우리가 널리 쓰는 말로 달동네나 새내기 같은 것들이 있다. 이오덕과 백기완을 이어 주는 끈이 있다면 ‘삶과 말과 글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바탕에는 외래품 대신 우리가 오랫동안 써온 말과 글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한글을 가꾸고 알리는 오늘날 사람들

외래어의 남용에 대해 한국어가 위협을 받는 것이지 문자인 한글 자체는 고유성을 잃은 적이 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일견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말과 글은 하나라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한때 영어공용화론이 득세를 한 적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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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한글 전용 정책 때문에 문해력이 떨어진다며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전문 용어는 한자어와 외래어를 써야 학문의 권위가 선다고 믿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한 탓이다.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을 때 우리만의 문화가 오롯이 빛날 수 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정신이 바로 그런 지점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만들어 놓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계속 쓰일 수 있도록 현실에 맞게끔 갈고 닦아야 한다. 한글 역시 마찬가지여서 많은 이들이 그런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동시에 지금도 한글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어와 한글을 구사할 줄 아는 외국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K-팝과 K-드라마 덕분이기도 하지만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이 2025년 6월 기준 87개국에 252개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거기서 한국어와 한글을 가르치는 분들이야말로 주시경, 최현배 같은 분들 못지않게 한글 지킴이의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한글을 가꾸고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임은 물론이다.





수서도 북큐레이션도 아닌 길

'책노래1)'를 나누는 '책숲지기' 이야기

최종규 숲노래·파란놀, 국어사전 편찬자



책이 왜 ‘책’인지 살피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으레 한자 ‘冊’을 떠올릴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나타내는 말(우리말)이 있고, 우리말을 담는 글(우리글)이 있는데, 정작 우리말이나 우리글로 ‘책’을 못 바라봅니다. 임금과 나리와 벼슬아치는 중국글을 썼으나, 수수하게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모든 사람과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는 사람은 “글은 따로 없이 언제나 오로지 말(우리말·사투리)을 짓고 펴고 나누며 살”았습니다. 이를테면 한자로 ‘심(心)’이, 우리말로 ‘심’이 있습니다. 한자인 ‘심(心)’은 ‘가슴’이나 ‘마음’을 가리킨다면, 우리말 ‘심’은 ‘심다’를 비롯하여 ‘힘’을 나타내고, “속에 깃들어서 곧게 일으키는 힘줄기”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배추나 무나 풀줄기에 ‘심’이 있다고 여깁니다. 초를 켜려면 ‘심지’가 있어야지요. 심·심다·심지·싣다·신·신나다·신명·실 같은 낱말은 말밑2)이 같아요. 을 놓고도 여러모로 짚을 만합니다. 그저 종이에 글을 담은 꾸러미로 바라볼 수 있

지만, 속에 이야기를 ‘채운’ 꾸러미로 삼을 만합니다. ‘채우다’는 “차다 + ―게 하다”인 낱말이니 ‘채우다=참하다’하고 닿습니다. 미리 ‘챙기’듯 꾸린 이야기이니, 언제 어디에서나 펼쳐서 되읽으며 새길 만합니다. 뜰채와 잠자리채를 쓰듯, 채를 휘둘러서 팽이를 돌리듯, ‘채’와 ‘채다’를 헤아린다면, 종이꾸러미에 채우고 챙기는 이야기란 우리 스스로 살아가며 배우고 익힌 모든 살림살이입니다.


1)“ 책을 갈무리하고, 살림을 하고, 책으로 빛나며, 책을 헤아리는 눈을 틔우는 일(본 원고 중에서 발췌)”

2) 어떤 단어의 근원적인 형태. 또는 어떤 말이 생겨난 근원을 말한다(표준국어대사전).



도서관이 일본말인 줄 아시나요?

책을 늘 챙겨서 읽는 하루를 누립니다. 저는 꽤 예전부터, 그러니까 글을 처음 깨친 여덟살 무렵부터 “걸으며 읽기”를 으레 했습니다. 1982년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들어간 또래는 짐(숙제)이 엄청났는데, 겨루기(시험)도 끝이 없었어요. 굴레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마음에, 어린이로 지내던 무렵에는 만화책과 교과서를 “걸으며 읽”었고, 푸름이(청소년) 무렵부터는 어느 책이건 걸으며 읽었어요. 마음을 채우려는 하루였고, 이런 삶을 잇다가 『보리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으로도 일하고, 떠난 이오덕 님이 남긴 글을 추스르는 일도 맡았습니다. 이런 여러 일을 마무리할 즈음인 2007년 4월에 인천 배다리로 돌아갔는데, 이때에 “내가 읽고 건사한 책으로 책숲(도서관)을 꾸릴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부천과 부산에 큼지막하게 ‘만화도서관’도 서지만, 2007년에는 만화책도 사진책도 ‘사라진 책’도 손으로 만지면서 읽을 만한 책숲은 아예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다만 2007년에는 그냥 ‘도서관’이라는 일본말을 썼습니다. 그때부터 ‘책터’나 ‘책누리’나 ‘책칸’이나 ‘책시렁’처럼 수수하게 이름을 붙이고 싶기는 했으나, 둘레에서 못 알아들으리라 여겼습니다. 이러다가 2016년 무렵 어느 이웃님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쓴다는 최종규 씨라면, 둘레에서 뭐라 하건 말건 일본말 ‘도서관’이 아니라 우리말로 새롭게 이름을 붙여서 써야 하지 않습니까?” 하고 따지셨어요. 저는 “‘도서관’같은 이름은 그곳에서 일하는 분이 스스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도서관학과’ 같은 이름을 쓰는 분들이 바꿀 일일 텐데요?” 했으나, 이웃님은 “최종규 씨도 ‘도서관’을 하니까, 다른 사람이 안 바꾸더라도 먼저 이름을 지어서 바꿔야지요!” 하시더군요. 그 무렵이 아니더라도 진작에 “최종규 씨도 ‘도서관’ 같은 일본말은 어쩔 길이 없으니 그냥 쓰나 보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이웃님이 많았습니다. 이제 더는 넘기지 말자고 여겼고, 한 해 즈음 요모조모 헤아려서 ‘책숲집’과 ‘책숲·책밭’과 ‘책마루·책마루숲’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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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터’와 ‘책숲마을·책숲마당’ 같은 이름을 하나씩 지어 보았습니다. 굳이 석 글씨로 맞춘다면 ‘책숲집’이나 ‘책숲터’나 ‘책마루’일 테고, 단출히 쓰고 싶다면 ‘책숲’이라 할 만

합니다. 이러면서 ‘박물관’ 같은 일본말은 ‘살림숲’ 같은 새말로 나타낼 만합니다. ‘-숲’이라는 낱말을 붙여서 ‘-관(館)’을 담아낼 만합니다. 그래서 제가 혼자 꾸리는 책터를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938a96a09c6a24bdf6373b2ee1029012_1759296516_7923.pngQR코드를 스캔하면 파란놀(최종규)이 꾸리는 책숲, 사전 짓는 이야기가 담긴 블로그에 접속할 수 있다.



사서, 북큐레이터를 우리말로 얘기해 보기

책을 널리 나누는 터전을 ‘책숲’이라 한다면 ‘도서관 사서(司書)’라든지 ‘북큐레이터’ 같은 이름은 책숲지기책숲일꾼으로 담아낼 만합니다. 또는 ‘책꽃지기·책빛지기·책밭지기·책터지기’처럼 살짝 사잇말을 바꿀 수 있어요. 일본말 ‘수서(收書)’를 풀기는 안 어렵습니다. 책들임·책차림이라 하면 되어요. 책을 들이거나 차리는 일이거든요. ‘책갈무리·책갈망’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책빛·책눈’이나 ‘책살림·책삶’이라 할 만하지요. 책을 갈무리할 뿐 아니라, 책으로 살림을 하고, 책으로 빛나며, 책을 헤아리는 눈을 틔우는 일이에요. 그래서 ‘책노래·책맞춤’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책숲에 책을 갖추는 책꽃지기의 손빛(손길)이란 책으로 부르면서 나누고 베푸는 노래

라 여겨 ‘책노래’처럼 나타낼 만합니다. ‘서가(書架)’를 가리키는 오랜 우리말은 책시렁입니다. ‘책칸’이나 ‘책꽂이’ 같은 낱말도 익히 쓰고요. 책으로 이야기를 지피면 책이야기인데, 요즈음 퍼진 ‘북토크’라면 책수다쯤이 한결 어울립니다. 가볍게 도란도란 오순도순 어울리는 자리는 ‘수다’처럼 수수하면서 수더분하고 숱하게 숲빛으로 주고받는 말과 마음이라는 뜻을 담아서 ‘책수다’라 할 수 있고, ‘책수다판·책수다꽃·책수다마당·책수다마루’처럼 말끝을 바꿀 만합니다. ‘북콘서트’ 같은 일본스런 영어는 책노래책마당으로 풀 만하고요. 우리가 쓰고 읽고 나누는 책이 “참하게 차곡차곡 채우고 찬찬하게 챙기면서 나누는 꾸러미”라는 대목을 알아본다면, 구태여 ‘장서(藏書)’라 할 까닭이 없이 이라고만 해도 넉넉합니다. 또는 ‘책들·책들녘·책들꽃’이나 ‘책바다’나 ‘책구름’이라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책을 빌리니 빌림입니다. 책을 돌려주거나 내니 ‘돌림·돌려줌’이나 ‘냄’입니다. 책숲에 찾아와서 여러 책을 살필 적에는 ‘살핌(살피다)’이라 하면 되지요. ‘열람(閱覽)’이라 안 해도 됩니다. ‘열람실’이란 살핌칸입니다. 책마다 붙이는 ‘청구기호(請求記號)’ 같은 일본말은 셈갈래·셈꽃이나 이름·이름꽃으로 옮길 만해요. 수수하게 ‘자리·갈래’라 해도 어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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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보다 더 기억해야 할 우리말씨

낱말책을 제대로 써서 작게 내놓으면서 조금씩 가꾸는 손길을 이웃님하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작은 꾸러미가 나오기까지 스무 해 남짓 걸렸습니다. 이러고서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하고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하고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하고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하고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같은 작은 꾸러미를 냈고, 2025년에는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조금 도톰히 내놓았습니다. 이런저런 꾸러미를 “굳이 내가 해야 할까?” 싶기도 했지만 “굳이 내가 작게 여미면서 나누면 넉넉하겠지.” 하고 마음을 돌렸습니다. 요사이는 새말(신조어)을 모르면 얼결에 바보가 된다고 여깁니다만, 오히려 우리는 ‘오랜 우리말’부터 제대로 모르는 ‘참바보’라고 느낍니다. ‘참’이란 ‘참거짓’을 가를 적에 쓰는 낱말이기도 한데, ‘차다’가 바탕이요, ‘차다 ㄱ=가득하다’라면 ‘차다 ㄴ=얼어붙는 듯하거나 얼다’입니다. 물은 안 춥거나 따뜻하면 그저 흐르지만, 겨울이면 덩이를 이뤄서 얼어요. 덩이를 이뤄서 어는 물이 ‘차’듯, ‘참’이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가득 있으면서 넉넉하고 빛나는 결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참새’나 ‘참나무’나 ‘참꽃’ 같은 이름에 깊고 너른 마음을 담아서 ‘참-’을 붙입니다. ‘참’하고 맞물리는 낱말은 ‘개-’인데 ‘개꽃’이나 ‘개오동나무’는 낮추는 말씨가 아닙니다. ‘참’은 우리 손길을 닿으면서 크고 넉넉한 결이라면, ‘개’는 들숲빛을 그대로 품으면서 푸른 결이에요. 그래서 짐승을 가리키는 ‘개’뿐 아니라, 바다와 들이 만나는 자리인 ‘개(갯벌)’가 있고, “날이 개다”와 “이불을 개다”와 “진흙을 개다” 같은 자리에 ‘개·개다’를 써요. ‘개’는 밝게 틔우면서 정갈하게 빛나도록 빚는 결을 나타내는 말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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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만난 어느 푸름이가 ‘모고’라는 말을 쓰기에 시골말로 “무엇인가?”를 뜻하려나 했더니 ‘모의고사’를 줄인 말씨라 하더군요. ‘모의고사’ 같은 낱말이 뭐가 길다고 줄여서 가리켜야 할까 싶습니다만, 우리는 우리말이 어떤 품과 결과 빛과 숨과 씨앗인지 까맣게 잊은 채 ‘누리길(sns)’에 허둥지둥 매달리면서 ‘껍데기말’에 스스로 갇히는 듯합니다. 이제는 차분히 마음을 다독여야지 싶습니다. 참하게 채울 줄 아는 책 한 자락을 품고서 풀꽃 나무를 어깨동무하는 눈썰미를 북돋우는 책마당을 즐겁게 열 수 있기를 바라요.



한글력을 키워 주는 어린이책 10선

이미애 수원 상촌초 사서교사


​요즘 우리 아이들은 짧은 영상에 익숙해져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한다. 줄임말과 외래어를 쓰는 것 또한 일상이 되어 간다. 우리말의 맛과 멋, 그리고 얼을 잃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만나고, 우리말을 읽고 쓰면서 한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끼는 기회를 만들려 한다. 그 일환 중 하나로 다달이 북큐레이션을 한다. 한글날이 다가오면, 한글 주제 책을 전시하고 한글날 기념 행사도 한다. 작년에는 자음을 초성으로 한 그림책 제목을 찾아 적는 행사를 했는데, 아이들은 도서관 곳곳을 누비며 ‘ㄱ, ㄴ, ㄷ’으로 시작하는 책들을 즐겁게 찾아냈다. 아이들이 책과 우리말을 놀이처럼 즐기는 모습을 보며, 사서교사로서 한글날 기념 전시를 꾸리는 일에 더욱 큰 의미를 느낀다. 어김없이 한글날을 맞이해 우리말의 맛과 멋, 얼을 담은 열 권을 소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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