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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어린이·청소년 희곡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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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7-02 15:52 조회 22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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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으로 어린이와 만난다는 것 



한윤섭 동화작가, 극작가




어제 수원에 있는 한 초등학교 북 콘서트에 다녀왔다. 북 콘서트 전 아이들은 ‘온작품 읽기’를 한다. 그리고 북 콘서트에서 작가를 만나고, 또 자신이 읽은 이야기를 무대로 보게 된다. 사실 이런 형태의 북 콘서트가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다. 우선은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공연 팀의 여건이 맞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 여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어린이들이 읽을 만한 ‘희곡의 오늘’



학교에서 온작품 읽기 주제도서를 선택할 때, 그 책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나 뮤지컬이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이 드물게 있다고 해도 학교 강당이나 시청각실로 상연할 수 있는 형태의 공연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북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원한다면 학교에서 책을 정하고 나서 공연 팀에 의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 공연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원작자와 출판사의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그다음 동화가 희곡으로 각색되어야 하는데, 한번 공연을 올리기 위해 그 모든 일이 진행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학교에서 허락되는 예산은 공연 팀 입장에서 보면 너무 적은 액수다. 각색, 작곡, 조명, 무대미술, 연기자와 스텝의 인건비, 1개월이 넘는 연습 비용 등을 모두 따지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 최소 20곳 이상의 학교에서 신청해야 만들어질 수 있는 사업이다. 그런데 몇 곳의 학교에서 온작품 읽기 주제도서로 선택할지 모르는 책을 가지고 미리 공연을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공연 팀은 없다. 다행히 나의 경우 동화작가와 극작가로 활동하며 동시에 공연 팀을 운영하다 보니 이런 사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힘들어도 북 콘서트를 보고 나온 어린이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 더 다양한 책들이 이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

 


“너는 어떤 배역을 맡았니?”



요즘은 어린이들이 읽을 만한 희곡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극작가는 ‘읽기 위한 어린이 희곡’을 쓰지 않는다. 대부분 공연을 전제로 글을 쓴다. 공연이 마무리된 희곡이 결국은 ‘읽기 희곡’으로, 또 학교에서 학생들의 연극용 대본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접하던 희곡이 대부분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 대상으로  공연들은 대부분 ‘쇼’의 성격이 강한지라, 읽기용 희곡으로 적합하지는 않다. 그건 공연계의 흐름이니 좋고 나쁨을 논할 순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이들이 읽을 만한 희곡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러니 북 콘서트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좋은 희곡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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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 콘서트 외에도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학교에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많이 만난다. 학교에 가서 여러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이 아이들과 읽은 동화책이 대본으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 선생님들에게는 단순히 어린이용 희곡 한 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온작품 읽기’와 같이 아이들과 함께한 활동과 연결되는 대본이 필요한 것이다. (...)



희곡, 인물들 간 관계에 집중하는 문학



그런 경험을 통해 내가 쓴 동화라도 희곡으로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내가 희곡을 쓰는 사람이니 어렵지 않은 작업이었고, 또 내 작품을 각색하는 것이니 저작권 문제 등이 없어 여러모로 순조로웠다. 문제는 출판사의 판단이었다. 사실 (국내 출판계 현실을 봤을 때) 희곡이 판매되기 어려운 실정이라 출판사 상황에선 고민스러웠을 텐데, 흔쾌히 받아주었다. 생각보다 희곡이 많이 판매되어 출판사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덜기는 했다. 

요즘도 ‘작가와의 만남’으로 많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강연이 끝나고 사인할 때면 희곡집을 가지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희곡으로 읽는 게 괜찮았는지 묻는다. 그러면 대부분 아이는 “희곡도 재밌게 봤어요.” 하고 대답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묻는 이유는 희곡을 읽는 것이 보통의 동화를 읽는 것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희곡은 대사로 진행되니 소설보다 설명이 적다. 또 대부분의 희곡집에는 삽화가 빠져 있다. 그러니 희곡을 읽는 아이들은 더 많이 사고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쉽게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들다. 그런 지점들이 어린 독자들에게 피로감을 주면서 쉽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지점을 넘어서면 희곡은 꽤 재미있는 장르가 된다. 

희곡은 소설처럼 이야기에 집중하는 문학이 아니다. 희곡은 인물이나 캐릭터에 집중하  인물들  관계에 집중하는 문학이라고   있다. 그런 특성이 아이들이 희곡을 읽으며 얻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희곡은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배역을 나눠 역할을 연기하면서 ‘혼자 읽는 문학’에서 ‘함께 읽는(하는) 문학’으로 확장된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려 있던 「크리스마스 캐럴」의 한 부분을 잊지 못한다. 그때는 희곡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아이들과 배역을 나눠서 읽을 때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지금의 아이들도 그 떨림을 느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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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희곡의 재미를 더 많이 누리길

 

결국 희곡 쓰기는 ‘함께하는 작업’이다. 이런 희곡의 특성이 희곡집을 읽는 아이들에게 전달될 거라 믿는다. 혼자 읽어도 되지만, 친구들과 나눠 읽으면서 ‘함께 하는 문학’의 정수를, 인물에 집중하면서 ‘관계에 집중하는 문학’의 정수를 느껴 보길 바란다. 이것이 희곡 읽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극작가의 일을 하면서 어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며 살았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랬지만 동화를 쓰면서 내가 동화 쓰는 일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 동화를 쓰고 있다. 동화를 쓰면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희곡 작업도 재미있다. 하지만 언급했듯 희곡 작업은 아주 예민하고 전투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동화를 쓰면 내가 다시 순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착해지는 느낌이랄까. 내가 동화를 쓰는 가장 큰 이유이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동화,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어린이 희곡이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의 아동·청소년극 연출 일기 



이래은 연극연출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은 복이다. 하지만 업계라는 곳에 발 딛는 순간, 좋아하는 마음을 깡그리 잊을 만큼의 고통이 수반된다. 나는 연극연출 일을 시작한 뒤 수많은 절망과 참담함을 마주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극연출을 하고 있다. 왜일까.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봤다. 나는 연극이 제일 재미있다. 하지만 재미 따위 몽땅 사라질 만큼 이 일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버텨 내고 싶은 마음이 기꺼울 만큼 연극은 재미있다. 시소가 오르고 내리듯이 엔진이 펌프질하듯이 단맛과 짠맛을 느끼듯이 그렇게 서로 다른 마음과 감각을 오가며 나는 연극을 지속할 힘을 얻는다.



첫 아동극 <고양이가 말했어>를 올리기까지


처음 연극을 했을 때도 딱 그랬다. 나는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여기던 11살이었다. 삶은 막막했고 외로웠다.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당시 4학년 교과서에 「석수장이」라는 희곡이 실려 있었다. 선생님은 대본을 반 아이들 모두에게 소리 내어 읽게 했고 각 인물을 캐스팅한 뒤 각자 대본을 외우고 연기 연습을 해 오라고 했다. 연극이 뭔지 몰라서 막막했고, 애들이 놀릴까 두려워 울면서 대사를 외웠다. 각자 연기 연습을 해 온 아이들이 모여 리허설을 하던 날, 선생님은 잘한다며 손뼉을 치거나 재밌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연극을 연습하는 동안만큼은 내가 쓸모없는 아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한편으론 더 두려워졌다. 내가 잘하지 못하면 선생님의 박수도 웃음도 받지 못할 테니까. 공연날이 됐다. 책상을 이어 붙여 만든 높은 무대 위에서 하얀 종이로 만든 옷을 입고서 나는 구름의 신이 되어 세상에 비를 뿌렸다. 두려움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묘한 통쾌함이 철길처럼 나란히 따라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인형극 <고양이가 말했어>(2005)를 쓰고 연출하며 연극연출가로 데뷔했다. 외롭고 우울했던 11살 아이 지영이가 고양이 야옹이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동안 혼자 있는 시간의 의미를 배우며 성큼 자란다는 이야기였다. 고독과 성장은 서로를 오가며 마치 시소처럼 엔진처럼 단짠처럼 삶을 지속할 힘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두려움과 통쾌함의 병렬적 발화가 내 11살에 연극을 새겨 놓았듯. 그렇게 연극을 처음 경험했던 11살 아이는 11살 때의 이야기로 연극을 업 삼는 어른이 되었다.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말하다,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


여전히 연극연출을 하고 있는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오래 연극 일을 해 왔음에도 연극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이 정도 일했으면 어느 정도 자신도 생기고 때론 거만해 보이기도 할 만큼 연극에 대해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지금껏 연출해 온 연극들이 한 번도 같았던 적 없기 때문이다. 극마다 처음 본 희곡으로 처음으로 작업하는 동료들과 처음 만난 극장에서 공연한다. 설사 같은 희곡으로 같은 배우와 스텝과 같은 극장에서 똑같은 관객들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 극은 전과 같은 극일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고 배우도, 스태프도, 관객도, 그리고 나와 세상도 그 사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연극은 처음이자 마지막 극이다. 서로 잘 모르는 채로 연습이 시작된 후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려 할 때 공연은 끝난다. (...)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도 그랬다. 2017년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의 제작지원으로 시작했던 이 공연은 청소년들의 섹슈얼리티 이야기다.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밝은 곳에서 은밀함 없이 말해 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배우와 스태프 들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 온 성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며 연습했고, 상연 후에는 다양한 관객들과 만나 청소년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그런데 첫 공연 다음 해인 2018년, 문화예술계의 미투운동이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 온 배우와 스태프 들은 초연 때와는 또 다른 첨예함으로 대본 연습을 했다. 관객들도 그렇게 달라져 있었다.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사회적 변화들 속에서 3년 동안 공연은 더욱 섬세해졌고, 창작자와 관객들은 예리해졌다. 그리고 초연으로부터 5년이 지난 2022년 가을, 신촌문화발전소에서 관객 참여형 낭독극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로 다시 관객들과 만났다. 관객들이 배우들과 함께 대본을 읽으며 장면 사이사이 5년 동안 드러난 한국사회의 섹슈얼리티와 젠더감수성에 관한 사건들을 낭독했다. 우리 사회의 변화와 정체를 함께 감각하며 이야기 나눴다. 세상도, 창작진도, 관객도 달라져 있었다. 5년간 네 번의 공연을 하면서도 같은 공연이었던 적이 없었다. 모든 공연이 여럿이 함께 반복한 끝에 맞이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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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미투로 그 시절의 상처를 보듬다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내가 여전히 연극연출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럿이 함께하는 반복’에 있다. 연극을 한 편 만들기 위해선 여럿이 모여 희곡을 읽고 또 읽는다. 말하고 또 말하고, 움직이고 또 움직이며 여러 사람이 함께 하나의 작품을 벼려 나간다. 그렇게 반복하는 사이,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모호하던 것이 뚜렷해지고, 없던 것이 생겨나며, 단순하던 것이 복잡해지거나 또는 복잡스러웠던 것이 간결해진다. 혼자라면 견디기 어려워 진작에 지쳐 나가떨어졌을 과정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한 번의 공연을 향해 ‘여럿’은 함께 기꺼이 ‘반복’한다.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가 그랬다. 자신의 몸과 욕망에 대한 인지, 성적 대상화, 성폭력, 성에 대한 터부, 두려움과 호기심 등 갖가지 주제가 온통 뒤엉켜 있는 여성 청소년의 섹슈얼리티와 여자고등학교라는 기이한 공간을 탐구하고 사유하는 공연이었다. 누구나 삶에서 납득되지 않는 사건이나 시절이 있다. 내게는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온갖 부조리로 가득했던 곳. 언젠가 그 시절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그다음으로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연출, 배우, 작가 세 사람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억들을 쪼개서 배치하고, 다시 다듬어 배치하고를 반복하며 쓰인 희곡이었다. 희곡에 담긴 공간, 몸짓, 빛, 소리, 음악을 여럿이서 함께 지난하고 뜨겁게 반복하며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공연을 관객들은 보고 또 보았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또 말했다. 서로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반복하는 사이, 고통스러울 만큼 납득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경험을 하나둘씩 풀어내고, 지켜볼 수 있는 냉철한 힘이 나에게도 쌓여 갔다.

상상해 본다. 학교도서관에서 어린이·청소년과 어른이 어우러져 「고양이가 말했어」와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와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등의 희곡을 소리 내서 읽는 상상을. 동시대 여러 작가의 온갖 희곡을 소리 내며 함께 읽는 상상을. 학교와 극장은 닮아 있다. 둘 다 여럿이 모여 함께 감각하고 사유하는 곳이기 때문에 희곡을 읽어 함께 소리를 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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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을 좀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

 
희곡은 혼자 읽기 위해 존재하는 글이 아니다. 연극 상연을 위해 쓰이거나 혹은 상연 후의 기록물이므로, 이미 글 안에 여러 사람의 물리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다. 소설이 묘사로 이뤄진다면 희곡은 대화로 이뤄진다. 대화는 소리로 내뱉으며 주고받는 말이다. 희곡작가들은 희곡을 퇴고할 때 소리 내어 읽어 본다고 한다. 희곡을 수어로 번역할 때는 수많은 몸짓을 주고받는다.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배우들도 희곡을 움직이면서 읽고, 움직이면서 말한다. 글이 소리가 되고 몸짓이 되는 물리적 변화가 희곡의 천성이다.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희곡을 좀더 재밌게 읽는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희곡의 지문, 즉 괄호 안에 있는 행동 지시문을 몸으로 따르며 읽는다. 그러면 움직임 때문에 호흡과 읽는 속도, 목소리의 높낮이가 달라진다. 가만히 앉은 상태로 읽는 것보다 소리가 다양해져서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조금 더 즐거워진다.
둘째, 희곡에는 없는 숨이나 감탄사를 넣어서 읽는다. 속상함을 토로하는 대사 앞에서 길게 한숨을 쉬거나, 화를 내는 대사를 하고 나서 으아아아 하고 크게 포효하거나, 놀라는 장면에선 아이쿠, 어머나, 어어? 등등의 다양한 감탄사를 시도하며 대사를 읽는다. 숨이나 감탄사를 시도할 때 몸도 동시에 사용한다. 숨을 밭게 쉬며 이마의 땀을 소매로 훔치거나, 커다랗게 소리 내 웃으며 손뼉을 치거나, 싫다는 말을 할 때 고개를 천천히 가로 젓는 등 희곡 안에 지문으로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이처럼 떠오르는 대로 숨이나 감탄사를 몸짓과 함께 시도하며 읽어 본다. 
셋째, 희곡 속 공간을 구체적으로 꾸민 후 그 안에서 읽는다. 희곡에 나와 있는 공간에 대한 힌트들을 모두 찾아 모은다. 그다음 모은 정보를 따라 문이나 창, 책상, 침대 등 구체적인 물체나 공간 구획을 메모지에 적어서 바닥이나 의자에 올려 두거나 바닥에 테이프로 표기한다. 이렇게 공간을 꾸민 뒤 읽으면 공간을 색다르게 감각한 몸이 반응을 해 미세할지라도 읽는 방식이 분명 달라진다. (...)

한꺼번에 시도하긴 어려워도 하나씩 천천히 반복해서 이 방법들을 연습하다 보면 분명 희곡 읽기가 달라질 것이다. 연극이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시소를 타듯 어려움과 즐거움을 오가며 오래오래 여럿이 함께 반복하다 보면, 처음이자 마지막인 단 한 번의 소중한 순간들과 만나며 어느새 연극에 푹 빠진 자신과 아이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이 희곡의 고향을 찾아서

국내 어린이 희곡의 계보와 오늘날 화두



송인현 극단 민들레 예술감독




최근 초등 고학년 교육과정에 연극 단원이 도입되면서 연극 만들기에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연극을 만들려니 자연스레 희곡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희곡은 연극을 하기 위한 기초 설계도로, 공연을 위해 쓰이는 글이기 때문이다. 희곡을 읽을 때는 시·소설·수필을 읽을 때와는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다. 희곡은 혼자 책상에 앉아 무대를 상상하며 읽는 장르가 아니다. 희곡은 여러 사람이 같이 여러 번 읽으면서 내용에 공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적 구성이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가장 효과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장르다. (...)



우리나라 어린이 희곡의 흐름



1923년, 방정환에서 시작된 어린이 희곡

우리나라 어린이 희곡은 방정환의 「노래 주머니」에서 시작한다. 방정환은 1923년 3월,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면서 「노래 주머니」를 싣는데, 창간호에 꼭 희곡을 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매우 급하게 글을 쓴 흔적이 보인다. 등장인물 ‘혹부리 영감’이 4월호에 가서야 ‘박 서방’이라는 성을 얻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 서둘러 작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희곡의 특성이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인물들의 성격이 분명하며 행위를 통해 극이 전개된다.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후 방정환은 「토끼의 재판」과 「아버지」라는 희곡을 쓰는데, 「토끼의 재판」은 말맛이 아주 잘 살아 있는 작품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조금도 언어적 감각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필자가 특히 높이 평가하는 희곡이다. A4용지 한 장 분량의 아주 짧은 희곡이지만 방정환이 펼쳤던 어린이 해방 정신(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윤리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주 쉽고 재미있게 녹아 있다. 이후 방정환은 잡지 <어린이>에 여러 사람의 희곡을 실어 어린이들이 연극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방정환을 이은 아동극의 효시, 주평


동랑 유치진도 「청개구리는 왜 날이 궂으면 우는가」와 같은 어린이를 위한 희곡을 썼지만, 본격적으로 어린이 희곡을 쓴 사람은 ‘주평’이다. 주평은 1953년에 「토끼전」을 ‘전국 학생극 각본 현상 모집’에 출품하였고, 이후 유치진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희곡 작가로 등단한다. 특히 1967년부터 1995년까지 28년 동안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그의 희곡 「석수장이」, 「숲속의 대장간」, 「크리스마스 송가」 등의 작품이 실리면서 그는 어린이 희곡의 전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196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극단 ‘새들’을 창단해 어린이들이 직접 무대 위에서 공연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그가 한국아동극협회를 만들어 전국아동극경연대회를 펼치면서 벽에 부딪힌다. 경연대회는 초창기 많은 학교의 호응을 얻어 크게 번창하였으나 공연 배정 시 관객 호응 점수를 높게 고려하는 등 순수성을 잃었다. 이와 동시에 어린이 연극은 쇠퇴했고, 어린이들이 직접 연극을 하는 일도 크게 줄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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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병, '극을 위한 희곡'의 계보를 만들다

1990년대에 들어 연극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극작가 윤조병이 어린이극에 눈을 돌리면서 어린이 연극에서 희곡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물론 이때까지 잡지나 책자를 통해 희곡이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희곡은 공연을 위한 글이라기보다 문학작품의 한 축으로, 공연을 전제하지 않는 글이었기에 읽기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윤조병의 등장은 어린이 희곡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윤조병은 어른들을 위한 매우 사실적인 희곡을 썼다. 하지만 어린이 희곡은 실험적으로 썼다. 특히 말년에 집필한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 왕자」(2007)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 『개구리 왕자』 이야기를 사람과 인형, 그리고 영상이 어우러지는 복합극으로 매우 독창적으로 표현했고, 「붓바람」(2010)은 정통적인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쓴 희곡이다. 또 윤조병은 지역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콧구멍이 벌렁벌렁」(2008) 같은 희곡을 썼다. 극작가 윤조병은 어린이 희곡을 통해 자신의 예술 영역을 크게 확장했다.


김정숙, 최초의 현대창작희곡 교과서 수록 극작가

오늘날 어린이 희곡으로 크게 주목받는 작가로는 김정숙이 있다. 김정숙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2003)이 2010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면서부터 대중에게 주목받았지만, 실은 이미 1980년대부터 어린이 희곡의 중심에 있는 작가였다. 앞서 1980년대 어린이극들이 대부분 연출가 중심으로 희곡보다는 공연성에 맞춰져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김정숙은 처음부터 희곡을 중심에 두고 연극 작업을 해 온 작가라 할 수 있다. 어린이 희곡집 『쌀밥에 고깃국』(2005) 외에 많은 희곡집을 냈고, 한국전쟁 이야기를 다룬 <내꺼야>(2014), 환경 연극 <쓰레기 꽃>(2017), 한글의 위대함과 그 창제 과정을 다룬 <소년 세종, 가나다라의 비밀>(2021) 등의 다양한 극을 올렸다. (...)



아무나 하기 쉬운 연극으로 방정환 정신 잇기


(...) 희곡으로 연극을 만든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학교도서관에서 희곡으로 극을 만들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읽기’에 그친다 하더라도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글을 말하고, 여럿이 모여 여러 번 읽으면서 공감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지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상식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고 배우들에게 지시하기보다 극중 인물들이 “왜 그렇게 말하지? 왜 그런 행동을 할까?” 하고 질문하는 것이 좋다. 방정환은 “꼭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내용만 틀리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했다. 대본을 들고 그 내용을 말하면서 움직이면 효과적이고 재미있는 희곡 읽기가 될 것이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4 <학교도서관저널> 7+8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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