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덕후로운 생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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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7-04 11:10 조회 1,647회 댓글 0건본문
오 감독의 Q&A:
좋아하는 마음을 말한다는 것
오세연 <성덕> 영화감독, 『성덕일기』 저자
안녕하세요.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을 만든 오세연입니다. <성덕>은 청소년기 우상으로 삼았던 스타가 범죄자로 밝혀지면서 실망과 분노, 슬픔이라는 감정을 겪으면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감독인 제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상처받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우리에게 덕질은 무엇이었는지, 누군가의 팬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건지 대화한 기록입니다. 나아가 마음껏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에 다시 누군가의 팬이 될 수 있을지 질문하고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돌아보는 영화입니다. 극장 개봉 당시에는 마케팅팀에서 ‘X성덕의 덕심 덕질기’라는 귀여운 로그라인(짧은 문장으로 정리한 이야기의 설정문, 콘셉트를 함축한 것)을 붙여 주셨는데요. 아마도 영화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정확한 소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를 만들며 쓴 글들과 영화를 만든 후의 소회를 담은 필름 에세이 『성덕일기』도 출간했고요. 최근에는 밀리의 서재에서 단식원 체험기 「지금 굶으러 갑니다」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이기도 합니다.
Q. “분노에 차서 카메라를 들었다”는 내레이션으로 막을 여는 영화 <성덕>을 제작하고자 마음먹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애정한 시간이 깊었기에 이를 다른 형태로 구성하고자 했을 때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는지 궁금해요.
Q. '그'가 범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팬들 역시 조롱거리가 됐던 현실을 열 명의 팬 인터뷰를 통해서 조망하셨는데요. 팬들이 입는 마음의 상처를 '2차 가해'라고도 하셨지만, 한편으론 통증을 나누며 연대한 시간이 소중해 보였어요. 인터뷰하며 어떤 발견을 하셨나요?
Q. 『성덕일기』에서 "누군가가 만든 무지개 속에서 이게 사실은 신기루였구나, 하고 돌아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대목이 와 닿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신기루가 아닐 수 있도록, 나의 덕질을 객관화한 비결은요?
A. 무언가에 한창 빠져있을 때, 그런 상태의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만들면서, 덕질을 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한창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을 때는 즐거운 일만 가득해서 절망적인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덕질이 끝나도 덜 상처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만들면서야 하게 됐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그 사람을 잘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사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내가 보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 다가 아니니까요. 특히나 연예인을 좋아할 때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 노출할 수 있는 부분만 보여 주게 되니까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은 그 사람이 ‘보여 주고 싶은 모습’ 또는 ‘보여 줄 수 있는 모습’일 뿐이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싶겠지만, 사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늘 인지하는 게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마음껏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 좋아하는 마음을 돌아보는 영화 <성덕> 중 한 장면
Q. 십 대부터 아이돌을 열렬하게 좋아하는 현상을 하위문화로 여기고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어도 울타리는커녕 꼴불결 취급하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팬덤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해요. 스타를 좋아하는 자녀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특정 지식이 필요한 걸까요?
A. 저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본 적이 없고 저희 엄마 역시 누군가의 팬인 저를 나름대로 지지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한데요. 그래도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사람이 청소년기를 경유해 성인이 되잖아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청소년기는 감정적인 변화도 많고, 학업에 집중하고 친구 관계를 돌보고, 진로 찾기에 주력하는 등 고민이 많은 시기입니다. 삭막한 청소년기에, 나를 반드시 행복하게 하는 어떤 요소가 있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잖아요. 지나치지 않은 정도라면 취미 생활이라 생각하고 어느 정도 허락해 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저에게는 청소년기의 덕질이 ‘버틸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줬거든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 같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건 청소년기의 특권이니까, 존중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에는 모녀가 함께 ‘입덕(덕질을 시작하는 것)’해서 ‘오프(콘서트, 사인회 등 스타를 만날 수 있는 현장)’를 뛰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좋아하는 마음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조금은 믿고 지켜봐 주세요!
Q. 마음껏 사랑하는 일을 지속해 온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은 지금도 넘쳐 납니다. 팬덤 문화를 접하는 초심자가 지양하고 지향해야 할 태도를 꼽아 본다면요?
A. 모든 집단이 다 그렇겠지만, 팬덤은 유독 내부와 외부의 시선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동안 매체에서 다루어 온 팬덤의 모습이 단순하고 무식하게 묘사되었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하위문화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팬덤도 작은 사회입니다. 좋아하는 대상이 같다는 이유로 모이게 된, 어쩌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집단인 것 같기도 해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고 더 많이, 더 잘 사랑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어떤 집단이든 문제점이 존재하지만, 일부의 모습만으로 전체를 판단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Q.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기에 덕후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게 예찬받아 마땅합니다. 오늘의 덕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나요?
A.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라는 말도 있잖아요. 내가 속하는 사회에서, 무언가의 ‘덕후’인 나를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아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상처받는 일은 무척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뭔가를 응원하고 아끼는 마음 자체를, 누군가의 팬인 나 자신을 좀더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봐 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덕질하고 있는 모든 분들, 마음껏 행복하시고 마음껏 사랑하시길 바라요. 나중에 돌아봤을 때 분명 후회 없이 의미 있을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만끽하시면 좋겠습니다.
알아 두면 쓸모 있는 덕후 사전
이수아 서울창신초 사서
학교도서관 사서는 10대들과 함께하는 직업인데,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급식체를 인터넷과 책으로 독학했었다. 자신만만하게 도서관에 온 아이들에게 응용하면 그땐 이미 사장된 단어가 되어 버려 곧 관뒀지만. 대신 ‘아이돌’로 접근하면 되었기에 포기가 빨랐던 것도 있다. 톱스타가 없던 시절 그러니까 10명에게 물으면 10명 모두 좋아하는 그룹이 달랐던 ‘스타 전국시대 시절’부터 필자는 아이돌 덕후 대장으로 활약했다. 덕후가 아니더라도 덕후 용어를 알아 두면 쓸모가 있다. 일단 어린이·청소년 이용자들과 대화가 된다. 아이돌 세계를 아는 자, 아이들 세계와도 가까워질지니! 관련 용어를 알아보자.
겸덕, 늦덕, 탈덕, 휴덕
눈밭, 피켓팅, 포도알, 이선좌
덕계못은 성덕을 꿈꾼다
멜지벅플바스애, 써방
'갓겜'의 결정체,
로스트아크를 소개합니다
권경진 서울 영등포여고 사서교사
누군가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게임이라고 대답한다. 학생들과 수업이나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는 시간이면 보통 ‘진진가 게임(나를 소개하는 세 가지 문장 가운데 한 가지는 가짜로 설정하여 참과 거짓을 맞히는 게임)’을 하는데, 그때마다 “내 취미는 게임이다.”라는 문장을 꼭 넣는다. 학생들은 대부분 이 문장 때문에 고민에 빠지곤 한다. 여가 시간에 게임을 주로 한다고 하면 대체로 인식이 좋진 않다. 건전하지 못하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물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서 게임에만 빠져 있는 것은 문제가 맞다. 하지만 여가 시간에 신체적·정신적·경제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게임을 즐긴다면 이 또한 하나의 문화생활로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건전하게 게임을 즐긴다면 분명히 매력적인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친구들과 게임이 취미인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오면 좋겠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이번 호에서는 요즘 내가 열정적으로 몰두하며 덕질하고 있는 갓겜(GOD+게임, 최고의 게임을 지칭하는 은어), ‘로스트아크’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로스트아크와 사랑에 빠지다
입문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남동생이었다. 동생과는 이전에도 ‘메이플스토리’, ‘테라’와 같은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온라인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미션, 업적 등을 달성하는 게임)를 같이 했었다. 동생이 4년 전쯤부터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이 있는데 재밌더라, 누나도 같이 하자”라고 권유했지만, 그땐 다른 덕질에 빠져 있었을 때라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의 취미도 게임인지라 집에 게임방을 하나 두게 됐다. 이왕 같이 사는데 같이 게임 한번 해 볼까 하여 로스트아크를 2년 전부터 시작했다.
로스트아크는 직업을 정해 캐릭터를 생성하고, 여러 콘텐츠를 통해 레벨을 올리고 장비를 강화하면서 내 캐릭터를 육성하는 게임이다. 로스트아크는 ‘아크라시아’를 침략하려는 악마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 주된 배경 이야기이다. 다양한 대륙들을 방문하여 왕의 기사가 되기도 하면서 족장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다양한 모험을 즐긴다. 로스트아크는 영상미가 좋고 스토리도 재밌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감동적이거나 슬픈 이야기들을 많이 접해 운 적도 많다. 새로운 직업의 캐릭터를 키울 때마다 메인 퀘스트를 다시 해야 하는데, 메인 퀘스트를 건너뛸 수 있는 점핑권도 있긴 하지만, 일부러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스토리를 보기도 한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재탕’, ‘삼탕’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히려 캐릭터마다 성별과 종족이 달라 같은 스토리인데도 다른 느낌이 나기도 한다. 로스트아크를 덕질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여태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게임들의 집합체였기 때문이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처럼 벌목, 채집, 낚시, 채광도 하고, ‘마인크래프트’처럼 벌목, 채집, 낚시, 채광 등의 결과물로 아이템을 만들어 나의 영지(인게임에서 집과 마을을 의미하는 개념)를 예쁘게 꾸밀 수도 있다. ‘메이플스토리’처럼 캐릭터를 예쁘게 꾸미는 것도 가능하다. 메이플스토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로스트아크는 옷을 사면 염색이 가능해 같은 옷이더라도 남들과 다르게 색깔, 광택, 패턴 등으로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인 ‘테라’처럼 캐릭터를 만들 때 눈, 코, 입, 머리 색깔 등을 하나씩 조절하여 외형도 내 개성대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로스트아크 배경화면과 환하게 빛나는 모코코 무드등
모니터 속 나의 소중한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