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판타지 추리 책(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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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06-28 15:29 조회 6,648회 댓글 0건본문
추리문학, 논리와 재미로 키워낸 철학의 나무
강상준 대중문화평론가
강상준 대중문화평론가
인간에게 있어 호기심은 가장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다. 자연의 원리와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도록 독려했던 것도 호기심이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숨겨진 것을 발굴한 것도 호기심 때문이었다. 비밀을 파헤치고 정답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자 근원적 쾌감 그 자체였던 탓이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서사예술에서 ‘미스터리(mystery)’ 요소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독자를 작품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선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알 듯 모를 듯한 수수
께끼로 독자의 흥미를 돋운 다음 점진적으로 단서를 흘리며 마침내 해답을 찾아가는 것. 예컨대 미스터리 장르가 아닌 로맨스 장르에서도 완벽한 남자 주인공에게 종종 숨겨진 이력을 부여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미스터리야말로 서사문학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근원적인 쾌감인 것이다.
‘ 추리문학’이란 무엇일까?
추리문학은 이러한 미스터리 요소를 전면에 부각한 문학 장르를 일컫는다. 탐정이나 형사가 등장해 불가해한 사건을 해결하는 일련의 작품군을 떠올리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추리문학은 서구에서 미스터리, 디텍티브 스토리(detective story, 탐정소설) 등으로 칭해지던 문학 장르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추리문학(推理文學)’이라는 용어로 변모한 것으로, 오늘날 우리도 이를 수용해 미스터리 소설, 추리소설 등으로 부른다.
근대 추리문학의 기원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1841)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는 19세기 당대 미국 작가들과는 달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 전념했던 선구자였다. 시, 소설, 문예 비평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작품을 집필했던 그는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비롯해 「마리 로제 미스터리」(1842), 「황금충」(1843), 「도둑맞은 편지」(1844)와 같은 단편소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추리문학이라고 일컫는 서사 형식을 정립했다.
이 단편소설에서 그는 불가사의한 사건을 제시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치는 과정에 교묘한 트릭을 배치한 다음, 이를 논리적인 단계를 거쳐 해결하는 서사를 선보였다. 이 기법은 독자를 지적 게임으로 인도하고, 이를 통해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결말부 해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는 것으로, 오늘날 추리문학의 맥락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포의 소설에서 명철한 논리를 앞세우며 활약했던 캐릭터인 어거스트 뒤팽(Auguste C. Dupin)은 근대 추리 문학 사상 최초의 명탐정 캐릭터로서 후대 탄생한 수많은 탐정 캐릭터의 근간을 이룬다.
‘추리(推理)’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추리문학의 정체는 더욱 분명해진다. “아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 생각함.” 즉, 문제를 제시하고 단서를 모아 이를 기반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추리문학의 바탕인 셈이다. 19세기 말, 미스터리 장르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20세기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에 이르러 인기 장르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에도 기존 추리문학의 개념은 보다 넓은 방향으로 확장됐다. 탐정이 등장해 복잡한 트릭을 풀고 괴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상을 반영하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보다 현실에 밀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경찰 기관의 면밀한 내부 구조나 제도적 한계 등을 중심에 둔 경찰소설 또한 추리문학의 한 갈래로 자리 잡는 등 시간이 갈수록 탐정 역을 보다 다양한 직업, 다양한 공간의 캐릭터들이 분담하고 있다. 심지어 아예 탐정역이 존재하지 않는 작품도 많다. 쉽게 풀리지 않는 복잡한 사건만이 아니라 인간의 뒤틀린 심리나 추악한 본성 자체를 미스터리로 상정한 뒤 이를 파헤치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작품의 스타일 또한 훨씬 다양해지는 추세다.
추리문학의 효용성
추리문학을 다른 문학 장르와 가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우선 논리적인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문학 장르 역시 나름의 논리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추리문학은 불가사의한 상황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것이 서사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정교한 트릭으로 상황을 미궁에 빠뜨린다. 작가는 범인의 손을 빌려 논리적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불가해한 상황을 연출하고 이를 독자에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미스터리라도 반드시 정답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범인을 통해 난해한 문제를 제시했다면 그 다음에는 명탐정의 명철한 시선으로 이를 재구축한다. 물론 이 과정은 작중 캐릭터들만이 아니라 고스란히 독자에게까지 미친다. 과거 고전 추리문학이 부러 페이지를 할애해 에두르지 않고 독자에게 정답을 맞춰보라며 도전했던 것 역시 이를 방증한다. 초창기 추리문학은 독자들은 알 수 없는 단서를 오직 작중 명탐정만이 발견하고 착안해 사건을 해결하는 이른바 ‘불공정 게임’을 벌이기도 했지만 근래 이런 경향은 거의 사라졌다.
즉, 범인과 탐정이 벌이는 논리 게임은 작가와 독자와의 페어플레이 게임이 되어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일깨우며 이성적인 접근을 독려하는 것이다.
추리문학의 두 번째 효용은 문학적 재미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추리문학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그득하다. 명탐정의 대명사와도 같은 셜록 홈즈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사람을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행적과 출신은 물론 성격, 취미, 습관까지 알아낸다. 단순한 직관이 아니라 면밀한 관찰을 통해 초인적인 통찰력을 발휘한 것이다. 홈즈는 오늘날까지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며 계속해서 유통기한을 연장 중인 추리문학의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다. 홈즈를 비롯해 애거사 크리스티의 회색 뇌세포, 에르큘포와로, 스코틀랜드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 경위,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한 괴짜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등은 추리문학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의 면면을 대변하기 충분하다.
또한 추리문학은 필연적으로 급전하는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건의 핵심을 파고들어 마침내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반전이나, 지적 게임을 벌이는 도중 트릭에 빠져 엉뚱한 길을 헤매는 과정 모두 독자를 쥐락펴락하며 책장을 넘기게 하는 동력이 된다. 또한 악을 응징하거나 마침내 베일이 벗겨졌을 때 얻는 카타르시스 역시 추리문학에서 맛볼 수 있는 극진한 문학적 재미 중 하나다.
독서 이후의 시간을 풍요롭게 하는
무엇보다 추리문학은 이러한 혼돈의 세계를 그대로 두는 법이 없다. 인간의 그릇된 본성이 아무런 저항 없이 승리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국 선이 승리하고 악이 패배하는 등 선악의 경계를 명쾌하게 구분하는 것도 아니다. 자연히 독자는 경계선에 서서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고 스스로에게도 선택지를 건네는 등 독서 후의 시간과도 마주하게 된다.
결국 추리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작품 안에 응축된 논리를 풀어내고 문학 본연의 재미를 오롯이 느낀 다음 이를 독자 개인의 철학으로 구축해내는 과정과 다름 아니다. 미스터리 문학에 대한 책인 『죽이는 책』에서는 추리문학에 대해 “인간 최악의 본성이 아무런 저항 없이 승리를 거두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은 선한 남녀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선한 세계에 발 딛고 문제를 숙고하는 추리문학은 청소년에게 독서의 재미를 깨우치고 마침내 독서 후의 시간까지 풍요롭게 만드는 흥미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