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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책, 읽기와 듣기 사이에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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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11-06 13:30 조회 5,22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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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하기 좋은 가을 그리고 시
하늘이 부쩍 높아진 가을에 어울리는 독서 방법은 단연코 낭독이 아닐까 싶다. 낭독(朗讀)은 글을 소리내어 읽는 것으로, 글의 의미가 귀로 다시 들어오며 내용을 풍부하게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다. 초등학교 도서관에서는 한글에 서툰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림책(동화책) 읽어 주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주로 학부모와 인근 복지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원봉사의 형태로 아이들에게 낭독을 해준다.
낭독은 혼자도, 여럿이도 할 수 있는 독서 방법으로 학교도서관 독서 수업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럿의 청중을 두고 읽는 방법을 아이들이 기피하기에 어려움이 생긴다. 제딴에는 몹시도 ‘오글거린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오글거리지 않는 낭독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함축적인 단어들을 내뱉을 때 그 의미가 다양하게 전달되는 특징을 가진 ‘시’로 방법을 찾아보았다. 때마침 장흥 자연휴양림에서 1박 2일 독서캠프를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캠프의 한 프로그램으로 시 낭송을 계획했다. 조용하고 맑은 자연 속에서 학생들과 별을 함께 보고, 시를 읽는 밤을 만들고 싶었다.

어떤 시를 읽어 볼까?
최근에 ‘SNS형 시집’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시 읽는 밤』(하상욱 지음)이 대표적인 예로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이 책을 보려 도서관에 찾아올 정도였다. 짧은 시어 속에 유쾌함과 당황스러움, 분노 등 다양한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는 이 시집은 축약어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짧은 시 써 보기를 할까, 모둠별 삼행시 짓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독서캠프의 밤 낭만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시를 정하고 낭송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지어진 시낭송 프로그램의 이름이 ‘낭만낭송’이었다.
어떤 시로 해야 하지? 감정, 자연, 사회, 역사 등 주제와 시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어려울 때는 언제나 참여하는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그때 마침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개봉을 했기 때문일까? 다수 학생들의 강력 추천으로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선정할 수 있었다. 시집을 선정하고, 낭송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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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과 낭송을 하기에 좋은 책은 그 배경에 대한 이해가 잘 나타나는 책이다. 읽는 친구도, 듣는 친구도 글에 대한 의미를 깊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시대적 특수성을 가진 시집은 낭송 도서에 더욱 적합하다. 일제 강점기 시대, 시대적 아픔을 시로 표현해 낸 시인에 대한 이해를 위해 영화 <동주>를 학생들과 함께 보았다. 흑백 화면 속 젊은 청년의 고뇌와 아픔, 그 안에서 탄생한 시를 함께 보며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이해를 돕고자 역사적 배경과 문학적 설명을 덧붙이며 자연스레 교과 연계 학습이 가능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윤동주의 선택 & 나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감상 토론을 실시했다. 이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함께 읽으며 시인의 상황과 마음에 대해 함께 토론해 보았다.

어떻게 읽어 볼까?
독서캠프는 우선 즐거워야 한다. 아이들은 즐거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습득하고,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독서캠프는 언제나 몸으로 즐길 수 있는 모둠별 협동 책놀이로 시작한다. 그 후에 함께 읽기, 생각하기, 토론하기 등의 생각하는 활동을 펼쳐 간다.
독서캠프 속 시 낭송은 자정 무렵에 시작했다. 먼저, 아이들과 자연휴양림 숙소 툇마루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별을 보았다. 소곤거리던 아이들이 점점 고요해지며, 까만 밤하늘 별 속에 동화되었다. “윤동주 시인은 어떤 마음으로 별을 보았을까?”라는 말을 슬쩍 던졌다. 내가 그 시절의 시인이었다면, 어떤 밤 하늘의 별을 보고 시를 썼을까, 어떤 시를 쓸 수 있을까?
별을 본 후에 아이들에게 원고지와 연필을 나누어 주었다. 모둠별로 자유롭게 둘러앉아 윤동주의 시집을 읽고, 그중 한 편을 골라 따라 쓰기를 해보았다. ‘나의 시 쓰기’ 활동도 함께 이어갔다. 모둠별로 돌아가며 각자 골라 쓴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하는 학생들에게 낭송의 시간을 주었다. 시를 읽는 밤에 어울리게 키가 큰 스탠드와 의자를 마련해 주었다. 불빛이 꺼진 방에서 스탠드는 낭송자만을 비추어, 앞의 청중과 낭송자 모두가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로 시를 이해하고 읽었다. 하나 둘, 오글거림을 이긴 아이들이 나와서 시를 읽었다. 작은 입 모양으로 시를 따라 읽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감동이 가득 울리는 밤이었다.

“교과서에서 본 거랑 너무 달라요.”
“제가 윤동주 시인이 된 것 같아서 뭉클했어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너무 슬프고, 그 와중에도 별을 헤는 시인이 너무 안쓰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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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재미
어느 책방의 낭독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모임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첫째, 한 권의 책을 들고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모인다. 둘째, 차례대로 돌아가며 소리 내 읽는다. 셋째, 시간이 다되면 책을 덮고 끝낸다. 말 그대로 ‘낭독 모임’이었다. 생각과 감상을 길게 묻지 않는 ‘낭독 모임’ 은 책에 더 집중하게 했다. 타인과 함께하는 낭독은 혼자서 머릿속으로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었는데, 내 차례에 긴장하며 읽는 것과 다른 이의 목소리로 책을 듣는 것 모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낭독의 즐거움을 알게 된 후, 매년 11월의 점심시간에는 도서관에서 낭독회를 열고 있다. 단편소설 낭독을 몇 회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좀 더 재미있어할 만한 텍스트는 뭘까?’ 하고 찾던 중『소년이 그랬다』라는 흥미로운 청소년 희곡을 발견했다. 『소년이 그랬다』는 스페포 난쑤, 톰 라이코스의 원작 『더 스톤즈』를 한현주 극작가가 각색한 청소년 희곡이다. 중학생인 민재와 상식이 장난삼아 돌을 던져 누군가가 목숨을 읽게 되는 사건으로 진행되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낭독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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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도서관에서 연극을?
도서관에서 연극을 읽는다고 홍보한 뒤, 낭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신청을 받았다. 학생들에게 대사를 읽을 거라며 『소년이 그랬다』의 한 페이지를 보여 주면 (이때 청소년들의 언어를 그대로 보여 주는 청소년극의 장점을 십분 발휘!) 하나 둘, 텍스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단편 소설을 낭독할 때에는 주로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권했는데, 희곡 낭독을 할 때에는 매일 도서관에 오지만 책보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바쁜 아이들에게도 권하고 연기나 공연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에게도 묻는다. “도서관에서 연극 읽어 볼래?”
『소년이 그랬다』는 총 10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점심시간 열흘에 걸쳐 한 권을 다 읽었다. 낭독 시간은 10∼15분, 짧게 감상을 나누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약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낭독에 참여하는 학생은 총 스무 명
이다. 2인극이므로 두 명씩 한 팀으로 신청 받고 낭독 날짜도 정한다. 낭독하는 날 친구들을 데려와 청중으로 참여하게 해도 좋다고 안내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며 아무도 안 데려올 것처럼 말하지만 열심히 연습을 하고나면 친구들을 여러 명 초대한다.
학생들에게 도서관 안쪽 교실을 연습실로 쓰게 했다. 낭독자는 사전에 틈틈이 도서관에 들러 연습하도록 한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의 ‘대본 리딩’을 예로 들면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다. 학생들은 자신의 분량을 소리내 읽어 보고 짝꿍 친구와 대사를 조용조용 맞춰 본다. 이때 재미있는 주의사항은 도서관이 소란스러워질 수 있으므로 너무 열정적으로 연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프로그램 전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책 『소년이 그랬다』 텍스트는 도서관 안에서만 읽고 연습하게 했다. 낭독자 모집과 낭독 준비 외에도 도서관 출입문과 게시판 등을 활용하여 평소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점심시간에 낭독 프로그램이 있음을 알린다.

조그만 무대 만들기
‘공연 스케줄 표’처럼 날짜별 낭독자 명단이 적힌 포스터를 게시하고 의자 배치를 적절하게 변경하여 무대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평소 원형으로 배치하는 소파를 반원형의 두 줄로 배치하여 청중 자리를 마련해 둔다. 청중으로 참여하는 학생이 많은 날에는 소파 뒤쪽으로 빙 둘러 서서 듣기도 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활동지를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 낭독자에게는 ‘낭독을 해보니 어떤지’ 짧은 소감을 적도록 하고, 청중 참여 학생에게 낭독 내용을 요약하고 극 속에서 일어날 일을 예상해 써 보게 한다. 또 도서관에서 낭독을 들은 소감과 낭독한 친구의 연기는 어떠했는지 한 줄 평을 쓰게 한다. 평가에는 열심히 낭독한 친구에게 힘이 되는 긍정적인 점을 주로 쓰도록 한다. 낭독자 명단 포스터 옆쪽에 이 활동지를 붙일 수 있는 또 다른 판을 마련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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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낭독과 한마디 발표
낭독일 첫날, 도서관에서 독서 중인 학생들에게 프로그램을 안내한다. 오늘부터 총 열 번의 점심시간 동안 희곡을 낭독하며, 듣고 싶다면 청중 자리에 와서 착석하면 된다고 말이다. 이때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도 있고 관심이 전혀 없는 듯 보이다가도 막상 낭독을 시작하면 귀를 기울이다
자리를 이동하는 아이들도 있다. 도서관 출입문에 ‘낭독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니 조용히 출입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도 걸어둔다.(우리 도서관의 경우 점심시간에는 시끌시끌한 경우가많다.) 이를 안내문 한 장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출입문 쪽에 진행요원을 배치하면 훨씬 좋다. 도서부원이 그 역할을 했다.
프로그램 안내가 끝나면 낭독자가 자신의 역할을 소개한 뒤 낭독을 시작한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별도의 음향 없이 육성으로 낭독했기 때문에 평소 말하는 것보다는 크게 낭독해야 했다.
낭독을 마치면 박수로 마무리하고 낭독자 소감과 청중 학생들의 한마디 발표를 한다. 이 발표의 진행은 낭독자 두 명에게 맡긴다.
한 회 낭독이 끝나고 나면 바로 그날의 소감 쪽지를 판에 붙여 둔다. 전체 낭독을 듣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청중이 이전에 붙은 쪽지를 읽어 보고 극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낭독자로 참여한 학생들은 “많이 떨렸지만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연습 때보다 잘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친구들이 재밌게 들어줬다는 소감을 말해서 기쁘고 좋았다.”, “이 일을 계기로 책에 대해 더 관심이 생겨 너무 좋다.” 등의 소감을 남겼다. 조그만 무대라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살짝 있었는데, 예상외로 ‘떨렸다’는 소감을 남긴 아이들이 많았다. 열심히 연습해 더 잘 읽고 싶었던 마음이었나 보다. 청중으로 참여한 학생들은 “청소년기, 청소년 문제에 대해 다룬 책으로 재미있었고, 친구들이 읽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웠다.”, “친구들이 열심히 연기해 재미있고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 “도서관에서 연극을 듣는 게 특이하고 재밌다.” 등의 소감과 더불어 “연기를 아주 잘해 몰입도가 좋았다.”, “다소 목소리가 작기는 했지만 둘이 같이 읽는 부분을 서로 호흡에 맞게 잘 읽었다.”, “등장인물의 마음을 연기로 잘 표현했다.” 등의 세심한 평가를 해 주었다.
스무 명의 낭독자 모두에게는 작은 간식을, 발표하는 청중에게는 초콜릿을 상품으로 증정했다. 그리고 ‘최고의 낭독자’와 ‘빛나는 관객’을 선정하기도 했다. ‘최고의 낭독자’는 전체 낭독을 듣는 도서부원 몇 명을 심사위원으로 두어 선정하고, ‘빛나는 관객’은 여러 번 참여하여 소감을 성실하게 남긴 학생들을 뽑았다. 『소년이 그랬다』는 전체 낭독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 대출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 만난 책 읽기, 낭독
낭독 프로그램을 하면 도서관에 들리는 책 읽는 소리에 흐뭇해지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 참여 학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처음부터 참여하려고 마음먹은 아이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늘 같은 만화책만 보던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들리는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책을 찾아 읽을 때, 낭독 프로그램의 매력이 배가 된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서 책 읽을 건데 낭독 한번 해 볼래?” 하는 권유에 참여하게 된 아이들도 한 번 해보고 나면 다음 해에는 “샘! 이번에는 낭독 언제해요?”,
“이번에는 낭독할 때 무슨 책 읽어요?” 하고 먼저 묻는다. 작년에는 다시 소설을 낭독했고 올해는 한현주 작가의 「3분 47초」라는 희곡을 읽어 보면 어떨까 준비 중이다. 요즘에는 팟캐스트나 유튜브에 책 소개 방송도 많은데, 올해부터는 촬영이나 녹음으로 우리의 낭독회를 담아 보는 건 또 어떨지 고민하고 있다.
준비가 크게 어렵지 않은 낭독 프로그램을 학교도서관에서 해 보기를 권한다. 곳곳에서 다양한 책 소리가 울렸으면 좋겠다. 많은 아이들이 책을 소리 내어 읽고 들었으면 좋겠다. 책 읽기의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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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교사의 욕심
4년 전이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 발령을 받았다. 2014년 3월 학교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모든 아이들이 예뻤다. 하지만 금세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학교란 곳이 그런 곳이다. 특히 천둥벌거숭이 같은 중학생들이 사는 곳은 더 그렇다. 아직도 중학생이 낯설고 두려울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매일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주는 감동은 기대 이상일 때가 많다. 어쨌든 중학교에서의 생활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생활과도 같았다.
그런 중학생들에게 교사의 욕심은 금물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다. 아이들과 살면서 욕심을 경계하며 살고 싶었지만, 하나만큼은 예외였다. 바로 책이다.
2008년 사서교사로 발령받은 후에 1년 동안은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참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행복을 교육하는 책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었다. 책을 읽히고 나니 이제 책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었고, 글을 쓰게 만들고 싶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내 곁에서 멀어져갔고, 오히려 책을 더 싫어하게 되는 것 같았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딱 그 짝이 났다.
내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이 모든 활동들을 함께할 수 있을까?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방법을 고심하다가 미디어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아이러니였다. 미디어에게 뺏긴 아이들을 미디어의 힘을 빌려 책 앞으로 데려온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2014년 3월 초, 차가운 바람이 도서관을 에워싸고 있을 때였다. 우리 동아리 아이들과 정식으로 만나 인사를 하고 게임도 했다. 몇 번 더 만나고 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책 읽는 라디오’를 진행해 보자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서로 라디오를 준비하면 재밌을 거라고 아이들을 설득했고, 라디오를 듣게 될 친구들은 우리가 읽은 책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멋진 일이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우리가 라디오를 진행한다고요?”
“그렇지. 기획안도 쓰고, 원고도 쓰고, 직접 진행까지 해보는 거야.”
 
내가 생각해도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실 지도 교사인 나도 순천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들었던 ‘공동체라디오’ 강의 16시간의 경험이 전부였다. 아이들에게 어떤 책에서 봤던 꿀벌 이야기로 설득했다.

“얘들아, 꿀벌은 원래 몸집에 비해서 날개가 작아 날 수 없대. 근데 꿀벌 잘 날지? 엄청 빠르지? 왜?
어떻게 가능할까?”
“…”
“꿀벌은 자기가 날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계속 날갯짓을 한 거지. 결국 난 거야. 우리도 우리가 책
읽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에 부끄러움을 모르면 되는 거야. 그럼 할 수 있지 않을까?”

궤변이지만 아이들은 끄덕였다.

낭독의 미학, 들려주는‘ 책 읽는 라디오’
일단 ‘책 읽는 라디오’의 콘셉트를 정했다. 한 작가의 책을 파헤치고, 책을 소개하고, 본문을 읽어주고, 실제 작가를 초청해서 라디오를 함께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 2달 전 책을 다 읽고, 라디오 기획안을 작성, 해당 작가를 초청해야 한다. 그리고 원고를 작성해서 해당 작가에게 원고를 보내고 답변을 미리 받는 형식으로 준비했다.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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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 몇 번은 주제 도서를 교사가 선정했다. 주제 도서에 따라 토론하는 방식도 달랐다. 시집이라면 시집에서 좋아하는 시를 골라내어 읽어 주고 이유를 말하는 등 공감 토론을 하는 식이었다. 소설은 소설 속으로 쏙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고, 에세이집은 작가의 마음으로 ‘왜, 어떻게’에 초점을 맞춰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 후 2시간 생방송 라디오 진행을 위해 기획안을 작성했다. 보통 30분 단위 4부로 구성했다. 누가 진행할 것이며, 각 부의 메인 테마는 무엇이 될지, 작가는 누가 섭외하고, 음악은 어떻게 선곡할지, 학생들의 사연의 주제는 무엇으로 할지, 사연을 어떻게 받을지에 대한 내용을 기획안에 작성한다.
기획안을 바탕으로 라디오 원고를 작성하고 섭외한 작가에게 원고의 초안을 보냈다. 원고의 초안을 보내는 이유는 라디오의 흐름을 보여 주고, 작가에게서 인터뷰에 대한 답변을 미리 받기 위함이다. 원고는 책을 중심으로 일부분을 낭독하기도 하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작성한다. 구어체로 작성하되, 글씨 크기 13포인트로 작성하면 한 장당 2분으로 계산하여 각 부당 16분 정도의 원고, 다시 말해 8장의 원고를 준비하면 된다. 나머지 14분은 노래와 시그널, 애드리브 등으로 채울 수 있다. 원고는 중학교 수준의 쉬운 문장으로 말하듯이 편안하게 작성하면 된다.
청취자 중심의 경어를 사용하여 작성하고, 잔잔한 BGM이 필요한 낭독이 있을 경우는 BGM을 미리 준비한다.
사실 공동체라디오를 진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단 주파수를 받는 일조차도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자격이 있어야 하고 주파수 배정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팟캐스트를 진행하면 훨씬 편하리라 생각한다.

‘책 읽는 라디오’만의 특징
순천남산중학교에서 운영했던 ‘책 읽는 라디오’의 특징은 작가를 직접 섭외해서 함께 이야기 나눴다는 점과 실시간 댓글을 받아서 작가에게 바로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시간 댓글이 일반 방송처럼 많이 있지는 않았지만 보통 한 회당 3∼40개 정도의 댓글이 달렸다. 작가를 직접 섭외해서 이야기를 나눈 점은 라디오를 진행하는 아이에게 정말 커다란 경험이자 추억이었다.
3회차 라디오였을까? 말 한마디 없던 아이가 라디오를 진행해 보겠다며 나섰다. 김혜원 작가의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가 주제 도서였다. 참고로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인터뷰한 책이었다. 걱정이 됐지만 아이가 기획안도 성실히 작성하여 일단 모두가 동의했다. 라디오를 진행하는 데 가끔 막힘이 있었지만, 작가와 다른친구가 잘 메워 주었다. 노래가 나올 때는 작가와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다. 말 없던 아이가 동생의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상담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동생의 장애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어려운 도전을 선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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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라디오 메인 진행자는 혀가 짧은 아이였다. 작가님을 자꾸 ‘닥가님’이라고 불렀던 아이다. 그 아이는 라디오 진행이 끝나고서 한참 동안 ‘닥가님’과 연락을 주고받고 지냈다. 1회 라디오 원고를 작성하고 진행했던 아이는 라디오 생방송 전날에도 작가님의 답장 메일을 받지 못해 초조했었는데, 생방송 당일에 해맑게 웃으며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 저 메일 받았어요. 헤헤.”

1년에 4회 분량의 라디오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반복한다. 형식은 반복하나 내용과 주제가 항상 바뀌고, 도서부원들이 고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역할을 맡기에 모두 한번씩 라디오 진행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주제 도서에 대해 깊이 있게 읽고, 토론하며 작가와 직접 원고를 주고받으며 라디오 진행 전부터 의견을 교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학생들은 술회한다. 다소 부족한 진행에도 청취자들은 내 친구의 라디오 진행에 신기해했고, 부모님들은 내 딸과 아들의 진행에 뿌듯해했다. 라디오 진행을 마치고 나서던 어느 날, 지나가는 어르신이 정말 고생했다며, 명함과 간식거리를 주고 가셨다. 명함은 잃어버렸지만 그분의 마음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학교를 옮기면서는 라디오를 하지 않는다. 학교마다 학생들의 특성이 다르고, 지역 사회의 기반이 다르기에 학교와 학생에게 어울리고 적합한 내용으로 도서관 운영을 달리 한다. 지금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와 같은 낭독 방식이 아니라 어르신이나 유치원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자 인형극으로 이야기를 낭독하고 있다. 그림자 인형극은 기존의 책을 각색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생들이 직접 쓴 그림책을 그림자 인형극으로 만들어 다 같이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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