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책이 가진 치유 기능과 치유적 읽기 - 거울, 나침반, 시계, 소파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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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2:43 조회 8,634회 댓글 0건본문
내게 있어 책 읽기는 일종의 도피 행각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수학을 싫어하면서 시작되었다. 밤하늘의 별 보기는 좋아했다. 추운 겨울 별 관찰한다며 앞마당 뒷마당에서 성도星圖를 펴 놓고 쌍안경으로 별과 행성, 별자리 등을 관찰했다. 천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부모님으로부터 전집 책 선물을 받은 것이 내게는 본격적인 독서의 시작이었다고 생각된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놀기, 별 보기, 책 보기를 하며 보낸 기억이 제일 많다. 학교도서관은 기억이 거의 없다. 고등학교 때 도서실이라고 불리웠고 한쪽 벽면에 책이 조금 있었고 칸막이 책상들이 놓여 있고 간혹 사전 종류를 뽑아 본 정도의 기억이 난다.
수학을 싫어했기에 전체적인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천문학과 갈 실력이 되지 않아 물리를 택했는데 너무 힘겹고 고통스러웠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도피성 내지는 피난처로 삼는 독서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독서가 어느덧 나에겐 안식처, 위로처, 그리고 현재 일터로까지 되었다. 물론 지금도 힘겨울 때 나는 책으로 달려간다. 치유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흔적이 있는’ 책 읽기다. 그것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읽어간다는 것이다. 이해를 위한 읽기보다 느껴보는 읽기다. 학생 때야말로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누려야 할 시기인데 책 읽기와 공부하기가 분리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치유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 읽기다. 여행하는 것과 같은 읽기다.
내가 책을 찾아가고, 책이 나를 찾아오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책으로부터 삶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하나는 내가 책을 읽고 찾아가며 만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책이 나를 찾아오는 만남이다. 공교롭게도 고통과 고난 가운데 우리의 영혼과 감각은 예민해진다. 입시가 주는 중압감이 학생들에게는 고통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학습을 매개로 접근해야 할 상황에 놓인 교사들도 분명 고통일 것이다.
나는 집 근처 학교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이웃 주민들에게도 개방하는 열린 공간 중 하나다. 이곳을 이용하다보면 학교에서의 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을 간접적이지만 바로 느낄 때가 있다. 점심시간에 분명하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점심을 빨리 먹은 아이들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떠들고 이야기한다. 오목, 알까기, 만화코너에서 배 깔고 또는 뒹굴면서 책 보기도 하며 장난도 친다. 물론 도서 대출, 반납도 이뤄지면서 교실과 교사 그리고 교과서로부터 잠시 벗어나 심호흡을 하듯이 또는 자유로운 질주를 하듯이 말이다. 잠시 동안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자유로운 공간이자 자유로운 시간이다.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사라져간다.
어떻게 보면 도서관은 운동장과는 또 다른 해방구가 아닐까. 도서관은 학습센터 기능을 넘어 오락센터와 상담센터 기능을 더불어 할 수 있는 학교에서의 유일한 공간이다.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를 위한 공간을 넘어 삶을 만나는 공간으로 깨어날 때가 되었다. 도서관은 잠자고 있는 거인이다. 시간을 내어 조용한 장소에서 책과 여행을 떠나보자. 함께 떠날 수 있는 ‘전방향 독서법’을 소개한다.
무엇을, 왜, 누가, 읽어야 하는가
전방향全方向은 모든 방향을 뜻한다. 도식화시킨다면 십자十로 표현해서 설명할 수 있다. 독서(읽기)에서의 전방향은 밖으로 향하는 독서, 안으로 들어가는 독서, 위로 향하는 독서, 아래로 향하는 독서로 그 성격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네 방향은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어느 특정 방향이 다른 방향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위(上, Up), 아래(下, Down), 안(內, In), 밖(外, Out)의 네 가지는 모든 방향을 의미한다. 즉 물리적인 방향만 말하는 것보다 좀 더 큰 의미가 들어 있다. 지식과 정보의 습득에만 사로잡히기 쉬운 독서에서 다양함과 더불어 통합적인 독서를 말하는 다이어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목적이 이끄는 삶의 수레바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수레바퀴는 네 개의 바퀴살과 하나의 바퀴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 여정의 길을 함께하는 바퀴에는 상징적으로 표현하자면 목적이라는 축과 거울(In), 나침반(Up), 시계(Out), 소파(Down) 등으로 비유되는 네 개의 바퀴살로 구분할 수 있다. ‘전방향 독서법Omnidirectional Reading Art’이란 이러한 네 가지 특징, 즉 전방향에 따른 읽기 과정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목적이 이끄는 독서법이자 삶을 위한 독서법이다. 이 독서법은 진단으로부터 시작되어 처방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자신을 돌아보며 꿈을 찾아 개발하고 삶의 여정 가운데 생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다. 삶으로의 읽기, 꿈으로의 읽기, 앎으로의 읽기, 쉼으로의 읽기다. 이 모든 읽기가 전방향 독서다. 지식과 정보의 습득 또는 축적에만 매진하기 쉬운 독서에 총체적인 독서의 풍요로움과 대안을 제시해주는 접근이며 독서법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은 나름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한편 각자의 가치관에는 목적이 함께 한다. 전방향 독서법은 인간의 갈망과 추구 또한 그로 인한 좌절과 갈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며 돌봄과 치료를 함께 경험하는 독서법이다.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어 읽는다는 것은 선택인데, 그 선택의 기준과 폭을 좀 더 다양하고 통합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전방향 독서법은 독서의 방법과 기술보다는 무엇을 왜 읽어야 하며 누가 읽어야 하는지에 좀 더 집중하는 책 읽기다.
현재의 내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독서
바퀴축 바퀴축은 인생의 목적을 말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추구하고 해결하고 따라가고자 하는 나름의 삶의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이 축이 제대로 정립될 때 바퀴가 잘 돌아가며 앞으로 나갈 힘을 얻게 된다. 전방향 독서법은 목적이 이끄는 독서법이다.
바퀴살 목적(바퀴축)으로부터 받은 힘을 바퀴에 고르게 전달하는 것이 바퀴살이다. 이것은 목적이 따르는 삶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이루는 근간이기도 하다. 전방향 독서법의 핵심 원리를 보여주는 부분인 것이다. 첫 번째 살은 안으로 향한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거울 같은 읽기, 거울 같은 삶이다. 자기를 돌아보며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얼굴의 상태를 살피지만 자신은 보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면세계의 읽기를 보여준다.
두 번째 살은 위로 향한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나침반 같은 읽기, 나침반 같은 삶이다. 자기를 찾은 이가 인생의 목적에 따라 가야 할 바를 정하는 과정, 비전과 소명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보여준다. 세 번째 살은 밖으로 나간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시계와 같은 읽기, 시계와 같은 삶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찾아 개발하며 열심히 뛰는 모습을 그려준다. 방향을 정한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추진하며 걸어가야 한다. 네 번째 살은 아래로 내려간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소파와 같은 읽기, 소파와 같은 삶이다. 쉼 없이 달려오며 뒤돌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오는 스트레스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쉼을 통한 회복을 말해주고 있다.
바퀴 축과 살로 이어진 힘은 결국 최종적으로 바퀴를 통해서 돌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퀴살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 균형과 조화를 말하는 것이다. 균형과 조화를 이룬 네 가지 방향으로의 고른 읽기가 있어야 그 힘이 바퀴로 제대로 이어질 수 있다. 바퀴는 구른다. 바퀴는 현실 삶으로의 전환이다. 이것은 우리가 딛고 사는 대지인 지면과 만나는 부분이다.
대지(지면) 제대로 된 바퀴는 지면과 닿아 밀고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에는 다양한 마찰이 따른다. 마찰은 아픔과 인내를 요구한다. 인생을 삶의 여정이라 말한다. 이 여정에는 기쁨이 때로는 고난이 함께한다. 축(목적)이 바로 되었다면 이 전방향 독서법과 함께하는 여정은 제법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이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거울에서 나침반으로 거기에서 시계로 이어지는 읽기, 그리고 소파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삶은 조각그림을 짜 맞추듯 차례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의 출발은 무엇보다 현재의 내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의 필요와 문제에 따라 네 방향으로의 출발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에게 모든 방향으로의 과정은 꼭 필요하다. 어느 방향으로부터 출발할 것인가 자신을 진단한 후 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도 분명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전방향 독서법은 진단과 처방을 함께한다. 진단 결과에 따라 현재시점에서의 출발 방향이 결정된다.
학교도서관은 치유적 읽기의 최적 공간
학교도서관이야말로 치유적 읽기의 안성맞춤 공간이다. 첫째, 자료의 보물창고다. 자료는 촉매이면서 매개체다. 모든 자료를 사용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먼저 대상이 정해지면서부터 자료는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황과 질문을 만날 때 자료는 운동하기 시작한다. 물론 다양한 자료들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읽을 수 있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료들이 다 포함된다. 난이도의 다양성, 장르의 다양성과 여러 미디어 매체도 함께 해야한다. 결국 좋은 도서관은 좋은 자료가 많은 도서관일 것이다.
둘째, 자연스런 접촉이다. 내담자, 참여자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접근,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과 인도자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오히려 상담실보다 더 상담실 같을 수 있다. 부담 없는 만남이 될 수 있기에 예방적 차원에서도 좋은 접촉점이 될 수 있다.
셋째, 수평적 문화공간이다. 기능적 공간으로 바라볼 때 도서관은 병원 같기도 약국 같기도 또한 상담실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정신적 휴게실이요 놀이터이기도하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과목(주제)을 정해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에 그렇다. 도서관은 학교에서 몇 안 되는 수평적 구조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넷째, 도서관에는 사서가 있다. 이 말이 자연스럽게 공식처럼 나와야 하는데 사서가 있는 학교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있는 곳도 임시직인 경우가 많다. 사서나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한다. 병원에는 의사, 약국에는 약사, 도서관에는 도사(사서)가 꼭 있어야 하는데 극소수의 학교도서관에만 사서교사가 있어 아쉽다.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학교도서관에서 치유적 책 읽기를 하려면…
준비된 사람이 필요하다 책 읽는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면서 살며 책이 삶에 남겨준 흔적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서가 그렇다고 하면 제일 좋고 자원봉사자 중에 그런 분이 있어도 괜찮다. 독서치유를 경험하고 배운 사람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반응과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며 요소다.
사서와 교사는 독서치유에 관심을 갖자 그리고 독서 상담이나 치유에 관심이 있음을 어떤 형태로든 학생들에게 알리자. 또한 학생들에게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평소 책을 소개하고 책 이야기 나누는 것이 익숙한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청하는 책을 찾아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자신들 삶의 문제와 힘겨움을 이야기했을 때 적절한 책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사람에게 알맞은 책이 제공되는 것, 이것이 바로 치유적 읽기의 시작이다.
분류는 곧 처방이다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한국십진분류법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기존의 분류법과 더불어 새로운 분류법이 필요하다.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면 적어도 전방향 독서법에 따른 분류를 거칠게라도 만들어보면 좋겠다. 예를 들어 거울 같은 책 코너, 나침반 같은 책 코너, 시계 같은 책 코너, 소파와 같은 책 코너 등. 간단하게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제시해보자. 어느 한 코너의 서가만이라도 기존 분류와는 다른 색깔을 갖고 만들어보자. 아니면 ‘이럴 때는 요런 책’ 코너를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제공하는 상황별 자료목록을 참고해도 좋겠다.
독서소모임이 도서관의 꽃이다 독서소모임은 도서관에서 보는 가장 보기 좋은 모습 중 하나다. 책과 함께하는 나눔이다. 적어도 같은 책 함께 읽고 수다 떠는 소모임이 있다면 이 어찌 멋진 일이 아닌가. 학년과 성별을 떠나 구성해보자. 잘 진행된다면 여기서 자원봉사자가 나올 수도 있고 미래의 저자가 나올 수도 있다.
독서 여정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어느 날 엘리스는 두 개로 갈라진 길에 도착했다. 나무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길
을 모르는 엘리스는 고양이에게 물었다.“어느 길로 가야 하지?”고양이는 대답 대신 이렇게
물었다.“어느 길로 가고 싶은데?”“모르겠어”“그럼 어느 쪽이든 상관없잖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중에서
상상력이 풍부하기를! 앨리스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고양이와 대화했다. 물론‘이상한 나라’이기
에 가능하지만 실제 세상은 이상한 나라일 수 있다. 난 여러분들이 동물, 식물, 사물, 자연과 대화
하기를 바란다. 시인이 그렇듯. 역사가는 과거와 대화하고 소설가는 상상력을 통해 인생과 대화
한다. 또한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과 우리와 나를 연결시킨다.
우리 인생은 항상 갈림길이다. 리스는 두 개로 갈라진 길에 도착했다. 준비하고 맞이하지 않으면 습
관에 따라 감정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대처하기 십상이다. 이 책이 좋을까? 저 책이 좋을까?
이걸 할까? 저걸 할까? 때때로 길이 없을 수도 있으며 막다른 인생의 골목에서 인생의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다.
질문해야 할 때 답을 하지는 않는지. 고양이는 대답 대신 물었다. 상대가 언급하고 제기한 것을 통해
서 빗장을 열어가자. 그때 상대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며 스스로 자신을
되짚어볼 수 있다. 상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물어볼 수도 있기에 우리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내담자 현재의 맘을 헤아리기. 길을 모르는 앨리스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그동안 얼마나 헤매고 힘
들었으면, 지쳤으면 고양이에게조차 물을까? 한편으로 인생을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포자기했으면 삶의 중요한 것을 고양이한테 물을까? 점집, 사주팔자, 궁합, 타로 등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물론 이해하지만, 우리는 그 저변을 읽어야 한다. 마음속 두려움이라는 괴물을….
내 맘에 자석이 있다면… “어느 길로 가야 하지?”이 물음이 어찌 앨리스만의 물음일까. 우리들의
물음이고 나의 물음이기도 하다. 나의 소망이 내 맘에 자석처럼 분명하고 선명하다면 그 길을 찾
을 수 있으며 혹 잘못 들어선 길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다음 질문
도 더불어 나눠보자. 넌 어떤 길이 좋아? 그리고 그 길을 누구와 함께 걷고 싶어?
수학을 싫어했기에 전체적인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천문학과 갈 실력이 되지 않아 물리를 택했는데 너무 힘겹고 고통스러웠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도피성 내지는 피난처로 삼는 독서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독서가 어느덧 나에겐 안식처, 위로처, 그리고 현재 일터로까지 되었다. 물론 지금도 힘겨울 때 나는 책으로 달려간다. 치유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흔적이 있는’ 책 읽기다. 그것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읽어간다는 것이다. 이해를 위한 읽기보다 느껴보는 읽기다. 학생 때야말로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누려야 할 시기인데 책 읽기와 공부하기가 분리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치유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 읽기다. 여행하는 것과 같은 읽기다.
내가 책을 찾아가고, 책이 나를 찾아오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책으로부터 삶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하나는 내가 책을 읽고 찾아가며 만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책이 나를 찾아오는 만남이다. 공교롭게도 고통과 고난 가운데 우리의 영혼과 감각은 예민해진다. 입시가 주는 중압감이 학생들에게는 고통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학습을 매개로 접근해야 할 상황에 놓인 교사들도 분명 고통일 것이다.
나는 집 근처 학교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이웃 주민들에게도 개방하는 열린 공간 중 하나다. 이곳을 이용하다보면 학교에서의 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을 간접적이지만 바로 느낄 때가 있다. 점심시간에 분명하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점심을 빨리 먹은 아이들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떠들고 이야기한다. 오목, 알까기, 만화코너에서 배 깔고 또는 뒹굴면서 책 보기도 하며 장난도 친다. 물론 도서 대출, 반납도 이뤄지면서 교실과 교사 그리고 교과서로부터 잠시 벗어나 심호흡을 하듯이 또는 자유로운 질주를 하듯이 말이다. 잠시 동안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자유로운 공간이자 자유로운 시간이다.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사라져간다.
어떻게 보면 도서관은 운동장과는 또 다른 해방구가 아닐까. 도서관은 학습센터 기능을 넘어 오락센터와 상담센터 기능을 더불어 할 수 있는 학교에서의 유일한 공간이다.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를 위한 공간을 넘어 삶을 만나는 공간으로 깨어날 때가 되었다. 도서관은 잠자고 있는 거인이다. 시간을 내어 조용한 장소에서 책과 여행을 떠나보자. 함께 떠날 수 있는 ‘전방향 독서법’을 소개한다.
무엇을, 왜, 누가, 읽어야 하는가
전방향全方向은 모든 방향을 뜻한다. 도식화시킨다면 십자十로 표현해서 설명할 수 있다. 독서(읽기)에서의 전방향은 밖으로 향하는 독서, 안으로 들어가는 독서, 위로 향하는 독서, 아래로 향하는 독서로 그 성격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네 방향은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어느 특정 방향이 다른 방향에 비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위(上, Up), 아래(下, Down), 안(內, In), 밖(外, Out)의 네 가지는 모든 방향을 의미한다. 즉 물리적인 방향만 말하는 것보다 좀 더 큰 의미가 들어 있다. 지식과 정보의 습득에만 사로잡히기 쉬운 독서에서 다양함과 더불어 통합적인 독서를 말하는 다이어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목적이 이끄는 삶의 수레바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수레바퀴는 네 개의 바퀴살과 하나의 바퀴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 여정의 길을 함께하는 바퀴에는 상징적으로 표현하자면 목적이라는 축과 거울(In), 나침반(Up), 시계(Out), 소파(Down) 등으로 비유되는 네 개의 바퀴살로 구분할 수 있다. ‘전방향 독서법Omnidirectional Reading Art’이란 이러한 네 가지 특징, 즉 전방향에 따른 읽기 과정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목적이 이끄는 독서법이자 삶을 위한 독서법이다. 이 독서법은 진단으로부터 시작되어 처방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자신을 돌아보며 꿈을 찾아 개발하고 삶의 여정 가운데 생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다. 삶으로의 읽기, 꿈으로의 읽기, 앎으로의 읽기, 쉼으로의 읽기다. 이 모든 읽기가 전방향 독서다. 지식과 정보의 습득 또는 축적에만 매진하기 쉬운 독서에 총체적인 독서의 풍요로움과 대안을 제시해주는 접근이며 독서법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은 나름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한편 각자의 가치관에는 목적이 함께 한다. 전방향 독서법은 인간의 갈망과 추구 또한 그로 인한 좌절과 갈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며 돌봄과 치료를 함께 경험하는 독서법이다.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어 읽는다는 것은 선택인데, 그 선택의 기준과 폭을 좀 더 다양하고 통합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전방향 독서법은 독서의 방법과 기술보다는 무엇을 왜 읽어야 하며 누가 읽어야 하는지에 좀 더 집중하는 책 읽기다.
현재의 내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독서
바퀴축 바퀴축은 인생의 목적을 말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추구하고 해결하고 따라가고자 하는 나름의 삶의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이 축이 제대로 정립될 때 바퀴가 잘 돌아가며 앞으로 나갈 힘을 얻게 된다. 전방향 독서법은 목적이 이끄는 독서법이다.
바퀴살 목적(바퀴축)으로부터 받은 힘을 바퀴에 고르게 전달하는 것이 바퀴살이다. 이것은 목적이 따르는 삶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이루는 근간이기도 하다. 전방향 독서법의 핵심 원리를 보여주는 부분인 것이다. 첫 번째 살은 안으로 향한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거울 같은 읽기, 거울 같은 삶이다. 자기를 돌아보며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얼굴의 상태를 살피지만 자신은 보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면세계의 읽기를 보여준다.
두 번째 살은 위로 향한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나침반 같은 읽기, 나침반 같은 삶이다. 자기를 찾은 이가 인생의 목적에 따라 가야 할 바를 정하는 과정, 비전과 소명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보여준다. 세 번째 살은 밖으로 나간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시계와 같은 읽기, 시계와 같은 삶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찾아 개발하며 열심히 뛰는 모습을 그려준다. 방향을 정한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추진하며 걸어가야 한다. 네 번째 살은 아래로 내려간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소파와 같은 읽기, 소파와 같은 삶이다. 쉼 없이 달려오며 뒤돌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오는 스트레스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쉼을 통한 회복을 말해주고 있다.
바퀴 축과 살로 이어진 힘은 결국 최종적으로 바퀴를 통해서 돌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퀴살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 균형과 조화를 말하는 것이다. 균형과 조화를 이룬 네 가지 방향으로의 고른 읽기가 있어야 그 힘이 바퀴로 제대로 이어질 수 있다. 바퀴는 구른다. 바퀴는 현실 삶으로의 전환이다. 이것은 우리가 딛고 사는 대지인 지면과 만나는 부분이다.
대지(지면) 제대로 된 바퀴는 지면과 닿아 밀고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에는 다양한 마찰이 따른다. 마찰은 아픔과 인내를 요구한다. 인생을 삶의 여정이라 말한다. 이 여정에는 기쁨이 때로는 고난이 함께한다. 축(목적)이 바로 되었다면 이 전방향 독서법과 함께하는 여정은 제법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이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거울에서 나침반으로 거기에서 시계로 이어지는 읽기, 그리고 소파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삶은 조각그림을 짜 맞추듯 차례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의 출발은 무엇보다 현재의 내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의 필요와 문제에 따라 네 방향으로의 출발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에게 모든 방향으로의 과정은 꼭 필요하다. 어느 방향으로부터 출발할 것인가 자신을 진단한 후 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도 분명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전방향 독서법은 진단과 처방을 함께한다. 진단 결과에 따라 현재시점에서의 출발 방향이 결정된다.
학교도서관은 치유적 읽기의 최적 공간
학교도서관이야말로 치유적 읽기의 안성맞춤 공간이다. 첫째, 자료의 보물창고다. 자료는 촉매이면서 매개체다. 모든 자료를 사용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먼저 대상이 정해지면서부터 자료는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황과 질문을 만날 때 자료는 운동하기 시작한다. 물론 다양한 자료들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읽을 수 있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료들이 다 포함된다. 난이도의 다양성, 장르의 다양성과 여러 미디어 매체도 함께 해야한다. 결국 좋은 도서관은 좋은 자료가 많은 도서관일 것이다.
둘째, 자연스런 접촉이다. 내담자, 참여자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접근,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과 인도자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오히려 상담실보다 더 상담실 같을 수 있다. 부담 없는 만남이 될 수 있기에 예방적 차원에서도 좋은 접촉점이 될 수 있다.
셋째, 수평적 문화공간이다. 기능적 공간으로 바라볼 때 도서관은 병원 같기도 약국 같기도 또한 상담실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정신적 휴게실이요 놀이터이기도하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과목(주제)을 정해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에 그렇다. 도서관은 학교에서 몇 안 되는 수평적 구조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넷째, 도서관에는 사서가 있다. 이 말이 자연스럽게 공식처럼 나와야 하는데 사서가 있는 학교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있는 곳도 임시직인 경우가 많다. 사서나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한다. 병원에는 의사, 약국에는 약사, 도서관에는 도사(사서)가 꼭 있어야 하는데 극소수의 학교도서관에만 사서교사가 있어 아쉽다.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학교도서관에서 치유적 책 읽기를 하려면…
준비된 사람이 필요하다 책 읽는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면서 살며 책이 삶에 남겨준 흔적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서가 그렇다고 하면 제일 좋고 자원봉사자 중에 그런 분이 있어도 괜찮다. 독서치유를 경험하고 배운 사람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반응과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며 요소다.
사서와 교사는 독서치유에 관심을 갖자 그리고 독서 상담이나 치유에 관심이 있음을 어떤 형태로든 학생들에게 알리자. 또한 학생들에게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평소 책을 소개하고 책 이야기 나누는 것이 익숙한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청하는 책을 찾아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자신들 삶의 문제와 힘겨움을 이야기했을 때 적절한 책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사람에게 알맞은 책이 제공되는 것, 이것이 바로 치유적 읽기의 시작이다.
분류는 곧 처방이다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한국십진분류법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기존의 분류법과 더불어 새로운 분류법이 필요하다.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면 적어도 전방향 독서법에 따른 분류를 거칠게라도 만들어보면 좋겠다. 예를 들어 거울 같은 책 코너, 나침반 같은 책 코너, 시계 같은 책 코너, 소파와 같은 책 코너 등. 간단하게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제시해보자. 어느 한 코너의 서가만이라도 기존 분류와는 다른 색깔을 갖고 만들어보자. 아니면 ‘이럴 때는 요런 책’ 코너를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제공하는 상황별 자료목록을 참고해도 좋겠다.
독서소모임이 도서관의 꽃이다 독서소모임은 도서관에서 보는 가장 보기 좋은 모습 중 하나다. 책과 함께하는 나눔이다. 적어도 같은 책 함께 읽고 수다 떠는 소모임이 있다면 이 어찌 멋진 일이 아닌가. 학년과 성별을 떠나 구성해보자. 잘 진행된다면 여기서 자원봉사자가 나올 수도 있고 미래의 저자가 나올 수도 있다.
독서 여정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어느 날 엘리스는 두 개로 갈라진 길에 도착했다. 나무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길
을 모르는 엘리스는 고양이에게 물었다.“어느 길로 가야 하지?”고양이는 대답 대신 이렇게
물었다.“어느 길로 가고 싶은데?”“모르겠어”“그럼 어느 쪽이든 상관없잖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중에서
상상력이 풍부하기를! 앨리스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고양이와 대화했다. 물론‘이상한 나라’이기
에 가능하지만 실제 세상은 이상한 나라일 수 있다. 난 여러분들이 동물, 식물, 사물, 자연과 대화
하기를 바란다. 시인이 그렇듯. 역사가는 과거와 대화하고 소설가는 상상력을 통해 인생과 대화
한다. 또한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과 우리와 나를 연결시킨다.
우리 인생은 항상 갈림길이다. 리스는 두 개로 갈라진 길에 도착했다. 준비하고 맞이하지 않으면 습
관에 따라 감정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대처하기 십상이다. 이 책이 좋을까? 저 책이 좋을까?
이걸 할까? 저걸 할까? 때때로 길이 없을 수도 있으며 막다른 인생의 골목에서 인생의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다.
질문해야 할 때 답을 하지는 않는지. 고양이는 대답 대신 물었다. 상대가 언급하고 제기한 것을 통해
서 빗장을 열어가자. 그때 상대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며 스스로 자신을
되짚어볼 수 있다. 상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물어볼 수도 있기에 우리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내담자 현재의 맘을 헤아리기. 길을 모르는 앨리스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그동안 얼마나 헤매고 힘
들었으면, 지쳤으면 고양이에게조차 물을까? 한편으로 인생을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포자기했으면 삶의 중요한 것을 고양이한테 물을까? 점집, 사주팔자, 궁합, 타로 등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물론 이해하지만, 우리는 그 저변을 읽어야 한다. 마음속 두려움이라는 괴물을….
내 맘에 자석이 있다면… “어느 길로 가야 하지?”이 물음이 어찌 앨리스만의 물음일까. 우리들의
물음이고 나의 물음이기도 하다. 나의 소망이 내 맘에 자석처럼 분명하고 선명하다면 그 길을 찾
을 수 있으며 혹 잘못 들어선 길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다음 질문
도 더불어 나눠보자. 넌 어떤 길이 좋아? 그리고 그 길을 누구와 함께 걷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