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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초등학교 독서치료 수업 이야기 - 소통하니 통로가 열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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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2:58 조회 12,31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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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처음 시도했던 독서치료 프로그램에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다. 4학년 학습 부진아반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가 어려움을 겪었다. 실패의 원인은 바로 나였는데, 과한 욕심으로 인해 내가 원래 계획했던 틀 안에서 책을 읽고 가르치려고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다시 시도된 프로그램부터는 마음을 내려놓고 책 읽기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소통하려 노력하면서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 풀어내고자 한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중심을 잃은, 아이들
이러한 마음으로 시작된 독서치료 프로그램은 두 가지를 목적으로 했다. 첫째, 책 읽기를 통해 여러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무시당할수록 자존감은 낮아지고 스트레스에 약해진다. 감정에 대해 알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둘째, 책 속의 인물이나 상황과의 동일시를 통해 심리적인 부담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해소와 정화를 경험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얻게 되기를 기대했다.

대상자는 남다른 가정환경으로 인해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감정표현이 서툰 아이들로 정하고 감정과 가족에 대한 주제를 나누기로 했다. 특별히 이러한 대상자를 선정하게 된 이유는 도서관 수업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 중 책 읽기를 통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지나치게 소심해서 자신을 드러내기 힘들어하거나, 조절이 어려워 너무 과하게 표현하는 아이들이 많다. 특히 내가 만난 감정표현이 서툰 아이들 중 상당수는 가정환경(조부모 가정,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과 재혼 가정 등)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중심을 잃은 아이들이었다.

매주 80분씩 3학년과 4학년 각각 네 명씩 두 팀을 구성해 8주 과정으로 진행했는데, ‘자기탐색-감정(화, 불안, 두려움)-가정(한부모, 재혼)-자아존중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선정하여 읽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활동을 시작으로 해서, 대상자 분석을 위해 진단 도구를 활용하고 ‘감정선感情線 그리기’를 했다. 감정선 그리기는 글이 없는 『빨간 풍선의 모험』을 함께 읽으며 꽃으로, 나비로, 우산으로 변하는 빨간 풍선처럼, 자라면서 기쁘고, 슬프고, 좋고, 화나고 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변해왔는지 간단하게 그려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있었던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 무서웠던 일 등으로 내 감정선을 그려 보여주었다. 선생님도 어린 시절에 자신들과 비슷한 감정을 겪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상적인 아이는 은진이였다.



네 감정을 들여다보고, 느끼고, 표현해 봐

『How are you peeling?』을 읽고는 그림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은진이는 이 장면에서 할머니 오렌지와 이모 오렌지가 엄마 오렌지에게 아이 오렌지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며 화를 내고 있어서 엄마 오렌지는 속상해 하고 맨 뒤의 아이 오렌지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있다고 했다. 그림 속 상황과 감정에 대해 생각해볼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 속의 이야기로 만들어 저마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감정은 다 다르고 특별해!』를 통해서는 상황에 따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러나 은진이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은 좋다, 기쁘다, 슬프다, 행복하다, 화난다, 짜증난다 등 몇 가지 이외에는 감정 단어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감정 알아맞히기’ 게임에서는 책에 나와 있는 감정 단어들을 표정스티커와 연결해보도록 했다. 은진이가 고른 감정들은 부끄러운, 게으른, 상처받은, 냉정한 등과 같은 단어들이었으며 다른 아이들 역시 대체로 책에 있는 단어들 중에서 심술궂은, 외로운, 걱정하는 등의 감정을 골랐다.


화에 대한 주제로 읽었던 『부루퉁한 스핑키』는 스핑키의 아빠처럼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과 무시당했을 때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아이들은 상처받았다,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된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이전에는 화난다, 슬프다, 짜증난다 정도로 표현하던 아이들이 지난 시간에 다루었던 감정 단어들로 표현하려고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책 속 주인공도, 네 곁의 친구도, 마찬가지야

『쏘피가 화나면–정말, 정말 화나면…』을 함께 읽고는 쏘피가 화를 푼 방법과 아이들이 각자 화를 푸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았다. 평소 수업시간에 친구들의 눈치를 많이 보던 은진이는 다른 사람에게 화났다고 말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화가 나면 베개에 혼자 화풀이하거나 상대방이 알아서 사과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사과하지 않으면 참는다고 했다. 어떤 때는 자신은 많이 화가 났는데도 상대방은 전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누구든 화가 나거나 속상하거나 등 어떤 감정을 느낄 때는 함께 하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그 감정을 존중해주기로 약속하고 서로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연습을 함께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은진이는 친구 때문에 화가 나서 자신이 얼마나 화났는지 알려주고 화를 풀기 위해 운동장을 뛰고 왔다며 숨을 몰아쉬며 도서관에 오기도 했다.



한부모 가정에 대한 책으로는 『숲 속으로』와 『따로따로 행복하게』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은진이는 ‘나도 그랬는데’, ‘정말 많이 무서웠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지?’라며 책 내용에 대해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 나이 또래로서는 버거운 이야기들을 쏟아냈는데, 성인인 나조차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마음속에 꾹꾹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독서치료 프로그램과 병행하여 교내 복지사와의 공조를 통하여 보다 효과적인 치유책을 찾고자 하였다. 사회복지사에 의하면 은진이가 그동안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는데,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통해서 감정을 표현하고 마음을 열어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게 됨으로써 은진이가 처한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은진이가 이렇게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감정이나 어려움을 느꼈던 다른 아이들에게도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좋았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늘 명랑하고 밝은 모습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미정이에게 일어났다. 은진이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미정이는 자신도 은진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생각을 했었고 지금도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책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위로받았다. 마음의 상처로 인해 중심을 잃은 아이들에게 책이 친구가 되고,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치유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8주라는 짧은 시간 안에 프로그램을 끝낸 것과 추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아쉽다. 도서관 보조 인력이 지원되는 기간 내에 프로그램을 마쳐야 했고, 대출대를 비울 수 없는 1인 도서관의 한계로 인해 후속 프로그램은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책으로 마음을 열고 내게 다가왔던 은진이는 도서관 청소를 자원해서 일주일에 두 번씩 주변을 맴돌고, 친구들과 다툼이 잦았던 성현이는 아이들의 놀림에 상기된 얼굴로 책을 추천해 달라고 찾아오고, 마음을 숨기다 결국 눈물은 터뜨렸던 민정이는 할 말을 가득 담은 눈으로 책을 읽고 날 바라보다 돌아간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필요한 책이 있으면 언제든지 선생님을 찾아오라고 했지만, 학교도서관의 현실은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 늘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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