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어린이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는 책과 독서 - 그림책으로 ‘내면의 아이’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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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2:50 조회 11,509회 댓글 0건본문
어린이를 위한 독서 치료 키워드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예전보다 세심한 엄마의 손길을 더 많이 받고 자
라는 아이들이지만 왜 마음이 아프고 병드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걸까? 아마도 자신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독서치료는 책을 읽으며 아픈 아이들의 마음까지 보듬어주고 달래줄 수 있다니 어쩌면
요즘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책으로 우
리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아픈 상처를 달래주고 싶다면 독서의 기능과 효과는 잠시 미루
어 두고 좀 더 치료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학교에서 선생님이, 집에서 엄
마가 치료적 접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개념을 살펴보자.
첫째, ‘내면의 아이’
우리 안에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는 상처받고 비난받고 좌절하고 외로웠던 어린 시
절의 아이이다. 열 살 아이가 조금만 속상한 일이 생기면 지나치게 화내고 울부짖는다. 마치 다
섯 살짜리의 그것으로 보인다. 지금 울고 있는 아이는 열 살이 아니라 열 살 아이 속에 있는 상
처받은 다섯 살짜리가 울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심리치료란 아이 속에 존재하는 상처받은 어
린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조금만 속상해도 다섯 살 적 상처가 덧나서 그때의 슬픔과 외로움 그
리고 분노와 불안감으로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치료적 접근을 할 때는 그 아이 내면의 다섯
살 아이를 보듬어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아이는 외적으로는 성장하지만 내면의 아
이는 고착되어 간다. 그리고 그대로 남아 훗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고 치명적인 결과들을 가
져오기도 한다.
둘째, 다시 부모 되어주기Reparenting
심리치료란 ‘다시 부모 되어주기’이다. 상처받아 아픈 아이에게 다시 부모가 어린 시절의 아이를 돌보듯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 아기를 대하는 부모는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를 보살핀다. 그리고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처한다. 심리치료에서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너를 위해 내가 여기 있다’는 말이다. 아이의 문제 행동을 줄이고 싶다면 그 문제 행동을 유발하는 내면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 치료자가 아이에게 부족했던 부모 역할을 다시 해주면 아이는 아주 빠르게 치유되기 시작한다.
셋째,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
마음 읽어주기는 아이에게 고통이 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고통이란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기만 하면 전혀 다른 모습, 다른 의미가 된다. 고통을 겪는 아이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내가 네 마음을 잘 알고 있어. 너의 고통을 덜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줄 거야. 넌 정말 소중한 아이야.”라는 신호이다.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고 이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림책으로 하는 독서치료
그림책을 활용한 심리치료는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을 매개로 한 치료자와의 대화를 통해 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니 아이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면 그 대화법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이끌어가는 것이 좋다. 주인공과 동일시한다고 해서 아직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이에게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어보면 아이는 더 마음을 닫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천천히 ‘내면의 아이’가 저절로 나와서 “나 좀 달래주세요!”라고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아이가 좋아하는 부분, 재미있는 부분을 보며 책 이야기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다. 아이가 마음 편하게 책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저절로 말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다구요
초등학교 3학년 강현이는 분노 조절을 못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욕하는 아이였다. 엄마는 그런 행동을 고치고 싶어 아이를 데리고 왔다. 심리치료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급하게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강현이에게는 여섯 살 여동생이 있다. 동생은 종종 오빠를 놀리고 골탕 먹인다. 오빠가 조금만 화를 내도 얼른 엄마에게 달려가 오빠가 때렸다며 없는 말까지 지어내서 말하곤 한다. 늘 자신만 혼난다. 억울하고 답답하기가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다. 자신이 기억하는 한 동생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랬다. 엄마는 동생이 다칠까봐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였다. 자신은 늘 엄마의 관심 밖에 있고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동생이 태어나서 상처받
기 시작한 강현이 내면의 다섯 살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이니 어린 강현이를 달래주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주머니 속 뽀뽀손』은 ‘사랑이 필요한 세상의 모든 어린이에게’라는 말로 시작한다. 너구리 체스터는 동생의 손바닥에 사랑을 담아 뽀뽀해주는 엄마를 보며 세상을 잃어버린 듯하다. 엄마와 자신만의 뽀뽀손이었는데 엄마가 그것을 동생에게 주어버린 것이다. 체스터의 눈물방울은 그가 얼마나 외롭고 슬픈지말해주고 있다. “엄마는 네 뽀뽀손을 로니에게 준 것이 아니야.그건 로니의 뽀뽀손이란다. 이제 너희 둘 다에게 뽀뽀손이 생긴거야.” 엄마는 사랑을 나눈다고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말해준다. 울먹이는 체스터에게 엄마가 말한다. “우리 체스터가 뽀뽀손이 필요한가 보구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동생으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모두 빼앗긴 것 같은 큰아이의 스트레
스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어떤 심리학자가 ‘바람난 남편이 여자를 데리고 집으
로 들어오는’ 듯한 충격과 상처를 받는다고 비유할 정도이다. 엄마가 동생을 보살필 때마다 버
림받는 아이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쓰라릴지 알아주어야 한다. 동생이 생긴 이후 엄마의 사랑
을 확인하기 어려웠던 강현이에게 이 책은 위로가 되었다. “그냥 동화니까 그렇잖아요.” 하고 말
하지만, 금방 “정말 우리 엄마도 이럴까요?”라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선생님도 선생님 아이에
게 이런 말을 해주진 못했어. 하지만 정말 이 마음이야.” “정말이에요?” “정말이야.”
한 주가 지난 뒤 강현이는 들어오면서 말한다. “엄마도 그 말이 맞대요.” “무슨 말?” “아이, 그
말 말이에요.” 뽀뽀손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마음속에 있는 어린아이였는데 엄마의 사
랑을 확인한 강현이는 이제 그 말을 입에 담기 쑥스러워 한다. 다시 열 살 강현이로 돌아온 것
이다.
자기를 표현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한 권의 책으로 치료적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아이의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기
왕에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다루기 시작했으니 좀 더 탄탄한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이 필요
하다고 생각되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꺼내 들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너를 사랑해. 마음 깊은 곳부터 온몸 구석구석
까지 너를 사랑해. 네가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말썽을 부릴 때나 심술을 부릴 때도 너를 사
랑해. 네가 조용히 있거나 재잘재잘 떠들어도 너를 사랑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
나 너를 사랑해.
아기 그림책으로 알고 있지만 이 글은 다 큰 아이에게도 읽어주면 참 좋다. 특히 상처가 많은 아이에게 이 글은 듣기만해도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된다. “정말요? 에이, 말썽을 부리는데 어떻게 사랑해요? 심술부리고 만날 공부도 안 하는데 어떻게 사랑해요? 그냥 책이니까 그런 거잖아요.” 강현이는 말은그렇게 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입은 미소를 띠고 눈은 반짝인다. 책의 말이 사실이라는 확신을 더 얻고 싶어 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말과 표정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말보다 아이가 보여주는 표정이 더 진심에 가깝다. “넌 네가 엄마를 자주 속상하게 해서 엄마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불안하구나. 하지만 꼭 기억해. 세상에 자식이 실수를 했다고 해서 사
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단다. 다만 사랑한다고 표현하기가 어색한 상황이 된 것뿐이야.”
치료 초기에 이렇게 강현이의 ‘내면의 아이’와 만나고 ‘다시 부모 되어주기’ 과정을 통해 이제
강현이는 자기표현을 곧잘 하게 되었다. 속상할 때 불쑥 화를 내기보다 자신이 화가 나려고 한
다는 말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상담실로 들어오면서 대뜸 “선생님, 제 얘기 좀 들어 보세요.”라며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엄마가 몇 번이나 그만 보라고 해도 무시하고 계속 TV
를 보았다고 한다. 참다못한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면서 리모콘을 테이블로 세게 던졌다. 그만 리
모콘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 순간 강현이는 엄마가 이 사건을 아빠께 이를까봐, 자기 때문에 리
모콘이 부서졌다고 아빠가 혼내실까봐 겁이 났다.
“선생님, 아빠가 아시면 어떻게 하실까요?” 강현이는 저녁에 아빠가 자신을 어떻게 할지 몰라
걱정이 태산이다. 강현이는 내게 아빠가 혼내기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치료자는 잠시 혼란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빠의 마음을 섣불리 추측해서 말하
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강현이를 혼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아
빠가 어떤 반응을 보이시든 강현이가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도와주는 것이 더 필
요하다.
아빠는 네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실까?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이시든 너에 대한 아빠의 속마
음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강현이가 자신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할지 생
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아빠가 혼을 내신다 해도 강현이를 사랑하는 마음, 잘 자라도
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아빠가 혼을 내시면 그 다음엔 넌 어떻
게 할 거니?
아빠가 좋게 타이르시면 그 다음엔 어떤 행동을 선택하고 싶니? 아이들은 자신의
모든 행동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저 어른들이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생
각한다. 이제 강현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까지도 상당히 다른 반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때가 되었다.
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렴
『할까 말까?』의 주인공 ‘할까말까’는 이름 그대로 늘 망설이는 아이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날까 말까, 세수를 할
까 말까, 심지어는 혼자 남아 있던 마을에 불이 났는데도 소리를 지를까 말까 고민하다 마을이 모두 불타버렸
다. 고민에 빠진 할까말까는 결정을 잘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똑부리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똑부리 할아버지
는 둘 중 하나는 결정해야 할 때는 동전으로, 여섯 가지중 하나를 결정할 때는 주사위를 사용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외의 경우에는 자신의 마음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아이의 심리적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선택의 개념을 생각해보게 하는 아주 좋은 책
이다. 주인공 할까말까처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의 속마음을 살펴보면 그 선택의 결
과를 스스로 책임질 마음의 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운이 나빴다거나 엄마나 친구 때
문이라는 핑계를 종종 댄다.
강현이는 이 책을 읽고 처음엔 재미있어 하더니 다시 살펴보면서 어떻게 동전이나 주사위로
결정하냐며 따지기 시작한다. 동전이나 주사위로 결정해도 될 문제가 있고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 것이다. 스스로 결정해야 할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
이에게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라는 말은 참 중요한 말이다. 그냥 선생님이나 엄마가 그
런 말을 해주었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훨씬 명쾌하고 강렬하게 아이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책을 읽고 난 다음 강현이는 “아빠가 혼내도 잘못했다고 말씀 드려야겠다.”고 말한다. 앞으
로도 강현이가 더 배우고 익혀야 할 심리적 기술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화내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좋은 그림책과 더불어 ‘다시 부모 되어주기’를 통해 보듬어주
고 도닥여준다면 아이는 다시 힘을 되찾기 시작한다. 스스로 위로할 줄 알고 스스로 보살필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예전보다 세심한 엄마의 손길을 더 많이 받고 자
라는 아이들이지만 왜 마음이 아프고 병드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걸까? 아마도 자신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독서치료는 책을 읽으며 아픈 아이들의 마음까지 보듬어주고 달래줄 수 있다니 어쩌면
요즘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책으로 우
리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아픈 상처를 달래주고 싶다면 독서의 기능과 효과는 잠시 미루
어 두고 좀 더 치료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학교에서 선생님이, 집에서 엄
마가 치료적 접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개념을 살펴보자.
첫째, ‘내면의 아이’
우리 안에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는 상처받고 비난받고 좌절하고 외로웠던 어린 시
절의 아이이다. 열 살 아이가 조금만 속상한 일이 생기면 지나치게 화내고 울부짖는다. 마치 다
섯 살짜리의 그것으로 보인다. 지금 울고 있는 아이는 열 살이 아니라 열 살 아이 속에 있는 상
처받은 다섯 살짜리가 울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심리치료란 아이 속에 존재하는 상처받은 어
린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조금만 속상해도 다섯 살 적 상처가 덧나서 그때의 슬픔과 외로움 그
리고 분노와 불안감으로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치료적 접근을 할 때는 그 아이 내면의 다섯
살 아이를 보듬어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아이는 외적으로는 성장하지만 내면의 아
이는 고착되어 간다. 그리고 그대로 남아 훗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고 치명적인 결과들을 가
져오기도 한다.
둘째, 다시 부모 되어주기Reparenting
심리치료란 ‘다시 부모 되어주기’이다. 상처받아 아픈 아이에게 다시 부모가 어린 시절의 아이를 돌보듯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 아기를 대하는 부모는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를 보살핀다. 그리고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처한다. 심리치료에서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너를 위해 내가 여기 있다’는 말이다. 아이의 문제 행동을 줄이고 싶다면 그 문제 행동을 유발하는 내면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 치료자가 아이에게 부족했던 부모 역할을 다시 해주면 아이는 아주 빠르게 치유되기 시작한다.
셋째,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
마음 읽어주기는 아이에게 고통이 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고통이란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기만 하면 전혀 다른 모습, 다른 의미가 된다. 고통을 겪는 아이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내가 네 마음을 잘 알고 있어. 너의 고통을 덜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줄 거야. 넌 정말 소중한 아이야.”라는 신호이다.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고 이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림책으로 하는 독서치료
그림책을 활용한 심리치료는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을 매개로 한 치료자와의 대화를 통해 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니 아이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면 그 대화법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이끌어가는 것이 좋다. 주인공과 동일시한다고 해서 아직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이에게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어보면 아이는 더 마음을 닫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천천히 ‘내면의 아이’가 저절로 나와서 “나 좀 달래주세요!”라고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아이가 좋아하는 부분, 재미있는 부분을 보며 책 이야기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다. 아이가 마음 편하게 책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저절로 말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다구요
초등학교 3학년 강현이는 분노 조절을 못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욕하는 아이였다. 엄마는 그런 행동을 고치고 싶어 아이를 데리고 왔다. 심리치료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급하게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강현이에게는 여섯 살 여동생이 있다. 동생은 종종 오빠를 놀리고 골탕 먹인다. 오빠가 조금만 화를 내도 얼른 엄마에게 달려가 오빠가 때렸다며 없는 말까지 지어내서 말하곤 한다. 늘 자신만 혼난다. 억울하고 답답하기가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다. 자신이 기억하는 한 동생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랬다. 엄마는 동생이 다칠까봐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였다. 자신은 늘 엄마의 관심 밖에 있고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동생이 태어나서 상처받
기 시작한 강현이 내면의 다섯 살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이니 어린 강현이를 달래주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주머니 속 뽀뽀손』은 ‘사랑이 필요한 세상의 모든 어린이에게’라는 말로 시작한다. 너구리 체스터는 동생의 손바닥에 사랑을 담아 뽀뽀해주는 엄마를 보며 세상을 잃어버린 듯하다. 엄마와 자신만의 뽀뽀손이었는데 엄마가 그것을 동생에게 주어버린 것이다. 체스터의 눈물방울은 그가 얼마나 외롭고 슬픈지말해주고 있다. “엄마는 네 뽀뽀손을 로니에게 준 것이 아니야.그건 로니의 뽀뽀손이란다. 이제 너희 둘 다에게 뽀뽀손이 생긴거야.” 엄마는 사랑을 나눈다고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말해준다. 울먹이는 체스터에게 엄마가 말한다. “우리 체스터가 뽀뽀손이 필요한가 보구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동생으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모두 빼앗긴 것 같은 큰아이의 스트레
스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어떤 심리학자가 ‘바람난 남편이 여자를 데리고 집으
로 들어오는’ 듯한 충격과 상처를 받는다고 비유할 정도이다. 엄마가 동생을 보살필 때마다 버
림받는 아이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쓰라릴지 알아주어야 한다. 동생이 생긴 이후 엄마의 사랑
을 확인하기 어려웠던 강현이에게 이 책은 위로가 되었다. “그냥 동화니까 그렇잖아요.” 하고 말
하지만, 금방 “정말 우리 엄마도 이럴까요?”라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선생님도 선생님 아이에
게 이런 말을 해주진 못했어. 하지만 정말 이 마음이야.” “정말이에요?” “정말이야.”
한 주가 지난 뒤 강현이는 들어오면서 말한다. “엄마도 그 말이 맞대요.” “무슨 말?” “아이, 그
말 말이에요.” 뽀뽀손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마음속에 있는 어린아이였는데 엄마의 사
랑을 확인한 강현이는 이제 그 말을 입에 담기 쑥스러워 한다. 다시 열 살 강현이로 돌아온 것
이다.
자기를 표현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한 권의 책으로 치료적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아이의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기
왕에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다루기 시작했으니 좀 더 탄탄한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이 필요
하다고 생각되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꺼내 들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너를 사랑해. 마음 깊은 곳부터 온몸 구석구석
까지 너를 사랑해. 네가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말썽을 부릴 때나 심술을 부릴 때도 너를 사
랑해. 네가 조용히 있거나 재잘재잘 떠들어도 너를 사랑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
나 너를 사랑해.
아기 그림책으로 알고 있지만 이 글은 다 큰 아이에게도 읽어주면 참 좋다. 특히 상처가 많은 아이에게 이 글은 듣기만해도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된다. “정말요? 에이, 말썽을 부리는데 어떻게 사랑해요? 심술부리고 만날 공부도 안 하는데 어떻게 사랑해요? 그냥 책이니까 그런 거잖아요.” 강현이는 말은그렇게 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입은 미소를 띠고 눈은 반짝인다. 책의 말이 사실이라는 확신을 더 얻고 싶어 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말과 표정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말보다 아이가 보여주는 표정이 더 진심에 가깝다. “넌 네가 엄마를 자주 속상하게 해서 엄마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불안하구나. 하지만 꼭 기억해. 세상에 자식이 실수를 했다고 해서 사
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단다. 다만 사랑한다고 표현하기가 어색한 상황이 된 것뿐이야.”
치료 초기에 이렇게 강현이의 ‘내면의 아이’와 만나고 ‘다시 부모 되어주기’ 과정을 통해 이제
강현이는 자기표현을 곧잘 하게 되었다. 속상할 때 불쑥 화를 내기보다 자신이 화가 나려고 한
다는 말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상담실로 들어오면서 대뜸 “선생님, 제 얘기 좀 들어 보세요.”라며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엄마가 몇 번이나 그만 보라고 해도 무시하고 계속 TV
를 보았다고 한다. 참다못한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면서 리모콘을 테이블로 세게 던졌다. 그만 리
모콘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 순간 강현이는 엄마가 이 사건을 아빠께 이를까봐, 자기 때문에 리
모콘이 부서졌다고 아빠가 혼내실까봐 겁이 났다.
“선생님, 아빠가 아시면 어떻게 하실까요?” 강현이는 저녁에 아빠가 자신을 어떻게 할지 몰라
걱정이 태산이다. 강현이는 내게 아빠가 혼내기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치료자는 잠시 혼란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빠의 마음을 섣불리 추측해서 말하
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강현이를 혼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아
빠가 어떤 반응을 보이시든 강현이가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도와주는 것이 더 필
요하다.
아빠는 네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실까?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이시든 너에 대한 아빠의 속마
음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강현이가 자신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할지 생
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아빠가 혼을 내신다 해도 강현이를 사랑하는 마음, 잘 자라도
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아빠가 혼을 내시면 그 다음엔 넌 어떻
게 할 거니?
아빠가 좋게 타이르시면 그 다음엔 어떤 행동을 선택하고 싶니? 아이들은 자신의
모든 행동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저 어른들이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생
각한다. 이제 강현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까지도 상당히 다른 반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때가 되었다.
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렴
『할까 말까?』의 주인공 ‘할까말까’는 이름 그대로 늘 망설이는 아이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날까 말까, 세수를 할
까 말까, 심지어는 혼자 남아 있던 마을에 불이 났는데도 소리를 지를까 말까 고민하다 마을이 모두 불타버렸
다. 고민에 빠진 할까말까는 결정을 잘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똑부리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똑부리 할아버지
는 둘 중 하나는 결정해야 할 때는 동전으로, 여섯 가지중 하나를 결정할 때는 주사위를 사용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외의 경우에는 자신의 마음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아이의 심리적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선택의 개념을 생각해보게 하는 아주 좋은 책
이다. 주인공 할까말까처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의 속마음을 살펴보면 그 선택의 결
과를 스스로 책임질 마음의 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운이 나빴다거나 엄마나 친구 때
문이라는 핑계를 종종 댄다.
강현이는 이 책을 읽고 처음엔 재미있어 하더니 다시 살펴보면서 어떻게 동전이나 주사위로
결정하냐며 따지기 시작한다. 동전이나 주사위로 결정해도 될 문제가 있고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 것이다. 스스로 결정해야 할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
이에게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라는 말은 참 중요한 말이다. 그냥 선생님이나 엄마가 그
런 말을 해주었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훨씬 명쾌하고 강렬하게 아이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책을 읽고 난 다음 강현이는 “아빠가 혼내도 잘못했다고 말씀 드려야겠다.”고 말한다. 앞으
로도 강현이가 더 배우고 익혀야 할 심리적 기술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화내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좋은 그림책과 더불어 ‘다시 부모 되어주기’를 통해 보듬어주
고 도닥여준다면 아이는 다시 힘을 되찾기 시작한다. 스스로 위로할 줄 알고 스스로 보살필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