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시스템’에 저항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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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5 21:36 조회 7,555회 댓글 0건본문
1.
“뿌리가 흔들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일이 그릇되어 감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 말은 단순히 일의 형편이나 조건이 잘못되었다거나 표면적으로 그릇되어 감을 뜻하는 게 아니다. 무언가 근원에서부터 잘못되어 감을 말하는 것이다. “뿌리가 흔들린다”라는 표현을 쓸 때 우리는 은연중에 그 일이 나무와 같은 유기생명체라고 여김을 드러낸다. 언젠가 그 일의 씨앗이 뿌려지고, 싹이 트고, 줄기가 뻗어나가고, 잎이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아마도 수천 년 전 농경문화를 처음 일구었던 사람들이 처음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 시대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드러내는 은유가 있다. 그것을 ‘뿌리 은유’라고 한다. ‘뿌리 은유’는 우리의 세계인식과 현실해석의 원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읽기문화와 관련하여 ‘뿌리 은유’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시대다. 그 변화는 한마디로 말해서 ‘책에서 컴퓨터로의 변화’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일찍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가 이반 일리치다. 일리치는 예를 들어 “내 머리 속에 있는 고유명사 ‘파일’이 깨져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하는 식으로 사람을 컴퓨터에 빗대어 이야기하기 시작하던 때의 충격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일리치와 같은 시대를 호흡했던 마샬 매클루언은 이 충격적인 변화를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정식화했다. 미디어는 도구일 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도구가 거꾸로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정체성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읽기문화의 전변이 우리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던 것인가의 역사성을 탐구하기 위해 십이 세기의 사람인 생빅토르의 위그를 불러온다.(<텍스트의 포도밭에서In the Vineyard of the Text : A Commentary to Hugh’s Didascalicon>, 1996) ‘거룩한 책읽기’(lectio divina)란 마치 포도밭에서 포도의 달콤함을 맛보듯이 지혜를 온몸으로 구하는 일이었다. 페이지page가 포도밭(la pagina)인 것이다. 그때 공부한다는 것(study)은 애정과 우정이며, 타인의 삶에 헌신하는 것이며, 열정적인 공감이며, 경배이며,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룩한 책읽기’는 근대 이후에 지식과 정보를 구하는 ‘학구적 책읽기’로 바뀐다. 근대인은 ‘거룩한 책읽기’의 알짬인 ‘영혼의 책읽기’를 잃어버렸다. 근대인의 책읽기는 순례자의 것이 아니라 여행자의 것이 되어 버렸다.
2.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하 ‘시스템’)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의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자 하는데, 군말이 길어졌다. 이 ‘시스템’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컴퓨터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 개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스템system인 것에 있다. 시스템이란 목적이 아닌 방법이며, 체계, 제도, 질서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관리자이거나 통제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 6월 15일 학생들의 독서활동 기록을 축적하여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입학사정관에게 제공함으로써 대학입시의 자료로 삼겠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이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으로 알려진 ‘독서이력관리시스템’이자 ‘독서인증시스템’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언론 매체를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졌을 때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집단이 사교육 업체들이다. 사교육 업체는 독서 관련 ‘상품’을 개발・판매하려는 목적으로 학부모들의 입시 불안감을 부추겼다. 심지어 유치원부터 독서이력을 관리해야 되는 것처럼 호도했다. 독서가 입시와 연계된다는 정부의 방침은 사교육 업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맛좋은 먹잇감이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처럼 배움과 가르침이 동시에 서로 영향을 미치며 자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닌 수많은 선생님과 학부모,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들은 이 ‘시스템’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리고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 두려움이란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블랙홀이라 할 강고한 입시제도에 독서가 결합함으로써 독서의 본질이 심각하게 왜곡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기존에 그나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생과 더불어, 그리고 학부모와 더불어 책읽기의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던 선생님들의 독서교육이 뿌리에서부터 뒤흔들리게 되리라는 두려움이었다.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들이 머리를 모여 이 ‘시스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았다. 크게 다섯 가지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①독서기록의 집적이라는 문제—인권, ②입시 위주의 교육과 독서교육—강제성과 자율성, ③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다양성과 획일성, ④실효성 문제, ⑤사교육의 대상으로 전락할 우려—형평성 등이 그것이다.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안찬수,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함」,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10년 11, 12월호(통권 제96호)를 참조 바람.)
① 첫째는 인권의 관점에서 국가가 학생들의 독서기록을 누적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이 ‘지적 자유’와 ‘프라이버시’ 침해의 가능성이 있음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비유하자면 이 ‘시스템’은 ‘빅 브라더’인 것이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 문제는 2010년 9월 학교도서관 관리 프로그램을 해킹하여 600만 명에 이르는 학생 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불거지지면서 문제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다. <경향신문> 2010년 10월 5일자 ‘초중고 독서기록 대입활용 “사상 검열 발상” 거센 논란’이라는 기사를 통해 밝혔듯이, “초·중·고 12년간 학생의 독서 활동과 이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록을 축적한다는 것은 학생 개인의 지적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발상”인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초·중·고 각각 3년 단위로 분할하여 관리하겠다고 물러서기도 하였다.
학생인권을 지키자는 사회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학생이 책을 읽고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을 것도 중요한 인권이다. 그것도 학생의 중요한 독서권이다. 교사, 특히 사서교사가 학생들의 지적 자유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지켜줄 수 있는가.
② 두 번째는 역시 독서를 입시와 연계시키면서 생겨나는 문제다. 학생들이 책과 떨어져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책과 가까이 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이 ‘시스템’을 구상한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과 책이 떨어져 있는 거리’를 좁혀보자는 본래 목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학생과 교사들이 책이 아니라 ‘시스템’에 종속된다. 이 ‘시스템’은 양적인 독서, 낱낱이 떨어져 있는 부스러기 같은 지식을 요구한다. 독서의 본질이 심각하게 왜곡되는 것이다. 결코 ‘시스템’은 독서를 위한 환경이 될 수 없다. 책을 읽게 만들고자 하면 할수록(강제성) 학생들은 책으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만다. 책을 읽고 싶도록 환경과 조건을 주는 것(자율성)이 중요하다.
③ 책의 근본 속성 가운데 하나는 다양성이다. 심지어 ‘나쁜 책’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어떤 책이 좋지 않은 책인지, 독자가 스스로 읽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독서능력이다. 그런데 ‘시스템’은 어떤 식으로든 좋은 책을 선별한다. 그 선별은 선택이면서 동시에 배제다. 이 ‘시스템’은 학생과 선생님과 학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책,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뺏는다. 책의 다양성은 ‘시스템’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그것이 책이다. 또한 독서교육의 가능성도 시스템적이지 않다. 진정으로 독서교육을 하려는 선생님이나 책읽기의 즐거운 세계로 빠져드는 학생에게는 이 ‘시스템’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④ 실효성 문제는 심각하다. 이 ‘시스템’은 독서의 결과물이 온라인상에 누적됨으로써 보관의 번거로움, 자료 유실의 우려는 없애고, 대입전형 자료 생성의 편이성이 있다고 선전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필의 가능성이 있는 ‘시스템’이 어떻게 평가의 자료로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처음부터 제기되었다.
⑤ 독서조차 사교육의 대상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학생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독서를 입시와 연계하고 평가의 대상으로 삼자고 하는 것은 공교육이 지향하는 형평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3.
책과 독서와 도서관과 관련된 시민 연대단체인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이러한 ‘시스템’이 담고 있는 반교육적・반민주적・반인권적 독서교육 방침을 당장 철회하고, 학생들의 진정한 독서활동을 격려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과 학교도서관이 학교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함을 주장하며 사실상의 독서이력관리시스템이자 독서인증시스템인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폐지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특히, 2011년 4월 23일 오후1시, 한국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폐지를 촉구하는 공개토론회’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지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지적은 다음과 같다. 여을환(어린이도서연구회 사무총장)은 이 ‘시스템’이 학원에서 배워서 학교에서 평가받도록 하고 있다며 이 ‘시스템’이 사교육업체를 위한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여을환 사무총장은 구체적으로 사교육 업체를 예시하면서 “독서시스템 시행 방침이 나오자 ‘독서이력관리’란 이름을 단 상품을 출시하고, 곳곳에서 입학사정관 전형 설명회를 열면서 학부모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일간지들도 이런 상황을 부채질했습니다. ‘독서시스템 활용 전략’이라는 제목을 달고, 독서사교육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다투어 인용・보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독서시스템은 이렇게 사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학생들의 결과물을 평가자료로 쓸 수 있게 길을 터주었습니다. 평가와 연결되기 때문에 부정의 소지가 생겨날 것은 뻔합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부정을 보고 듣고, 알든 모르든 직접 연루되기도 하는 경험이 어린 학생들의 인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날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즉각 폐지되어야 합니다’라는 기자회견문에서 다음 쪽과 같이 밝혔다.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의 따가운 목소리에 더하여 주요 언론 매체에서도 독서이력제를 하루 빨리 손을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가 뒤늦게나마 지난 2011년 5월 2일 ‘독서이력 인증 시스템’(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창의적체험활동지원시스템(에듀팟)과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내용의 보도참고자료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① “2011년 2월 창의적체험활동지원시스템(에듀팟) 구축 당시, 학생들의 대입전형자료 제공 편의를 위해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에듀팟과 연계하면서, 독후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지나친 부담과 사교육 유발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음을 인정하며, ② “에듀팟의 독서활동 관련 기능(독후감 기록 및 ‘가져오기’)을 충분한 사전안내를 통하여 삭제”한다는 것이다. ③ “아울러,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사, 교수, 독서관련 각종 단체 인사들로 ‘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하고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학생들의 건강한 독서문화를 확산하고 사교육 유발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독서활성화 방안’을 상반기 내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또한 같은 날 ‘독서활성화 방안 수립을 위한 전문가협의회’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여러 시민단체 관계자 및 독서교육 전문가들에게 “이 정부 출범 시 실용 위주의 영어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해 물의를 빚은 예(‘어륀지’)처럼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에듀팟’과 연계할 때부터 정부가 잘못한 것이다. 입시와 연계시키지 않고 학교교육에서 독서교육의 역량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독서를 입시와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정부가 “독서를 입시와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하였다면, ‘시스템’과 관련한 혼선과 부작용, 그리고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독서이력제’를 확실하게 종결시키는 방침과 방안을 내놓을 단계가 되었다.
•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즉각 폐지되어야 합니다. 책과 독서와 도서관과 관련한 시민연대단체인 바람직한독서
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교과부의 ‘독서교육지원종합시스템’이 담고 있는 반교육적・반민주적・반인권적 독서교육
을 당장 철회하고, 학생들의 진정한 독서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과 학교도서관이 학교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 교육과학기술부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과 관련한 혼선과 부작용, 방침 부재의 상황에 대해 국민들에게 즉각 해
명해야 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들도 이 시스템이 전혀 실효성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이 시스템을 계속
구축해나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해명해야 합니다. 독서 사교육 업체들이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면서 마치 새로
운 먹잇감이 나타난 것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를 방치·묵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해야 합니다. 교육과학
기술부는 현재까지 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예산이 투여되었는지, 그 경과와 진척이 어떠한지, 그
리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국민 앞에 소상하게 밝혀야 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 정책담당자는 독서교육
종합지원시스템의 장단기 운영방안이 아직 완료되지 않아서 “현재로서는 확정된 교육과학기술부의 공식입장을 말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단계가 되면 우리 국민들이 교육과학기술부의 공식입장
을 듣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또한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수립・시행하면서 제
대로 된 토론회 및 공청회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해오다, 시민단체가 마련하는 자리에는 질타의 목소리가 두려
워 참여조차 하지 않는 사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해명해야 합니다.
•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각 시·도 교육감에게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더 이상 구동시키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이 시스템의 구축과 구동을 위해 책정된 예산이 있다면, 그 예산으로 각 급 학교의 독서환경을 개선하
는 데 투여하거나 교사들의 독서교육을 위한 연수 등의 예산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이 시스템에 의한 독서이력이 절대로 전형 자료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
장합니다. 당초 교육과학기술부는 2011년 대입 때부터 입학사정관제와 연계하여 대입 전형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
습니다. 하지만 2011년 4월 23일 현재 실제적으로 이 시스템을 구동하고 있는 곳은 16개 시·도 가운데 7곳(경남,
부산, 충북, 제주, 인천, 충남, 강원)뿐입니다. 이런 편차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각 교육청의 여건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미 출발부터 편차가 나는 시스템, 그리고 각종 사교육 업체들이 대리 입력이 가능한 시스템을 가지고 어떻게 입학
전형 자료로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과학기술부는 하루라도 빨리 독서이력제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혀야 하
며, 독서이력을 입학 전형 자료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혀야 합니다.
•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전국의 교사들께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과 관련된 업무를 중단해주기를 호
소합니다.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학생들의 독서교육을 위한 시스템이 아닙니다.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학생들의 책에 대한 관심이나 독서활동, 독서능력 신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사들께서 잘 알고 계시듯,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과정 개편, 그리고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센터’인 에듀팟 운영과 기존의 NEIS 시스템 개편
과 맞물려 엄청난 혼선과 업무 과중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굳이 실효성도 없는 일에 굳이 시간과 노력을 기
울일 사회적 이유가 없습니다.
•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전국의 학부모들께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독서논술 사교육 업체에 휘둘리
지 말고 가정과 사회의 독서문화 환경을 바꾸어나가는 일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4.
망본초란忘本招亂이라는 말이 있다. 근본을 잊어버리면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뿌리가 흔들리면 그 사회는 망한다.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일구어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몇 년 간의 ‘사태’는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뿌리는 책이고 책읽기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환경, 그리고 책 읽을 권리의 확장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학생들이 마음껏 책과 만날 수 있게 된 환경이 주어진 것이 불과 10년이 되지 않는다. 교육당국이 펼친 정책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칭찬받아 마땅한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을 통해 그나마 학교에는 학교도서관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라고 일컬어지는 ‘독서이력관리시스템’은 학생들이 책과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컴퓨터에 가까이 가도록 만든다. ‘시스템’으로는 독서교육을 할 수가 없다. 책은 ‘시스템’에 저항하는 매체다. 그것이 책의 본질이다.
책읽기는 결코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어린이・청소년들의 또 다른 삶의 경험이며 고도의 문화적인 활동이다. 그러기에 독서는 자발성과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자율성・다양성・형평성 등 독서활동의 기본적인 철학에 바탕을 둔 독서교육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린이・청소년들이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생애의 독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우리 사회 어른들의 책임이다.
“뿌리가 흔들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일이 그릇되어 감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 말은 단순히 일의 형편이나 조건이 잘못되었다거나 표면적으로 그릇되어 감을 뜻하는 게 아니다. 무언가 근원에서부터 잘못되어 감을 말하는 것이다. “뿌리가 흔들린다”라는 표현을 쓸 때 우리는 은연중에 그 일이 나무와 같은 유기생명체라고 여김을 드러낸다. 언젠가 그 일의 씨앗이 뿌려지고, 싹이 트고, 줄기가 뻗어나가고, 잎이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아마도 수천 년 전 농경문화를 처음 일구었던 사람들이 처음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 시대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드러내는 은유가 있다. 그것을 ‘뿌리 은유’라고 한다. ‘뿌리 은유’는 우리의 세계인식과 현실해석의 원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읽기문화와 관련하여 ‘뿌리 은유’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시대다. 그 변화는 한마디로 말해서 ‘책에서 컴퓨터로의 변화’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일찍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가 이반 일리치다. 일리치는 예를 들어 “내 머리 속에 있는 고유명사 ‘파일’이 깨져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하는 식으로 사람을 컴퓨터에 빗대어 이야기하기 시작하던 때의 충격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일리치와 같은 시대를 호흡했던 마샬 매클루언은 이 충격적인 변화를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정식화했다. 미디어는 도구일 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도구가 거꾸로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정체성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읽기문화의 전변이 우리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던 것인가의 역사성을 탐구하기 위해 십이 세기의 사람인 생빅토르의 위그를 불러온다.(<텍스트의 포도밭에서In the Vineyard of the Text : A Commentary to Hugh’s Didascalicon>, 1996) ‘거룩한 책읽기’(lectio divina)란 마치 포도밭에서 포도의 달콤함을 맛보듯이 지혜를 온몸으로 구하는 일이었다. 페이지page가 포도밭(la pagina)인 것이다. 그때 공부한다는 것(study)은 애정과 우정이며, 타인의 삶에 헌신하는 것이며, 열정적인 공감이며, 경배이며,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룩한 책읽기’는 근대 이후에 지식과 정보를 구하는 ‘학구적 책읽기’로 바뀐다. 근대인은 ‘거룩한 책읽기’의 알짬인 ‘영혼의 책읽기’를 잃어버렸다. 근대인의 책읽기는 순례자의 것이 아니라 여행자의 것이 되어 버렸다.
2.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하 ‘시스템’)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의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자 하는데, 군말이 길어졌다. 이 ‘시스템’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컴퓨터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 개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스템system인 것에 있다. 시스템이란 목적이 아닌 방법이며, 체계, 제도, 질서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관리자이거나 통제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 6월 15일 학생들의 독서활동 기록을 축적하여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입학사정관에게 제공함으로써 대학입시의 자료로 삼겠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이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으로 알려진 ‘독서이력관리시스템’이자 ‘독서인증시스템’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언론 매체를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졌을 때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집단이 사교육 업체들이다. 사교육 업체는 독서 관련 ‘상품’을 개발・판매하려는 목적으로 학부모들의 입시 불안감을 부추겼다. 심지어 유치원부터 독서이력을 관리해야 되는 것처럼 호도했다. 독서가 입시와 연계된다는 정부의 방침은 사교육 업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맛좋은 먹잇감이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처럼 배움과 가르침이 동시에 서로 영향을 미치며 자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닌 수많은 선생님과 학부모,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들은 이 ‘시스템’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리고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 두려움이란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블랙홀이라 할 강고한 입시제도에 독서가 결합함으로써 독서의 본질이 심각하게 왜곡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기존에 그나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생과 더불어, 그리고 학부모와 더불어 책읽기의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던 선생님들의 독서교육이 뿌리에서부터 뒤흔들리게 되리라는 두려움이었다.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들이 머리를 모여 이 ‘시스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았다. 크게 다섯 가지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①독서기록의 집적이라는 문제—인권, ②입시 위주의 교육과 독서교육—강제성과 자율성, ③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다양성과 획일성, ④실효성 문제, ⑤사교육의 대상으로 전락할 우려—형평성 등이 그것이다.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안찬수,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함」,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10년 11, 12월호(통권 제96호)를 참조 바람.)
① 첫째는 인권의 관점에서 국가가 학생들의 독서기록을 누적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이 ‘지적 자유’와 ‘프라이버시’ 침해의 가능성이 있음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비유하자면 이 ‘시스템’은 ‘빅 브라더’인 것이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 문제는 2010년 9월 학교도서관 관리 프로그램을 해킹하여 600만 명에 이르는 학생 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불거지지면서 문제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다. <경향신문> 2010년 10월 5일자 ‘초중고 독서기록 대입활용 “사상 검열 발상” 거센 논란’이라는 기사를 통해 밝혔듯이, “초·중·고 12년간 학생의 독서 활동과 이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록을 축적한다는 것은 학생 개인의 지적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발상”인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초·중·고 각각 3년 단위로 분할하여 관리하겠다고 물러서기도 하였다.
학생인권을 지키자는 사회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학생이 책을 읽고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을 것도 중요한 인권이다. 그것도 학생의 중요한 독서권이다. 교사, 특히 사서교사가 학생들의 지적 자유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지켜줄 수 있는가.
② 두 번째는 역시 독서를 입시와 연계시키면서 생겨나는 문제다. 학생들이 책과 떨어져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책과 가까이 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이 ‘시스템’을 구상한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과 책이 떨어져 있는 거리’를 좁혀보자는 본래 목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학생과 교사들이 책이 아니라 ‘시스템’에 종속된다. 이 ‘시스템’은 양적인 독서, 낱낱이 떨어져 있는 부스러기 같은 지식을 요구한다. 독서의 본질이 심각하게 왜곡되는 것이다. 결코 ‘시스템’은 독서를 위한 환경이 될 수 없다. 책을 읽게 만들고자 하면 할수록(강제성) 학생들은 책으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만다. 책을 읽고 싶도록 환경과 조건을 주는 것(자율성)이 중요하다.
③ 책의 근본 속성 가운데 하나는 다양성이다. 심지어 ‘나쁜 책’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어떤 책이 좋지 않은 책인지, 독자가 스스로 읽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독서능력이다. 그런데 ‘시스템’은 어떤 식으로든 좋은 책을 선별한다. 그 선별은 선택이면서 동시에 배제다. 이 ‘시스템’은 학생과 선생님과 학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책,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뺏는다. 책의 다양성은 ‘시스템’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그것이 책이다. 또한 독서교육의 가능성도 시스템적이지 않다. 진정으로 독서교육을 하려는 선생님이나 책읽기의 즐거운 세계로 빠져드는 학생에게는 이 ‘시스템’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④ 실효성 문제는 심각하다. 이 ‘시스템’은 독서의 결과물이 온라인상에 누적됨으로써 보관의 번거로움, 자료 유실의 우려는 없애고, 대입전형 자료 생성의 편이성이 있다고 선전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필의 가능성이 있는 ‘시스템’이 어떻게 평가의 자료로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처음부터 제기되었다.
⑤ 독서조차 사교육의 대상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학생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독서를 입시와 연계하고 평가의 대상으로 삼자고 하는 것은 공교육이 지향하는 형평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3.
책과 독서와 도서관과 관련된 시민 연대단체인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이러한 ‘시스템’이 담고 있는 반교육적・반민주적・반인권적 독서교육 방침을 당장 철회하고, 학생들의 진정한 독서활동을 격려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과 학교도서관이 학교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함을 주장하며 사실상의 독서이력관리시스템이자 독서인증시스템인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폐지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특히, 2011년 4월 23일 오후1시, 한국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폐지를 촉구하는 공개토론회’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지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지적은 다음과 같다. 여을환(어린이도서연구회 사무총장)은 이 ‘시스템’이 학원에서 배워서 학교에서 평가받도록 하고 있다며 이 ‘시스템’이 사교육업체를 위한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여을환 사무총장은 구체적으로 사교육 업체를 예시하면서 “독서시스템 시행 방침이 나오자 ‘독서이력관리’란 이름을 단 상품을 출시하고, 곳곳에서 입학사정관 전형 설명회를 열면서 학부모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일간지들도 이런 상황을 부채질했습니다. ‘독서시스템 활용 전략’이라는 제목을 달고, 독서사교육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다투어 인용・보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독서시스템은 이렇게 사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학생들의 결과물을 평가자료로 쓸 수 있게 길을 터주었습니다. 평가와 연결되기 때문에 부정의 소지가 생겨날 것은 뻔합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부정을 보고 듣고, 알든 모르든 직접 연루되기도 하는 경험이 어린 학생들의 인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날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즉각 폐지되어야 합니다’라는 기자회견문에서 다음 쪽과 같이 밝혔다.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의 따가운 목소리에 더하여 주요 언론 매체에서도 독서이력제를 하루 빨리 손을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가 뒤늦게나마 지난 2011년 5월 2일 ‘독서이력 인증 시스템’(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창의적체험활동지원시스템(에듀팟)과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내용의 보도참고자료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① “2011년 2월 창의적체험활동지원시스템(에듀팟) 구축 당시, 학생들의 대입전형자료 제공 편의를 위해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에듀팟과 연계하면서, 독후활동에 대한 학생들의 지나친 부담과 사교육 유발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음을 인정하며, ② “에듀팟의 독서활동 관련 기능(독후감 기록 및 ‘가져오기’)을 충분한 사전안내를 통하여 삭제”한다는 것이다. ③ “아울러,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사, 교수, 독서관련 각종 단체 인사들로 ‘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하고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학생들의 건강한 독서문화를 확산하고 사교육 유발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독서활성화 방안’을 상반기 내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또한 같은 날 ‘독서활성화 방안 수립을 위한 전문가협의회’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여러 시민단체 관계자 및 독서교육 전문가들에게 “이 정부 출범 시 실용 위주의 영어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해 물의를 빚은 예(‘어륀지’)처럼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에듀팟’과 연계할 때부터 정부가 잘못한 것이다. 입시와 연계시키지 않고 학교교육에서 독서교육의 역량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독서를 입시와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정부가 “독서를 입시와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하였다면, ‘시스템’과 관련한 혼선과 부작용, 그리고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독서이력제’를 확실하게 종결시키는 방침과 방안을 내놓을 단계가 되었다.
•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즉각 폐지되어야 합니다. 책과 독서와 도서관과 관련한 시민연대단체인 바람직한독서
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교과부의 ‘독서교육지원종합시스템’이 담고 있는 반교육적・반민주적・반인권적 독서교육
을 당장 철회하고, 학생들의 진정한 독서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과 학교도서관이 학교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 교육과학기술부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과 관련한 혼선과 부작용, 방침 부재의 상황에 대해 국민들에게 즉각 해
명해야 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들도 이 시스템이 전혀 실효성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이 시스템을 계속
구축해나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해명해야 합니다. 독서 사교육 업체들이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면서 마치 새로
운 먹잇감이 나타난 것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를 방치·묵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해야 합니다. 교육과학
기술부는 현재까지 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예산이 투여되었는지, 그 경과와 진척이 어떠한지, 그
리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국민 앞에 소상하게 밝혀야 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 정책담당자는 독서교육
종합지원시스템의 장단기 운영방안이 아직 완료되지 않아서 “현재로서는 확정된 교육과학기술부의 공식입장을 말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단계가 되면 우리 국민들이 교육과학기술부의 공식입장
을 듣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또한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수립・시행하면서 제
대로 된 토론회 및 공청회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해오다, 시민단체가 마련하는 자리에는 질타의 목소리가 두려
워 참여조차 하지 않는 사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해명해야 합니다.
•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각 시·도 교육감에게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더 이상 구동시키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이 시스템의 구축과 구동을 위해 책정된 예산이 있다면, 그 예산으로 각 급 학교의 독서환경을 개선하
는 데 투여하거나 교사들의 독서교육을 위한 연수 등의 예산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이 시스템에 의한 독서이력이 절대로 전형 자료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
장합니다. 당초 교육과학기술부는 2011년 대입 때부터 입학사정관제와 연계하여 대입 전형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
습니다. 하지만 2011년 4월 23일 현재 실제적으로 이 시스템을 구동하고 있는 곳은 16개 시·도 가운데 7곳(경남,
부산, 충북, 제주, 인천, 충남, 강원)뿐입니다. 이런 편차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각 교육청의 여건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미 출발부터 편차가 나는 시스템, 그리고 각종 사교육 업체들이 대리 입력이 가능한 시스템을 가지고 어떻게 입학
전형 자료로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과학기술부는 하루라도 빨리 독서이력제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혀야 하
며, 독서이력을 입학 전형 자료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혀야 합니다.
•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전국의 교사들께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과 관련된 업무를 중단해주기를 호
소합니다.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학생들의 독서교육을 위한 시스템이 아닙니다.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학생들의 책에 대한 관심이나 독서활동, 독서능력 신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사들께서 잘 알고 계시듯,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과정 개편, 그리고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센터’인 에듀팟 운영과 기존의 NEIS 시스템 개편
과 맞물려 엄청난 혼선과 업무 과중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굳이 실효성도 없는 일에 굳이 시간과 노력을 기
울일 사회적 이유가 없습니다.
•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전국의 학부모들께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독서논술 사교육 업체에 휘둘리
지 말고 가정과 사회의 독서문화 환경을 바꾸어나가는 일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4.
망본초란忘本招亂이라는 말이 있다. 근본을 잊어버리면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뿌리가 흔들리면 그 사회는 망한다.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일구어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몇 년 간의 ‘사태’는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뿌리는 책이고 책읽기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환경, 그리고 책 읽을 권리의 확장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학생들이 마음껏 책과 만날 수 있게 된 환경이 주어진 것이 불과 10년이 되지 않는다. 교육당국이 펼친 정책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칭찬받아 마땅한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을 통해 그나마 학교에는 학교도서관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라고 일컬어지는 ‘독서이력관리시스템’은 학생들이 책과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컴퓨터에 가까이 가도록 만든다. ‘시스템’으로는 독서교육을 할 수가 없다. 책은 ‘시스템’에 저항하는 매체다. 그것이 책의 본질이다.
책읽기는 결코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어린이・청소년들의 또 다른 삶의 경험이며 고도의 문화적인 활동이다. 그러기에 독서는 자발성과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자율성・다양성・형평성 등 독서활동의 기본적인 철학에 바탕을 둔 독서교육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린이・청소년들이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생애의 독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우리 사회 어른들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