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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새로운 진로지도, 직업 가치관의 변화에서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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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13:30 조회 13,47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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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지도의 현실
성적중심의 진학, 진로지도
대학수능시험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달쯤 지나면 학생들은 수능 점수를 통보받고, 학원가에서 흘러들어온 대학배치표에 따라 지망대학과 학과를 찍어서 대학입학원서를 쓰는 것이 고3 교실의 풍경이다. 내신과 수능 점수에 따라서 지원대학과 전공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비단 고3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일반계고를 갈 것인지, 전문계고를 갈 것인지, 혹은 특목고로 진학할 것인지 하는 것도 모두 성적에 따라 결정하곤 한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나 직업을 고려해서 그에 맞는 진학 선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교에서는 해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학설명회’라는 것을 한다. 말 그대로 ‘진로설명회’가 아니다. 내용 역시 내신과 수능 점수대에 따라 진학 가능한 대학을 나열해 알려주고, 내신과 수능 점수를 더 많이 올릴 수 있도록 학교에서 노력할 것이며 학부모들도 가정에서 적극 협력해달라는 당부를 주로 한다. 반에서 5등 안에는 들어야 ‘인서울’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는 현실 진단을 듣게 된 학부모들은, 자녀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 확률적으로 자명한 상황에서 자신의 자녀도 ‘인서울’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사실에 절망감만 안고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학교에서조차 학생들에 대한 제대로 된 진로지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채 성적에 의한 진학지도가 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학부모들 사이에는 이런 농담도 회자되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는 서울대학교를 보낼 마음에 서울우유를 먹이고, 중학생이 되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을 보고 욕심을 낮추어 연세우유를 먹인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좀 더 현실을 깨닫고 ‘인서울’만이라도 해달라는 심정으로 건국우유를 먹인다. 그리고선 수능을 마치고는 저 멀리 떨어진 지방대학에 갈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되어 ‘저지방 우유’를 먹인다.”는 것이다. 이 농담이야말로 성적에만 얽매인 자녀의 진학, 진로지도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학교, 학부모 모두 성적 기준에 의해서만 상위 학교 선택을 하는 현실에서는 상위 5%대의 아이들만이 자신이 선택하는 학교에 대해서 만족하게 될 뿐, 대다수의 아이들은 남들도 인정해주지 않고 자신도 원하지 않은 학교에 진학했다는 자괴감과 낭패감만 안고 출발하게 된다. 그런 좌절감을 안고 입학한 학교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설계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아이들 대다수를 낙오자, 실패자로 내모는 성적 중심의 진학, 진로지도는 새롭게 설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잘나가는 직업군에 대한 선호
성적을 높여서 상위 대학에 진학하려는 근본적 이유는 소위 우리 사회의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기 위해서다. ‘명문대학 졸업→전문직 또는 안정된 직장 취업’. 이것이 대부분의 부모가 생각하는 자녀 교육 로드맵이다. 그것이 내 아이의 행복한 삶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데, 현재 우리 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들의 실태를 살펴보면 특정 직업군에 대한 선호 현상이 얼마나 뚜렷한지 잘 드러나 있다.

2008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전국 593개교에 재학 중인 초중등학생 15,978명을 대상으로 장래 희망 직업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가장 높은 희망 직업으로 초등학생의 15.7%, 중학생의 19.8%, 고등학생의 13.4%가 교사를 꼽았다. 이는 학생
이 가장 접촉빈도가 높은 직업인이 선생님이라는 점, 직업인으로서 선생님이 받는 사회적 존경, 최근 교사에 대한 직업적 선호 등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밖에 의사, 공무원의 선호도가 높게 나오는 것 역시 학생들이 경제적 소득과 직업 안정성을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10대 장래 희망 직업에 응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 가운데 초등학생의 71.8%, 중학생의 59.6%, 고등학생의 46.2%로 나타나 특정 직업에 편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것은 학생들의 직업진로설계가 각자의 재능과 소질, 적성을 살리기보다는 소위 인기직업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한 것을 보여준다.



학생들이 이렇게 특정 직업군에 대한 선호가 극심하게 된 요인은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얻게 된 직업에 대한 정보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스며든 가치관에 의해서일 것이다.

먼저 사회적 환경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이란 것이 아래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임금과 직업의 안정성에만 국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관들에서 규정한 ‘좋은 일자리’의
기준과 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국제노동기구)가 규정하는 기준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매우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는 평균 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말하는 반면, ILO에서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공평을 지켜주는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사회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일자리를 일컫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기준과 비교해 직업적 안정성과 경제적 가치를 기준으로 ‘좋은 일자리’를 규정하는 데에는 우리나라만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이 영향을 끼친다. 전쟁과 기아라는 경제적 궁핍의 시기를 우리 부모 세대가 겪었고, 최근에도 외환위기를 심각하게 치렀던 경험이 우리 사회에서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직업의 안정성과 소득을 중시하는 사회적 배경이 된 것이다. 그 외에도 유교적 전통으로 특정 직업군에 대한 유난한 선호와 선망, 사농공상, 관존민비와 같은 사회문화적 의식이 뿌리 깊어 우리 사회의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유독 강하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국민 및 청년층의 직업의식을 잘 볼 수 있는 통계가 있다. 통계청이 매년 조사하는 <한국의 사회지표> 가운데 직업의식과 관련된 ‘직업선택 요인의 변화’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전체 및 청년층의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일에 대한 가치 또는 직업 가치관을 일반적으로 내재적 가치지향과 외재적 가치 지향으로 구분*하였는데, 사회 전체나 청년층의 의식 모두 1998년에 비해 2000년대 중반 이후 외재적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인식이 증가하는 추세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청년층은 사회 전체의 외재적 가치 중시 경향에 비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06년, 2009년의 청년층들은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직업관이 형성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IMF 외환위기를 겪었고, 경제위기 이후에 현실의 취업여건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 조건을 중시하는 직업의식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내재적 가치’는 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로서, 발전성, 장래성, 명예, 명성, 보람, 자아성취, 적성, 흥미 등을 의미하며, ‘외재적 가치’는 일에 따르는 물질적 보상이나 조건을 중시하는 가치로서 수입, 안정성을 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 류지성, 「청년고용 확대를 위한 대학교육 혁신방안」, 삼성경제연구소, 2010, p.71~72.


직업이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거나 안정적 생활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존재의 의미를 갖게 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직업을 통해서 저마다 타고난 능력과 재
능을 계발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켜나감으로써 자아를 성취하고 삶을 완성해가는 장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진로를 잘 찾아 자신에게 꼭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한 인간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과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사회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 전반적으로 직업 선
택의 기준이 직업적 안정성과 경제적 소득에 획일적으로 맞추어져 있다면 이는 개인과 사회에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직업적 만족도가 낮아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고, 직업의 잦은 이동으로 개인과 사회의 낭비가 심해질 것이다.

이렇게 특정 직업군에 편중된 선호 현상이 유달리 강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고, 더욱이 그러한 직업 선택 기준의 팽배 때문에 직업 선택 후의 만족감, 삶의 행복지수도 현저히 낮아지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으니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앞에서 성적에 의해 진학지도를 했을 때 만족할 학생들의 수는 상위 성적 5%대 정도의 아이들밖에 되지 않고 다수는 낭패감을 안을 수밖에 없다고 했듯이,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일자리’ 기준에 따라 취업을 하려고 하면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대표적 기관들이 규정한 ‘좋은 일자리’ 기준에 따른 일자리 수는 한 해 약 2만 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한 해 대졸자가 약 56만 명 정도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대졸자의 약 3%만이 ‘좋은 일자리’에 취직할 수 있고 97%는 ‘나쁜 일자리’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와 가정이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스스로에게도 내면화하였을 때 또 다시 다수는 실패한 사회인의 첫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성적에 따른 진학지도, 그리고 경제적 관점에만 맞추어진 직업 선택이 대다수의 학생들을 ‘루저’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진로지도의 방향 ‘좋은 일자리’의 대안적 기준 마련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회적으로 규정한 ‘좋은 일자리’의 기준에 얽매인다면 그 수는 불과 2~3만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머지 53~54만 명에 이르는 졸업생들은 결과적으로 ‘나쁜 일자리’에 취업을 하게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올바른 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재능과 적성이 다르고 하고 싶은 일이 다른데, 사회적·외부적으로 규정한 기준을 강제하며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은 다수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세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적성과 재능(하고 싶은 일 + 잘할 수 있는 일)
- 가치(일을 통한 사회적 기여)
- 경제적 자립(성인으로서 자립적 생활이 가능한 경제적 소득)

하고 싶은 일 (적성)
직업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더구나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앞으로의 사회는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한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2003년을 기준으로 할 때 한 개인은 20년 동안 평균 5.6개의 직업을 갖는 데 비해서, 2040년이 되면 20년 동안 일을 한다고 했을 때 한 개인이 갖게 되는 직업의 수는 76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것이 자녀 진로지도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자녀로 하여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직업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20년 공부하고 20년 직장생활을 한 후, 20년 동안의 노후를 즐기게 되는 생애주기가 가능했던 산업사회에서는 일(직업)과 삶이 서로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숙련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의 일(직업)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고, 그 일을 통해 얻어지는 물질적 보상 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나름대로 영위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하는 미래의 직업사회에서, 만약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당장의 연봉이나 직업의 안정성에 기대어 선택한다면 그 선택은 행복한 삶은 물론 지속가능한 직업생활조차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하고 싶은 일’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좀 더 성찰적인 견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순간뿐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고 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요’라는 대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결정의 도구가 됩니다.”

잘 할 수 있는 일(능력)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과 함께 ‘행복한’ 직업생활을 위해 필요한 필수 요소이다. 한 개인이 일을 통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중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한 개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은 개인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이런 당연한 사실에도 부모들은 자녀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본인의 경험과 불안에만 얽매여 일반적 기준에 따른 좋은 일자리
진입을 위한 공부에만 자녀를 밀어 넣음으로써 정작 잘할 수 있는 일이 발견되고 개발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녀가 ‘잘할수 없는 일’이면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향해 진학과 진로지도를 하고 있지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 ‘잘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그 분야에서 1등이 되어야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여기서 ‘잘할 수 있는 일’이라 함은 그 분야에서 최소한 상위 몇% 안에는 들어야한다는 식의 상대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각 개인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절대적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직업들만 강조되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마치 아이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안 한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는 사실에 낙심할 이유가 없다. 공부는 여러 적성 가운데 하나이며 공부를 꼭 잘해야 하는 직업은 1만 개의 직업 가운데 극히 일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잘할 수 있는 다른 게 있다는 말일 뿐이다.

한국에는 1만 개의 직업이 있다. 그건 앞서 말했듯 내 아이가 1만 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며, 내 아이가 그 1만 개 직업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적성과 재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할 일은 되든 안 되든 20개 직업만 생각하며 아이를 닦달하는 게 아니라, 9980개의 직업까지 두루 살피며 아이가 제 적성과 재능에 가장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2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보다는 998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이 훨씬 높다.”
- 김규항, <한겨레신문> 칼럼 ‘20 : 9980’ 중에서

일을 통한 사회적 기여(가치)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리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은 사회적 삶으로 연결되는 직업생활에서도, 자신의 일을 통해 사람들과 그리고 사회와 맺는 관계의 중요성은 ‘좋은’ 일자리를 결정짓는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총각네 야채가게는 상품이 아니라 즐거움을 판다.” -이영석(총각네 야채가게 대표)
“빵 하나가 고객에게 어떤 에너지와 힘, 생명력을 선사할지 생각하고, 고객들의 하루가 우리 빵으로 인해 더 따뜻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김영모(김영모 제과점 대표)

앞에서 볼 수 있듯이 ‘총각네 야채가게’의 이영석 대표와 ‘김영모 제과점’의 김영모 대표가 직업에 접근하는 방식은, 연봉과 직업안정성 등 자신의 안락함과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기존의 ‘좋은’ 일자리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에 많은 시사점과 울림을 제공한다.

자녀의 진로지도에서 경제적 안정성과 같은 물질적인 기준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녀가 자신의 삶과 진로(직업)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지 고민하고 실천해갈 수 있도록 부모가 안내해주는 일은, 소비의 욕망을 끊임없이 키우는 것을 통해 행복을 실현하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사회를 살아갈 자녀의 ‘행복한’ 직업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는 소비의 욕망을 끊임없이 키워가는 사회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치’의 중요성은 점차 증대될 것이며,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가치를 제
대로 세우고 있지 못할 때 그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역시 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먼저 왜 기업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 왜 우리가 이곳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기업이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익 추구가 기업의 중요한 존재 이유이긴 하지만, 우리는 더 깊고 진정한 기업 존재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진부한 표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기업은 사회에 공헌한다. 주위를 둘러볼 때 여전히 돈을 버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무언가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을 성취하려는 열망이 바닥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휴렛패커드 창업자 데이비드 패커드

경제적자립
앞에서 말한 ‘재능과 적성’, ‘직업을 통한 사회적 기여’를 중요한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쨌든 성인으로서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소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적 소득에서 ‘자립’의 수준을 넘어선 ‘풍요’나 ‘여유’의 수준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화된 의식이자 현상이다. 경제적 수준에서 절대적 만족보다는 남들과 비교한 상대적 만족을 추구함과 동시에 여유 있고 풍족하게 누리며 사는 것
이 성공한 삶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은 그러한 풍족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는 적성과 재능에 맞는 직업이더라도 외부의 평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도 폄하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가치관을 내면화 하느냐에 따라, 즉 제시한 세 가지의 기준 가운데 무엇을 더 중시하느냐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는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기존에 사회적으로 강요되고 스스로에게 내면화되었던 경제적 풍요와 여유를 가장 중시하게 되면 ‘적성과 재능’, ‘사회적 기여’는 소홀하게 취급될 것이고, ‘적성과 재능’, ‘사회적 기여’를 중시할 때는 ‘경제적 소득’의 기준은 ‘풍족’의 기준보다는 낮은 ‘자립’의 수준에서도 만족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거의 유일한 직업선택의 기준으로 강조되었던 ‘경제적 소득’을 ‘경제적 자립’의 수준으로 그 기준을 삼는다면 아이들은 훨씬 더 많은, 다양한 자신에게 맞는 직업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좋은 일자리’의 대안적인 기준에서 살펴보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정답 이외에도 이미 다른 길이 우리 사회에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모들이 떠올리는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 이외에도 ‘적성과 재능’, ‘일을 통한
사회적 기여’, ‘경제적 자립’을 그 기준으로 삼는다면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진학과 진로지도는 지금과는 현격하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진로와 관련하여 부모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눈앞의 안정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
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주는 것, 그리고 직업이 단지 생계 수단이나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직업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녀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근본적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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