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구경꾼이 많은 비바람치는 싸움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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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3 23:24 조회 8,538회 댓글 0건본문
어쩌면 나의 글은 부끄러운 사서교사 생활을 뒤돌아보는 자성의 글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학교도서관과 사서교사에게 가해지는 이 부당한 세상의 냉대와 편견에 대한 가슴 아픈 푸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이 냉대와 편견에 맞서 너는 무엇을 하였냐는 무척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변명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청춘을 바친 학교도서관에서 실패를 단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는 조금 억울해서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미완의 공간에서 나를 찾아 달려오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손때가 묻은 책속에서 웃고 울고 재잘대는 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한번쯤은 크게 용트림할 학교도서관을 꿈꾸며 산다.
사서교사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언저리
‘사서 고생만 하는 교사!’1989년 3월 애타와 기다리던 발령을 받고, 기쁨을 추스를 틈도 없이 선배들로부터 듣게 된 푸념이다. 교육 공동체 구성원들이 보는 자료 관리자로서의 사서교사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에 대한 이 애증 섞인 표현을 절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또 후배들이 겪고 있는 상실감과 인력 충원의 불연속성은 학교도서관과 사서교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왜 사서교사에 대한 존재감이 여전히 희박한 것일까? 승진에서의 가산점을 얻기위해 교과교사들이 단기강습으로 사서교사 자격을 취득하던 시절부터 가졌던 한직으로서의 의식이 남아있어서인가? 아니면 사서교사 개인의 역량이 학교 교육과정을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가? 또는 학교 교육이 여전히 학교도서관과 사서교사의 역할과 상관없이 운영되기 때문인가? 도대체 어디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찾아야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학교도서관을 살리자는 시민운동과 정부의 학교도서관활성화사업에도 불구하고 사서교사에 대한 무시는 이제 인식을 넘어서 법과 제도로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기주도학습과 교육 환경으로서의 학교도서관, 문화적 소양과 독서의 요람으로서의 학교도서관, 교과교사와 교육과정의 성공적인 운영을 협동적인 동반자 관계로 이끌어 가는 사서교사, 자원기반학습에 필요한 정보활용능력을 교과 교육과 연계하는 교실로서의 학교도서관을 경영하는 사서교사’로서의 위상은 일부 사서교사 양성과정에서나 들어봄직한 구호이다. 20년 사서교사 생활을 뒤돌아보며 무엇이 이토록 가슴 아픈 현실을 지속시키고 있는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편안하냐는 인사를 듣기 싫어서 교사 휴게실은 얼씬도 하지 않고 테니스며, 배드민턴도 교직 생활 15년이 지나서야 동호회에 겨우 가입하였다. 그나마 수업도 없는데 자주 나오라는 인사를 받고서는 접고 말았다. 이제는 경력으로라도 애써 웃어넘길 수 있는 잠시 서운한 말이지만 참으로 가슴 아픈 시선이다. 그네들이 자료구입 신청을 한번 하지 않아도, 지나다가 도서관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없어도 나는 이렇게 인사를 건넨 적이 없다. ‘요즘도 교과서만 가지고 수업하십니까?’, ‘교사라는 사람이 책을 보기는 하는 거요?’
멈출 수 없는 교육과정 개발
사서교사 미발령 이유가 담당과목 부재라는 교육청 장학 담당자들의 핑계를 믿고 1995년에 사서교사의 교육적 역할을 교육과정을 통해서 구현하고자 젊은 사서교사들이 개발한 것이 바로 『고등학교 정보와 매체』이다. 이후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추어 교육인적자원부 인정도서로 초·중·고등학교용 『정보와 도서관』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7년을 교양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 동안에 이 교육과정을 맡기기 위해서 사서교사를 임용했다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줄어드는 수업시수로 교과 간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사서교사의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목소리는 점차 설자리를 잃고 있다. 물론 사서교사의 교육과정 참여를 반대하는 우렁찬 외침도 있었다. ‘사서교사의 본연의 일은 도서관 문을 닫지 않는 것이다.’ 최근 사서교사 자격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 국회의원을 만났을 때 들은 얘기다. “사서교사보건교사가 칠판을 욕심내는 순간 도서관과 보건실은 또 다른 사람이 맡아야 한다.”
파트너십을 갖고 협동하고 승진을 위한 공정한 규칙이라도 마련해 달라는 요구에 대한 답변이다. 또 도서관과 정보생활이라는 교육과정을 개발 중이다. 계속되는 교육과정 개발이 사서교사가 교과교사가 되겠다는 의사표현은 아니다. 그것은 학교도서관이 단순한 자료 보관소가 아니라 학생의 학업 성취도 향상에 기여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프로그램, 공간 그리고 사서교사의 전문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서교사의 전문성은 교수-학습과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학교도서관이 소장한 다양한 자료를 기반으로 학습기술과 전략을 지도하고, 교과교사의 파트너로서 교육과정을 개발하며 교수-학습활동과 자원을 통합하고, 학생이 아이디어와 정보의 효과적인 이용자가 되는데 필요한 능력을 가르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짙은 그림자
1990년대 말 불어 닥친 학교도서관을 살리자는 시민운동은 학교도서관살리기국민연대로 귀결되었다. 이후 사서교사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정비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일단 문이라도 열어놓고 보자는 흐름에 묻혀 학교도서관활성화사업기간(2003-2007년)에도 정작 사서교사 보다는 비정규직이 확대 배치되었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의 준비 단계인 2002년에 실시한 현장의 요구분석을 보면, 단위 학교 현장에서 학교도서관 활성화 저해 요인으로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이 바로 전문 인력 부족(47.7%)이었다.
이후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 시행에 대한 평가 과정에서도 일선 학교장과 도서관 담당교과교사들이 시·도교육청에 바라는 가장 시급한 개선사항은 전문사서교사의 임용 배치(57.4%)였다. 또한 학교장들은 학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일반교과교사, 계약직 사서, 일반사서, 학부모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유형의 인적자원 중에서, 학교도서관 운영에 가장 적합한 인적자원으로 사서교사(62.3%)를 꼽았다. 그러나 학교도서관 활성화 정책으로 늘어난 사서교사에 대한 수요는 공공근로자나 일용 잡급직 그리고 계약직 사서로 대체되었다.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이 유능한 경영인력 확보라는 교육 현장의 요구는 예산부족과 공무원 정원 동결 그리고 교과교사 우선 확충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설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활성화사업이 마무리 되어가던 2007년도에 전국적으로 학교도서관에 배치된 사서교사는 610명인 반면에 행정직 사서를 포함한 직원의 숫자는 2,665명에 달했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자료에서는 사서교사 699명, 비정규직4,281명이 학교도서관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 땅에서는 해독 불가능한 국제기준
사서교사가 아니면 어떠냐? 아쉬운 대로 우선 판을 키워야하지 않느냐며 비정규직파견 사업을 벌인 주체 중의 하나가 학교도서관 단체였다. 결국 16대 국회에서 추진하던 학교도서관진흥법은 사서교사 의무배치에 대한 비정규직과의 합의무산으로 좌절되었다. 이후 17대 국회에서 제정된 학교도서관진흥법에서는 학교도서관 경영을 책임지는 전담인력의 범주에 사서직이 포함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사서교사의 의무배치를 외치는 목소리는 ‘사서나 사서교사나 양성과정상의 교육과정이 차이가 없다’는 단호한 이유와 비정규직의 먹고사는 문제로 묻혀버렸다.
학교도서관이 해야 할 일, 나아가야 할 방향에 적합한 인적자원의 자격과 요건을 말하기보다는 개인이 처한처지와 자격에 맞추려는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결국 학교도서관진흥법은 교육청 소속 사서공무원들이 주도하는 비정규직 확대 방안이 넘쳐나도록 조장하고, 그들이 사무관이 되고 학교도서관 지원과장이 되는 길만 닦아놓았다. 일본과 영국에서 실패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행정직 사서의 학교도서관 확대 배치가 결국 사서직 전체의 위상 약화를 초래했다는 교훈을 무시하는 이유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시민운동의 열정은 학교도서관을 문화행사의 장으로 만들고 내아이의 독서는 내손으로라는 인식의 확산과 함께 도서관 관리사라는 신종 직종의 출현을 맞이하였다. 드디어 자격에 상관없이 학교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제도화된 것이다. ‘학교도서관에 두는 학교 사서의 자격 조건은 전문 사서임과 동시에 교사이어야 한다.’, ‘사서교사는 교사 및 학생들에게 정보활용능력 함양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정보교육을 전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학교도서관에는 사서교사의 전문성 실현을 도와줄 수 있는 보조직원을 확보해야 하고, 보조직원으로 전문 사서교사를 대치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기준은 세계화를 외치는 이 땅에서 여전히 해독 불가능한 상징체계일 뿐이다.
넌 담당교사니? 참으로 서글픈 자화상
이 시기에 이루어진 사서교사에 대한 인식에 대한 연구를 보면, 교과 권위주의와 제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와 일반교사는 사서교사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서교사를 교수 파트너보다는 시간 여유가 많고, 어렵지 않은 업무를 수행하는 자료 관리자나 제공자의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사서직을 ‘정적이고 단순한 업무가 반복되는 지루한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사서교사는 일반교사와는 달리 수업을 하지않고 학생을 도와주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서교사가 배치된 경우 ‘자료의 선정과 제공, 독서교육 및 정보 제공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사서교사의 역할과 자의식에 대한 연구를 보면, 사서교사는 자신의 역할을 ‘교수-학습이론과 적용 방법에 숙달하고 교과교사와 대등한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지만, ‘독서지도나 도서관 이용지도에 비해서 협동수업에 대한 인식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서교사 개인의 가치관과 양성과정에서 습득한 교육적 배경에 따라서 교육 봉사를 선택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필요한 학교도서관 경영과 교육적 전문성을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사서교사는 배경학문의 무관심 속에서 학교도서관 경영에 필요한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양성되고 있다. 즉 태생적으로 기대역할 수행에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직업적으로도 사서교사는 교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양성과 임용을 책임진 교육 당국은 물론 동료 교사, 현장의 행정직 사서 심지어 일부 배경학문연구자로부터 끊임없이 정체성을 무시당하고 있다. 이제는 자격과 역할의 구분이 없어진 법과 정책으로 예비 사서교사의 학교도서관 진출이 가로막히고 있는 실정이다. 자격 제도의 불명확성과 교수자로서의 역할 제한으로 직업의 사회적 기능과 자아실현 기능이 제약받고 있으며, 전문성과 독점성이 외면당한 채 사회적 존경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요구와 본질을 외면하는 독서교육
사서교사 문제를 말하면서 DLS(학교도서관업무지원시스템)와 독서교육종합지원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다. 2001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원으로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주도한 DLS 프로그램은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가 부족하여 발생하는 자료관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양질의 온라인 콘텐트를 제공하여 학교별 자료구입비를 절감하고 독서교육과 자료활용수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탄생하였다.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실제 벌어졌지만)과 개인 독서이력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개발과 운영에 협조하였지만 결국 프로그램의 질 개선이나 시스템 확충을 위한 예산 확대와 교육적 활용을 위한 전문인력 배치 등은 뒷전에 머물러 왔다. 2008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연구 보고서를 보면, DLS 서버관리 예산이 책정되지 않은 교육청이 4개에 달하고, 콘텐츠 구입비가 책정된 곳은 5곳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관리 운영도 학교 교육과정과는 상관없는 행정직 사서나 전산직 심지어는 계약직 직원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교육과학기술부는 자료 등록과 대출반납기로 전락한 이 부실 덩어리에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연동하여 보급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독서교육을 통제와 양적 측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러한 정책은 독서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무시한 발상이다. 2009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독서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 공부와 학원수강으로 인간 시간부족이라고 한다. 교과 학습이 독서와 연계되지 못하고 오히려 학교 교육이 독서를 방해하는 현실에서 독서이력 관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또한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을 찾지 않는 이유가 독후 행사의 부족이 아니라 읽을 만한 책이 없고, 원하는 책을 찾기 어려워서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독서를 잘하기 위해서 좋은 책에 대한 소개, 독서에 대한 정보 제공 그리고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바라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학생들의 독서가 문학도서(43.4%)와 만화와 무협지(23.1%)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교도서관이 저급한 만화나 해외 번역 소설로 채워지고, 학생들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진로 등 독서 흥미나 요구에 맞춘 전문적인 독서지도를 해줄 전문가가 배치되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고 양적 독서이력 시스템으로 이를 대체하려는 것은 매우 염려스러운 정책이다.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독서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교사나 부모가 무엇을 읽으라며 제시하는 목록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찾아서 읽는 것을 좋아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잣대로 교사와 부모의 눈으로 가려 뽑은 이런저런 목록이 아이들에게 책과의 만남을 독려하고 균형 잡힌 독서생활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품고 있는 독서 욕구는 이미 어른이 차려놓은 모범 식단의 밥상을 받기보다는 뷔페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먹고 싶은 욕망에 빠져있는 것이다. 학교도서관은 다양한 자원이 상호작용하는 유기적인 공동체이다. 따라서 학교도서관과 연계된 독서는 스스로 찾아보고 듣고 만지며 즐거워 할 수 있는 다양하고 깊이있는 자료와 그들의 길잡이가 될 사서교사를 갖추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나비가 되기 위한 소중한 기다림을 위하여
학교도서관에 대한 자습실로서의 이용 경험과 교과 권위주의가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사서교사에 대한 중요한 편견의 발단이라면, 현장 요구와 정책의 부조화, 제도화된 사서교사의 자격과 역할에 대한 모호성, 이를 그릇된 출세의 발판으로 삼고자하는 행정직의 도전과 도서관계의 적당한 외면 등은 사서교사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고 비바람이다. 공동체가 외면하고 무시하는 사서교사 배치를 교육청과 교과부 그리고 행안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현실 속에서 일구어 내기란 역시 어려운 싸움처럼 보인다.
사명과 비전을 세우고 거기에 맞는 자격과 역할을 창조하지 못한 배경학문의 나약함과 기존의 자격제도와 학교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애써 덮으면서 각자의 입장에서 학교도서관을 이용하는 학교 안과 밖의 구성원들, 자신이 사서교사인지 담당교사인지 구분조차 하기 싫어하는 박약한 자존감에 갇힌 사서교사들은 이 어려운 싸움을 부추기는 구경꾼들이다. 이 비바람 치는 싸움판을 걷어내기 위해서 진정 학교도서관에 관심 있는 자들은 답해야 한다. 우리의 학교도서관이 교육과정 운영과 교수법 적용에 진정 필요한 조직인가? 교사 중에서 유일하게 교육과 사서직에 걸친 자격을 갖춘 사서교사를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답을 찾는 시간이 나비가 되기위한 기다림처럼, 헛됨이 없이 참는 법을 배우는 소중한 순간이길 소망한다.
사서교사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언저리
‘사서 고생만 하는 교사!’1989년 3월 애타와 기다리던 발령을 받고, 기쁨을 추스를 틈도 없이 선배들로부터 듣게 된 푸념이다. 교육 공동체 구성원들이 보는 자료 관리자로서의 사서교사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에 대한 이 애증 섞인 표현을 절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또 후배들이 겪고 있는 상실감과 인력 충원의 불연속성은 학교도서관과 사서교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왜 사서교사에 대한 존재감이 여전히 희박한 것일까? 승진에서의 가산점을 얻기위해 교과교사들이 단기강습으로 사서교사 자격을 취득하던 시절부터 가졌던 한직으로서의 의식이 남아있어서인가? 아니면 사서교사 개인의 역량이 학교 교육과정을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가? 또는 학교 교육이 여전히 학교도서관과 사서교사의 역할과 상관없이 운영되기 때문인가? 도대체 어디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찾아야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학교도서관을 살리자는 시민운동과 정부의 학교도서관활성화사업에도 불구하고 사서교사에 대한 무시는 이제 인식을 넘어서 법과 제도로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기주도학습과 교육 환경으로서의 학교도서관, 문화적 소양과 독서의 요람으로서의 학교도서관, 교과교사와 교육과정의 성공적인 운영을 협동적인 동반자 관계로 이끌어 가는 사서교사, 자원기반학습에 필요한 정보활용능력을 교과 교육과 연계하는 교실로서의 학교도서관을 경영하는 사서교사’로서의 위상은 일부 사서교사 양성과정에서나 들어봄직한 구호이다. 20년 사서교사 생활을 뒤돌아보며 무엇이 이토록 가슴 아픈 현실을 지속시키고 있는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편안하냐는 인사를 듣기 싫어서 교사 휴게실은 얼씬도 하지 않고 테니스며, 배드민턴도 교직 생활 15년이 지나서야 동호회에 겨우 가입하였다. 그나마 수업도 없는데 자주 나오라는 인사를 받고서는 접고 말았다. 이제는 경력으로라도 애써 웃어넘길 수 있는 잠시 서운한 말이지만 참으로 가슴 아픈 시선이다. 그네들이 자료구입 신청을 한번 하지 않아도, 지나다가 도서관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없어도 나는 이렇게 인사를 건넨 적이 없다. ‘요즘도 교과서만 가지고 수업하십니까?’, ‘교사라는 사람이 책을 보기는 하는 거요?’
멈출 수 없는 교육과정 개발
사서교사 미발령 이유가 담당과목 부재라는 교육청 장학 담당자들의 핑계를 믿고 1995년에 사서교사의 교육적 역할을 교육과정을 통해서 구현하고자 젊은 사서교사들이 개발한 것이 바로 『고등학교 정보와 매체』이다. 이후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추어 교육인적자원부 인정도서로 초·중·고등학교용 『정보와 도서관』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7년을 교양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 동안에 이 교육과정을 맡기기 위해서 사서교사를 임용했다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줄어드는 수업시수로 교과 간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사서교사의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목소리는 점차 설자리를 잃고 있다. 물론 사서교사의 교육과정 참여를 반대하는 우렁찬 외침도 있었다. ‘사서교사의 본연의 일은 도서관 문을 닫지 않는 것이다.’ 최근 사서교사 자격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 국회의원을 만났을 때 들은 얘기다. “사서교사보건교사가 칠판을 욕심내는 순간 도서관과 보건실은 또 다른 사람이 맡아야 한다.”
파트너십을 갖고 협동하고 승진을 위한 공정한 규칙이라도 마련해 달라는 요구에 대한 답변이다. 또 도서관과 정보생활이라는 교육과정을 개발 중이다. 계속되는 교육과정 개발이 사서교사가 교과교사가 되겠다는 의사표현은 아니다. 그것은 학교도서관이 단순한 자료 보관소가 아니라 학생의 학업 성취도 향상에 기여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프로그램, 공간 그리고 사서교사의 전문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서교사의 전문성은 교수-학습과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학교도서관이 소장한 다양한 자료를 기반으로 학습기술과 전략을 지도하고, 교과교사의 파트너로서 교육과정을 개발하며 교수-학습활동과 자원을 통합하고, 학생이 아이디어와 정보의 효과적인 이용자가 되는데 필요한 능력을 가르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짙은 그림자
1990년대 말 불어 닥친 학교도서관을 살리자는 시민운동은 학교도서관살리기국민연대로 귀결되었다. 이후 사서교사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정비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일단 문이라도 열어놓고 보자는 흐름에 묻혀 학교도서관활성화사업기간(2003-2007년)에도 정작 사서교사 보다는 비정규직이 확대 배치되었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의 준비 단계인 2002년에 실시한 현장의 요구분석을 보면, 단위 학교 현장에서 학교도서관 활성화 저해 요인으로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이 바로 전문 인력 부족(47.7%)이었다.
이후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 시행에 대한 평가 과정에서도 일선 학교장과 도서관 담당교과교사들이 시·도교육청에 바라는 가장 시급한 개선사항은 전문사서교사의 임용 배치(57.4%)였다. 또한 학교장들은 학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일반교과교사, 계약직 사서, 일반사서, 학부모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유형의 인적자원 중에서, 학교도서관 운영에 가장 적합한 인적자원으로 사서교사(62.3%)를 꼽았다. 그러나 학교도서관 활성화 정책으로 늘어난 사서교사에 대한 수요는 공공근로자나 일용 잡급직 그리고 계약직 사서로 대체되었다.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이 유능한 경영인력 확보라는 교육 현장의 요구는 예산부족과 공무원 정원 동결 그리고 교과교사 우선 확충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설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활성화사업이 마무리 되어가던 2007년도에 전국적으로 학교도서관에 배치된 사서교사는 610명인 반면에 행정직 사서를 포함한 직원의 숫자는 2,665명에 달했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자료에서는 사서교사 699명, 비정규직4,281명이 학교도서관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 땅에서는 해독 불가능한 국제기준
사서교사가 아니면 어떠냐? 아쉬운 대로 우선 판을 키워야하지 않느냐며 비정규직파견 사업을 벌인 주체 중의 하나가 학교도서관 단체였다. 결국 16대 국회에서 추진하던 학교도서관진흥법은 사서교사 의무배치에 대한 비정규직과의 합의무산으로 좌절되었다. 이후 17대 국회에서 제정된 학교도서관진흥법에서는 학교도서관 경영을 책임지는 전담인력의 범주에 사서직이 포함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사서교사의 의무배치를 외치는 목소리는 ‘사서나 사서교사나 양성과정상의 교육과정이 차이가 없다’는 단호한 이유와 비정규직의 먹고사는 문제로 묻혀버렸다.
학교도서관이 해야 할 일, 나아가야 할 방향에 적합한 인적자원의 자격과 요건을 말하기보다는 개인이 처한처지와 자격에 맞추려는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결국 학교도서관진흥법은 교육청 소속 사서공무원들이 주도하는 비정규직 확대 방안이 넘쳐나도록 조장하고, 그들이 사무관이 되고 학교도서관 지원과장이 되는 길만 닦아놓았다. 일본과 영국에서 실패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행정직 사서의 학교도서관 확대 배치가 결국 사서직 전체의 위상 약화를 초래했다는 교훈을 무시하는 이유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시민운동의 열정은 학교도서관을 문화행사의 장으로 만들고 내아이의 독서는 내손으로라는 인식의 확산과 함께 도서관 관리사라는 신종 직종의 출현을 맞이하였다. 드디어 자격에 상관없이 학교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제도화된 것이다. ‘학교도서관에 두는 학교 사서의 자격 조건은 전문 사서임과 동시에 교사이어야 한다.’, ‘사서교사는 교사 및 학생들에게 정보활용능력 함양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정보교육을 전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학교도서관에는 사서교사의 전문성 실현을 도와줄 수 있는 보조직원을 확보해야 하고, 보조직원으로 전문 사서교사를 대치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기준은 세계화를 외치는 이 땅에서 여전히 해독 불가능한 상징체계일 뿐이다.
넌 담당교사니? 참으로 서글픈 자화상
이 시기에 이루어진 사서교사에 대한 인식에 대한 연구를 보면, 교과 권위주의와 제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와 일반교사는 사서교사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서교사를 교수 파트너보다는 시간 여유가 많고, 어렵지 않은 업무를 수행하는 자료 관리자나 제공자의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사서직을 ‘정적이고 단순한 업무가 반복되는 지루한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사서교사는 일반교사와는 달리 수업을 하지않고 학생을 도와주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서교사가 배치된 경우 ‘자료의 선정과 제공, 독서교육 및 정보 제공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사서교사의 역할과 자의식에 대한 연구를 보면, 사서교사는 자신의 역할을 ‘교수-학습이론과 적용 방법에 숙달하고 교과교사와 대등한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지만, ‘독서지도나 도서관 이용지도에 비해서 협동수업에 대한 인식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서교사 개인의 가치관과 양성과정에서 습득한 교육적 배경에 따라서 교육 봉사를 선택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필요한 학교도서관 경영과 교육적 전문성을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사서교사는 배경학문의 무관심 속에서 학교도서관 경영에 필요한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양성되고 있다. 즉 태생적으로 기대역할 수행에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직업적으로도 사서교사는 교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양성과 임용을 책임진 교육 당국은 물론 동료 교사, 현장의 행정직 사서 심지어 일부 배경학문연구자로부터 끊임없이 정체성을 무시당하고 있다. 이제는 자격과 역할의 구분이 없어진 법과 정책으로 예비 사서교사의 학교도서관 진출이 가로막히고 있는 실정이다. 자격 제도의 불명확성과 교수자로서의 역할 제한으로 직업의 사회적 기능과 자아실현 기능이 제약받고 있으며, 전문성과 독점성이 외면당한 채 사회적 존경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요구와 본질을 외면하는 독서교육
사서교사 문제를 말하면서 DLS(학교도서관업무지원시스템)와 독서교육종합지원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다. 2001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원으로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주도한 DLS 프로그램은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가 부족하여 발생하는 자료관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양질의 온라인 콘텐트를 제공하여 학교별 자료구입비를 절감하고 독서교육과 자료활용수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탄생하였다.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실제 벌어졌지만)과 개인 독서이력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개발과 운영에 협조하였지만 결국 프로그램의 질 개선이나 시스템 확충을 위한 예산 확대와 교육적 활용을 위한 전문인력 배치 등은 뒷전에 머물러 왔다. 2008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연구 보고서를 보면, DLS 서버관리 예산이 책정되지 않은 교육청이 4개에 달하고, 콘텐츠 구입비가 책정된 곳은 5곳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관리 운영도 학교 교육과정과는 상관없는 행정직 사서나 전산직 심지어는 계약직 직원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교육과학기술부는 자료 등록과 대출반납기로 전락한 이 부실 덩어리에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연동하여 보급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독서교육을 통제와 양적 측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러한 정책은 독서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무시한 발상이다. 2009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독서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 공부와 학원수강으로 인간 시간부족이라고 한다. 교과 학습이 독서와 연계되지 못하고 오히려 학교 교육이 독서를 방해하는 현실에서 독서이력 관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또한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을 찾지 않는 이유가 독후 행사의 부족이 아니라 읽을 만한 책이 없고, 원하는 책을 찾기 어려워서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독서를 잘하기 위해서 좋은 책에 대한 소개, 독서에 대한 정보 제공 그리고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바라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학생들의 독서가 문학도서(43.4%)와 만화와 무협지(23.1%)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교도서관이 저급한 만화나 해외 번역 소설로 채워지고, 학생들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진로 등 독서 흥미나 요구에 맞춘 전문적인 독서지도를 해줄 전문가가 배치되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고 양적 독서이력 시스템으로 이를 대체하려는 것은 매우 염려스러운 정책이다.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독서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교사나 부모가 무엇을 읽으라며 제시하는 목록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찾아서 읽는 것을 좋아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잣대로 교사와 부모의 눈으로 가려 뽑은 이런저런 목록이 아이들에게 책과의 만남을 독려하고 균형 잡힌 독서생활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품고 있는 독서 욕구는 이미 어른이 차려놓은 모범 식단의 밥상을 받기보다는 뷔페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먹고 싶은 욕망에 빠져있는 것이다. 학교도서관은 다양한 자원이 상호작용하는 유기적인 공동체이다. 따라서 학교도서관과 연계된 독서는 스스로 찾아보고 듣고 만지며 즐거워 할 수 있는 다양하고 깊이있는 자료와 그들의 길잡이가 될 사서교사를 갖추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나비가 되기 위한 소중한 기다림을 위하여
학교도서관에 대한 자습실로서의 이용 경험과 교과 권위주의가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사서교사에 대한 중요한 편견의 발단이라면, 현장 요구와 정책의 부조화, 제도화된 사서교사의 자격과 역할에 대한 모호성, 이를 그릇된 출세의 발판으로 삼고자하는 행정직의 도전과 도서관계의 적당한 외면 등은 사서교사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고 비바람이다. 공동체가 외면하고 무시하는 사서교사 배치를 교육청과 교과부 그리고 행안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현실 속에서 일구어 내기란 역시 어려운 싸움처럼 보인다.
사명과 비전을 세우고 거기에 맞는 자격과 역할을 창조하지 못한 배경학문의 나약함과 기존의 자격제도와 학교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애써 덮으면서 각자의 입장에서 학교도서관을 이용하는 학교 안과 밖의 구성원들, 자신이 사서교사인지 담당교사인지 구분조차 하기 싫어하는 박약한 자존감에 갇힌 사서교사들은 이 어려운 싸움을 부추기는 구경꾼들이다. 이 비바람 치는 싸움판을 걷어내기 위해서 진정 학교도서관에 관심 있는 자들은 답해야 한다. 우리의 학교도서관이 교육과정 운영과 교수법 적용에 진정 필요한 조직인가? 교사 중에서 유일하게 교육과 사서직에 걸친 자격을 갖춘 사서교사를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답을 찾는 시간이 나비가 되기위한 기다림처럼, 헛됨이 없이 참는 법을 배우는 소중한 순간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