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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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3 23:04 조회 7,866회 댓글 0건본문
만화가게 그 남매
그림동화책을 볼 나이에 나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종잇장이 두껍고 그림 위주이며
글자는 몇 개 안 되는, 요즘식의 그림동화책은 우리 집에도 남의 집에도, 내가 자란 환경에
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책은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글자를 깨우치고
나서야 읽게 되는데, 교과서 말고는 매우 귀했다. 자식이 셋인 우리 집은 적은 편이요 흔히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너덧 되지만, 소장한 아동서적이 10권 정도면 교육적인 집안이었다.
친구끼리, 사촌끼리,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
도서관이란 것도 몰랐다. 초등학교 각반에 반 아이들이 기증한 책들을 꽂아놓은 ‘학급문
고’가 있긴 하나, 볼만한 새 책은 반장과 부반장이 기증한 것들뿐이었다. 그것들은 개학 한 지
한두 달 만에 너덜거리다 사라지고, 나머지는 아이들 싸움에 이용되어 그 전에 사라졌다. 정
말 볼만한 책들은 담임선생님 책상 위에 있었지만 그 대여섯 권은 우리가 꺼내서 읽고 손때
묻혀 놓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담임선생님이 펴들고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아이들이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곳은, 동네마다 있는 ‘만화가게’였
다. 만화책이고, 돈을 내야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만화가게를 부모님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여자애인 나는 애로사항이 또 있었다. 만화가게는 금녀禁女의 구
역이었다. 가겟집 주인아주머니와 딸들이 있긴 해도 아주머니는 쪽방 문간에, 딸들은 쪽방
안에 있고, 가게에서 나무 벤치에 걸터앉아 만화를 보는 고객들은 죄다 남자애들이었다. 주
로 초등학생들이며 시커먼 중・고등학생도 몇 섞이고, 이따금 다리를 꼬고 담배를 피우는
청년도 한 명쯤 있었다. 내가 그들 사이에 끼여 만화를 보려면 오빠를 따라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오빠는 나를 절대로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 사내애인 자기야 한동안 안 보
여도 어머니가 밖에 나가 노나 보다 하지만, 딸애인 나까지 동시에 없어지면 남매의 거취를
뻔히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혼자 갔으면 안 들킬 것을 나 때문에 들켜서 일단 만화가게 갔
다는 것으로 어머니한테 혼나고, 여동생을 그런 데 데리고 갔다고 겹으로 혼났다.
오빠가 슬그머니 집에서 나가면 나는 귀신 같이 알고 따라나섰다. 내가 딴 데를 쳐다보
고 있을 때 내 뒤통수에 꽂히는 오빠의 간교한 눈길, 소리죽인 움직임으로 인한 공기의 은
밀한 떨림은 평소에 없던 것이라서, 나의 육감을 일깨우고야 말았다. 오빠는 만화가게를
향해 바삐 걷다가 혹시 내가 따라오지 않는지 갑자기 휙 돌아보곤 했다. 나는 그럴 줄 알고
담장 뒤에 숨어 있다가 눈만 내밀어 오빠의 뒷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음 담장까지 조르르 뛰
어가서 또 숨었다. 휙, 조르르, 조르르, 휙, 휙, 조르르. 사냥감을 추격하는 인디언의 경건한
희열마저 나는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빠가 나보다는 용의주도하므로 나는 대개 적발
되었고, 오빠는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굴러 나를 되돌려 보냈다. 두 주먹을 쥐고 내게 달려오
는 시늉을 하여 역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번은 돌을 던지기까지 했다. 나한테 맞지
않도록 멀찍이 엇나가게 볼링공 굴리듯 낮게 던졌으나 나는 대단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것
이 오빠가 나한테 행사한 처음이자 마지막 폭력이었다.
나는 서럽게 집으로 돌아오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오빠가 거부하는데도 내가 끝끝내
따라붙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요행히 만화가게까지 따라가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건
나를 적발해서 돌려보내지 않은 오빠의 잘못이었다. 마침내 오빠가 방금 들어간 만화가게
앞에 서면 심장이 콩닥거렸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오빠는 내가 너무 이르게 들어서면 만화
책을 고르다가 내 손목을 잡고 도로 나와버렸고, 내가 너무 늦으면 반 너머 본 만화책을 급
히 넘기고 일어섰다. 나는 숫자를 세고 기도도 하면서 적절히 뜸을 들이고는 드르륵, 미딛
이문을 열고 가게 안에서 만화책에 코를 박은 남자애들 중에 대번에 오빠를 짚어냈다. 누군
가 문을 열긴 했는데 들어서지는 않는 기척에 오빠도 짚이는 바 있어 화들짝 고개를 들고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이는 문간에 선 채로, 오라비는 만화책을 가슴 앞에 든 채로 둘 다 ‘얼
음’이 된 상태에서 남매간에 긴박하게 오고가는 눈빛. 문을 열어놓고 서 있어 더욱 남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누이를 오빠는 일단 챙겨야 하는데, 막 빠져들려던 만화책을 내려놓을 수
는 없는 일이었다. 오빠의 심중을 본인보다 더 잘 간파하는 내가 해동되어 살짝 문턱을 넘
어서서 미닫이문을 밀어 닫을 즈음에야, 오빠는 자기가 체념했음을 깨닫고 시무룩이 옆으
로 조금 옮겨 앉았다. 나는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날렵하고도 조신하게 남자애들 사이를 헤
집고 들어가 오빠가 내준 좁은 틈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만사 오케이. 나는 오빠의 부속
물, 여기가 어떤 데인 줄도 모르고 오빠를 찾으러 온 순진한 여동생. 쟨 뭐냐 하는 눈길들은
후르르 떨어져 나가고 어머니의 지청구, 내가 볼 만화비도 물론 오빠의 몫이었다.
나는 한 만화가의 팬이었다. 제목을 볼 필요도 없이 그 만화가의 신간만 고르면 백발백
중, 실망하는 법이 없었다. 왕년의 아역 스타가 여배우로서 자기보다 유명해진 언니를 질
투하여, 계단에서 밀어 절름발이로 만들고도 감금해놓은 채 온갖 패악을 부리다가…… 무
림의 진정한 고수는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동네 깡패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서 지나
가고, 오오, 저기 어딘가에는 거북이 등껍질이 등에 달린 사람들이 사는데 그들은 등껍질
만 빼면 우리 보통 인간들하고 생김새가 같고 구성도 같았다. 그러니까 등껍질이 달린 나,
우리 가족, 옆집 사람들이 거기 살고 있을 터였다.
장르를 종횡무진으로 오간 그 유능한 만화가의 작품들은, 나중에 내가 커서 알고 보니
죄다 표절이었다. 『대망』 같은 일본 무협소설과 일본 기담들, 또 헐리웃 영화들을 줄거리
만 간단히 만화로 옮겨놓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원본을 읽고 본 후에도 내가 그것들을 떠
올리면, 이면에서 원본을 찢고 그 필체 거친 표절 만화가 당당히 떠오르고야 마는 것이었
다. 그랬다고 쓰는 바로 이 순간에도 또.
전집 동화를 품다
피아노 선생님 댁에 『안데르센 동화 전집』이 있었다. 전집! 나는 날아갔다. 그때 어느 친절
한 화가가 있어 피아노를 배우러 가는 나를 그려줬다면, 나는 넓적한 피아노책이 담긴 가
벼운 가방을 날개처럼 치켜든 채로 다리를 거의 수평으로 벌리고 공중에 떠있을 것임에 틀
림없다. 그 댁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피아노 교습을 받는 작은 방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나
는 마루 장식장 한 칸에 가득한 동화 전집을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뒤에 만나, 응? 뚱
땅뚱땅, 서너 달밖에 못 배운 <어린이 바이엘>을 나는 아깝게도 통째로 잊어버렸다. 그러
나 안데르센 전집 덕분에 그 서너 달은 내 인생에서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의 막
바지만큼이나 밀도 있고 효율적인 기간이 되었다.
피아노 교습이 끝나면 나는 마루로 나와 피아노책 가방을 얌전히 소파에 기대놓고, 소
파에 올라섰다. 그때 내 눈에 생전 처음 보는 전집은 어른이 되어서 본 백과사전과 비슷하
게 보였다. 압도적인 크기와 두께, 빼곡하게 빈틈없이 꽂혀 있는 자태 또한. 소설이나 교양
서를 알기 이전이므로 그 동화 전집이야말로 내게는 인류문화의 보고寶庫였다. 나는 그중
에 전에 읽던 것이거나 새로 읽을 차례인 한 권을 두 손으로 어렵사리 빼내 가슴에 안고, 가
슴 벅차고, 소파에서 내려와서는 책을 내가 앉을 자리 옆에 반듯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치마 뒤를 쓸어내리고 꼿꼿하게 앉아서, 책을 들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으며, 딱딱한 표지
를 넘겼다. 그 다음 아무 것도 씌어져 있지 않은 속표지를, 또 책 제목이 크게 박혀 있고 가
느다란 펜으로 그린 듯한 장식선이 둘려진 첫 장을, 또 목차를. 손에 침을 묻히지 않았고, 책
장이 구겨지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쓰다듬듯 조심스럽게 들어 넘겼다. 나는 동화 한 편 당
하나쯤 있는 삽화들을 훑어보려고 책을 이리저리 들척이는 짓을 하지 않았으며, 제목에
끌려 뒤의 것을 먼저 읽거나 함 없이 순서대로 읽었고, 이미 다른 책에서 읽은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것들도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시 읽었다. 한 페이지를 넘겨 다음 페
이지가 열릴 때마다 나는 새로 행복하고, 또 남은 페이지가 하나 줄어들어서 안타까웠다
나는 그 전집을 사랑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자세로 일관했더라면 나의 연애들이 그토
록 지난하지는 않았을 것을.
『빵을 밟은 처녀』는 그때 읽으면서 나는 예감했다. 이 동화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듯하
고, 재미도 그닥 없고, 다른 친구들한테 내가 얘기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나는 커
서도 기억하리라는 걸. 도시에 나와 식모살이를 하던 시골처녀가 고향 방문 길에 오르고,
집주인 아주머니는 고향의 가족들에게 선물하라고 흰 빵 한 덩어리를 준다. 고향 마을 근
처에서 도랑을 건너야 하는 처녀는 제 호사스러운 도시 생활의 증거인 구두를 더럽히기가
싫다. 검은 빵도 배부르게 못 먹는 가족들 때문에 망설였지만 결국 처녀는 흰 빵을 도랑에
던져 넣고 구두로 디디며, 순간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 지옥의 묘사가 이상했다. 삼지창을 든 악마도, 활활 타는 지옥불도 없이 조용했다. 죄
인들은 서로 관심 없이 가만히 서있고 아주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던 듯 거미줄에 칭칭 감
겨 있으며, 꽁무니에서 줄을 자아내던 거미가 말하기를……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크고
도 남아 늙어가는 지금까지, 나는 그 차가운 동화를 기억한다. 처녀의 고동색 머리카락이
엉덩이까지 치렁치렁하고, 놀라거나 슬퍼서라기보다는 신경질이 나서 아무한테나 호통
을 치는 듯 입이 벌어져 있던 삽화도.
제목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고(‘한 방울’이 들어가긴 한다) 매우 짧은 탓인지 삽화도 없
었던 또 한 편. 어느 박사가 진흙탕에서 구정물을 떠다가 한 방울 떨어뜨려 놓고 현미경으
로 들여다본다. 그 한 방울 안에 작은 세계가 들어있다. 굉장히 거친 세계다. 누더기를 입은
한 소녀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누더기마저 빼앗아 버리며, 박사는
현미경에서 착잡하게 눈을 뗀다. 그 구정물 한 방울 속 세계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비유
임을, 비유라는 단어도 모르던 내가 바로 알아버렸다.
그만 집에 가보라는 피아노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 들면, 때로는 저녁밥 짓는 냄새가 그
댁에 감돌고 있었다. 선생님이 보고 있으니 나는 더욱이 신경 써서 책을 제 자리에 꽂아놓
고, 깍듯한 인사로 내가 남의 물건도 소중히 다루는 예의바른 어린이임을 재삼 각인시키고
는 그 댁을 나섰다. 골목 끝에는 석양이, 가슴 속에서는 아쉬움이 타들어갔다. 나는 걸어갔
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차갑고 아픈 미래로. 꼭 안데르센 동화나 책을 보지 않더라도 다른
친구들도 다른 경로로 예감하고 진작 알아버렸던, 현재로.
셰익스피어, 또 하나의 비극
그 세대 남정네답게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았던 아버지가, 어느 토요일 일
을 냈다. 점심 무렵 퇴근하여 바로 귀가했을 뿐만 아니라, 오던 길에 헌책방에 들러 본인이
읽을 철지난 문예지와 함께 세 자식의 책 선물을 연령에 맞추어 사온 것이다. 언니와 오빠
에게는 한 권씩, 막내인 내게는 자그마치 다섯 권이었다. 우리 어머니의 남편에 대한 소원
이 ‘애들 캬라멜이라도 한 번 사들고 와보라’였던 바, 어머니 이하 우리 모두는 감읍하다 못
해 긴장했다. 우리의 경이에 가까운 기쁨과 아버지를 향해 불현듯 솟구치는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고기반찬 하겠다고 시장으로 달려가고, 자식 셋
은 평소보다 더 아버지로부터 겉돌았다. 아버지도 자신이 왜 그랬던가 뒤늦게 혼란스러운
듯했다.
지나친 화목을 누그러뜨린, 말하자면 불화를 일으켜서 분위기를 정상으로 되돌린 장본
인이 나였다. 자그마치 다섯 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 『햄
릿』을 나는 저녁 먹기 전에 다 읽어버렸고, 5대 희극 중 하나인 『말광량이 길들이기』는 어
머니가 저녁 설거지를 하는 중에 끝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귀여운 막내의 연령대는 아무
래도 내 실제 연령보다 낮은 것 같았다. 그 책들은 셰익스피어 희곡의 어린이용 축약본이
었다. 어린이용 축약본이라 단순하고 짧으며, 대사의 축약본이니 여백이 많아서 더욱 짧았
다. 허탈해진 나는 나이차가 많은 언니의 책은 엄두를 못 내고, 오빠의 『파브르 곤충기』를
넘보기 시작했다.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 오빠 옆에 오똑 앉아서, 오빠가 보고 있는 페
이지를 어깨 너머로 훔쳐보았다.
“절로 가!”
오빠는 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이렇게 쳐다보기만 하는데도?”
“신경 쓰인단 말야.”
“언제 다 볼 건데?”
“아직 멀었어.”
“한 시간? 두 시간?”
“내 책이니까 내 맘이야!”
오빠가 눈을 부라려 나를 쫓아낸 후에도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장롱에 기대 노려보았다.
“오빠! 텔레비전 보잖아!”
“오 분도 안 봤어.”
“쳇, 오 분? 그동안 나 보라고 주지!”
“난 둘 다 볼 거야!”
평소라면 잘 시간이 됐건만 나는 속이 상해서 잘 수가 없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징징 짰다.
“오빠가 자긴 안 보면서 나도 못 보게 하고……”
“쟨 왜 또 짜?”
“책을 봐서 피곤한가 보죠.”
“피곤하면 자지 왜 짜?”
“어머, 얘들 짜는 거 첨 봐요? 당신이 언제 한번 달래준 적이나 있어요?”
“봐.”
오빠가 얼른 내 앞에 책을 갖다 놓았다.
“와앙……”
미안하고 무안해서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쾅!”
사춘기 언니가 벌떡 일어나 불도 안 때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으이구!”
“일찍 들어온 게 그렇게 억울하우?”
우리 식구는 본연의 모습으로 잠들었다.
어려운 책이 안긴 후유증
<고전문학 읽기 경시대회>가 있었다. 4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반에서 책 좀 읽는다 하는
아이가 한 명씩 뽑혀, 방과 후 시청각실에 모였다. 학교 대표는 이들 반 대표들 중에서 또 선
택될 것이었다. 일차 선택된 아이들은 역시 조숙하여, 너무 조용했다. 다들 입 다물고 자기
와 같은 학년의 몹시 똑똑해 보이는 다른 반 선수들을 힐끔거렸다. 속으로 ‘나만 뒤처진다’
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4학년인 나보다 하나 높은 5학년의 선생님 한 분이, 책
을 한 아름씩 안은 아이들 여러 명을 줄줄이 달고 등장했다. 그 아이들은 책을 내려놓고 나
갔다. 지금도 고전문학을 읽는 데가 아니라 나르는 데 선택된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머쓱
하고 곤혹스럽다.
표지가 똑같은 초록색이고 디자인도 통일된 고전문학 책들이 학년별로 배부되었다. 책
이 쌓여 있던 순서에 따라 내게 할당된 책을 나는 펴서 읽기 시작했다. 정말로 생소했다. 몇
년도에 무슨 왕이 어디로 행차했다는 둥, 그걸 왜 써놓았는지 모를 짤막한 문장들이 끝없
이 나열되었다. ‘궁예’라는 왕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가 쇠몽둥이를 불에 달궈
왕비의 ‘음부’를 찔러 죽였는지야 나는 몰랐다. 신체의 어느 부위라 한들 불에 달군 쇠몽둥
이로 찔러도 괜찮겠느냐만, 특히 그 부위였기 때문에 매우 끔찍했다는 암시가 건조한 문
장에도 담겨 있었다. 어디야? 왕비의 그 부위가? 질문이 있으면 언제라도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책을 들고 나가서 물었다.
“선생님, 음부가 뭐예요?”
“그게……”
남자 선생님의 얼굴이 옴팍 찡그려지는데 양쪽 어깨는 무력하게 흔들렸다. 심하게 꼬
집힌 사람 같았다. 한 학년 위 선생님이기도 해서 무서웠던 그 선생님이 순간 애처롭게 느
껴졌다. 선생님은 이마에 흐르지도 않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고, 다시 어깨를 약간 흔들고
는, 단호히 손가락으로 자신의 배꼽 부근을 가리켰다.
“아랫배 있잖아, 아랫배.”
선생님은 내 눈길이 자기가 가리키는 제 배꼽쯤에 꽂혀 있음을 보고는 창밖으로 시선
을 돌렸다가, 시선과 함께 손가락의 방향을 돌렸다.
“아랫배!”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내 배꼽쯤을 가리키면서 눈으로는 내 얼굴을 간절히 쳐다보았다.
“네에!”
나는 선생님 앞에 펼쳐놓았던 책을 슬그머니 빼내면서 당신이 차마 똑바로 가리킬 수
없었던 그 부위가 어딘지 나는 알아먹었다는 표시로 지그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뜻
하는 ‘아랫배’는 물론 배꼽이 아니고 그 밑의 똥배도 아닐 것이었다. 더 밑이었다. 그때 내
가 ‘음부’로 이해한 부위는, 나중에 알고 보니 ‘단전’이라고 지칭되는 데였다. 하여튼 그때
나는 불에 달궈진 쇠몽둥이가 왕비의 단전 부위를 뚫고 들어가는 상상을 했는데, 충분히
끔찍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책에는 일일이 선생님께 묻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한자
말이 수두룩하고, 글자에 버금가게 숫자, 즉 연대가 많고, 나오는 사람들 이름도 너무 많고,
그들이 했다는 일들은 도대체가 어이없거나 나쁜 짓뿐이었다. 흰 사슴을 잡아다 고문하고,
남의 말의 혀에 바늘을 꽂아 마르게 해서 싼 값에 사는 사기를 치고, 아버지는 딸의 입을 잡
아늘이며 딸은 아버지의 보물을 빼돌리고…… 그러니 다리 여섯 개 달린 송아지가 태어나
고 왕궁에 개구리떼가 몰려드는 건 당연한데, 그래서, 어쨌다고? 자기들끼리 망했으면 됐
지, 나더러 뭘 어쩌라고? 이 연대들을 다 외우라고?
너무나 지루했다. 반의 반도 못 읽었는데 나는 주리가 틀리고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같
은 학년의 다른 반 아이들은 고요히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나는 좌절했다. 그 아이들
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어린이 축약본이 아닌 어른용으로 독파했음이 분명하고, 자
라서는 한국의 셰익스피어가 될 것이었다. 확신이 현실이 되었다. 오직 나만이 뒤처졌다.
그런 나를 뽑은 우리 담임선생님의 슬픈 얼굴이 눈앞에서 오락가락했다.
다음날에야 파악했다. 전날 다른 4학년 아이들이 읽고 있던 책들은 훨씬 만만한 것들이
었다. 『소공녀』, 『소공자』 등, 내가 이미 읽은 책들도 있었다. 하필 내게 돌아온 책이 6학년
학생들까지 읽게끔 되어 있는,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6학년이라 해도 그렇지,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는 어떤 학생도 그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원본의 편년체 형식과 한문 번
역투를 고스란히 살린 『삼국사기』. 그 해 경시대회 주관자들 중에는 우리 아버지와는 정반
대로,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정신 연령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 분이 하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후유증이 남았다. 고등학생 때쯤까지 내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막막한 장벽
이란, 손에 재미있는 책을 펼쳐들고 나란히 앉아 있는 어린이들의 형상이었다.
수줍거나 서툴거나, 도서관 책 빌리기
중학교 1학년 국어 선생님이 『춘향전』을 꼭 읽어보라고 했다. 우리 국문학의 고전이라는
것이었다. 『춘향전』이 그냥 고전인 줄 알았더니, ‘국문학’, 그토록 품위 있는 것의 고전이었
어? 나는 방과 후 학교 5층 건물 맨 꼭대기,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이전에 거기서 교과서나
참고서 아닌 다른 책을 보는 학생을 본 적도, 책을 대출받거나 반환하는 장면을 본 적도 없
지만, 도서관이므로 시도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시험 기간이 아니므로 도서관은 텅 비
어 있었다.
옆구리에 열쇠를 주렁주렁 차고 다니면서 도서관만이 아니라 학교 건물 전체를 문단속
했던 그 남자 선생님은, 아마도 정식 사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여튼 그 분은 학교 안에서
‘도서 선생님’으로 불리었고 문단속 외에 업무가 도서관 관리, 곧 도서관에서 떠드는 아이
들을 야단치는 것이었다.
“그럼, 학생이 책을 봐야지!”
책 보러 왔다는 나를 선생님은 아주 대견해했다. 몇 학년이냐고 물어서 내가 대답했는
데도 내 이름마저 기억하려는지, 안 보는 척 내 명찰도 슬쩍 보았다. 선생님은 본인의 사무
실로 들어가 열쇠 꾸러미 하나를 별도로 챙겨 나왔다. 그 열쇠 꾸러미는 책장용이었다. 도
서관에는 두면 벽에 책장이 있으나 칸칸이 유리문으로 덮여 있고, 유리문들은 잠겨 있었
다. 선생님과 나는 비어있는 책상과 걸상 사이를 지나 책장으로 다가갔다.
“무슨 책을 읽고 싶니?”
선생님은 열쇠 꾸러미를 가슴 정중앙에 든 채로 내게 한없이 자상하게 물었다. 내가 원
하기만 한다면 모든 유리문을 열어줄 태세였다. 선생님이 내 명찰을 보았듯, 내게도 그 순
간 선생님의 기분이 읽혔다. 내 자식들도 이 아이처럼 책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니나노’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우리 부모님도 판소리며
민요를 ‘니나노’라며 업신여겼다. 어쩌다 TV 화면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와 “쑤욱때
머리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지르면 우리 식구들은 지체 없이 채널을 돌렸다. 『춘향
전』을 빌려달라고 하면 그 선생님이 내가 ‘니나노’를 좋아한다고 오해할까봐 걱정됐다.
“뭐라구?”
선생님은 더욱 자상하게 수그려 귀를 내 얼굴 가까이 댔다.
“……춘향전이요. 그게 국, 국문학……”
얼마 전 읽은 외국 소설을 말해버릴까 하다가, 생각이 너무 복잡해져서 나는 속삭이고
말았다.
“춘, 향전?”
선생님은 상체를 제꺽 세우다 못해 뒤로 젖혔다. 거의 분개한 표정이었다. 나는 내 명찰
을 보여준 게 후회됐다.
유년의 나는 책에 허기졌다. 그때 책을 맘껏 볼 수 있었더라면, 내가 지금의 나보다는 나
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책만 귀한 시절이 아니어서 나는 내 책상도, 내 방도 없었다.
내 주변은 늘 소란했다. 책을 볼 때만이 나는 혼자였다. 한쪽에는 이부자리가 말려 있고 다
른 쪽에는 밥그릇 말라가는 밥상이 펴있고, 창 밑에서는 TV가 왕왕거리고 있을지라도, 방
구석에 쪼그리고 책을 읽고 있으면 나하고 책뿐이었다. 커가고 나이 들어 갈수록 생활환경
은 나아졌지만 다른 종류의 소란이 차례차례 밀어 닥쳤다. 변함없는 동반자는 책이었다.
때로 고독이라는 소란이 밀어닥칠 경우에도. 빌린 날 다 보겠다고 약속하여 어두컴컴한 저
녁에 찬바람 부는 다리 건너 친구 집에 돌려주러 갔던 반공 동화, 어머니가 불 끄라고 소리
질러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 마저 읽었던 중국 괴담, 이런 책들일지언정 나를 구했다.
어릴 적 허겁지겁 읽었던 그 얼마 안 되는 책들이, 중년의 나를 꽉 잡아주고 있다. 나는 그들
만큼은 실망시킬 수 없다. 나도 그들을 놓지 않을 것이다. 평생의 친구, 어린 나여.
그림동화책을 볼 나이에 나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종잇장이 두껍고 그림 위주이며
글자는 몇 개 안 되는, 요즘식의 그림동화책은 우리 집에도 남의 집에도, 내가 자란 환경에
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책은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글자를 깨우치고
나서야 읽게 되는데, 교과서 말고는 매우 귀했다. 자식이 셋인 우리 집은 적은 편이요 흔히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너덧 되지만, 소장한 아동서적이 10권 정도면 교육적인 집안이었다.
친구끼리, 사촌끼리,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
도서관이란 것도 몰랐다. 초등학교 각반에 반 아이들이 기증한 책들을 꽂아놓은 ‘학급문
고’가 있긴 하나, 볼만한 새 책은 반장과 부반장이 기증한 것들뿐이었다. 그것들은 개학 한 지
한두 달 만에 너덜거리다 사라지고, 나머지는 아이들 싸움에 이용되어 그 전에 사라졌다. 정
말 볼만한 책들은 담임선생님 책상 위에 있었지만 그 대여섯 권은 우리가 꺼내서 읽고 손때
묻혀 놓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담임선생님이 펴들고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아이들이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곳은, 동네마다 있는 ‘만화가게’였
다. 만화책이고, 돈을 내야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만화가게를 부모님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여자애인 나는 애로사항이 또 있었다. 만화가게는 금녀禁女의 구
역이었다. 가겟집 주인아주머니와 딸들이 있긴 해도 아주머니는 쪽방 문간에, 딸들은 쪽방
안에 있고, 가게에서 나무 벤치에 걸터앉아 만화를 보는 고객들은 죄다 남자애들이었다. 주
로 초등학생들이며 시커먼 중・고등학생도 몇 섞이고, 이따금 다리를 꼬고 담배를 피우는
청년도 한 명쯤 있었다. 내가 그들 사이에 끼여 만화를 보려면 오빠를 따라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오빠는 나를 절대로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 사내애인 자기야 한동안 안 보
여도 어머니가 밖에 나가 노나 보다 하지만, 딸애인 나까지 동시에 없어지면 남매의 거취를
뻔히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혼자 갔으면 안 들킬 것을 나 때문에 들켜서 일단 만화가게 갔
다는 것으로 어머니한테 혼나고, 여동생을 그런 데 데리고 갔다고 겹으로 혼났다.
오빠가 슬그머니 집에서 나가면 나는 귀신 같이 알고 따라나섰다. 내가 딴 데를 쳐다보
고 있을 때 내 뒤통수에 꽂히는 오빠의 간교한 눈길, 소리죽인 움직임으로 인한 공기의 은
밀한 떨림은 평소에 없던 것이라서, 나의 육감을 일깨우고야 말았다. 오빠는 만화가게를
향해 바삐 걷다가 혹시 내가 따라오지 않는지 갑자기 휙 돌아보곤 했다. 나는 그럴 줄 알고
담장 뒤에 숨어 있다가 눈만 내밀어 오빠의 뒷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음 담장까지 조르르 뛰
어가서 또 숨었다. 휙, 조르르, 조르르, 휙, 휙, 조르르. 사냥감을 추격하는 인디언의 경건한
희열마저 나는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빠가 나보다는 용의주도하므로 나는 대개 적발
되었고, 오빠는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굴러 나를 되돌려 보냈다. 두 주먹을 쥐고 내게 달려오
는 시늉을 하여 역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번은 돌을 던지기까지 했다. 나한테 맞지
않도록 멀찍이 엇나가게 볼링공 굴리듯 낮게 던졌으나 나는 대단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것
이 오빠가 나한테 행사한 처음이자 마지막 폭력이었다.
나는 서럽게 집으로 돌아오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오빠가 거부하는데도 내가 끝끝내
따라붙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요행히 만화가게까지 따라가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건
나를 적발해서 돌려보내지 않은 오빠의 잘못이었다. 마침내 오빠가 방금 들어간 만화가게
앞에 서면 심장이 콩닥거렸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오빠는 내가 너무 이르게 들어서면 만화
책을 고르다가 내 손목을 잡고 도로 나와버렸고, 내가 너무 늦으면 반 너머 본 만화책을 급
히 넘기고 일어섰다. 나는 숫자를 세고 기도도 하면서 적절히 뜸을 들이고는 드르륵, 미딛
이문을 열고 가게 안에서 만화책에 코를 박은 남자애들 중에 대번에 오빠를 짚어냈다. 누군
가 문을 열긴 했는데 들어서지는 않는 기척에 오빠도 짚이는 바 있어 화들짝 고개를 들고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이는 문간에 선 채로, 오라비는 만화책을 가슴 앞에 든 채로 둘 다 ‘얼
음’이 된 상태에서 남매간에 긴박하게 오고가는 눈빛. 문을 열어놓고 서 있어 더욱 남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누이를 오빠는 일단 챙겨야 하는데, 막 빠져들려던 만화책을 내려놓을 수
는 없는 일이었다. 오빠의 심중을 본인보다 더 잘 간파하는 내가 해동되어 살짝 문턱을 넘
어서서 미닫이문을 밀어 닫을 즈음에야, 오빠는 자기가 체념했음을 깨닫고 시무룩이 옆으
로 조금 옮겨 앉았다. 나는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날렵하고도 조신하게 남자애들 사이를 헤
집고 들어가 오빠가 내준 좁은 틈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만사 오케이. 나는 오빠의 부속
물, 여기가 어떤 데인 줄도 모르고 오빠를 찾으러 온 순진한 여동생. 쟨 뭐냐 하는 눈길들은
후르르 떨어져 나가고 어머니의 지청구, 내가 볼 만화비도 물론 오빠의 몫이었다.
나는 한 만화가의 팬이었다. 제목을 볼 필요도 없이 그 만화가의 신간만 고르면 백발백
중, 실망하는 법이 없었다. 왕년의 아역 스타가 여배우로서 자기보다 유명해진 언니를 질
투하여, 계단에서 밀어 절름발이로 만들고도 감금해놓은 채 온갖 패악을 부리다가…… 무
림의 진정한 고수는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동네 깡패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서 지나
가고, 오오, 저기 어딘가에는 거북이 등껍질이 등에 달린 사람들이 사는데 그들은 등껍질
만 빼면 우리 보통 인간들하고 생김새가 같고 구성도 같았다. 그러니까 등껍질이 달린 나,
우리 가족, 옆집 사람들이 거기 살고 있을 터였다.
장르를 종횡무진으로 오간 그 유능한 만화가의 작품들은, 나중에 내가 커서 알고 보니
죄다 표절이었다. 『대망』 같은 일본 무협소설과 일본 기담들, 또 헐리웃 영화들을 줄거리
만 간단히 만화로 옮겨놓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원본을 읽고 본 후에도 내가 그것들을 떠
올리면, 이면에서 원본을 찢고 그 필체 거친 표절 만화가 당당히 떠오르고야 마는 것이었
다. 그랬다고 쓰는 바로 이 순간에도 또.
전집 동화를 품다
피아노 선생님 댁에 『안데르센 동화 전집』이 있었다. 전집! 나는 날아갔다. 그때 어느 친절
한 화가가 있어 피아노를 배우러 가는 나를 그려줬다면, 나는 넓적한 피아노책이 담긴 가
벼운 가방을 날개처럼 치켜든 채로 다리를 거의 수평으로 벌리고 공중에 떠있을 것임에 틀
림없다. 그 댁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피아노 교습을 받는 작은 방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나
는 마루 장식장 한 칸에 가득한 동화 전집을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뒤에 만나, 응? 뚱
땅뚱땅, 서너 달밖에 못 배운 <어린이 바이엘>을 나는 아깝게도 통째로 잊어버렸다. 그러
나 안데르센 전집 덕분에 그 서너 달은 내 인생에서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의 막
바지만큼이나 밀도 있고 효율적인 기간이 되었다.
피아노 교습이 끝나면 나는 마루로 나와 피아노책 가방을 얌전히 소파에 기대놓고, 소
파에 올라섰다. 그때 내 눈에 생전 처음 보는 전집은 어른이 되어서 본 백과사전과 비슷하
게 보였다. 압도적인 크기와 두께, 빼곡하게 빈틈없이 꽂혀 있는 자태 또한. 소설이나 교양
서를 알기 이전이므로 그 동화 전집이야말로 내게는 인류문화의 보고寶庫였다. 나는 그중
에 전에 읽던 것이거나 새로 읽을 차례인 한 권을 두 손으로 어렵사리 빼내 가슴에 안고, 가
슴 벅차고, 소파에서 내려와서는 책을 내가 앉을 자리 옆에 반듯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치마 뒤를 쓸어내리고 꼿꼿하게 앉아서, 책을 들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으며, 딱딱한 표지
를 넘겼다. 그 다음 아무 것도 씌어져 있지 않은 속표지를, 또 책 제목이 크게 박혀 있고 가
느다란 펜으로 그린 듯한 장식선이 둘려진 첫 장을, 또 목차를. 손에 침을 묻히지 않았고, 책
장이 구겨지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쓰다듬듯 조심스럽게 들어 넘겼다. 나는 동화 한 편 당
하나쯤 있는 삽화들을 훑어보려고 책을 이리저리 들척이는 짓을 하지 않았으며, 제목에
끌려 뒤의 것을 먼저 읽거나 함 없이 순서대로 읽었고, 이미 다른 책에서 읽은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것들도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시 읽었다. 한 페이지를 넘겨 다음 페
이지가 열릴 때마다 나는 새로 행복하고, 또 남은 페이지가 하나 줄어들어서 안타까웠다
나는 그 전집을 사랑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자세로 일관했더라면 나의 연애들이 그토
록 지난하지는 않았을 것을.
『빵을 밟은 처녀』는 그때 읽으면서 나는 예감했다. 이 동화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듯하
고, 재미도 그닥 없고, 다른 친구들한테 내가 얘기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나는 커
서도 기억하리라는 걸. 도시에 나와 식모살이를 하던 시골처녀가 고향 방문 길에 오르고,
집주인 아주머니는 고향의 가족들에게 선물하라고 흰 빵 한 덩어리를 준다. 고향 마을 근
처에서 도랑을 건너야 하는 처녀는 제 호사스러운 도시 생활의 증거인 구두를 더럽히기가
싫다. 검은 빵도 배부르게 못 먹는 가족들 때문에 망설였지만 결국 처녀는 흰 빵을 도랑에
던져 넣고 구두로 디디며, 순간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 지옥의 묘사가 이상했다. 삼지창을 든 악마도, 활활 타는 지옥불도 없이 조용했다. 죄
인들은 서로 관심 없이 가만히 서있고 아주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던 듯 거미줄에 칭칭 감
겨 있으며, 꽁무니에서 줄을 자아내던 거미가 말하기를……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크고
도 남아 늙어가는 지금까지, 나는 그 차가운 동화를 기억한다. 처녀의 고동색 머리카락이
엉덩이까지 치렁치렁하고, 놀라거나 슬퍼서라기보다는 신경질이 나서 아무한테나 호통
을 치는 듯 입이 벌어져 있던 삽화도.
제목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고(‘한 방울’이 들어가긴 한다) 매우 짧은 탓인지 삽화도 없
었던 또 한 편. 어느 박사가 진흙탕에서 구정물을 떠다가 한 방울 떨어뜨려 놓고 현미경으
로 들여다본다. 그 한 방울 안에 작은 세계가 들어있다. 굉장히 거친 세계다. 누더기를 입은
한 소녀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누더기마저 빼앗아 버리며, 박사는
현미경에서 착잡하게 눈을 뗀다. 그 구정물 한 방울 속 세계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비유
임을, 비유라는 단어도 모르던 내가 바로 알아버렸다.
그만 집에 가보라는 피아노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 들면, 때로는 저녁밥 짓는 냄새가 그
댁에 감돌고 있었다. 선생님이 보고 있으니 나는 더욱이 신경 써서 책을 제 자리에 꽂아놓
고, 깍듯한 인사로 내가 남의 물건도 소중히 다루는 예의바른 어린이임을 재삼 각인시키고
는 그 댁을 나섰다. 골목 끝에는 석양이, 가슴 속에서는 아쉬움이 타들어갔다. 나는 걸어갔
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차갑고 아픈 미래로. 꼭 안데르센 동화나 책을 보지 않더라도 다른
친구들도 다른 경로로 예감하고 진작 알아버렸던, 현재로.
셰익스피어, 또 하나의 비극
그 세대 남정네답게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더 많았던 아버지가, 어느 토요일 일
을 냈다. 점심 무렵 퇴근하여 바로 귀가했을 뿐만 아니라, 오던 길에 헌책방에 들러 본인이
읽을 철지난 문예지와 함께 세 자식의 책 선물을 연령에 맞추어 사온 것이다. 언니와 오빠
에게는 한 권씩, 막내인 내게는 자그마치 다섯 권이었다. 우리 어머니의 남편에 대한 소원
이 ‘애들 캬라멜이라도 한 번 사들고 와보라’였던 바, 어머니 이하 우리 모두는 감읍하다 못
해 긴장했다. 우리의 경이에 가까운 기쁨과 아버지를 향해 불현듯 솟구치는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고기반찬 하겠다고 시장으로 달려가고, 자식 셋
은 평소보다 더 아버지로부터 겉돌았다. 아버지도 자신이 왜 그랬던가 뒤늦게 혼란스러운
듯했다.
지나친 화목을 누그러뜨린, 말하자면 불화를 일으켜서 분위기를 정상으로 되돌린 장본
인이 나였다. 자그마치 다섯 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 『햄
릿』을 나는 저녁 먹기 전에 다 읽어버렸고, 5대 희극 중 하나인 『말광량이 길들이기』는 어
머니가 저녁 설거지를 하는 중에 끝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귀여운 막내의 연령대는 아무
래도 내 실제 연령보다 낮은 것 같았다. 그 책들은 셰익스피어 희곡의 어린이용 축약본이
었다. 어린이용 축약본이라 단순하고 짧으며, 대사의 축약본이니 여백이 많아서 더욱 짧았
다. 허탈해진 나는 나이차가 많은 언니의 책은 엄두를 못 내고, 오빠의 『파브르 곤충기』를
넘보기 시작했다.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 오빠 옆에 오똑 앉아서, 오빠가 보고 있는 페
이지를 어깨 너머로 훔쳐보았다.
“절로 가!”
오빠는 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이렇게 쳐다보기만 하는데도?”
“신경 쓰인단 말야.”
“언제 다 볼 건데?”
“아직 멀었어.”
“한 시간? 두 시간?”
“내 책이니까 내 맘이야!”
오빠가 눈을 부라려 나를 쫓아낸 후에도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장롱에 기대 노려보았다.
“오빠! 텔레비전 보잖아!”
“오 분도 안 봤어.”
“쳇, 오 분? 그동안 나 보라고 주지!”
“난 둘 다 볼 거야!”
평소라면 잘 시간이 됐건만 나는 속이 상해서 잘 수가 없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징징 짰다.
“오빠가 자긴 안 보면서 나도 못 보게 하고……”
“쟨 왜 또 짜?”
“책을 봐서 피곤한가 보죠.”
“피곤하면 자지 왜 짜?”
“어머, 얘들 짜는 거 첨 봐요? 당신이 언제 한번 달래준 적이나 있어요?”
“봐.”
오빠가 얼른 내 앞에 책을 갖다 놓았다.
“와앙……”
미안하고 무안해서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쾅!”
사춘기 언니가 벌떡 일어나 불도 안 때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으이구!”
“일찍 들어온 게 그렇게 억울하우?”
우리 식구는 본연의 모습으로 잠들었다.
어려운 책이 안긴 후유증
<고전문학 읽기 경시대회>가 있었다. 4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반에서 책 좀 읽는다 하는
아이가 한 명씩 뽑혀, 방과 후 시청각실에 모였다. 학교 대표는 이들 반 대표들 중에서 또 선
택될 것이었다. 일차 선택된 아이들은 역시 조숙하여, 너무 조용했다. 다들 입 다물고 자기
와 같은 학년의 몹시 똑똑해 보이는 다른 반 선수들을 힐끔거렸다. 속으로 ‘나만 뒤처진다’
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4학년인 나보다 하나 높은 5학년의 선생님 한 분이, 책
을 한 아름씩 안은 아이들 여러 명을 줄줄이 달고 등장했다. 그 아이들은 책을 내려놓고 나
갔다. 지금도 고전문학을 읽는 데가 아니라 나르는 데 선택된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머쓱
하고 곤혹스럽다.
표지가 똑같은 초록색이고 디자인도 통일된 고전문학 책들이 학년별로 배부되었다. 책
이 쌓여 있던 순서에 따라 내게 할당된 책을 나는 펴서 읽기 시작했다. 정말로 생소했다. 몇
년도에 무슨 왕이 어디로 행차했다는 둥, 그걸 왜 써놓았는지 모를 짤막한 문장들이 끝없
이 나열되었다. ‘궁예’라는 왕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가 쇠몽둥이를 불에 달궈
왕비의 ‘음부’를 찔러 죽였는지야 나는 몰랐다. 신체의 어느 부위라 한들 불에 달군 쇠몽둥
이로 찔러도 괜찮겠느냐만, 특히 그 부위였기 때문에 매우 끔찍했다는 암시가 건조한 문
장에도 담겨 있었다. 어디야? 왕비의 그 부위가? 질문이 있으면 언제라도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나는 책을 들고 나가서 물었다.
“선생님, 음부가 뭐예요?”
“그게……”
남자 선생님의 얼굴이 옴팍 찡그려지는데 양쪽 어깨는 무력하게 흔들렸다. 심하게 꼬
집힌 사람 같았다. 한 학년 위 선생님이기도 해서 무서웠던 그 선생님이 순간 애처롭게 느
껴졌다. 선생님은 이마에 흐르지도 않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고, 다시 어깨를 약간 흔들고
는, 단호히 손가락으로 자신의 배꼽 부근을 가리켰다.
“아랫배 있잖아, 아랫배.”
선생님은 내 눈길이 자기가 가리키는 제 배꼽쯤에 꽂혀 있음을 보고는 창밖으로 시선
을 돌렸다가, 시선과 함께 손가락의 방향을 돌렸다.
“아랫배!”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내 배꼽쯤을 가리키면서 눈으로는 내 얼굴을 간절히 쳐다보았다.
“네에!”
나는 선생님 앞에 펼쳐놓았던 책을 슬그머니 빼내면서 당신이 차마 똑바로 가리킬 수
없었던 그 부위가 어딘지 나는 알아먹었다는 표시로 지그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뜻
하는 ‘아랫배’는 물론 배꼽이 아니고 그 밑의 똥배도 아닐 것이었다. 더 밑이었다. 그때 내
가 ‘음부’로 이해한 부위는, 나중에 알고 보니 ‘단전’이라고 지칭되는 데였다. 하여튼 그때
나는 불에 달궈진 쇠몽둥이가 왕비의 단전 부위를 뚫고 들어가는 상상을 했는데, 충분히
끔찍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책에는 일일이 선생님께 묻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한자
말이 수두룩하고, 글자에 버금가게 숫자, 즉 연대가 많고, 나오는 사람들 이름도 너무 많고,
그들이 했다는 일들은 도대체가 어이없거나 나쁜 짓뿐이었다. 흰 사슴을 잡아다 고문하고,
남의 말의 혀에 바늘을 꽂아 마르게 해서 싼 값에 사는 사기를 치고, 아버지는 딸의 입을 잡
아늘이며 딸은 아버지의 보물을 빼돌리고…… 그러니 다리 여섯 개 달린 송아지가 태어나
고 왕궁에 개구리떼가 몰려드는 건 당연한데, 그래서, 어쨌다고? 자기들끼리 망했으면 됐
지, 나더러 뭘 어쩌라고? 이 연대들을 다 외우라고?
너무나 지루했다. 반의 반도 못 읽었는데 나는 주리가 틀리고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같
은 학년의 다른 반 아이들은 고요히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나는 좌절했다. 그 아이들
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어린이 축약본이 아닌 어른용으로 독파했음이 분명하고, 자
라서는 한국의 셰익스피어가 될 것이었다. 확신이 현실이 되었다. 오직 나만이 뒤처졌다.
그런 나를 뽑은 우리 담임선생님의 슬픈 얼굴이 눈앞에서 오락가락했다.
다음날에야 파악했다. 전날 다른 4학년 아이들이 읽고 있던 책들은 훨씬 만만한 것들이
었다. 『소공녀』, 『소공자』 등, 내가 이미 읽은 책들도 있었다. 하필 내게 돌아온 책이 6학년
학생들까지 읽게끔 되어 있는,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6학년이라 해도 그렇지,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는 어떤 학생도 그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원본의 편년체 형식과 한문 번
역투를 고스란히 살린 『삼국사기』. 그 해 경시대회 주관자들 중에는 우리 아버지와는 정반
대로,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정신 연령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 분이 하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후유증이 남았다. 고등학생 때쯤까지 내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막막한 장벽
이란, 손에 재미있는 책을 펼쳐들고 나란히 앉아 있는 어린이들의 형상이었다.
수줍거나 서툴거나, 도서관 책 빌리기
중학교 1학년 국어 선생님이 『춘향전』을 꼭 읽어보라고 했다. 우리 국문학의 고전이라는
것이었다. 『춘향전』이 그냥 고전인 줄 알았더니, ‘국문학’, 그토록 품위 있는 것의 고전이었
어? 나는 방과 후 학교 5층 건물 맨 꼭대기,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이전에 거기서 교과서나
참고서 아닌 다른 책을 보는 학생을 본 적도, 책을 대출받거나 반환하는 장면을 본 적도 없
지만, 도서관이므로 시도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시험 기간이 아니므로 도서관은 텅 비
어 있었다.
옆구리에 열쇠를 주렁주렁 차고 다니면서 도서관만이 아니라 학교 건물 전체를 문단속
했던 그 남자 선생님은, 아마도 정식 사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여튼 그 분은 학교 안에서
‘도서 선생님’으로 불리었고 문단속 외에 업무가 도서관 관리, 곧 도서관에서 떠드는 아이
들을 야단치는 것이었다.
“그럼, 학생이 책을 봐야지!”
책 보러 왔다는 나를 선생님은 아주 대견해했다. 몇 학년이냐고 물어서 내가 대답했는
데도 내 이름마저 기억하려는지, 안 보는 척 내 명찰도 슬쩍 보았다. 선생님은 본인의 사무
실로 들어가 열쇠 꾸러미 하나를 별도로 챙겨 나왔다. 그 열쇠 꾸러미는 책장용이었다. 도
서관에는 두면 벽에 책장이 있으나 칸칸이 유리문으로 덮여 있고, 유리문들은 잠겨 있었
다. 선생님과 나는 비어있는 책상과 걸상 사이를 지나 책장으로 다가갔다.
“무슨 책을 읽고 싶니?”
선생님은 열쇠 꾸러미를 가슴 정중앙에 든 채로 내게 한없이 자상하게 물었다. 내가 원
하기만 한다면 모든 유리문을 열어줄 태세였다. 선생님이 내 명찰을 보았듯, 내게도 그 순
간 선생님의 기분이 읽혔다. 내 자식들도 이 아이처럼 책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니나노’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우리 부모님도 판소리며
민요를 ‘니나노’라며 업신여겼다. 어쩌다 TV 화면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와 “쑤욱때
머리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지르면 우리 식구들은 지체 없이 채널을 돌렸다. 『춘향
전』을 빌려달라고 하면 그 선생님이 내가 ‘니나노’를 좋아한다고 오해할까봐 걱정됐다.
“뭐라구?”
선생님은 더욱 자상하게 수그려 귀를 내 얼굴 가까이 댔다.
“……춘향전이요. 그게 국, 국문학……”
얼마 전 읽은 외국 소설을 말해버릴까 하다가, 생각이 너무 복잡해져서 나는 속삭이고
말았다.
“춘, 향전?”
선생님은 상체를 제꺽 세우다 못해 뒤로 젖혔다. 거의 분개한 표정이었다. 나는 내 명찰
을 보여준 게 후회됐다.
유년의 나는 책에 허기졌다. 그때 책을 맘껏 볼 수 있었더라면, 내가 지금의 나보다는 나
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책만 귀한 시절이 아니어서 나는 내 책상도, 내 방도 없었다.
내 주변은 늘 소란했다. 책을 볼 때만이 나는 혼자였다. 한쪽에는 이부자리가 말려 있고 다
른 쪽에는 밥그릇 말라가는 밥상이 펴있고, 창 밑에서는 TV가 왕왕거리고 있을지라도, 방
구석에 쪼그리고 책을 읽고 있으면 나하고 책뿐이었다. 커가고 나이 들어 갈수록 생활환경
은 나아졌지만 다른 종류의 소란이 차례차례 밀어 닥쳤다. 변함없는 동반자는 책이었다.
때로 고독이라는 소란이 밀어닥칠 경우에도. 빌린 날 다 보겠다고 약속하여 어두컴컴한 저
녁에 찬바람 부는 다리 건너 친구 집에 돌려주러 갔던 반공 동화, 어머니가 불 끄라고 소리
질러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 마저 읽었던 중국 괴담, 이런 책들일지언정 나를 구했다.
어릴 적 허겁지겁 읽었던 그 얼마 안 되는 책들이, 중년의 나를 꽉 잡아주고 있다. 나는 그들
만큼은 실망시킬 수 없다. 나도 그들을 놓지 않을 것이다. 평생의 친구, 어린 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