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평화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한 실천 1 - ‘우정신문’으로 평화와 우정의 문화 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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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9-02 16:59 조회 9,084회 댓글 0건본문
평화의 기운이 학급의 담장을 넘기를 희망하다. 그러나…
올해 3월 복직하면서 2학년 8반 담임이 됐다. 2009년에는 1학년 담임을 했고 2010년에는 학교폭력 책임교사(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은 학교별로 학교폭력을 담당하는 교사를 두도록 하고 있는데 그것이 ‘학교폭력 책임교사’이다)로 1년을 보냈다. 지난해에는 노조 전임자 활동을 하느라 휴직을 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떠나 있었다. 담임을 맡게 된 게 그러니까 3년 만이다.
새 학년을 준비하면서 학급의 평화를 넘어 평화와 우정을 함께 가꾸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가장 먼저 계획했던 것은 학년협의회를 통해 사례를 나누고 공동실천을 하는 것이었다. 평화와 화목을 지향하는 학급 목표 세우기,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학급 회장 뽑기, 학급 평화 규칙 만들기, 가・피해 경험을 파악하기 위한 상담활동…. 이러한 활동이 학년 전체 학급에서 동시에 이뤄진다면 학생들도 달라진 공기를 느끼게 될 것이며 그것이 따돌림을 포함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했다. 3월 중순경 첫 학년협의회를 겪어보니 계획대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학년협의회는 자주 열리지도 않을뿐더러 논의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자율학습 운영 방안, 수학여행 세부 일정 검토, 기타 여러 가지 전달사항 등을 소화하기에도 벅찼다.
두 번째로 계획했던 것은 계발활동(2009 개정교육과정에서는 동아리활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을 통해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학생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우정반’을 개설하기 위해서 연간 계획도 충실히 짰다. ‘우정반’이라는 이름이 웃긴다며 다른 이름을 만들라고 충고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름 만드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알찬 연간 계획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교직생활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계발활동을 홍보하는 선전물을 만들어 각 반에 게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정반’을 개설하는 데 실패했다. 결정적인 실패 요인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미 상설 동아리에 가입해 있어서 계발활동할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데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상설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이 별로 없었는데 어느새 상설 동아리 활동이 부쩍 활성화돼 있던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계발활동을 조직하던 날 ‘우정반’을 하겠다며 딱 두 명이 왔다. 두 아이에게 초코파이 하나씩을 나눠주고 가벼운 얘기를 몇 마디 나누고는 헤어졌다(따돌림사회연구모임 활동을 함께하는 선생님 한 분은 ‘상담캠페인반’이라는 이름으로 계발활동을 개설했는데 30명이나 신청했다고 한다. 역시 이름이 문제였던건가?).
두 가지 계획이 실패로 끝난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차에 문득 3년 전에 만들었던 학급신문 생각이 났다.
우정신문, 학교 곳곳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다
당시 학급신문은 평화로운 학급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학급자치활동의 일환으로 만들던 것이었다. 편집부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한 주간 학급에서 일어난 일, 주제 토론, 설문조사 결과, 학급회의 내용 등을 실었다. 이와 달리 우정신문은 ‘우정’이라는 프리즘으로 자기 자신과 학급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따돌림과 폭력이 만연한 문화를 학생 스스로 공감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우정의 문화로 바꾸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학급신문은 우리 반 아이들, 학부모님들과 함께 읽었다. 그러나 우정신문은 타 학급으로부터 구독신청을 받아서 공유하고 있다. 현재 3개 학년 12개 학급 정도에서 우정신문을 함께 보고 있다. 학년협의회를 통한 공동실천, 우정반 개설이 모두 실패했지만 우정신문을 다른 학급과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
현재 4호까지 만들었는데 1호에서는 ‘나댄다’는 말의 의미와 나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내용으로 채웠다. 조회 시간에 몇 가지 물음을 담은 주관식 설문지를 나눠주고 각자의 생각을 적도록 했다. ‘나댄다’는 말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한 아이는 [동사–어떠한 일에서 다수 대중이 같이 동화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그 일을 발생시킨 사람은 ‘나댄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라고 적기도 했다. “나대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은 비난받고 어떤 사람은 비난받지 않는다면 그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요?”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계속 분위기 파악을 못 해가며 나대는 아이가 비난을 받고, 분위기 파악해가며 재미있게 나대는 애는 비난받지 않는다고 생각함]이라는 대답이 나오기도 했다.
2호는 ‘가시선인장 허그 프로젝트’와 ‘마니또’를 주제로 만들었다. ‘가시선인장 프로젝트’란 사람과 포옹을 하고 싶어 하는 가시선인장이 어떻게 하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을지 상상해보게 하는 활동이다. 한 학생이 쓴 아이디어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세상 어떤 사람에게든 가시는 있단다. 네가 다른 사람의 가시를 품어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도 너의 가시를 품어주게 될 거야. 네가 다른 사람의 가시도 이해하고 품어주겠다고 약속한다면 나 역시 너의 가시를 품어줄게. 그럼 또 다른 누군가가 내 가시를 품어주겠지?] ‘마니또’는 한때 많이들 했던 것인데 올해 아이들이 해보자고 하여 2주 동안 했다. 우려했던 대로 아이들 대부분이 자기 ‘마니또’에게 몰래 먹을 것을 사주는 데 그치기에 몇 가지 질문을 적은 종이를 나눠주고 생각을 적게 한 후 그것을 모아 신문에 실었다. 우정신문 2호가 발간된 뒤 어떤 선생님께서 메시지를 주셨다. 안 그래도 그 선생님네 학급에서도 ‘마니또’를 하고 있는데 서로 먹을 것만 사줘서 이를 어째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신문을 읽고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3호에서는 ‘뒷담화’ 문화를 다루었고 4호에서는 ‘배려’를 주제로 한 네 컷 만화의 마지막 칸을 비우고 상상하여 그리게 한 후 실었다. 이번에 만들 5호에서는 ‘단합대회’를 주제로 만들어보려 한다. 며칠 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 단합대회를 했는데 얼마만큼 서로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됐는지, 단합대회에 임하는 자신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돌아보게 할 예정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우정신문에 채울 내용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선정하기도 하고 따돌림사회연구모임 이혜미 선생님이 쓴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우정교육프로그램 개발」이라는 글에서 빌려오기도 한다.
앞으로는 고정 꼭지로 ‘우리 반 한 주간의 역사’를 넣을까 고민 중이다. 우리 모임에서는 서사적 접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데 학교에서 우리는 1년 단위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1년의 이야기 속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위해 주는 경험이 담기는가 하면 갈등하고 헐뜯고 따돌리고 괴롭혔던 기억이 담기기도 한다.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함께 만들어온 이야기를 돌아보면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갈 힘을 얻게 된다. 이 꼭지를 넣으려면 역사를 기록할 담당자가 한 사람 있어야 할 것이고 신문을 내부 공유용과 외부 배포용 두 가지로 제작하여 우리 반의 역사는 내부 공유용 신문에만 실어야 할 것이다.
우정신문은 계속해서 변신을 꾀할 것이다.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이 만드는 이야기는 다른 반의 이야기와 만날 것이고 학교 차원에서 우정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우정신문은 따돌림사회연구모임 카페(cafe.daum.net/overtheddadolim)에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카페에 놀러 오셔서 신문도 살펴보시고 고민도 함께 나눠요. 참, 우정신문에 어울리는 좋은 신문 이름을 추천해주시면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