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람을 만났네 끈끈한 만남이 시작되는 곳, 도서관 - 도서관에서 그대는 누구를 만났습니까?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8-04 14:06 조회 7,306회 댓글 0건본문
찬바람 살짝 부는 봄날, 새로운 얼굴을 만날 생각에 설렘과 기대하는 마음으로 도서관 문을 활짝 열고 인사해 본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이렇게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처음 도서관 활동을 시작하는 엄마들은 낯설어하면서도 자신의 삶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에 호기심을 갖기도 하고,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서로 친해진 뒤 생각을 들어보면 왠지 도서관 모임에 참여를 하면 말도 잘해야 할 것 같고, 책도 많이 읽어야 기를 펼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아무리 부담을 갖지 말라고 해도 서로에게 익숙해지지 않고 정이 쌓이지 않으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안산 석호초 샘골도서관에서는 학교 총회가 열리는 날 도서관 어머니회 회원들이 모여 도서관 활동에 대한 소개도 듣고 금요일 아침독서시간에 책 읽어줄 회원과 동화모임에 참여할 회원들을 모집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도, 동화모임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지만 막상 자신을 향한 아이들의 눈빛을 느끼면 무장해제가 된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나지 않을까? 봉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봉사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봉사가 즐거워지려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성장한다고 느낄 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 활동은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글을 쓰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낸 시간을 돌아보았는데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가 2학년 때 처음 도서관 모임에 가입을 하고 동화모임을 시작했는데 4~5명 정도가 참여하다보니 두 사람만 빠져도 모임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 책을 읽고 모임을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 이야기, 부부간 이야기, 시댁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서로에게 느꼈던 거리감이 점차 좁혀졌다. 속 시원하게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모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서로의 매력에 듬뿍 빠져 지내다보니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 또래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도 가고 서로 사정이 생기면 아이를 돌봐주기도 하는 공동체적 삶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누가 목청 돋우며 이야기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율하고, 이해하게 됐다. ‘만약 우리가 도서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어도 친해질 수 있었을까?’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져보면 대뜸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대답이 나오게 된다. 책이라는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종교, 교육관, 정치적 성향이 서로 달라 부딪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도서관 책모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을 넓혀주기도 하고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안겨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과 함께 좋은 사람과의 인연이 있어야 가능하다. 소식지에 실린 몇몇 회원들의 글을 읽어보면 처음에는 자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도서관에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뭔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 함께 어울려 살아볼 만하다는 긍정성, 아이들의 변화를 보면서 느껴지는 만족감이 높아져 활기 있게 생활하는 회원들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책을 가까이하려는 노력,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함께 공유하려는 마음가짐이 생겼을 때 가능한 것이다.
가끔 숟가락만 올려 놓으려는 얄미운 사람들도 있는데 자신의 밥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밥을 먹어도 영양분이 골고루 흡수되기는 어려운 법이다. 어디에서든 통하는 이야기겠지만 이기심은 공동체 생활을 할 때 걸림돌이 되며 사람도, 성취감도 남지 않는다. 21세기는 자본주의가 발전한 시대라고 해도 개인주의와 이기심이 대세는 아니다. ‘나만 잘하면 된다’에서 ‘우리 모두가 잘해야 살 만한 세상이 된다’는 것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시대 감각 있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학교마다 마을마다 책모임이 개미군단을 이루면 이 사회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보며 자극받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나누는 사이, 얼마나 멋진가?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책장을 넘기면서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짝을 이뤄야 가능하다.
학교 관리자의 열린 마음이 필요해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려면 도서관이 있는 학교나 공공도서관 관리자의 생각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학교를 예로 들어 보겠다. 일부 학교장들은 도서관 활성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책 읽기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학습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며, 책 읽기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않다. 교과 학습과 도서관 이용이 병행되거나 릴레이 독서나 아침독서시간이 잘 확보되지 않고 있다. 책 읽는 시간보다 한자, 영어 자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아쉽다. 또한 학교도서관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모임하는 엄마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을 때는 안타깝다. 학부모도 관리의 대상으로 설정하다보니 도서관 활동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들의 뜻과 다를 때는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 목록, 운영 방법까지 간섭하는 경우가 있다. 회원들 입장에서는 맥 풀리는 일이다. 학교 관리자들이 도서관 활동이 이런저런 일로 유명해지고 칭찬받는 것은 좋아하면서 의견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제안하고 싶다. 독서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서(교사)의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 교과과정에서 필요한 책 읽기, 담임교사들의 독서교육에 대한 자문을 사서(교사)를 통해 받는다면 학교의 독서 환경이 훨씬 풍성해질 수 있다고 본다.
두 번째, 독서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동화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한 책모임을 통해 교과 학습과 연결해서 수업하는 방법도 알 수 있고, 아이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모임은 엄마들뿐만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더 욕심을 부리자면 분야별 책모임이 여러 개 생겼으면 좋겠다. 학교 안에서 교사들의 책모임이 활성화되려면 학교장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어렵지 않다.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책모임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수십까지 핑계가 생기지만 할 수 있다고 마음먹으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다.
책모임이 넘쳐나는 학교,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권위만 내세우기보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학교 안에서 책 읽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학교 관리자는 도서관 활동을 하는 학부모들과 사서(교사)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공교육의 변화가 독서교육의 활성화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가능하다.
전문사서가 학교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학교에서 사서(교사)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 없이 매우 중요하다. 석호초 ‘샘골도서관어머니회’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무엇을 하든 선생님과 의논할 수 있었고, 회원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생님 덕분이다. 정말 선생님께 감사하고 싶다. 바쁜 업무 틈틈이 회원들과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은데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사람을 통해 빛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늘 회원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신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선생님의 전문적인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사서(교사)가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더라도 아이들의 독서교육을 책임지는 사서(교사)가 좀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서관 담장은 낮을수록 좋다
아이가 올해 졸업을 해서 샘골도서관 활동을 정리했지만 좋은 책을 읽고 싶거나 선생님과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들릴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 아닌가 싶다.
도서관에 가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회원들이 있어서 반갑고, 만화책 읽기에 푹 빠져 배시시 웃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귀여워 기분 좋은 곳이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도서관 회원이나 아이들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서선생님을 도울 수 있는 보조원도 있어야 하고, 자원봉사자 일손도 많이 필요할 것이다. 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자유롭게 읽고 빌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도서관을 넘나들게 된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만나게 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생기면 모임도 만들어질 것이고, 아이들 교육과 삶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지면 해결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책이 있고 사람이 있는 도서관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이다. 그래서 도서관의 담장은 낮을수록 좋다.
도서관 활동에서 지역모임으로
나에게 도서관은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와 다양한 사람들과 끈끈한 인연을 맺어준 곳이다. 도서관 모임을 하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사람들과도 서로 어려울 때 기쁠 때 도우며 우정을 쌓아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됐으니 도서관 활동이 특별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할 줄 아는 게 없다면서도 책축제가 열리면 달려와 말없이 돕는 회원들, 자신이 갖고 있는 숨은 재주를 조심스럽게 발휘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동생들과 언니들을 보면 봄에 피어나는 새싹처럼 파릇파릇해지는 느낌이다.
기분 좋은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서 학교도서관에서 함께 활동하거나 졸업한 사람들과 마을에서 주민모임을 만들었다. ‘감골주민모임’에는 5~6학년 역사탐방, 청소년 동아리, 저학년 놀이체험 동아리, 퀼트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모임의 뿌리는 바로 도서관 모임이다. 도서관 활동을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에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꿈을 꾸고 있다. 아이들은 역사를 배우면서 책을 읽고 시사 토론을 하기 위해 신문과 책을 가까이한다. 회원들은 책모임이 갖는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책모임을 만들어보자고 한다. 마을 주민들과 책모임을 만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기대가 되고 궁금해진다.
도서관에서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웃음소리가 정겹게 어울리고,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생각하기 전에 도서관 문을 두드려보면 좋겠다. 분명 그곳에는 나를 반겨줄 책들과 훈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 주저하지 말고 말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도 모른다. 짧은 시간에 맺어진 인연이 내 삶에 단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