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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내 꿈이 싹튼 온실 30년 전 고교 시절 사서선생님께 - 도서관에서 그대는 누구를 만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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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8-04 13:58 조회 7,28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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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저쪽의 기억을 떠올리자니 중간 중간이 끊긴 흑백필름처럼 화면이 선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나는 대로 그때의 우리 학교 도서실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도서실은 폐가식 서가가 늘어선 서고가 있었고 군부대 담장에나 어울릴 철망이 서고와 열람실을 분리하고 있었습니다. 서가 한쪽에는 선생님의 책상이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직접 책을 대출해주기보다는 카드 포켓을 붙이거나 책에 도장을 찍고 계셨지요. 대신 대출과 반납을 도와주는 저와 같은 학년의 학생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그 친구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얼굴과 성함은 잘 기억합니다. 저를 가르치지도 않았고 담임을 맡지도 않으셨지만 오래, 지금까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습니다. 차차 말씀드리지요.

집중의 효과를 위하여 열람실은 칸막이가 된 책상들이 배열되어 있었지요. 대개는 책을 읽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학습용이었지요. 독서를 하는 학생들은 드물었습니다. 아니, 도서실을 찾는 학생 자체가 드물었지요. 냉난방이 되지 않은 도서실을 찾을 학생도 많지 않았지만 오후가 되면 학원으로 가거나 자율학습에 들어가야 하므로 제가 떠올린 도서실은 한산하였습니다. 저는 그 한산함이 맘에 들었습니다. 맘에 들었다기보다 쫓기다가 찾아든 도피처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지요.
그 한산함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조금 말씀 드리겠습니다.

도서실은 방황하던 저의 도피처였습니다
저는 시골뜨기였습니다. 옷도 자주 빨아 입지 못하여 차림도 꾀죄죄하고 당시에 두발 검사를 자주 하던 시절인데 머리도 단정하게 깎지 못하여 좀 어수선한 외모를 갖고 있었지요. 시골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하라는 아버지와 형의 바람을 뿌리치고 무작정 도시로 떠나와 독서실을 전전하며 근근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그럴 수밖에 없었답니다. 매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고 그나마 늦게 저를 둔 아버지께서 연로하셔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 어려움을 말로 다 표현 못하지요.

도회지로 나오면 저는 그림을 볼 기회도 많고, 또한 그림을 배울 기회도 많을 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 3년을 그림 그리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으니까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인문계 학교라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저 같은 학생을 눈여겨보며 이끌어주는 선생님도 안 계시고 또한 캔트지 한 장 살 형편이 되지 않은 저는 그야말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당연히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림도 그리지 못하고 공부도 못하는 제가 도피처로 찾은 곳이 도서실이었던 것입니다.

그 무렵 저는 책에 재미를 붙였고, 특히 시를 읽는 데 푹 빠져 있었습니다. 비는 시간마다, 심지어는 청소를 후다닥 해치우고는 청소시간에도 도서실을 찾아 혼자, 거의 혼자 도서실 한켠에 앉아 책을 보았지요. 그리고 노트에 시를 옮기고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때는 참으로 볼품없는 장정으로 인쇄 상태도 고르지 못하고 크기도 손바닥만한 책들이 있었는데 ‘서문문고, 삼중당문고’ 뭐 이런 출판사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주머니에 쏙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대출받은 책을 그렇게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지요.

어느 날,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께서는 기억하지 못하실 거예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으셨지만 저에게만큼은 그렇게 또 불친절하지도 않으셨답니다. 귀찮게 하는 저를 아예 서고에 들어와서 책을 고르도록 해주셨으니까요. 선생님은 통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표정도 풍부하지 못하셨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마음을 잘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서고를 드나들며 책을 골라 읽었습니다.

요즘의 사서선생님처럼 책도 선정해주고 아이들이 독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시기도 하는 그런 사서선생님을 기대할 수도 없었을 시절이었지요. 그렇게 해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책을 좋아하는 저를, 아니 도서실을 도피처로 삼은 저를 폐가식 서고에 드나들게 해주신 것만도 저 개인으론 크게 감사드려야 할 일이지요.

그런데요, 더 감사드려야 할 일을 제가 말씀드리지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서가 한켠에 낡은 책들을 쌓아 두셨겠지요. 폐기할 책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헌책 더미 속에는 얇고 낡은 시詩 모음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이걸 저에게 주실 수는 없나요?” 했더니 제 얼굴을 빤히 보시며 웃으셨습니다. 기억하세요? 선생님의 웃음을 허락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보물인 양 모셔왔답니다. 선생님의 재량으로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아마 원칙으론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선생님은 과감히 ‘직무를 유기’해주셨어요. 그 일이 저를 쓸 만한 시인이 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그 시집 안에는 그림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저로 하여금 시를 쓰고 싶게 만든, 화가 대신 시인이 되고 싶게 만든, 꿈을 꾸게 한 시 한 편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시를 발견하고는 큰 기쁨에 휩싸였던 기억이 저는 생생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한 것과 같은 것이었답니다. 시 한 편이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답니다. 이 시집을, 아주 낡은 이 시집을 지금도 갖고 있으며 이 시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습니다. 그 시를 들려드리지요.

흐르는 바람으로
가락을 빚는 그 사람

아 나는
얼마나를
그 창조의 가슴과 손으로
하늘에 사무치는
주문이고 싶으랴

봄날 아침
문을 여는 꽃
죄 없이 웃는 영혼이고 싶으랴
– 허영자 「피리」 전문

그것은 제 삶의 지침을 돌려놓은 사건입니다
그림에 두었던 뜻을 접고 지향점을 잃고 있던 저에게 이 시는 제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답니다. ‘음악(피리)을 두고 한 말이지만 미술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시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바람으로 가락을 빚어내는” 일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고, 그게 “하늘에 사무치는 주문”이라면 굳이 그림(미술)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를 쓰자! 피리 연주자가 피리 소리로 하늘에 사무치고 죄 없는 영혼을 꽃과 같이 피울 수 있듯이 시로써도 내 영혼을 꽃피울 수 있을 거야. 시를 쓰자.’
어렴풋하지만 시인의 꿈을 처음 꾸게 한 사건이지 싶습니다. 물론 뒷날 대학에 진학해서는 화실에 나가 데생을 하고 소설도 써보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내 시의 내용과 형식을 공고하게 해주는 그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했답니다. 이 시에서 촉발된 시에 대한 열망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림이나 소설보다 컸기 때문이었지요.

그 이후에도 시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불어넣어준 사건이 물론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짤막한 시편은 저로 하여금 시인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갖게 한 것 말고도 제가 쓰는 시가 지녀야 할 참모습에 대해 꾸준히 궁구하게 했다는 점에서 저에겐 큰 의미를 지닌답니다. 시는 “하늘에 사무치”는 그 어떤 것이어야 하며, “죄 없이 웃는 영혼”을 꿈꾸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짐승이 태어날 때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을 어버이로 여긴다는 각인설刻印說이 있듯이 이 시는 저에게 시의 원형을 각인시켜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단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부나비처럼 시인의 허명을 좇고 또 많은 시인들이 이 같잖은 시인의 이름으로 대단한 벼슬인 양 허세를 부리는 것을 보곤 하지요. 그럴 때마다 이 「피리」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저의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생각을 규모 있게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시가 그 시절 방향을 가늠하지 못하고 헤매던 저를 구원하리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겪은 어떤 일이, 제가 만났던 어떤 인연이 저로 하여금 시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단정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선생님과 그리고 그 도서실과의 만남은 저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
저는 시를 쓰는 국어 선생님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도서실 일을 맡고 있지요. 다 잘하고 싶은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잘하고 있노라고 자랑하기가 부끄럽습니다. 수업 잘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고 업무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게다가 저는 글도 써야 하는 글쟁이잖아요. 정말이지 도서실 업무는 더 잘할 수 있는 분이 하셨으면 합니다. 학교마다 책을 통해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사서교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처럼 꿈을 잃고 헤매는 아이들에게 길을 찾아주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대신 저는 아름다운 시로, 참다운 가르침으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겠습니다. 어디에 계시더라도 저의 이러한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응원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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