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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다란 막대, 좁다란 공간 초등학교 사서선생님을 그리며 - 도서관에서 그대는 누구를 만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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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8-04 13:53 조회 8,03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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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작은 학교였다. 50년이나 된 오래된 학교지만 지금은 학생 수가 적어 한 학년이 4반 정도이다. 학교 운동장 한켠에는 텃밭도 있고 운동장도 아주 넓었다. 컴퓨터실, 미술실, 요리 실습실, 과학실, 체육관, 강당과 같은 특별실도 많았다. 도서관은 학교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6학년 언니, 오빠 들이 우리 교실에 찾아와서 학교를 구경시켜주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6학년 학생들이 1학년 학생들과 한 명씩 짝을 지어 학교를 구석구석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를 데리고 학교를 둘러보며 설명해주던 6학년 언니가 처음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도서관이었다.

교실보다 커다란 도서관에는 낡은 나무 책꽂이에 손도 닿지 않는 높은 곳까지 책이 빽빽이 꽂혀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교실 두 칸 크기의 도서관에 무려 2만 권이 넘는 책이 있었다. 엄마와 같이 다녔던 알록달록한 놀이터 같은 도서관과 달리 학교도서관은 오래되고 낡은 책 창고 같았다. 막상 도서관에 들어가서 키를 훌쩍 넘는 서가 사이를 돌아다닐 때는 마치 해리포터가 다니는 호그와트 도서관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내가 아는 책이 꽂혀 있어 도서관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책들이 한꺼번에 생겨난 비밀
매주 목요일은 도서관에 가는 날. 목요일이면 늘 아침부터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물론 수업을 안 해서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도서관에 가면 담임선생님이 아닌 사서선생님이 우리와 함께하셨다.

사서선생님은 도서대출증에 붙일 멋진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내가 제일 아끼던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빨간 장미꽃 다발을 들고 피아노 콩쿠르 때 찍은 사진을 가져갔다. 책을 빌릴 때마다 사서선생님은 사진을 보며 예쁘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사서선생님은 도서관 규칙과 읽고 싶은 책을 찾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선생님 책상 옆에는 기다랗고 얇은 막대기가 담겨 있는 상자가 있었다. 양쪽 끝에 숫자가 적혀 있는 기다란 막대기를 책을 뽑은 자리에 책 대신 꽂아 놓고, 책을 다 본 뒤에 막대기를 찾아 다시 제자리에 꽂는 방법이었는데, 난 이것이 굉장히 기발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도서관에 가면 사서선생님이 책을 읽어주시곤 했다.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실 기미가 보이면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가서 도서관 한쪽에 있는 동그란 소파에 앉았다. 소파가 미어터지면 아이들은 소파 팔걸이와 바닥에까지 앉아서 선생님이 책 읽어주시는 걸 들었다. 나도 그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선생님은 주로 그림책을 읽어주셨는데 그림책의 그림 부분을 우리에게 향하게 하여 우리들이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주셨다.

도서관에 가보면 가끔씩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책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있었다. 새로운 책들이 있으면 굉장히 반갑고 빨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알고 보니 사서선생님이 몇 달에 한 번씩 책꽂이 맨 위나 맨 아래 칸 같이 손과 눈길이 잘 가지 않는 곳의 책을 책꽂이 중간 쪽으로 위치를 바꾸어 놓으셨던 것이다. 선생님이 번거롭지만 그렇게 해주신 덕분에 우리는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골고루 볼 수 있었다.

어디서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실까…
같이 하교하는 친구의 방과 후 수업이 늦게 끝나서 기다려야 할 때도 나는 도서관에 갔다. 때때론 엄마가 늦게 와서 집에 혼자 있어야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날에도 나는 도서관으로 갔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친구와 엄마를 기다렸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말동무가 되어주셨다. 그리고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지나서도 같이 기다려주셨다.

리모델링 할 때 없어졌지만 도서관에는 안쪽 책꽂이 사이에 공간이 있었다. 두 사람이 간신히 꼭 끼어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거나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곤 했다. 난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굉장히 아늑하고 편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없어졌던 책들이 그곳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가끔씩 친구들이랑 콩나물 버스처럼 끼어 들어가서 속닥속닥 떠들다가 킥킥거리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서선생님은 그곳을 단골로 찾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 공간을 없애는 대신 의자를 놓아주셨다. 난 도서관에 가면 넓은 소파와 의자를 제쳐두고 그곳에 앉아서 책을 읽곤 했다.

사서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학교를 떠나셨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도서관은 리모델링을 했다. 도서관이 더 예뻐지고 책꽂이도 새 걸로 바뀌었다. 새 의자가 들어왔고 커다란 벽걸이 텔레비전도 생겼다. 이렇게 시설도 좋아지고 젊고 예쁜 사서선생님도 새로 오셨다. 하지만 예전 도서관에서 나던 책 냄새와 내가 좋아하던 책꽂이 사이의 좁은 공간은 없어졌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인사하시던 사서선생님도 안 계셔서 도서관이 아주 휑하게 느껴진다. 항상 웃으며 이름을 불러주시던 선생님이 계셔서 도서관 옆을 지나다가도 괜히 한 번씩 들어가 보고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도서관의 따스한 기억 덕분에 중학교에 와서도 친구들이 잘 가지 않는 학교도서관을 찾게 된다. 사서선생님은 지금 다른 학교에서 도서관에 들어오는 어떤 아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고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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