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윤독용 복본 구입 요구에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 윤독, 요모조모 따져보고 결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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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7-06 12:57 조회 9,889회 댓글 0건본문
학교도서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초기에 한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다. 그때 그 학교 교감선생님이 학교에 이미 도서실이 있다고 하면서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교실 한 칸에 칠판과 창문이 있는 쪽을 제외한 나머지 두 곳의 벽에 책꽂이가 있고 그곳에 천 권이 넘는 책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한 종에 50여 권씩 되는 똑같은 책들이 천 권 넘게 진열되어 있었다. 결국 책 권수는 많지만 종수는 20~30여 개밖에 되지 않는 빈약한 도서관이었지만 무척 자랑스러워했던 일이 기억난다.
지금의 학교도서관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공간도 리모델링 되어서 쾌적한 곳이 되었고 사서가 운영하여 다양한 프로그램과 책들이 있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종종 선생님들에게 요구받는 것 중 하나가 아이들 수만큼 책을 갖추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가 있을 때 사서는 분명 고민하게 된다. 제한된 예산에서 똑같은 책을 한 반 수만큼 산다는 것은 다양한 책들을 그만큼 포기하는 것과 맞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왜 똑같은 책이 필요하세요?
국어사전의 경우 교과과정에 나왔을 때 잠깐 사용하는 선생님도 있고 국어시간마다 항상 옆에 놓고 사용하는 선생님도 있어서 전 학년을 대상으로 도서관에 사전을 구비해 놓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학년별로 학습준비물 예산으로 국어사전을 준비해 놓을 것을 말씀드리곤 한다. 학습준비물로 한 번 준비해 놓으면 해마다 그 학년이 돌아가면서 사용할 수 있고 특히 담임선생님이 국어시간이나 모든 교과에서 수시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 반에서 각자 준비하든가 학급에서 준비할 수밖에 없다.
학생 수만큼 윤독輪讀(돌려 읽음)도서를 요구하는 선생님들에게 왜 똑같은 책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그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학생 모두에게 똑같은 책을 읽히면 그나마 책을 전혀 안 읽는 아이들이 그 책이라도 같이 읽지 않겠냐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학급문고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교실에서 아이들과 책 읽는 시간을 가지고 싶으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교실에서 책을 읽히고 싶을 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라고 하면 대출증이 없는 아이들은 빌려오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책을 고르는 시간도 오래 걸리니 똑같은 책을 빌려서 같이 읽는 것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때마다 설득하는 것은 아이들 수만큼 책을 사서 윤독도서를 만들지만 그것이 몇 년 못 가서 읽지 않는 책이 되고 그러면 그대로 버릴 수도 없고 놔둘 수도 없는 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윤독도서를 준비했다가 2~3년 후에 짐처럼 놔두고 있는 학교도서관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만약 정말로 윤독도서가 필요하다면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그 책을 계속 이용할 것이라는 계획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말씀을 드린다. 그럼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공감을 한다.
학급문고 만들기가 어려운 선생님들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방법을 도서관에서 찾아보았다. 3년 전부터 하고 있는 것인데 학급에서 필요한 책을 장기대출해주는 ‘학급도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학급에서 원하는 책을 빌려주면 저학년은 담임선생님이 관리하고 고학년은 도서반 학생들이 관리한다. 여러 권의 책들을 빌려가서 필요한 만큼 보고 갖다주는 것인데 관리를 잘한 반은 별 문제 없이 반납이 되지만 분실되는 경우가 생기면 그것은 학급에서 책임지고 변상을 하기로 미리 약속했다. 필요한 책을 사서에게 부탁하면 사서가 골라주기도 하고 담임선생님이나 책을 많이 읽는 도서반 아이들이 자기 반에 필요한 책을 고르기도 한다. 학급도서 프로그램을 하면서 담임선생님들은 학급문고를 만드느라 힘들이지 않아서 좋고 아이들에게 틈틈이 책을 읽힐 수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한다. 또 그 이후로는 윤독도서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제한된 예산에서 희생되는 부분은 어쩌나
하지만 윤독도서는 나쁘기만 한 것일까?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를 보면 폭력에 노출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교사가 아이들과 같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상황을 일기로 쓰도록 한다. 그것을 보면서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산지역의 한 초등학교는 3년 전부터 ‘나누미 도서’라고 하는 윤독도서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2009년에 각 학년별로 20권씩 20종, 2010년에 학년별 36권씩 10종, 2011년에 학년별 36권씩 10종 해서 3년 동안 6,700여 권의 윤독도서를 마련하느라 다양한 책을 구입하지 못했지만 2012년부터는 다양한 책들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학교는 윤독도서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모든 선생님들이 함께 계획하고 의논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으로는 첫째, 늘 교실에 책이 4종 102권이 있어서 함께 책 읽기가 가능하여 책 읽기가 잘 되지 않던 아이들도 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그로 인해서 도서실 이용자가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둘째, 반 아이들이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독후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독서행사 기간인 9월에 학기 초부터 읽었던 나누미 도서를 이용하여 독서경시대회, 독서골든벨, 독서인증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학급 학생 수만큼 도서를 구입했기 때문에 복본 수가 많고, 도서실에서는 제한된 예산으로 새 책과 다양한 책을 해마다 구입할 수 없어 도서실을 이용하는 다독자에게는 다양하고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반별로 2주에 한 번씩 다음 반으로 돌려 읽는데 분실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여 파손과 분실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위의 학교는 모든 교사가 협력하여 전 학년이 읽게끔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에 윤독도서가 일회용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활용 가능한 도서가 되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 책을 읽고 고르는 안목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복본 구입으로 인해 다양한 책을 구입하고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됨으로 각각의 학교에 맞는 적절한 방법들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저학년의 경우는 굳이 똑같은 책을 구입하여 읽는 것보다는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후에 함께 공감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학년은 교과와 관련해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책으로 교육과정으로서 수업안이 짜여진다면 윤독도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윤독도서는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독서교육에 대한 입장과 학교 상황, 학교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가치관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이미경 안산 석호초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