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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청소년도 그림책을!]그림책 작가와 중학생의 그림책 만들기 - 어른들은 몰라도 참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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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2-04 22:13 조회 10,54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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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뜨겁게 마음을 연다, 그림책에!
작년 봄. 분당의 B중학에서 특별수업과 관련해 의뢰가 들어왔다. 신청자를 받아서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신설할 계획인데 그 진행을 맡아달라는 것.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을 해온 지 5년이 넘었다. 그림에 뜻을 둔 미대생들과 한 학기 15주 수업을 마치고 책이 완성되는 확률은 60% 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으로 이루어내야 하는 그림책은 시간과 노력이 능력만큼이나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서, 결과물을 얻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중학생 33명을 데리고 달랑 4주라는 짧은 기간에, 결과물까지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라니?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나에겐 벅찬 일이라는 걸. 당연히 거절해야 할 일… 그런데 맡아버렸다. 순전히 그림책이라는 것 때문에. 그리고 중학생들과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림책 수업이라는 유혹이 너무 강렬했다. B중학 첫 수업일. 촉박한 일정으로 마음은 급했지만, 첫날은 그림책만 보여주자는 평소 생각대로 양손 가득 책을 싸들고 학교로 갔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그림책 워크숍을 해봤지만 가장 공이 들어가는 시간은 작업이 시작되기 전, 첫 수업이다.

그림책 만들기의 핵심은 좋은 글과 그림이라서 수업의 대부분이 원고 작업으로 이루어지지만,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그림책에 대한 이해를 시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림책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그림책을 만들 수는 없으며,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자기만의 그림책을 만들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B중학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런 과정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가지고 간 그림책을 보여주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그림책의 주제를 들어보던 첫 시간. 아이들은 뚜렷한 생각과 독창적인 주제로 선생인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더구나 재미난 이야기까지 즉석에서 구성하는 부러운 재주까지 보여주었다.



14세, 15세의 현재 중학생들은 그림책과 친숙하다.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의 무릎에서, 도서관에서, 잠자리에서, 그림책을 가까이하고 자란 그림책세대이다. 도서관의 보급으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양한 그림책을 풍부하게 접하며 자랐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회적인 배경 덕분인지, 아이들은 그림책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간결한 문체, 글과 그림의 조화, 그림의 시각적 연출까지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을 보며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림책 작가는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대한민국에서도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고 즐거운 기대도 해봄직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학생들의 열정이었는데, 짧은 쉬는 시간에도 미술실을 찾고 점심시간에는 밥을 통째로 삼키고 미술실로 달려왔다. 수업이 진행되던 4주 내내 그토록 진지하게 즐거운 몰두를 지속하는 아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기회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자유로운 생각이 아니라 그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할 기회였던 것이다. 우리는 부모라는 권리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잘’ 하는 ‘기술’만 가르치는 건 아닐까?

4주 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없다. 삐뚤삐뚤한 그림도 엉뚱한 발상도 내 눈엔 정말 사랑스러워서, 그들의 솔직함과 열정을 지켜보고 감탄하며 그것으로 충분했다. 중도 포기 한 명 없이 참가자 전원이 자신의 책을 받아 쥐던 날. 가슴에 꼭 끌어안고 행복해 하던 아이들의 표정은 쉬 잊히지 않을 감동이었다. 아이들의 책은 독특하고 명랑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간혹은 의미심장한 문장도 보이고 소녀 감성 물씬거리는 책도 있었다. 그런 작품에 조금이라도 나의 ‘능숙한 때’가 타지 않도록, 결과물에 욕심내지 말자고 4주 내내 마음먹었다. 아이들은 들어주고 지켜봐주고 조금만 기다려주면,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게 했을 때 아이들의 에너지는 풀 파워를 가동한다. 그림책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의 경우 출판에 대한 1%의 가능성도 없다면 의욕과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의 책은 출판이 될 가능성도 없었고 성적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그림책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전부인 프로젝트였다. 그러니 그들의 열정은 정말 순수 100%의 열정이었다.

아이들 책장에서 왜 그림책을 빼내 버리시나이까
지난 여름방학에는 ‘한·일·중 어린이 동화 교류’ 행사에 참여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초등 고학년 학생 100명이 열 명씩 열 팀으로 나뉘어 그림책을 만들었는데, 주제는 ‘빛’이었다. 책 만들기에 앞서 빛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얘기하는데 기발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화산, 생명, 빠르다, 에디슨, 감옥 창살, 자외선 차단제… 이토록 독특하고 엉뚱한 생각들을 모아서 과연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한 팀에서는 남학생 하나가 검劍을 그리기 시작하자 팀의 모든 남학생이 신나게 검을 그렸다. 결국 책은 꿈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이야기로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팀원 중 한 명의 글이었던 ‘홈쇼핑에서 광선 검을 사왔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 팀의 진행을 이끌었던 선생님은 당혹스러워 했지만 발표회 때는 모두를 웃게 만들었던 재밌는 그림책이 완성되었다.

유아동 대상의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이 최근 여러 단체에서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아이들이 쉽게 지치고 흥미를 잃는 것은, 길게 이어지는 수업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과물을 바라는 주위의 지나친 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표현이 서툴고 앞뒤가 안 맞더라도 지켜봐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알아서 즐긴다. 글을 만지며 생각을 키우고 그림을 만들며 자기만의 표현 방식을 배워간다.

부모들의 많은 걱정 중 하나가 만화책을 좋아하는 아이다. 아이들이 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재미있으니까! 글만 있는 것보다 그림도 있는 책이 재미있고 가르침만 있는 책보다는 즐거움도 주는 책이 좋은 건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림책도 좋아한다. 글과 그림과 재미와 감동이 함께하는 책이니까 좋아하는 것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던 아이들이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달면서부터 그림책에서 멀어진다. 아이들의 책장에서 그림책을 빼내버리는 것은 아이들의 무관심이 아니라 부모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관심이 아니라 그들이 관심 있는 것을 선택할 기회이다.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언제나 어른들이다.

중고생 부모들아,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보라
B중학 수업을 진행할 때. 그림책을 읽어준 뒤 느낌을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릴 적 생각이 나요’, ‘따뜻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림책은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어른들에게도 그림책은 필요하다. 이미 어린이가 아니고 아직 어른도 되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여, 가끔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어라. 그 아이들이 어릴 때 보았던 책을 꺼내들고 나란히 앉아 읽어보자. 이미 어린애가 아닌 아이들은 쑥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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