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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 힐링 나를 치유하는 것들, 내게 힘이 되는 것들]함께하는 어머니들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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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3-10 17:17 조회 6,41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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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도서실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먹을 것 마실 것 바리바리 싸들고 어머니들이 오신다. 이 어머니들은 ‘책수다’ 어머니독서동아리다. 나는 초등학교 도서실의 사서다. 요즘 파업까지 하여 세간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학교 내 비정규직 근로자다. 고용형태 때문에 학교 안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직책이며 급여도 너무 적어서 정말이지 자존심을 지키기 어려운 처지다. 학부모들과도 편하게 지내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동료들이 많은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바로 이 어머니들 덕분에 이 시간만큼은 모든 설움을 잊을 수 있다.

처음 이 학교에 와서 보니 도서실은 이제 막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도서관리 시스템도 책꽂이에서 DLS로 바뀐 참이었다. 책장에는 오래된 책 아니면 터미널 좌판에서나 취급할 법한 B급 도서가 가득했다. 게다가 이 책들은 분류 상태도 엉망이었다. 도서관리 시스템을 바꾸며 뒤섞인 것에 납품업체에서 등록해준 분류기호가 수서할 때마다 달랐는지 전혀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 결국 재구축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보통 큰일이 아니다. 책에 붙어 있는 라벨을 전부 제거하고 완전히 새롭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나, 이런 사람이에요
당장 학부모명예사서부터 모집했다. 학부모총회를 통해 모집한 학부모명예사서는 각 반마다 1,2명씩 무조건 가입해야 한다고 하여 약 40명으로 구성되었다. 학교도서관의 대대적인 재구축을 앞두고 일손이 궁해서 급조된 학부모단체였던 셈이다.
학부모총회가 있던 날, 이런 상황을 아예 어머니들 앞에서 솔직히 알렸다. 나는 동네어린이도서관의 관장을 했던 경험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것과 나의 고용형태가 비정규직 학교회계직원이라는 것과 급여액수까지도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이 학교를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좋은 학교도서관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이 학교의 도서실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고 재구축이라고 하는 엄청난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몇몇 어머니가 눈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어머니들에게 나 자신을 어필하려고 동네어린이도서관 관장 경력을 말했지만 그 자리도 그저 명예직에 불과하여 급여는 형편없었다.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다보니 그런 경력을 갖게 된 것이고 ‘도서관운동’ 자체에 관심과 의무가 생겨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어머니들의 호응이 바로 전해져왔다.

2학기로 예정된 본격적인 재구축 작업에 앞서서 더욱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싶었던 나는 어머니독서동아리를 제안했다. 함께 읽으며 공부할 책을 한 권 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그 책의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자고 했다. 그림책의 세계에 매료되어 있던 나는 우선 마쓰이 다다시의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한림출판사)를 교재로 정하여 어머니들과의 만남을 진행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아이 읽기, 책 읽기』(조월례, 사계절출판사) 등을 함께 읽었다. 그러면서 기회만 되면 어머니들께 그림책을 읽어드렸다.

그림책이 우리들을
그림책의 힘이 참 대단했다. 『보글보글 마법의 수프』(클로드 부종, 웅진주니어)를 읽으며 처녀 시절에 꿈꾸던 것을 버리고 엄마가 된 이야기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제랄다와 거인』(토미 웅거러, 비룡소)을 읽고는 제랄다가 흉악한 식인거인을 유순하고 멋진 남편으로 만든 솜씨에 감탄하며 아직도 서툴기만 한 나를 반성하기도 하고, 『똑똑하게 사는 법』(고미 타로, 한림출판사)을 읽고는 똑똑한 거, 그거 별 것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닭들이 이상해』(브루스 맥밀란, 귀넬라, 바람의아이들)를 읽으면서는 엄마 노릇이 얼마나 어려운지 서로 넋두리도 했다. 『진정한 일곱 살』(허은미, 오정택, 양철북)을 읽은 다음엔 진정한 엄마, 진정한 나잇값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애들만 보는 것인 줄 알았던 그림책 속에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아갈수록 우리 모임은 더욱 즐거워졌다. 처음엔 아이들의 독서교육에 도움이 될까 하여 시작했지만 어느새 어머니들 자신이 이 모임을 즐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전에 읽은 적이 있는 책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읽으면 새로워요.”라는 말을 들을 때,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고 기분이 좋아졌어요.”라고 하실 때, 나도 행복하다. 만날 아이에게 책 읽어주라는 말만 들었지, 누구 하나 책을 읽어주는 사람 없었던 이 어머니들에게 내가 나서서 책을 읽어드린 것이 오히려 나에게 크나큰 위로가 될 줄이야!

이 모임에 참여하는 어머니가 점차 늘고 다른 여가 활동을 조절하여 이 모임에 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들이 이 모임을 참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임을 좋아하는 것은 이 도서실을 아끼는 마음으로 연결되고 이 도서실을 아끼는 마음은 당연히 이곳에서 일하는 나도 소중하게 생각해주실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난 사서다!


어머니들이 도서실을 아끼는 마음은 당연히 이곳에서 일하는 나도 소중하게 생각해주실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함께하는 어머니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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