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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 힐링 나를 치유하는 것들, 내게 힘이 되는 것들]상처 받은 날의 기억, 놔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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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3-10 17:14 조회 6,75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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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여기저기 종이에 벤 상처들이 많다. 미처 알지 못했던 상처는 물에 닿았을 때 비로소 쓰라림을 느껴 알게 된다. 내 마음도 손과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과 관계해야 하는 사서교사는 감정노동을 하게 되고, 종이에 벤 손처럼 사람들의 말과 눈빛에 마음이 여기저기 베이고 상처들이 생긴다.

발령장을 받았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세상을 모두 가진 듯 가슴 벅차 오르고 설레였던 그날의 학교 교무실, 그곳에서 사서교사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학교에서는 원하지도 않은 사서교사가 와서 싫다는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심지어 등 뒤에서는 사서도 교사냐는 비아냥거림과 조롱 섞인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아직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단지 내가 사서교사라는 이유만으로 거부당했던 그날의 기억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하고 있다.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그러나 사서교사라는 존재를 낯설어하는 이들을 탓하며 속상해 하고만 있기에는 내 안에 열정이 넘치고 있었기에 날카로운 혀로 베인 내 가슴은 그냥 괜찮은 줄 알았다. 5년이 넘는 시간을 계약직 사서로 근무하며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하고 싶지만 신분의 한계에 부딪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제 하고 싶었다.

용기란,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할 때 샘솟는 것이라고 했던가! 수업계획을 세우고 매일같이 교장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사서교사에게 줄 수업시간은 없다는 것이다. 사서교사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수업까지 달라니 참으로 골치 아프다는 반응이었다. 당시 나는 도서관에 배정된 읽기 시간에 도서관 수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왜 안 된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했다. 교장선생님께 무작정 떼를 썼으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참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들어야 했는데 내 안의 열정을 주체 못한 것이 가장 큰 오산이었다.

내 인상도, 이름도 많은 사람에게 그저 순하게 보이기만 하나보다. 어려서부터 늘 맏이니까, 착하니까, 성격 좋으니까의 말로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강한 척, 논리적인 척하기를 좋아한다. 이런 내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의 당당함이, 나의 강한 척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사서교사로서의 첫해, 돌이켜보면 많이 모자란 계획안과 자료지만 그 당시의 나는 잠을 설쳐가며 사서교사로서 아이들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학기 중에도 저녁 시간을 이용해 연수를 듣고 방학 중에는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하며 하루하루가 행복했으며, 사서교사를 거부하는 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지옥이기도 했다.

그 당시 함께 근무하는 교사 중에는 내가 ‘딴지 마왕’과 ‘딴지 대마왕’이라 명명한 이들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사서교사가 하는 모든 활동(수업, 행사, 대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사였다. 서가의 책을 청구기호 순으로 꽂으면 책을 찾을 수 없으니 책 제목 가나다 순으로 꽂아달라거나, 도서관 행사를 하지 말라거나, 읽기 시간에 도서관 이용법을 설명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등. 그렇게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며 1년을 힘들게 하던 이들 중 하나가 겨울방학 독서교실에 자신의 딸을 참여시키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는 전근을 갈 예정이었기에 마지막까지 또 무슨 문제 제기를 하려는 것일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학교를 떠나기 며칠 전, 그는 내게 사서교사인 나와 도서관을 두고 가는 것이 너무 아쉽다는 말을 했다. 그동안 사서교사의 모든 활동이 고마웠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더는 상처를 붙잡고 힘들어하지 않겠다
그렇게 힘든 1년을 보내고 우연한 기회에 신규 사서교사 연수에 강사로 서게 되었다. 아직 누군가의 앞에 서기엔 많이 모자란다 생각했기에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경력이 짧은 사서교사가 강사로 서는 것을 반대한다는 답장을 받고는 사서교사를 위한 연수에서는 사서교사의 관점에서 학교도서관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오기가 생겼다. 이렇게 서게 된 신규 사서교사 연수에서 ‘딴지 대마왕’과 ‘딴지 마왕’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으라고 이야기하고 싶었고, 혹시 사서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상처 받게 될지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주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우연히 만난 후배 사서교사로부터 신규 연수에서의 내 이야기를 기억하며 힘든 일을 이겨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한없이 감사했다.

이렇게 한 해 한 해를 보내며 나(사서교사)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서교사의 모든 활동을 아낌없이 지지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교장선생님도 만나게 되고, 자녀의 독서상담을 해오는 동료 교사들과 내 주변에 모여드는 아이들로 인해 보람되고 행복한 날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오면 또 손에 상처가 많아지듯,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상처가 아물기 전에 새로운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여러 모임에서 자신을 소개하게 될 때 잠깐 갈등하는 경우가 있다. 나를 사서교사라 소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일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고 나는 학교도서관을 사랑하며 내가 사서교사인 것이 자랑스럽고 감사한데 왜 잠시 망설여지는 것일까? 사서교사이기에 받았던 내 마음의 상처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남편은 내가 너무 히스토릭historic하단다. 과거의 일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집중하면 내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니 힘들고 아픈 일은 잊고 현재의 나를 지지해주는 동료 교사들과 아이들, 가족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정목 스님의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에 있는 이 말처럼.

“과거의 일을 놓지 못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앞당겨 근심에 빠져 있는데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이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고 있을 때 찾아옵니다. 많이 웃으며 사세요.”

나도 이제 발령장을 받던 그날, 상처 받았던 기억을 놓아주려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러 우리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사서교사로서의 삶은 참으로 보람되지만 아직은 험난한 길이기에 또 누군가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상처를 붙잡고 힘들어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보다 앞서 가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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