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서샘의 소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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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2-14 15:23 조회 3,321회 댓글 0건본문
‘만남의 광장’에서
유형별로 어린이와 소통하기
백진환 성남 당촌초 사서
학교도서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다. 도서관이란 말만 들어도 좋은데 앞에 학 교가 붙으면 더 역동적이고 생생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학교도서 관은 참 독특한 도서관 같다. 지역사회의 시민에게 봉사하는 공공도서관도 어느 정 도 이용자의 범위가 정해져 있고, 지역사회에 완전 개방하는 학교도서관도 많지만 대 부분의 학교도서관은 해당 학교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주로 이용을 한다. 그러다 보 니 사서의 입장에선 같은 이용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는 셈이다. 해마다 2, 3월이면 졸업생을 보내고 신입생을 맞이하는 과정도 늘 설레는 풍경이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 같이 머무르는 아이들을 이용자로 만나다 보면 학교도서관 은 그야말로 늘 만남의 광장이 된다. 매일 많은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학교도서관 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니, 만남에 있어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아이들을 만날 때 어떻게 하면 더 잘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출발해서 이런저런 시도도 많 이 했다. 그러던 중 성격 유형에 관한 공부를 통해 다양한 캐릭터들의 차이점과 풍부 한 개성을 접할 기회도 있었다. 아이들을 만날 때 학년별, 상황별 또는 유형별로 방법 을 조금 달리해 보니 훨씬 자연스럽게 소통이 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1학년 이용자교육으로 만남의 첫 단추를!
초등학교 1학년은 아직 유치원생의 티를 벗지 못한 그야말로 유아들이다. 교실에 들 어가기 무서워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는 아이, 교실 안에 있기 싫다고 울면서 보건실 로 달려가는 아이 등 참으로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을 해나간다. 나는 이런 1학년을 항상 3월 마지막 주까지 기다렸다가 만난다. 아이들이 교실 생활에 어 느 정도 익숙해져 갈 무렵 나는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초대한다. PPT를 통해 예쁘고 정성스럽게 만든 이용자교육 자료와 간단한 학습지 그리고 목걸이 타입의 도서 대출 증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맞이한다. 이 시간에 나는 유치원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재 미있고 쉽게 도서관 이용법을 설명한 후 최대한 상냥한 콧소리로 아이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목에 도서 대출증을 걸어 주고 눈맞춤을 한다. 바로 이때 1학년 신입 생들과 나의 첫 소통이 시작된다. 이 첫 만남이 6년의 만남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학년 도서부로 깊이 있게 마주하기
초등학교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있어서 만남의 스펙트럼이 넓다. 1학년이 유아 같 다면 6학년은 예비 중학생으로 성장 속도의 개인차가 커서 사춘기에 진입하는 학생도 여럿 보인다. 이런 6학년과는 일반적인 도서관 이용자와 더불어 도서부로 만나게 된 다. 도서부는 6학년을 대상으로 모집하는데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다 보니 도서부와 관계가 돈독해져서 대학생이 되서 찾아오는 제자는 모두 도서부 출신이다. 도서부 아 이들과는 다양하게 소통한다. 마치 또래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가령 내가 키우는 아들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아이들도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 방송, 인기 있는 유튜버 이야기, 아이돌 그룹 이야기, 유행하는 신조 어 배워 보기, 장래 희망직업 이야기까지 모든 대화가 다 가능하다. 특히 장래희망 이 야기를 할 때는 서로 신이 나서 영원한 의리를 맹세하기도 한다. 다양한 직업인으로 우리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해 보자는 결의를 다진다.
도서관 청소 당번 함께 일하는 기쁨+간식 나누기
우리 학교는 5학년에게 특별실 청소 구역을 지정해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통적으 로 5-2반이 도서관 청소 담당 학급이다. 4명의 학생들이 일정한 주기로 도서관에 오 다 보니, 학급 전체와 만나게 되는 셈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청소를 시키는 대신 책 정 리의 도움을 받는다. 청소는 내가 하고 아이들은 책 정리를 한다. 아이들은 쓸고 닦 는 청소는 싫어하지만 책 정리는 너무 재미있다고들 한다. 나로서는 정말 다행스런 일 이다. 방과 후에 아이들이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딱 15분을 정해 놓고 정리를 하 게 하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책 정리를 한다. 이때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아이들이 많이 빌려가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다 양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책 정리를 하다 보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다. 수고한 아이들에겐 늘 ‘달달구리’ 간식을 제공한다. 아마 우리는 간식으로 만난 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청소 당번들 중 6학년으로 진급한 아이들 가운데서 도서부 지원자가 대거 나온다는 것이다.
새 봄에 마주한 아이들 "안녕~" 먼저 인사하기
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학교도서관에 근무하면서 만난 학생들을 떠올리면 독서의 계절은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3월부터 5월까 지 정말 책을 많이 읽는다. 책을 읽는 것뿐 아니라 도서관에 많이 온다. 우스갯소리로 ‘폭주’한다. 그러다 6월부터 조금씩 감소해서 2학기에는 오히려 안정적인 추세를 보인 다. 왜 그럴까? 난 이 현상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봄에는 아이들이 새 학기, 새 교실, 새 친구들, 새 선생님 등 온통 새 것들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이다. 교실에서 마음 붙일 곳을 못 찾은 아이들도 있고, 아직 친한 친구를 못 사귀어 외로운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마음의 약이 되는 곳이 바로 학교도서관 그리고 책이다. 그래서 봄에 아 이들을 만날 때면 더욱 신경을 쓴다. “안녕”이란 인사를 모두에게 한 번씩 한다. 이 시 기에는 다른 말은 거의 안한다. “안녕!” 단 두 글자이지만 그 힘은 강력하다. 책을 대 출하고 반납해 줄 때마다 학생에게 “안녕∼” 하면 멋쩍게 슬며시 웃는 아이부터 다정 하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까지 모든 아이가 반응을 한다. “봄에 만난 아이들아, 모두 안녕!”
생각쟁이•걱정쟁이 아이들 과도한 접근 NO! 무심한 듯 편안하게~
나는 쇼핑을 할 때 직원이 과도하게 다가오는 것보다 “편히 둘러보세요.” 한마디 하고 나를 내버려 두는 매장이 좋다. ‘물건은 안 살 수도 있는데…’ 하는 걱정으로 친절과 관심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런 대응이 마음 편하다. 도서관에 자주 오는 아이들 중 에도 그런 경우들이 있다. 남들보다 머릿속에 생각과 걱정이 많은 유형의 아이들이다. “어서 와, 무엇을 도와줄까?”, “무슨 일이 있니?” 등 질문을 하고 관심을 보이면 오히 려 움츠려들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는 경우다. 나는 이런 아이들을 다 소 무심한 듯 편안하게 둔다. 한참을 그렇게 무심한 듯 대하면 아이들도 어느새 긴장 을 풀고 다가온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형제자매 관계의 어려움, 학원 스트레스, 친구 문제… 그럼 난 그냥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 준다. 어설픈 말로 조언하려다가 오히려 독이 될까봐 그냥 들어 준다.
다정다감+사교적인 아이들 소소한 이야기로 대화 잇기
아이들 중엔 유난히 웃음이 많고 다정하며 사교적인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대다수 밝고 쾌활하다. 이런 아이 들에겐 내가 먼저 과도하게(?) 말을 건다. “이번에 빌려간 책은 어땠어? 재밌었어?”, “오늘 급식 떡국이더라. 너무 기대되지 않니?”, “체육시간에 무슨 수업했어?”, “너도 혹시 로알드 달 좋아해? 선생님도 로알드 달 짱팬이야.” 등등 화젯거리는 무궁무진하다. 그 럼 아이들에게 얘기가 술술 나온다. 학교 옆 당골공원에서 전날 저녁 누가 새총 놀이 를 했는지 등등 별별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재미있다. 아이들이랑 이렇게 소소한 대 화를 하다 보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어른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아이들이다.
문제적 상황을 안고 오는 아이들 마냥 기다려 주기
학교도서관 단골들 중엔 문제를 안고 오는 아이도 가끔 있다.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한국말이 어눌한 데다 친구가 없어서 오는 아이, 너무 과격해서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아져 왕따가 된 아이, 너무 조용하고 순해서 놀림 받는 아이 등등 이유를 물어 보 기 전에 아이들은 다가와서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겪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때론 내 가 상담교사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럽다. 더구나 우리 학교에는 상담선생 님이 안 계신다. 그나마 보건선생님과 의논해 보면 보건실에서도 해당 아이가 단골이 라고 한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달달구리’ 간식을 주며 책을 권하는 것이 전부다.
학교도서관 단골들 중엔 문제를 안고 오는 아이도 가끔 있다.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한국말이 어눌한 데다 친구가 없어서 오는 아이, 너무 과격해서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아져 왕따가 된 아이, 너무 조용하고 순해서 놀림 받는 아이 등등 이유를 물어 보 기 전에 아이들은 다가와서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겪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때론 내 가 상담교사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럽다. 더구나 우리 학교에는 상담선생 님이 안 계신다. 그나마 보건선생님과 의논해 보면 보건실에서도 해당 아이가 단골이 라고 한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달달구리’ 간식을 주며 책을 권하는 것이 전부다.
학교도서관에는 많은 만남이 있다. 그 만남 속에서 아이들과 좀더 잘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 나이에, 스타일이 제각각인 아이들과 함께 행 복해지고 싶다. 훗날 아이들이 학교도서관에서 참 행복했다고 말하면 더할 나이 없이 기쁠 것 같다. 학교도서관은 만남의 광장이자 행복의 광장이니까.
학생들과 건강하고 유연하게
‘밀당’하려면
최윤정 서울 삼성고 사서교사
봄바람이 살갑고, 하늘은 맑다. 따뜻한 햇살이 움츠린 새싹들을 돋우는 활기찬 이 시기에 학교도서관은 어쩐지 조용하다. 지난해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평소보 다 한적하고 쓸쓸한 도서관을 지켰다. 학생들도 교사들도 상황에 적응하려 노력하다 보니 일 년이 금방 지나갔다. 그래서 올해 첫머리의 의미는 크다. ‘올해는 다르리라.’ 새 로운 각오와 결심으로 비장하게 도서관 문을 열었다. 여전히 운영이 100% 자유롭지 못하고 이용자 수도 예년에 비해 한참 적다.
하지만 적어도 작년보다는 적극적으로 이용자를 마주해야 할 때다. 바람직한 도서 관 운영에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이용자와의 소통’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 는 사실이다. 학교도서관이 이용자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마 음, 학생들이 독서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가해서 다양한 역량을 기를 수 있었으면 좋겠 다는 생각, 학교도서관이 외딴 섬이 아니라 교수 학습의 중심이자 장이 되길 바라는 소망은 이용자, 특히 학생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 모름지기, 진정한 사서라면 주 이용자층의 의견을 듣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홀로 도서관을 지키며 관장이자 운영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사서교사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부터 학생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 애썼던 노력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작 년에 인적이 드문 쓸쓸한 도서관에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느라 희미해 졌던 소통의 기억들을 되살리고, 올해도 다양한 방향으로 소통을 시도하기 위해.
먼저 웃고, 질문하고, 이름을 불러 주자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는 교사의 태도다. 먼저 인사하기, 먼저 웃어 주기, 먼저 질문하기, 이름 불러 주기, 간식 주기와 같은 단 순한 행동들이 학생들이 마음을 열고 교사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한다. 작은 씨앗이 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인사하기와 웃어 주기는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선생님 이 학생들의 발걸음을 도서관으로 향하게 한다. 책이 아니라 선생님을 보러 도서관에 오는 학생도 있다. 비록 선생님을 보러 왔지만, 학생이 도서관에 방문한 진짜 목적을 되찾게 해야 하는 법. 재잘거리며 이곳저곳 기웃대는 학생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현혹 (?)시켜 서가로 데려간 후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들려 보낸다.
이름 불러 주기는 아직 학교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생부터 어느새 터줏대감이 다 된 3학년 학생들까지 웃음 짓게 하는 마법의 도구다. 사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못한 탓 에 학생들을 상심하게 했던 일이 잦았다. 도서관에 자주 오는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이 내 업무용 컴퓨터 모니터 옆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유다.
매일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는 학생이 있었다. 요플레 하나 를 건네며 물었다. “점심은 안 먹니?” 그날, 조용히 책만 읽던 학생은 자신이 읽던 책 을 가져와 비슷한 주제이면서 조금 더 쉬운 책이 없느냐 물었다. 몇 주가 지나자 학생 과 나는 학생의 관심 분야와 관련 있는 진로를 함께 찾아보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렇 게 한 번 좋은 경험을 가지고 돌아간 학생들은 도서관의 단골이 된다.
편독 방지 프로젝트
소통이 가능한 독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비록 작년에는 운 영이 조금 어려웠지만, 올해로 4년째 시도하는 ‘편독 방지 프로젝트’는 학생들과 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편독 방지 프로젝트’란 000번대(총류)부터 900 번대(역사)까지 10개 분야에 해당하는 책을 대출해서 읽고 반납하면서 쿠폰을 제출하 면 도장을 찍어 주고, 학생이 이를 다 채우면 상품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소통의 포인트는 읽은 책에 대한 내용 소개와 잘 들어 주기에 있다. 학생들이 책을 반납하며 1분 정도 책 내용을 정리해 이야기하고, 간단한 질문에 대답해야 도장을 찍 어 주는 것이다. 이때 교사는 반드시 집중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학생과 눈을 맞추 며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 줘야 한다. 총 3∼5분 이내의 짤막한 대화를 통해 학생들의 관심 분야나 말하기 수준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제시한 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학생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학생들이 도장을 4∼5개쯤 채울 무렵에는 도 서관에 자신 있게 와서 “선생님! 저 도장 받으러 왔어요.”라고 외친다. “이 책은 자기 진로에 확신이 없는 친구들이 읽으면 좋겠어요.”라며 작은 조언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 렇게 친해진 학생들은 도서 구입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거나, 다른 독서 프로그램에도 쉽게 참여한다.
서평단과 기사 읽기 운동
언택트 시대다. 오프라인 소통뿐 아니라 온라인 소통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온라인 독서 프로그램을 소통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겠다. 작년에 운영했던 독서 프 로그램 중 원래부터 온라인으로 이뤄지던 ‘삼성서평단’과 오프라인으로 기획했다가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전환한 기사 읽기 운동을 통해 온라인 소통의 예시를 이야 기하겠다.
두 프로그램에서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온라인에 글을 게시하면 이를 읽고 수정 할 부분이나 칭찬할 부분, 보완할 부분 등을 정리하여 댓글을 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을 통해 학생들의 글쓰기 수준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차시가 지날수록 학생들이 성 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른 선생님들께도 적극 추천한다. 댓글 다는 작업은 생 각보다 쉽지 않다. ‘삼성서평단’의 경우, 40여 명의 학생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서평을 올린다. 기사 읽기 운동의 경우 30여 명의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 편씩 기사를 읽고 보 고서를 올리는데, 최대한 빨리 피드백을 줘야 학생들이 부족한 부분을 참고해서 다음 글을 작성할 수 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 때는 손이 가지 않는 업무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네, 앞으로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써봐야겠어요∼ 감사합니 다.”와 같은 답글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다음 게시글을 확인하게 된다.
나아가 온라인의 이야기를 오프라인으로 가져오면 학생들과의 보다 발전적인 대화 가 가능해진다. “3차 서평은 1, 2차보다 많이 발전했던데? 이번 책을 지난번 책보다 재미있게 읽었니?” 우연히 학생을 복도에서 만나 가볍게 던진 질문이 학생들에게는 사 서교사를 더욱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가 보다. 이런 학생들은 꼭 좋은 책 찾는 법, 글 잘 쓰는 법, 독서 및 글쓰기 포트폴리오 작성하는 법 등 질문을 들고 도서관을 찾는다. 질문에 답하면서 자연스레 이야기의 주제가 확장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 게 된다. 이를 통해 학생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학생의 요구를 파악하기 위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절한 선’
학생과의 관계 맺기에 있어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에서 적절한 선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친밀하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교사이되 전문성 있고 신뢰가 가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말하는 것을 조심하게 하 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이 부분은 젊거나 경력이 짧은 선생님들이 어려워하고 고민하 는 문제 같다. 나 역시 교직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팁을 소개하겠다.
첫째, 첫 만남에서 ‘예의를 지킬 것’을 강조한다.
발령받은 첫해, 도서부의 한 학생이 인사도 없이 벌컥 사서교사실의 문을 열고 들어 와서는 무척이나 예의 없는 태도로 궁금한 점을 물은 적이 있다. 다음 동아리 시간이 마침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시간이라 활동 전 예의에 대해 짧고 강하게 언 급했다. 그날 예의 없었던 학생이 꾸벅 인사를 하고 도서관을 나서는 모습을 잊을 수 가 없다. 이후 나는 신입생 대상 도서관 이용교육이나 동아리 첫 시간에 항상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강조한다. “저는 늘 학생들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저 에게 예의를 지켜주셔야 저 역시 예의 있게 여러분을 대할 수 있어요.”와 같은 담담한 소개말이 의외로 도움이 된다.
둘째,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학생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다 른 학생이나 선생님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학생에게는 “외모에 대한 언급도 성희롱 에 포함되는 거 알면서 이야기하는 거지?”와 같이 뼈 있는 농담을 던진다. 조금이라도 예의가 없는 말을 내뱉는 학생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맞아? 선생님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학생의 장난스 러운 말에 괜히 정색하는 건 아닐까 고민할 수도 있지만, 선을 조금이라도 넘는다고 느껴졌을 때는 바로 이야기해 주는 편이 오히려 학생에게도 도움이 된다.
셋째, 갈등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기준을 명확히 정한다.
사실 사서교사는 학생들과 갈등할 만한 상황이 많지 않다.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시상 및 생활기록부 혹은 학생 태도 등과 관련된 일일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한 학생이 프로그램 관련 문의를 하러 왔는데, 얼굴에 벌써 ‘나 불만 있어요.’라고 쓰 여 있었다. 삼진 아웃 제도에 따라 학생이 아웃되었고, 따라서 활동 인정이 되지 않는 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온라인 게시판에 미리 올려두었던 안내를 증거로 보여 주었다. 학생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지만, 미리 공지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 정하고 돌아갔다. 이와 같이 반드시 독서 프로그램의 생활기록부 기입 기준 및 시상 기준을 프로그램 전에 미리 명확히 안내하고, 시상의 경우 점수를 매겨서 공지하는 편이 좋다.
넷째, 교사는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전문성이 있는 교사는 학생들의 신뢰를 받는다.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제멋대 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사서교사라면 적어도 책과 독서교육에 관한 부분에서 전 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종종 묻곤 한다. “선생님 여기 있는 책 다 읽어 보셨어요?” 대답은 항상 같다. “아니. 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야.”
오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잇고 있습니다
전은경 대구과학기술고 사서
학교에서 역할놀이, 올해의 배역은 방역 담당관입니다
2020년은 누구에게나 직업의 본질을 물어보게 되는 한 해였다. 사서 또한 예외는 아 니어서 자괴감을 이야기하는 사연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 역시 10년 만의 인사이 동이라는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출근 첫날부터 ‘아침 등굣길 방역’이라는 임무를 받았 다. 사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당황은 오래하지 않았다. 교무부장님들의 머릿속에 사서 는 후보 선수 1번 같은 존재여서 모든 급박한 일에 동원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갑작 스레 담임선생님을 찾아오신 학부모가 30분간 서성일 때도, 장학사가 온 날 국민의례 진행 순서가 뒤바뀔 때도, 시험감독 한 명이 펑크 날 때도, 심지어 전산실 선생님이 연 가를 쓴 날에도 사서는 홍반장처럼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미리 예고해 주 는 일이란 양반에 속한다.
낯선 학교 건물 로비에서 처음 보는 선 생님들이 120명 지나가실 때까지 최대 한 능숙한 척 방역 담당자 역할에 최선 을 다했다. 한 달쯤 지난 후, 함께 방역업 무를 한 선생님은 나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코로나 와중에 처 음 보는 분이 너무 열심히 하길래 보건소 에서 파견 온 방역 담당자인 줄 알았잖아 요!” 학교 출입구를 지키는 업무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해야 했지 만 전체 교직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가장 빨리 익힐 수 있는 일이기도 해서 기뻤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로 시작되는 이야기
나의 특기는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파악해 그 친구가 도서관에 두 번째 왔을 때 자 연스레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수업으로 학생들이 도서관에 올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지면서 그 에너지는 온전히 선생님들에게 전해졌다. 아침마다 교문에 서 얼굴을 익힌 덕분인지, 성함을 부르며 인사를 해서인지, 업무적인 요청을 할 때에도 나를 대하는 선생님들의 태도는 한결 친근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얼굴을 익힌 친근함 덕분인지 학생들이 오지 않는 도서관은 늘 선생님들의 방문으로 북적였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법! 늘 혼자 고민하던 책 큐 레이션과 독서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결국 개인사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일 이 많아졌다. 학교에서 몇 년 동안 함께 근무한다고 해도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 는 드문 법이다. 그마저도 요즘은 개인정보를 드러내길 꺼리는 분위기라 질문도, 대답 도 조심스럽다. 나 역시 책이라는 매개체가 아니라면 자연스러운 대화가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 프랑스인들은 질투를 감추기 위해 입만 열면 늘 동지애, 자 유, 솔직함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전한다. 100% 공감되는 말이다. 우리는 어떤 감정을 감추기 위해 둘러 표현할 때가 많다. 그런 이야기는 늘 “내가 아는 사람 중에∼”라고 시작된다. 그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말하는 이의 관심사와 본인 이야기가 뒤죽박죽 혼재돼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지 않더라도 그 이야기는 중요하다. 아는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말하는 사람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신호일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시작되면 학교도서관은 어느덧 문화살롱이 되어 선 생님들의 내면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 주는 토론의 장으로 변신하 곤 한다.
조직사회에서 조직 만들기
그동안 전쟁 같은 학교생활의 한복판에서 친목행사는 업무의 연장으로 여겨졌었다. 그런데 집합 인원에 제한이 생기고 사적모임이 금지되면서 공개적, 비공개적 만남들이 대부분 없어졌고 교사 친목모임마저 간절하게 기다려질 지경이었다. 그즈음 도서관에 는 제각기 시집을 빌리러 오는 선생님이 몇 분 계셨다. 나는 얼른 중매쟁이의 임무를 수행했다. “우와, 시집 읽으시네요. 선생님도 시집 빌려 가시던데.” 선생님들은 은밀한 취향을 공유하는 듯 금세 관심을 보였다. 시집을 읽는 선생님들은 독서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고, 성원에 힘입어 일사천리로 교사 독서모 임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때 아닌 ‘시문학 함께 읽기’ 모임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없는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 ①교장선생님께 구두
보고를 한다.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오면 ②담당 부서 선생님과 예산 협의를 한다. 특 정예산을 지정해 주면 ③교사독서모임 계획서를 작성하고 승인받는다. ④계획서 승인 에 의거하여 회기별 도서 구입과 간식비 사용 결재를 받는다. ⑤도서가 도착하면 돈 독한 멘트와 함께 모임 멤버에게 배달한다.
다행히 참석 선생님들은 독서모임에 진심이었고 매번 배달되는 시집을 꼼꼼하게 읽 어오셨다. 반응이 좋으니 내년에도 계속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시문학기행을 하자 등등의 계획을 쏟아내셔서 나는 그저 못 들은 척할 뿐이었다.
또 하나 형성된 모임은 이름도 구성원도 정해지지 않은 별칭 ‘점조직’이다. 모임의 성격도 뚜렷하지 않고 모이는 멤버의 참석 유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프리스타일 모임 이다. 점조직은 연락을 통해 모이는 법이 없다. 우연히 도서관에 오는 시간이 겹치면 곧장 모임으로 이어졌다. 점조직의 하이라이트는 학교 인근 야외동산에서 가진 번개 만남을 꼽을 수 있다. 우리 학교 근처에는 대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야외음 악당’이라는 만남의 장소가 있다. 친구들과 자주 가던, 연인과 한 번씩은 방문해 봤 을 그 장소에서 직장동료들, 그것도 연령과 성별이 다른 개인들이 모여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생 이후 이런 자유는 얼마만인가? 잔디밭에 둘러앉아 토론을 즐기는 유럽의 젊은이들 부럽지 않은 하루였다. 전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인 대구 에서 이토록 진보적인 점들의 모임을 가질 수 있다는 행복이란!
오늘도 한 유령이 학교를 떠돌고 있다. 사서라는 유령이다. 누구나의 이야기에 생동 감을 불어넣어 책으로 만들어 주는, 이 사람의 이야기와 저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해 주는 중매쟁이 유령은 오늘도 조용히 익명이길 원하는 무수한 교무실 영혼들 사이에 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생을 살고 있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1 <학교도서관저널> 4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