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힐링 나를 치유하는 것들, 내게 힘이 되는 것들]그게 진정한 힐링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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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3-10 17:26 조회 6,582회 댓글 0건본문
학교도서관 사서와 도서담당 교사 사이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가깝고도 먼 사이’가 아닐까 한다. 서로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이인 동시에, 가장 많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이다. 나에게도 그런 도서담당 교사가 있었다. 그 선생님과의 일을 말하기 위해 그 선생님과 만나기 이전의 상황부터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학교도서관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08년의 일이다. 학교도서관에서의 첫해는 모든 것을 새로 알아가는 과정이나 다름없었기에 주어진 일을 소화해 내기에 급급했다. 더구나 나의 첫해에는 전공자인 나보다도 도서관에 대해 더 잘 아는 5년차 담당교사가 있었다. 이 5년차 담당선생님은 전공자인 나보다도 훨씬 뛰어난 능력과 학교도서관에 대한 열정까지 고루 갖춘 베테랑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이 있어서 나의 부족함이 적당히 메워지기도 했지만, 모든 학교도서관의 일은 그 베테랑 선생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속에서 이루어졌다.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 어떤 누구도 학교도서관 전문가로서 내가 역량을 발휘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나의 위치는 그저 그 베테랑 선생님의 업무를 덜어주는 업무 보조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차츰 욕심이 났다.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싶었고, 내가 꿈꾸는 도서관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베테랑 선생님이 있는 한 나는 한낱 보조자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그 선생님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났으므로(게다가 이 선생님은 내가 학교도서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부러 도서관에 잘 들르지도 않을 만큼 배려심까지도 짱이었다). 마음속으로 그 선생님이 어서 다른 학교로 발령 나기를 바랐다. 마음속에 전문 사서로서의 큰 포부를 품고서….
내게 먼저 손 내민 선생님
이렇게 학교도서관에서의 1년의 시간이 흐른 2009년, 드디어 애증 관계의, 문제의 그 도서담당 선생님과 만나게 된다. 베테랑 선생님이 전근을 가고 신임으로 온 새로운 도서담당 선생님이 바로 나의 애증의 대상이다.
앞서 말했듯이 내 주도의 도서관을 꿈꾸던 나의 포부를 위해 나는 먼저 ‘선방’을 날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내 영역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첫해 겨울방학부터 조심스럽게 준비했던 것이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위한 어머니 독서동아리 조직이었다. 학부모 독서동아리를 비롯해, 도서관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을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하고자 애썼다. 새로이 도서담당을 맡게 된 이 선생님은 다른 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전근을 왔고, 도서담당 업무도 처음인 선생님이었다. 말 그대로 한 해 먼저 시작한 나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어머니 독서동아리를 조직하여 시작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 활동은 좋은 호응을 얻어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선생님들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재미가 났다.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부당함도 느껴졌다. 일은 내가 다 하는데, 기안도 결재도 그 선생님 몫이었다. 나는 그냥 일만 하는 일개미 같았다. 그런 생각들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커질 즈음 드디어 일이 터졌다. 교감선생님이 지역 교감단 회의에서 소개할 우리 학교 어머니들의 책 읽어주기 활동 자료 준비 과정에서 담당 선생님과 나는 크게 다투게 되었다. 도서관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가 날 만큼. 처음에는 자료 준비 문제로 시작했으나, 옥신각신 말이 오가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불만이며, 도서관에 대한 입장차 등의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정말 어이가 없었고 너무 속상했다. 그렇게 펑펑 울어본 적이 손가락에 꼽을 만큼 많이 울었다. ‘정말 도서관이나 독서에 대한 생각들이 너무도 다르구나. 어떻게 이런 사람이 도서담당자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울분을 터트리면서….
이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담당 선생님은 임신과 출산으로 휴직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담당교사는 없어지고 나는 도서관 담당자가 되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2년 3월 2일 첫 교직원 회의가 열리던 날! 교직원 회의 말미에 나와 언쟁을 벌였던 전임 도서담당 선생님이 복직 인사를 했다. ‘먼저 아는 체를 할까? 뭐라고 인사를 하지? 잘 지냈냐고? 그때 선생님에게 내가 마음의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다고….’ ‘에이,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뭘. 지금 그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너무 새삼스러운 거지.’ 두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회의가 끝나자마자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잘 있었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때 선생님과 다투고 제대로 사과도 못한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였어요.”
‘나만큼 이 선생님도 그때의 그 일이 많이 마음에 남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또한 2년의 시간 동안 연장자인 내가 먼저 화해하지 못한 옹졸함과 도서담당자가 되어 일을 하면서 내가 그간 알지 못했던 담당자로서의 고충을 깨닫게 되면서 늘 마음 한켠에 선생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도 먼저 손 내밀지 못했었는데 흔쾌히 선생님이 내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소통의 과정이, 이해의 시간이 이 일을 계기로 친해진 우리는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눈다.
“사실 난 도서관 업무나 독서에 대해 잘 몰랐었어요. 그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선생님이 하는 일들이 좀 버겁기도 하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있었어요. 또 선생님이 말하는 것에는 종종 학교가 아닌 도서관의 입장에서만 말하는 것들도 있었구요. 서로 이해가 부족했던 거죠.”
“나 또한 그래요. 도서관 담당자가 되어보니까, 내가 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냥 일부에 지나지 않더라구요. 선생님 수업 외에 기안에 품의, 공문서 업무 등 참 버거웠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학교라는 조직체를 많이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도 들었어요. 그러니 학교는 망각하고 도서관만 따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지요.”
“예전에 선생님이 나한테 말하던 것들이 뭔지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선생님이 2년간 변화시킨 일들을 보니 사서라는 일, 도서관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애증의 관계였던 그 선생님과 나는 이제 서로에게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조언해주는 훌륭한 상담자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내가 추진하려고 하는 도서관 일들이 학교라는 시스템, 교사라는 시각에서 볼 때 제대로 잘 부합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때면 선생님을 찾아 자문을 구하곤 한다. 선생님은 또 내가 추진하는 도서관 일에 관심을 보이고 조언해주고 응원도 아끼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우린 서로의 시각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소통이 필요했고,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과정 없이 일하다 보니 당연히 삐걱일 수밖에. 많은 사서와 도서담당교사가 이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비단 사서와 도서담당만의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얼마 전의 사서와 사서교사와의 언쟁 또한 같은 경우란 생각이 든다.
가끔 우리가 휘둘러대는 흑백론의 칼날들이 서로를 다치게 한다. 때론 소통과 이해의 시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상처도 있다. 그렇다면, 기왕 난 상처라면 그 상처를 어떻게 추스릴 것인가? 아픈 내 상처를 보듬고 상대를 원망할 것인가? 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말이긴 하지만,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는 방법은 상대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는 거란 생각이 든다. 내 시각이 아닌 상대의 시각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것이 진정한 힐링이 아닐까 한다. 2013년은 그런 힐링의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학교도서관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08년의 일이다. 학교도서관에서의 첫해는 모든 것을 새로 알아가는 과정이나 다름없었기에 주어진 일을 소화해 내기에 급급했다. 더구나 나의 첫해에는 전공자인 나보다도 도서관에 대해 더 잘 아는 5년차 담당교사가 있었다. 이 5년차 담당선생님은 전공자인 나보다도 훨씬 뛰어난 능력과 학교도서관에 대한 열정까지 고루 갖춘 베테랑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이 있어서 나의 부족함이 적당히 메워지기도 했지만, 모든 학교도서관의 일은 그 베테랑 선생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속에서 이루어졌다.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 어떤 누구도 학교도서관 전문가로서 내가 역량을 발휘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나의 위치는 그저 그 베테랑 선생님의 업무를 덜어주는 업무 보조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차츰 욕심이 났다.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싶었고, 내가 꿈꾸는 도서관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베테랑 선생님이 있는 한 나는 한낱 보조자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그 선생님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났으므로(게다가 이 선생님은 내가 학교도서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일부러 도서관에 잘 들르지도 않을 만큼 배려심까지도 짱이었다). 마음속으로 그 선생님이 어서 다른 학교로 발령 나기를 바랐다. 마음속에 전문 사서로서의 큰 포부를 품고서….
내게 먼저 손 내민 선생님
이렇게 학교도서관에서의 1년의 시간이 흐른 2009년, 드디어 애증 관계의, 문제의 그 도서담당 선생님과 만나게 된다. 베테랑 선생님이 전근을 가고 신임으로 온 새로운 도서담당 선생님이 바로 나의 애증의 대상이다.
앞서 말했듯이 내 주도의 도서관을 꿈꾸던 나의 포부를 위해 나는 먼저 ‘선방’을 날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내 영역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첫해 겨울방학부터 조심스럽게 준비했던 것이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위한 어머니 독서동아리 조직이었다. 학부모 독서동아리를 비롯해, 도서관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을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하고자 애썼다. 새로이 도서담당을 맡게 된 이 선생님은 다른 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전근을 왔고, 도서담당 업무도 처음인 선생님이었다. 말 그대로 한 해 먼저 시작한 나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어머니 독서동아리를 조직하여 시작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 활동은 좋은 호응을 얻어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선생님들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재미가 났다.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부당함도 느껴졌다. 일은 내가 다 하는데, 기안도 결재도 그 선생님 몫이었다. 나는 그냥 일만 하는 일개미 같았다. 그런 생각들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커질 즈음 드디어 일이 터졌다. 교감선생님이 지역 교감단 회의에서 소개할 우리 학교 어머니들의 책 읽어주기 활동 자료 준비 과정에서 담당 선생님과 나는 크게 다투게 되었다. 도서관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가 날 만큼. 처음에는 자료 준비 문제로 시작했으나, 옥신각신 말이 오가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불만이며, 도서관에 대한 입장차 등의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정말 어이가 없었고 너무 속상했다. 그렇게 펑펑 울어본 적이 손가락에 꼽을 만큼 많이 울었다. ‘정말 도서관이나 독서에 대한 생각들이 너무도 다르구나. 어떻게 이런 사람이 도서담당자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울분을 터트리면서….
이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담당 선생님은 임신과 출산으로 휴직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담당교사는 없어지고 나는 도서관 담당자가 되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2년 3월 2일 첫 교직원 회의가 열리던 날! 교직원 회의 말미에 나와 언쟁을 벌였던 전임 도서담당 선생님이 복직 인사를 했다. ‘먼저 아는 체를 할까? 뭐라고 인사를 하지? 잘 지냈냐고? 그때 선생님에게 내가 마음의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다고….’ ‘에이,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뭘. 지금 그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너무 새삼스러운 거지.’ 두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회의가 끝나자마자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잘 있었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때 선생님과 다투고 제대로 사과도 못한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였어요.”
‘나만큼 이 선생님도 그때의 그 일이 많이 마음에 남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또한 2년의 시간 동안 연장자인 내가 먼저 화해하지 못한 옹졸함과 도서담당자가 되어 일을 하면서 내가 그간 알지 못했던 담당자로서의 고충을 깨닫게 되면서 늘 마음 한켠에 선생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도 먼저 손 내밀지 못했었는데 흔쾌히 선생님이 내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소통의 과정이, 이해의 시간이 이 일을 계기로 친해진 우리는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눈다.
“사실 난 도서관 업무나 독서에 대해 잘 몰랐었어요. 그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선생님이 하는 일들이 좀 버겁기도 하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있었어요. 또 선생님이 말하는 것에는 종종 학교가 아닌 도서관의 입장에서만 말하는 것들도 있었구요. 서로 이해가 부족했던 거죠.”
“나 또한 그래요. 도서관 담당자가 되어보니까, 내가 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냥 일부에 지나지 않더라구요. 선생님 수업 외에 기안에 품의, 공문서 업무 등 참 버거웠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학교라는 조직체를 많이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도 들었어요. 그러니 학교는 망각하고 도서관만 따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지요.”
“예전에 선생님이 나한테 말하던 것들이 뭔지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선생님이 2년간 변화시킨 일들을 보니 사서라는 일, 도서관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애증의 관계였던 그 선생님과 나는 이제 서로에게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조언해주는 훌륭한 상담자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내가 추진하려고 하는 도서관 일들이 학교라는 시스템, 교사라는 시각에서 볼 때 제대로 잘 부합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때면 선생님을 찾아 자문을 구하곤 한다. 선생님은 또 내가 추진하는 도서관 일에 관심을 보이고 조언해주고 응원도 아끼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우린 서로의 시각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소통이 필요했고,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과정 없이 일하다 보니 당연히 삐걱일 수밖에. 많은 사서와 도서담당교사가 이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비단 사서와 도서담당만의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얼마 전의 사서와 사서교사와의 언쟁 또한 같은 경우란 생각이 든다.
가끔 우리가 휘둘러대는 흑백론의 칼날들이 서로를 다치게 한다. 때론 소통과 이해의 시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상처도 있다. 그렇다면, 기왕 난 상처라면 그 상처를 어떻게 추스릴 것인가? 아픈 내 상처를 보듬고 상대를 원망할 것인가? 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말이긴 하지만,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는 방법은 상대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는 거란 생각이 든다. 내 시각이 아닌 상대의 시각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것이 진정한 힐링이 아닐까 한다. 2013년은 그런 힐링의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