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특집 힐링 나를 치유하는 것들, 내게 힘이 되는 것들]월요일 오후 6시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3-10 17:23 조회 7,840회 댓글 0건본문
교사 진영란, 김밥에 낚이다
자아가 강하고 남에게 뒤지는 걸 싫어했던 나는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였다. 아이들에게도 사무적이고,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신경질적인 교사였다.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도 겉으로는 원만해 보여도 무언가 열등감에 사로잡힌 듯 자신을 다 드러내어 놓지 못했다.
초임 시절 대학원 과제 때문에 시작하게 된 토론수업 덕분에 ‘수업 잘한다’ 소리를 듣게 된 나는 토론수업을 더 잘해 보려는 욕심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듣고, 또 어떤 아이들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책 읽기 시간은 조바심과 서운함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이런 불순한 의도를 알 리 없는 같은 학년 황정원 선생님은 아이들과 토론을 하고, 책을 읽어주는 내 모습이 기특했던지 그림책 모임이 있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며 나에게 손을 내미셨다. 아이들과의 책 읽기를 반쯤 포기했던 터라 갓 돌이 지난 아들 녀석에게 필요한 도서목록이나 얻어보겠다는 얄팍한 심산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월요일 6시! 그림책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황정원 선생님 손에 이끌려 망설이며 찾아간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치원 교사에서 고등학교 중국어 교사, 사서교사, 어머니 사서까지 10여 명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 김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좋아하는 김밥 때문이었을까? 지금까지 느꼈던 동료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김밥을 오물거리고 있을 때, 발제를 맡은 선생님이 그림책 『백두산 이야기』(류재수, 보림)를 펼쳐 들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앤가? 그림책을 다 읽어주게? 읽었다 치고 그림책에 대한 정보나 좀 주지.’라는 푸념도 잠시. 양면에 펼쳐진 역동적인 그림이 나를 압도하였다. 그림책이 왜 보아야 하는 책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처음 접한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유년 시절의 나와 대면하다 『점』
그림책 모임 ‘동화홀씨’에서 하게 된 첫 발제는 그야말로 운명이었다.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열등감의 근원이었던 23년 전의 나와 마주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운명의 책은 피터 레이놀즈가 글과 그림을 그린 『점』(문학동네어린이)이었다. 원래 발제도서는 『느끼는 대로』(피터 H. 레이놀즈, 문학동네어린이)였다. 그런데 이 작가의 다른 책 『점』을 보면서 커다란 도화지 앞에 작게 웅크리고 있는 베티가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모를 동질감에 사로잡혀 베티가 그린 점을 응시했다. 그리고 나를 만났다. 20여 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부끄러웠던 기억을 꺼내 놓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먹었던 김밥 향이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을 수도 있다.
발제도서를 정해 놓고 한참 동안 망설였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했고, 동료 선생님들께도 읽어주었고, 자료도 찾았으니 쓰기만 하면 되는데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뒤 텅 빈 교실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발제문을 써 내려가는 동안 운 것 같다. 키도 크고 예뻤던, 어딜 보나 나에게 갑이었던 어여쁜 친구와 미술대회를 준비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운명의 발제문은 이러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이 떠올랐다. 공교육의 미술 시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특히 미술에 특별난 소질이 있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이 책을 읽고 그 막막했던 미술 시간의 압박이 떠오를 것이다. 나도 역시 그랬다. 미술을 잘하는 친구와 미술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과학 상상 그리기였나보다. 내 옆에 앉은 친구는 잘도 그렸다. 그런데 난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8절 도화지가 그렇게 드넓을 줄이야.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난 친구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 친구는 연습 시간마다 조금씩 다른 그러나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바닷속을 그렸고 나는 연습 시간마다 그 친구를 따라 그렸다. 왜 그랬을까? 미술을 지도하신 선생님은 한 마디도 해주지 않으셨다. 그 대회를 준비하신 선생님은 벌써 나를 잊으셨겠지만 그 기억은 평생 나를 괴롭혔다. ‘난 창의적이지 않아!’라는 스스로의 편견에 20여 년을 갇혀 살아왔다. 나에겐 베티의 미술선생님 같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왜 없었을까? 지금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일까?
책을 읽어주면서 몇 번인가 목이 메었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웠다.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미술 시간’과 관련된 추억이었다. 좌절하고 있는 그 순간에 베티의 선생님처럼 나를 일으켜 세워준 선생님을 떠올려 보고, 우리는 어떤 선생님인지, 그리고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싶었다.
이진숙(사서교사) — 초등 시간 미술은 놀이잖아요. 중학교 미술 시간에 운동장에서 나무를 그리고 있는데 미술 선생님에게 ‘이게 뭐냐’ 하는 핀잔을 받았어요. 미술 시간이 노는 시간이 아닌 거예요. 친구가 그리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미술 시간이 싫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미술 시간에 자율학습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전의 미술 선생님의 한 마디에 미술이 싫어요. 그 선생님의 옷차림도 생각이 나고 그때의 학교 계단도 생각이 나요. ‘이것밖에 못 하니?’, ‘이게 뭐냐’라는 말조심을 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돼요. 학교에서 도서관 행사를 추진하다보면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니?’ 하고 말을 해 주려고 노력해요.
장형진(고교교사) — 와이프랑 둘 다 그림을 못 그려요. 그런데 딸은 그림을 잘 그려요. 일곱 살짜리인데 그림을 잘 그려요. 그림일기를 그리라고 하잖아요, 거침없이 그려요. 두려움 없이 그려요. 그릴 때마다 ‘절묘하네.’ 하면서 말해주니까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린 것 같아요. 칭찬이라는 것이 쉽지 않고, 자아 존중감을 주는 것이 교사인 거 같아요. 이름을 쓰라고 하잖아요. 자기 이름을 쓰라는 것은 ‘자아 존중감’이 있잖아요. 이름 쓰는 것과 관련해서, 자기 이름을 쓰고 내 이름을 쓸 수 있다는 말로 나중에 훨씬 멋진 점을 그릴 수 있다고 하잖아요.
황정원(초등교사) — 우리 아이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와 비교해서 스스로 못 그렸다고 생각을 했어요. 내가 말한 ‘엄마를 닮아서 잘 그릴 거야’ 혹은 진영란 선생님의 ‘잘 그렸구나’라는 말에 바뀌어졌는지, 그 뒤에 우리 아이가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어요.
진영란(초등교사) — 저는 칭찬했다는 것이 전혀 생각이 안 났어요.
황정원(초등교사) — 우리 아이가 칭찬받은 수묵화를 벽에 붙여 놓았어요.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이 ‘전교에서 제일 좋은 붓을 가져왔구나’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진영란(초등교사) — 제가 본의 아니게 베티 선생님 같은 역할을 했군요. 원혁이한테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정은경(사서교사) — 미술 시간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잖아요. 미술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에도 소외감을 받는 아이가 있을 것 같아요. 계단에 앉아 있는 아이가 있어요. 제가 없으면 들어와서 책을 보는 거예요. 제가 있으면 수업에 들어가게 하거든요.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 아이가 도서관을 좋아한다는 것을 선생님들도 아시는 것 같아요. 그런 아이에게는 도서관이 정말 좋은 장소가 되는 것 같아요. 쉬고 싶고 위로받을 수 있는. 미술 시간이 아니더라도 베티 같은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진영란(초등교사) — 저는 사실 이 얘기를 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어요. 남의 그림을 베꼈다는 죄의식이 저를 많이 짓눌렀던 것 같아요. 사실 어떻게 그리라고 가르쳐 주시지는 않고 그냥 그리라고만 하신 선생님이 원망스러워요. 그래서 저는 과학상상 그리기 대회 할 때, 꼭 사전에 많은 장면을 보여주게 돼요.
장형진(고교교사) — 누구나 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을 거예요. 그런 실수와 시행착오들이 우리를 성숙한 교사로 만들지 않나 싶어요. 소중한 기억을 꺼내 놓으신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발제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잠시 망설였고, 조금 부끄러웠고, 많이 편안했다. 책에서 만난 베티의 선생님, 우리 모임은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가슴 한켠에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과감하게 점을 찍어내는 녀석을 만난다면, 망설이지 않고 커다란 액자에 걸어 전시해 주리라.
혼내지 않는 교사로 거듭나다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술 한잔 기울이지 않는 사이지만 매주 모여 김밥 먹으며 그림책 이야기하느라 끈끈한 정이 쌓여가던 우리는 번개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장소는 순천 기적의 도서관. 운전이 가장 쉽다는 화끈하신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타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우리는 순천으로 향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아름답고 잘 정돈된 서가, 숨고 싶은 아이들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반영한 세심한 인테리어에 감탄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할머니 자원봉사자를 향해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할머니께서 아이들에게 읽어주신 책은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구스노키 시게노리, 이시이 기요타카, 베틀북)였다. 무엇엔가 잔뜩 화가 나서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는 주인공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한테 매일 혼나는 우리 반 혁규가 떠올랐다. 날마다 손톱을 물어뜯어서 반달만한 손톱을 가진 장난꾸러기 녀석이다.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칭찬받을 수 있을까? 나는 나쁜 아이일까?’ 축 처진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이 너무 무거워 보여 안쓰럽기만 하다. “미안해. 선생님이 혼내기만 했구나. 참 잘 썼네. 정말 좋은 소원이구나.” 주인공의 선생님은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쓴 소원쪽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만다. 주책없이 내 눈에서도 왈칵 뜨거운 무언가가 쏟아진다. 아이들을 채근하고 닦달했던, 성급했던 못난 어른의 모습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착한 아이가 되겠습니다.’ 책은 주인공의 행복한 꿈으로 마무리가 된다. 자원봉사 할머니가 마지막 책장을 덮기 전에 이야기방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버렸다.
구내 서점에 들러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를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길에 나도 소원을 빌어 본다. ‘하느님, 제발 혼내지 않게 해 주세요. 더 좋은 엄마, 너그러운 선생님이 되게 해 주세요.’
마음의 벽을 허물다 『친구랑 싸웠어!』
그림책 모임을 시작한 지 6년, 아가씨 선생님들은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책과 함께 키우고 있다. 혈기 왕성하던 선배님들은 어느덧 중견교사가 되어 있고, 나 또한 두 아이의 엄마로 나이 들어가고 있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서 학교에서 일을 맡아 진행해야 하는 자리가 자꾸 생기고, 내 맘 같지 않은 동료 교사들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아졌다. 초등은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어서 함부로 얼굴을 붉힐 수도 없고, 일을 하다보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혼자서 괴로워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우리 모임의 사서 선생님은 어찌나 당차고 야무진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데 그 친구의 당당한 모습이 부러울 때가 많다. 너무 야무져서 다가가기 힘든 이 친구와의 거리를 이 한 권의 책으로 좁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2년의 마지막 그림책인 『친구랑 싸웠어!』(시바타 아이코, 이토 히데오, 시공주니어)를 선택한 것은 유난히 싸움을 잘하는 아들 녀석 때문이었다. 싸우는 아이들의 심리를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발제문을 준비했다.
‘동화홀씨’, 월요일 6시 나는 그곳으로 간다. 지난 6년, 그곳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치유받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힘겨울 때, 아이들이 미워질 때, 오늘도 나는 그곳으로 간다.
싸우고 화해하는 것이 성장의 과정이며 일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초등학생의 학부모로 다시 읽은 이 책은 아이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사실 매 순간 진심으로 화해하는 녀석은 무척 드물다. 그 순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형식적으로 사과하는 아이와,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교사의 적절한 타협이 “진심으로 사과해!”라는 다소 형식적인 과정을 거칠 뿐이다. 학생과 교사가 타협하는 동안 진심으로 마음을 치유받지 못한 아이는 어떻게 될까? “진심으로 미안해!”라는 아이의 말에 봄눈 녹듯 감정이 사그러들까?
아이들에게 자기의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어떨까? 아이들의 싸움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우리가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아이도 싸움의 일정 부분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다만 선생님이나 부모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어느 땐 알고도 부정하기도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갈리는 건 누구의 물리적 힘이 먼저 상대를 가격했느냐이며 상대의 신체에 영광의 흔적을 남겼느냐에 달렸다. 부모나 어른들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어지고, 억지 화해가 이어지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추스려야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화가 나고 분했을 땐 그렇다고 표출하고, 상대가 사과해도 아직 마음이 안 풀리면 억지로 받아주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감정이 잦아드는 그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진심으로 환영해주면 어떨까? 멋진 화해의 방법 아닐까? 남을 용서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감정을 다독이는 일도 중요하므로!
진영란(초등교사) —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화해시켰는지 반성했어요. 사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하고는 넘어가 버리잖아요.
최춘자(유치원교사) — 맞아요. 그래서 나는 사과를 받을 준비가 되면 그때 사과하라고 해요. 다이처럼 아직 마음이 안 풀렸는데 “미안해.” 하고 형식적으로 해 버리는 건 화난 사람의 마음을 풀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하선화(사서교사) — 저도 그래요. 남편하고 싸우고 아직 화도 안 풀렸는데 사과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더라구요. 저는 그럴 땐, 제 화가 풀릴 때까지 그냥 말을 안 해요.
이때부터 이야기의 화제는 부부싸움으로 전환되었다. 우리 모임의 왕언니는 부부싸움 끝에 집에서 나와 호텔에 가서 호사스러운 룸서비스를 받고, 계산할 때 조금 아까웠단다. 그래서 호텔보다는 한옥마을을 강력히 추천하셨다.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방값도 아주 저렴하고 나름 운치도 있다나?
“방이 없으면 어떡해? 방 있는지 전화해 보고 싸워야 하나?”라는 말에 우리는 한참이나 웃었다. 서로의 솔직함에 나도 무장해제가 되는 듯했다. 둘째 임신했을 때 야심차게 짐 싸서 나왔다가 남편 카드로 동물원 무료 입장하는 바람에 가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던 4년 전의 일을 모험담처럼 얘기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던가? 너무도 완벽해 보이시는 활동가 선생님도 이혼 위기를 겪으신 적이 있다고 말씀하셔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찬 후배는 신혼부터 지금까지의 부부싸움 레퍼토리를 아주 맛깔스럽게 풀어내었다. 남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어떤 선생님의 조언, 그리고 화를 쌓아두지 말고 조금씩 자주 내게 하라는 처방도 나왔다. 지금은 서로의 멘토에게 상의하며 부부싸움을 해결하려 한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는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며 발제를 마무리하였다.
내가 그곳에 가는 이유
2012년을 마무리하는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과 내 자식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국 내가 치유받고 있었던 것이다. 6년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들 그만큼씩의 나이를 먹었고, 조금씩 늙었으며, 살이 조금 더 쪘다. 가장 큰 변화는 책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유익한 정보나 얻어볼까 했던 처음의 불순한 의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줘야 하루가 지나가고, 학부모 독서토론모임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 탓에 몸은 더 고단하고 힘들지만, 비로소 ‘내가 선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한 주라도 모임에 안 나가면 다음 주를 살아갈 힘이 생기지 않는다. 삶이 힘겹고, 아이들이 미워질 때, 월요일 6시 나는 그곳으로 간다.
자아가 강하고 남에게 뒤지는 걸 싫어했던 나는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였다. 아이들에게도 사무적이고,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신경질적인 교사였다.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도 겉으로는 원만해 보여도 무언가 열등감에 사로잡힌 듯 자신을 다 드러내어 놓지 못했다.
초임 시절 대학원 과제 때문에 시작하게 된 토론수업 덕분에 ‘수업 잘한다’ 소리를 듣게 된 나는 토론수업을 더 잘해 보려는 욕심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듣고, 또 어떤 아이들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책 읽기 시간은 조바심과 서운함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이런 불순한 의도를 알 리 없는 같은 학년 황정원 선생님은 아이들과 토론을 하고, 책을 읽어주는 내 모습이 기특했던지 그림책 모임이 있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며 나에게 손을 내미셨다. 아이들과의 책 읽기를 반쯤 포기했던 터라 갓 돌이 지난 아들 녀석에게 필요한 도서목록이나 얻어보겠다는 얄팍한 심산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월요일 6시! 그림책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황정원 선생님 손에 이끌려 망설이며 찾아간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치원 교사에서 고등학교 중국어 교사, 사서교사, 어머니 사서까지 10여 명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 김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좋아하는 김밥 때문이었을까? 지금까지 느꼈던 동료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김밥을 오물거리고 있을 때, 발제를 맡은 선생님이 그림책 『백두산 이야기』(류재수, 보림)를 펼쳐 들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앤가? 그림책을 다 읽어주게? 읽었다 치고 그림책에 대한 정보나 좀 주지.’라는 푸념도 잠시. 양면에 펼쳐진 역동적인 그림이 나를 압도하였다. 그림책이 왜 보아야 하는 책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처음 접한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유년 시절의 나와 대면하다 『점』
그림책 모임 ‘동화홀씨’에서 하게 된 첫 발제는 그야말로 운명이었다.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열등감의 근원이었던 23년 전의 나와 마주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운명의 책은 피터 레이놀즈가 글과 그림을 그린 『점』(문학동네어린이)이었다. 원래 발제도서는 『느끼는 대로』(피터 H. 레이놀즈, 문학동네어린이)였다. 그런데 이 작가의 다른 책 『점』을 보면서 커다란 도화지 앞에 작게 웅크리고 있는 베티가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모를 동질감에 사로잡혀 베티가 그린 점을 응시했다. 그리고 나를 만났다. 20여 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부끄러웠던 기억을 꺼내 놓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먹었던 김밥 향이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을 수도 있다.
발제도서를 정해 놓고 한참 동안 망설였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했고, 동료 선생님들께도 읽어주었고, 자료도 찾았으니 쓰기만 하면 되는데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뒤 텅 빈 교실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발제문을 써 내려가는 동안 운 것 같다. 키도 크고 예뻤던, 어딜 보나 나에게 갑이었던 어여쁜 친구와 미술대회를 준비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운명의 발제문은 이러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이 떠올랐다. 공교육의 미술 시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특히 미술에 특별난 소질이 있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이 책을 읽고 그 막막했던 미술 시간의 압박이 떠오를 것이다. 나도 역시 그랬다. 미술을 잘하는 친구와 미술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과학 상상 그리기였나보다. 내 옆에 앉은 친구는 잘도 그렸다. 그런데 난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8절 도화지가 그렇게 드넓을 줄이야.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난 친구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 친구는 연습 시간마다 조금씩 다른 그러나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바닷속을 그렸고 나는 연습 시간마다 그 친구를 따라 그렸다. 왜 그랬을까? 미술을 지도하신 선생님은 한 마디도 해주지 않으셨다. 그 대회를 준비하신 선생님은 벌써 나를 잊으셨겠지만 그 기억은 평생 나를 괴롭혔다. ‘난 창의적이지 않아!’라는 스스로의 편견에 20여 년을 갇혀 살아왔다. 나에겐 베티의 미술선생님 같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왜 없었을까? 지금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일까?
책을 읽어주면서 몇 번인가 목이 메었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웠다.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미술 시간’과 관련된 추억이었다. 좌절하고 있는 그 순간에 베티의 선생님처럼 나를 일으켜 세워준 선생님을 떠올려 보고, 우리는 어떤 선생님인지, 그리고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싶었다.
이진숙(사서교사) — 초등 시간 미술은 놀이잖아요. 중학교 미술 시간에 운동장에서 나무를 그리고 있는데 미술 선생님에게 ‘이게 뭐냐’ 하는 핀잔을 받았어요. 미술 시간이 노는 시간이 아닌 거예요. 친구가 그리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미술 시간이 싫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미술 시간에 자율학습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전의 미술 선생님의 한 마디에 미술이 싫어요. 그 선생님의 옷차림도 생각이 나고 그때의 학교 계단도 생각이 나요. ‘이것밖에 못 하니?’, ‘이게 뭐냐’라는 말조심을 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돼요. 학교에서 도서관 행사를 추진하다보면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니?’ 하고 말을 해 주려고 노력해요.
장형진(고교교사) — 와이프랑 둘 다 그림을 못 그려요. 그런데 딸은 그림을 잘 그려요. 일곱 살짜리인데 그림을 잘 그려요. 그림일기를 그리라고 하잖아요, 거침없이 그려요. 두려움 없이 그려요. 그릴 때마다 ‘절묘하네.’ 하면서 말해주니까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린 것 같아요. 칭찬이라는 것이 쉽지 않고, 자아 존중감을 주는 것이 교사인 거 같아요. 이름을 쓰라고 하잖아요. 자기 이름을 쓰라는 것은 ‘자아 존중감’이 있잖아요. 이름 쓰는 것과 관련해서, 자기 이름을 쓰고 내 이름을 쓸 수 있다는 말로 나중에 훨씬 멋진 점을 그릴 수 있다고 하잖아요.
황정원(초등교사) — 우리 아이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와 비교해서 스스로 못 그렸다고 생각을 했어요. 내가 말한 ‘엄마를 닮아서 잘 그릴 거야’ 혹은 진영란 선생님의 ‘잘 그렸구나’라는 말에 바뀌어졌는지, 그 뒤에 우리 아이가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어요.
진영란(초등교사) — 저는 칭찬했다는 것이 전혀 생각이 안 났어요.
황정원(초등교사) — 우리 아이가 칭찬받은 수묵화를 벽에 붙여 놓았어요.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이 ‘전교에서 제일 좋은 붓을 가져왔구나’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진영란(초등교사) — 제가 본의 아니게 베티 선생님 같은 역할을 했군요. 원혁이한테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정은경(사서교사) — 미술 시간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잖아요. 미술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에도 소외감을 받는 아이가 있을 것 같아요. 계단에 앉아 있는 아이가 있어요. 제가 없으면 들어와서 책을 보는 거예요. 제가 있으면 수업에 들어가게 하거든요.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 아이가 도서관을 좋아한다는 것을 선생님들도 아시는 것 같아요. 그런 아이에게는 도서관이 정말 좋은 장소가 되는 것 같아요. 쉬고 싶고 위로받을 수 있는. 미술 시간이 아니더라도 베티 같은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진영란(초등교사) — 저는 사실 이 얘기를 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어요. 남의 그림을 베꼈다는 죄의식이 저를 많이 짓눌렀던 것 같아요. 사실 어떻게 그리라고 가르쳐 주시지는 않고 그냥 그리라고만 하신 선생님이 원망스러워요. 그래서 저는 과학상상 그리기 대회 할 때, 꼭 사전에 많은 장면을 보여주게 돼요.
장형진(고교교사) — 누구나 다 그런 트라우마가 있을 거예요. 그런 실수와 시행착오들이 우리를 성숙한 교사로 만들지 않나 싶어요. 소중한 기억을 꺼내 놓으신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발제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잠시 망설였고, 조금 부끄러웠고, 많이 편안했다. 책에서 만난 베티의 선생님, 우리 모임은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가슴 한켠에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과감하게 점을 찍어내는 녀석을 만난다면, 망설이지 않고 커다란 액자에 걸어 전시해 주리라.
혼내지 않는 교사로 거듭나다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술 한잔 기울이지 않는 사이지만 매주 모여 김밥 먹으며 그림책 이야기하느라 끈끈한 정이 쌓여가던 우리는 번개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장소는 순천 기적의 도서관. 운전이 가장 쉽다는 화끈하신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타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우리는 순천으로 향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아름답고 잘 정돈된 서가, 숨고 싶은 아이들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반영한 세심한 인테리어에 감탄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할머니 자원봉사자를 향해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할머니께서 아이들에게 읽어주신 책은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구스노키 시게노리, 이시이 기요타카, 베틀북)였다. 무엇엔가 잔뜩 화가 나서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는 주인공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한테 매일 혼나는 우리 반 혁규가 떠올랐다. 날마다 손톱을 물어뜯어서 반달만한 손톱을 가진 장난꾸러기 녀석이다.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칭찬받을 수 있을까? 나는 나쁜 아이일까?’ 축 처진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이 너무 무거워 보여 안쓰럽기만 하다. “미안해. 선생님이 혼내기만 했구나. 참 잘 썼네. 정말 좋은 소원이구나.” 주인공의 선생님은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쓴 소원쪽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만다. 주책없이 내 눈에서도 왈칵 뜨거운 무언가가 쏟아진다. 아이들을 채근하고 닦달했던, 성급했던 못난 어른의 모습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착한 아이가 되겠습니다.’ 책은 주인공의 행복한 꿈으로 마무리가 된다. 자원봉사 할머니가 마지막 책장을 덮기 전에 이야기방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버렸다.
구내 서점에 들러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를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길에 나도 소원을 빌어 본다. ‘하느님, 제발 혼내지 않게 해 주세요. 더 좋은 엄마, 너그러운 선생님이 되게 해 주세요.’
마음의 벽을 허물다 『친구랑 싸웠어!』
그림책 모임을 시작한 지 6년, 아가씨 선생님들은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책과 함께 키우고 있다. 혈기 왕성하던 선배님들은 어느덧 중견교사가 되어 있고, 나 또한 두 아이의 엄마로 나이 들어가고 있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서 학교에서 일을 맡아 진행해야 하는 자리가 자꾸 생기고, 내 맘 같지 않은 동료 교사들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아졌다. 초등은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어서 함부로 얼굴을 붉힐 수도 없고, 일을 하다보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혼자서 괴로워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우리 모임의 사서 선생님은 어찌나 당차고 야무진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데 그 친구의 당당한 모습이 부러울 때가 많다. 너무 야무져서 다가가기 힘든 이 친구와의 거리를 이 한 권의 책으로 좁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2년의 마지막 그림책인 『친구랑 싸웠어!』(시바타 아이코, 이토 히데오, 시공주니어)를 선택한 것은 유난히 싸움을 잘하는 아들 녀석 때문이었다. 싸우는 아이들의 심리를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발제문을 준비했다.
‘동화홀씨’, 월요일 6시 나는 그곳으로 간다. 지난 6년, 그곳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치유받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힘겨울 때, 아이들이 미워질 때, 오늘도 나는 그곳으로 간다.
싸우고 화해하는 것이 성장의 과정이며 일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초등학생의 학부모로 다시 읽은 이 책은 아이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사실 매 순간 진심으로 화해하는 녀석은 무척 드물다. 그 순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형식적으로 사과하는 아이와,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교사의 적절한 타협이 “진심으로 사과해!”라는 다소 형식적인 과정을 거칠 뿐이다. 학생과 교사가 타협하는 동안 진심으로 마음을 치유받지 못한 아이는 어떻게 될까? “진심으로 미안해!”라는 아이의 말에 봄눈 녹듯 감정이 사그러들까?
아이들에게 자기의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어떨까? 아이들의 싸움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우리가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아이도 싸움의 일정 부분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다만 선생님이나 부모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어느 땐 알고도 부정하기도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갈리는 건 누구의 물리적 힘이 먼저 상대를 가격했느냐이며 상대의 신체에 영광의 흔적을 남겼느냐에 달렸다. 부모나 어른들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어지고, 억지 화해가 이어지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추스려야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화가 나고 분했을 땐 그렇다고 표출하고, 상대가 사과해도 아직 마음이 안 풀리면 억지로 받아주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감정이 잦아드는 그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진심으로 환영해주면 어떨까? 멋진 화해의 방법 아닐까? 남을 용서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감정을 다독이는 일도 중요하므로!
진영란(초등교사) —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화해시켰는지 반성했어요. 사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하고는 넘어가 버리잖아요.
최춘자(유치원교사) — 맞아요. 그래서 나는 사과를 받을 준비가 되면 그때 사과하라고 해요. 다이처럼 아직 마음이 안 풀렸는데 “미안해.” 하고 형식적으로 해 버리는 건 화난 사람의 마음을 풀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하선화(사서교사) — 저도 그래요. 남편하고 싸우고 아직 화도 안 풀렸는데 사과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더라구요. 저는 그럴 땐, 제 화가 풀릴 때까지 그냥 말을 안 해요.
이때부터 이야기의 화제는 부부싸움으로 전환되었다. 우리 모임의 왕언니는 부부싸움 끝에 집에서 나와 호텔에 가서 호사스러운 룸서비스를 받고, 계산할 때 조금 아까웠단다. 그래서 호텔보다는 한옥마을을 강력히 추천하셨다.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방값도 아주 저렴하고 나름 운치도 있다나?
“방이 없으면 어떡해? 방 있는지 전화해 보고 싸워야 하나?”라는 말에 우리는 한참이나 웃었다. 서로의 솔직함에 나도 무장해제가 되는 듯했다. 둘째 임신했을 때 야심차게 짐 싸서 나왔다가 남편 카드로 동물원 무료 입장하는 바람에 가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던 4년 전의 일을 모험담처럼 얘기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던가? 너무도 완벽해 보이시는 활동가 선생님도 이혼 위기를 겪으신 적이 있다고 말씀하셔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찬 후배는 신혼부터 지금까지의 부부싸움 레퍼토리를 아주 맛깔스럽게 풀어내었다. 남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어떤 선생님의 조언, 그리고 화를 쌓아두지 말고 조금씩 자주 내게 하라는 처방도 나왔다. 지금은 서로의 멘토에게 상의하며 부부싸움을 해결하려 한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는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며 발제를 마무리하였다.
내가 그곳에 가는 이유
2012년을 마무리하는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과 내 자식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국 내가 치유받고 있었던 것이다. 6년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다들 그만큼씩의 나이를 먹었고, 조금씩 늙었으며, 살이 조금 더 쪘다. 가장 큰 변화는 책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유익한 정보나 얻어볼까 했던 처음의 불순한 의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줘야 하루가 지나가고, 학부모 독서토론모임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 탓에 몸은 더 고단하고 힘들지만, 비로소 ‘내가 선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한 주라도 모임에 안 나가면 다음 주를 살아갈 힘이 생기지 않는다. 삶이 힘겹고, 아이들이 미워질 때, 월요일 6시 나는 그곳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