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여행! 세상은 열린 도서관이 되다] 부안, 일탈을 꿈꾸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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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25 14:30 조회 7,058회 댓글 0건본문
박선애 경기 오산고 교사
살다보면 하루하루 밀어내기에 바쁜, 지루하고 고된 일상을 벗어나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며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정다운 이와 여유롭게 행복한 수다를 떨고 싶을 때도 있고, 거대한 자연의 신비 앞에서 작고 보잘 것 없는 내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럴 때 떠나면 좋은 곳이 전북 부안이다.
부안으로 향하는 길, 먼저 가 봐야할 장소 중의 하나가 곰소 염전이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염전을 직접 볼 수 있다. 길가에 있으니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근처에 젓갈을 파는 상점이 많이 있으니 그 점을 기억했다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려가면 넓게 펼쳐져 있는 소금밭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실제로 천일염을 제조하는 일꾼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다. 햇살 속에서 뭉글뭉글 만들어지는 소학교도서관저널금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소금 한 톨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과 체험 학습을 왔다면 소금 창고와 염전의 모습을 잘 찍어둔 사진 몇 장만으로도 수준 있는 학습 자료를 만들 수 있다.
부안의 대표적 명소는 채석강이다. 이곳은 변산반도 맨 서쪽에 있는 해안 절벽과 바닷가를 말한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나라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이태백이 이곳의 경치를 보았다면 분명 또 다시 첨벙첨벙 바다로 뛰어들었으리라.
흔히 채석강의 해안절벽을 보고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직접 가보면 절로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수천만 년 동안 파도에 깎이면서 만들어진 신비로운 장관을 보고 있다 보면 이 거대한 자연의 시간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유치환의 시처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온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 앞에 서면 다시 한 번 몸과 마음이 경건해진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썰물 때 가야 지형을 보다 많이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리 물때를 보고 시간 맞춰 가면 좋다.
채석강에서 해수욕장 건너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이 있는데, 해질 무렵에 가볼 것을 권한다. 붉은 돌에 비치는 붉은 노을! 세상 그 어떤 조명도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빛이다. 이곳에서 환상적인 일몰에 흠뻑 젖어 보는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빛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부안에 가서 내소사를 들르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내소사는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 일이 다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혜구 두타스님의 원력에 의해 백제 무왕 34년에 창건된 고찰이라 한다. 아름답고 소박한 절이다. 대웅보전의 단청이 나무 색 그대로 남아 있다. 또 대웅보전의 문에는 연꽃 모양의 문살이 새겨져 있는데 나뭇결 그대로 도톰한 꽃잎 문양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대웅보전 앞에는 여느 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삼층석탑이 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탑이다. 별스러운 점 하나도 없이 그저 세 개의 돌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다보면 정이 가고 기품이 느껴지는 탑이다. 탑을 보며 나태주의 시 「풀꽃」을 조용히 읊조려 보는 것도 낭만적이지 않을까?
내소사 일주문에 들어서면 천왕문에 도착하기까지 수령이 150년 이상 된 전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길게 이어져 있다. 전나무 특유의 상쾌한 향기가 머리를 맑아지게 하여 착한 생각이 마구 솟아나는 길이며, 곁에 있는 사람과 정담을 나누기에도 적절한 곳이다. 또한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하늘로 곧게 뻗은 전나무들이 만들어 놓은 그늘을 걷다보면 지친 일상을 살아내느라 상처 입었던 마음이 어느새 위로받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産婆)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한 말이다. 그는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골치 아픈 일상의 일도 흘러가는 풍경 속에서는 종종 그 해답을 찾게 되기도 한다. 일상을 벗어난 일탈, 그것이 바로 일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준다. 그러기에 여행은 일탈이다. 부안은 당신의 일탈을 응원하는 곳이다. 일탈을 꿈꾸는 당신, 떠나라! 부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