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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행! 세상은 열린 도서관이 되다] 여행과 일상의 이음, 다른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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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25 13:51 조회 6,4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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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경 『희망을 찾아 떠나다』 저자


청년 50~60명이 모인 행사에 간 적이 있다.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실시간 설문조사를 했는데 세계여행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청년에게 닥친 현실은 2호선 라인의 대학에 입성하는 일이고 토익점수 그리고 높은 취업의 벽이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할 틈도 없이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만을 쫓는 젊은이들에게 여행은 이러한 갑갑한 상황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이자 파라다이스다. 그들에게 여행은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보다는 일상에 대한 일탈로 각광 받는 것일 테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중·고등학생들에게 방학을 맞아 잠시 숨통을 틔우기 위해 어딘가 다녀오라고, 꼭 장기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는 이야기를 건네면 10명 중 8명은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단다. 학교 보충수업, 선행학습, 경시대회 준비, 영어회화 학원…. 여행이라는 단어가 낄 여유도 없는 빡빡한 일정이 방학을 앞둔 청소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필리핀 등 개도국에서는 외고나 해외유명대학 진학 준비를 위해 자원봉사여행을 온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봉사를 한 일들, 자신의 시간을 내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증빙되는 여행은 더 나은 간판, 더 높은 사회적 위치로 가기 위한 또 하나의 자격증이 된다. 이제 여행도 하나의 스펙–업, 즉 자기계발의 수단이 되고 있다.


여행을 배운다?!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 2위, 자살률 1위, 어린이 행복지수 꼴찌 등을 말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청소년부터 청년,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삶은 고단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힐링, 인문학이라는 키워드다. 이는 진정한 배움보다는 좋은 성적을 받아 유능한 노동자가 되는 길을 보여주는 학교, 친구를 만들기보다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것에 익숙해진 상황을 극복해보려는 작은 몸부림과도 같다. 이러한 키워드는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어 최근에는 여행과 인문학을 결합한 여행인문학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다.

돈을 많이 버는 삶보다 잘 ‘사는’ 삶을 위한 공부를 하자는 의미로 주목을 끌고 있는 인문학에 노는 것의 최고봉인 여행이 합쳐졌다. 여행은 책을 읽거나 경험담을 들어서 학습하는 영역이 아니다. 여행은 직접 경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배움으로 연결되는 배경에는 여행이 같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여행은 1부터 10까지 다른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한다. 즉 나와 같은 경험을 하거나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모두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르게 느껴야 한다. 그런데 파리, 오사카, 교토, 뉴욕 등을 다녀온 사진을 보면 대부분 합성한 것처럼 같은 모습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다. 여행도 정답이 있는 것처럼 꼭 먹어야 하거나 반드시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고 이에 강박관념을 갖는다. 이러한 현상에 틈(균열)을 만들기 위해 여행인문학이 등장했다.

더불어 여행하는 지역과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 환경, 문화 등을 존중하자는 운동인 공정여행도 교육과 연결되는 추세다. 공정여행 프로그램이나 상품도 등장했고 소수민족을 만나거나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숙소를 이용하는 등 공정여행 가이드라인에 따라 준비하는 여행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공정여행은 스펙과도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대학생들에게 “제가 가는 여행이 공정여행인가요?”, “이렇게 여행 일정을 짜면 공정여행으로 공모전에 당선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도 받는다. 여행과 배움이 이어져 스펙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상이다.


어디로 가는지 보다 어떻게 가는지
고민하는 여행

일반여행은 물론이고 공정여행 상품도 어디를 가는지 장소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장소보다는 ‘어떻게’ 여행을 가야하는지 좀 더 고민하면 좋겠다. 여행은 낯섦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와 처음 본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면서 자유를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불편함을 겪으며 생각의 변화를 만드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행에 대한 관점을 어디로 가는지보다 어떻게 가는지 고민하는 그 지점부터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괜찮은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여행은 세 가지를 갖춘 것이다. 질문을 갖고 떠나는 여행, 내가 변하는 여행, 다시 질문을 품고 오는 여행이다. 나의 경우 대학생 시절, 꿈과 우정이 부재한 경쟁 속에서 찾은 탈출구는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었다.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부딪히고 있는 빈곤, 차별의 문제는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이러한 문제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용감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공정무역 회사 대표보다 공정무역 상품을 만드는 아주머니들을 만나고 싶다 등등 질문을 가졌고 이는 여행으로 이어졌다.


나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자

어떤 질문을 갖고 누구를 만나야 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된 여행을 꾸리면 준비과정부터 남달라진다. 주로 여행 전에는 저렴한 숙소와 맛집으로 층층이 쌓여진 온라인 카페를 들락거리며 마음에 드는 가이드북을 구입하는 것으로 여행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습관처럼 다른 사람들이 가 본 유명한 관광지를 우선순위에 놓고 쇼핑하듯 여행지를 골랐다. 이러한 일반적인 준비과정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지도에서 찾아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숙소, 맛집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가 아닌 지역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 그 나라의 종교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했다.

또한 세계의 불평등, 부채, 종교, 문화에 대한 책을 저절로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참고할 만한 책이나 사이트가 없는 국가의 경우 직접 그 나라 사람을 찾아 만나는 수고스러움까지 여행의 한 과정처럼 즐겼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면 오래전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이주노동 온 분에게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세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슬람 문화권인 방글라데시에서 여자의 경우 발목을 보이면 안 되며 가슴은 숄로 덮어야 하며 악수할 때는 오른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등의 주의사항을 현지인에게 배우게 된다.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 주제, 지역 등을 중심으로 여행을 준비하다보면 기존의 가이드북은 필수품이 아닌 하나의 참고물품이 된다. 더불어 여행하는 지역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현지인의 시선으로 그 사회를 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또한 직접 만든 가이드북이기 때문에 수정도, 덧붙이기도 더 쉬워진다. 따라서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에게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지금 어떤 고민이 있는지 질문을 던진 후 나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여행 준비 과정이 힘들고 귀찮은 작업일 수도 있겠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 또한 여행의 일부로 생각하며 마음껏 여행에 대한 상상을 해 보는 것이다.


내가 변하는 여행, 질문을 품고 오는 여행

여행 기간의 3배가 되는 시간 동안 준비를 하고 떠났지만 막상 여행은 깨어짐의 연속이었다. 담보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은 돈을 빌려주어 삶의 길을 찾게 하고, 원조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하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마을 지점에서 만난 조비따 할머니의 생활은 한국에서 놓쳤던 사실들을 깨닫게 해주었다. ‘왜 우리 사회는 돈이 없으면 인간의 가치마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서로 어려움을 함께 나누던 이웃들은 어디로 갔을까?’, ‘소액융자가, 착한자본이 빈곤을 없애는 방법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네팔 트레킹을 하며 수없이 만난 나이 어린 포터들은 관광객의 한 끼 식사도 안 되는 일당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무게보다 많은 짐을 지고 산을 오른다. 안나푸르나를 오르내리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마주치는 포터들을 보며 그들을 포터로 만든 건 무엇일지, 여행자의 자유가 다른 이의 자유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또 고민에 빠졌다.

우리는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를 여행하며 그동안 놓쳤던 많은 것들을 만났다. 학위를 주지 않는 교육기관인 맨발대학에서는 배움의 또 다른 정의를, 인도의 노점상 연합 할머니 상인들에게서는 가난뱅이들의 힘을, 그리고 한국으로 일하러 오고 싶다던 네팔 친구 구룽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을 배웠다. 특히 빈곤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겁한 나를 보았고, 또 그들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다시, 일상으로

질문을 품고 떠난 여행자는 다시 질문을 안고 돌아왔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룰 수 있는 꿈만 꾸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때로는 이룰 수 없는 꿈도 더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친 뒤에는 지루한 일상이 이어진다. 일상은 여행보다 극적이지 않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도 않는다. 자유를 즐기던 여행과 달리 하루하루 버텨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에서 가진 질문, 각오, 생각을 옆으로 치워둔 채 매일의 일상을 살아간다.

여행의 마무리는 배낭 정리하는 것이 아닌 여행 전후에 느낀 생각들, 각오, 경험들을 일상에서 풀어가는 것으로 다시 시작된다. 이는 혼자하기에는 벅차고 금세 잊혀진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지역을 다녀온 동료나 벗을 찾는 여행을 떠나자. 여행에서 돌아온 이곳, 지금의 삶에서 구멍이 뻥 뚫려 있는 부분을 여행에서의 경험과 기억, 각오를 버무려 채워보자. 마지막으로 여행을 동경하지 않는, 여행보다 즐거운 일상과 사회를 만들어보자. 여행이 주는 자유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이 억압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과 자유, 일상 그리고 배움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이를 엮는 작업을 계속해나가며 일상을 여행하듯이 즐거운 삶으로 꾸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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