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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행! 세상은 열린 도서관이 되다] 사랑한다면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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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25 13:45 조회 6,31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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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시인, 남원 금지중 국어교사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가만히 집에 앉아 쉬는 성격이 못되는지라 아내와 나는 틈만 나면 여행 가방을 꾸렸다. 방학이 찾아오면 여지없이 멀든 가깝든 여행을 떠났다. 아이 둘은 연휴가 이어지거나 방학이 되면 으레 엄마 아빠를 따라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크면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줄 아는 까닭에 아예 우리는 아이들에게 약속을 받아놓았다. ‘너희들이 다 크기 전까진 가족이 함께 나서는 여행엔 꼭 함께 하자’고 말이다. 여행길에 다투고 티격태격하는 예가 없지 않았으나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함께 고생하는 동안에 서로를 배려하고 더욱 더 가족 사이의 사랑이 두터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 목적지가 정해지면 여기저기를 뒤져서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였다. 그곳에 가면 그곳의 문화와 역사와 풍물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경험하기 때문에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의도를 아이들에게 관철 시키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한 적은 없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놀다가 온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여행을 갔다온 뒤 사진을 정리하고 추억담을 얘기하는 순간엔 여행이 주는 교육적 효과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빠와 딸의 자전거 고행

큰딸이 중학교 3학년 때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대마도가 자전거 여행하기에 좋다는 얘길 들었다. 큰아이에게 대마도 자전거 여행 애기를 꺼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동안 여기저기 여행을 따라다닌 학습효과였지 싶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며칠 여행하는 데는 체력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여행 몇 주일을 앞두고 훈련을 해야만 했다. 여름철인지라 가만있어도 땀이 흐르는 더운 날씨에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맹훈련을 하였다.

‘훈련도 적당히 했겠다, 아빠와 딸의 자전거 여행이란 얼마나 낭만적이고 보기에도 좋을 것인가, 낯선 이국의 섬을 가로지르는 자전거 여행이라니 살면서 이만한 기쁨도 많지 않겠지.’ 하고 우린 떠났다. 그러나 그건 희망사항이었다. 대마도 자전거 여행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섬에 도착하니 첫날은 8월 중순의 강렬한 햇살이 살갗을 달구었다. 그런데 그날 밤부터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로부터 여행을 마칠 때까지 3일 연속 비가 내렸다. 그러나 어쩌랴? 여긴 우리나라도 아니고 돌아가고 싶어도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빗속을 뚫고 달렸다. 우비가 소용없었다. 옷이 비에 젖어 물에 불은 살갗과 마찰을 일으켜 피부가 벗겨졌다. 아무리 며칠간 훈련을 했다고 하나 대마도를 횡단하여 자전거 페달을 굴리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을 먹을 땐 서서 먹어야 했다. 의자가 젖을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느 사찰에 들어가 대웅전의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나왔을 때 뒤늦게 우리를 본 그 절의 스님이 어서 나가라고 쫓아내는 바람에 야박한 인심을 겪기도 했다.

마지막 날, 우리가 배를 타고 떠나야 할 항구에 도착하였으나 그것은 내일 일이고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그로부터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진, 그것도 수백 미터 높이의 고개 너머에 있었다.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딸아이는 자전거를 끌다시피 하면서 뒤를 따랐다. 어른인 나도 체력이 바닥나서 어찌 달리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아이는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그때 아버지가 이렇게도 냉정할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대목에선 스스로 알아서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엄정하게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고생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돌아오는 배는 풍랑을 만나 낙엽처럼 파도 위에서 춤을 추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심한 뱃멀미를 앓은 것은 처음이었다. 쓰레기통을 부여잡고 몇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후에 부산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었다.

딸아이는 가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얘길 한다. “아빠가 그때 중간에서 포기하자고 했거나 나를 도와주셨다면 제가 얻은 게 많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그 여행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힘들어 포기하자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었단다. 그 가파른 산의 도로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아빠가 야속했다고 한다. 터널을 지날 때 어디선가 저를 부르는 소리 같은 게 들려서 공포에 질려 말이 나오지 않는데 어서 오지 않는다고 화를 냈을 때 아빠가 싫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그 여행을 통해 도저히 말로는 얻을 수 없는 교훈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회상한다. 그때의 그 고행을 떠올리며 우리 부녀는 가슴 뿌듯한 감회에 젖기도 한다.


여행길에서 다투며 깨달은 것

딸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우리는 터키 배낭여행을 꾸렸다. 서로 이마를 맞대고 코스를 만들고 인터넷을 뒤져 숙소와 항공권을 예약하고 심지어는 음식점까지도 검색하여 찾아놓았다. 그러나 실제 현지에 보니 얻은 정보와는 많은 게 달랐다. ‘에라 모르겠다.’ 그야말로 죄충우돌 터키의 곳곳을 헤매고 다닌 것이다. 의견 충돌도 없지 않았다. 어느 무너진 로마시대의 노천극장에 갔을 때 나와 딸아이는 심하게 다투었다. 거기서 딸아이는 이제 아빠에게 일방적으로 혼나고 “예” 하며 복종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선언을 하는 것이었다. 내심 불쾌하고 당혹스러운 바가 없지 않았으나, 어찌하겠는가? 집에서라면 며칠 외면도 하고 서먹서먹했을 것이나 머나먼 타국에서 끝까지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잖은가? 한나절 서로 침묵하다가 일정을 계속하며 얘길 나누면서 우리는 잘 풀어낼 수 있었다. 아빠에 대한 도전이 미더움으로 바뀌는 것을 그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여행길에서 아이를 신뢰하는 방법을 배우고 아이를 믿음으로써 책임감을 갖게 하는 법을 배웠다.
딸아이는 이제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학에 가서는 첫해에 제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모은 돈으로 뉴욕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한 달 동안 제가 좋아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보고 맨하튼의 메트로폴리탄 거리에서 변화하는 미국을 온몸으로 느끼고 양극화가 끝을 달리는 뉴욕의 이면을 속속들이 보고 온 것이다. 어떻게 교과서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배우고 이를 다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여자아이가 친구와 둘이서 떠난다 했을 때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았으나 그동안의 경험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게 했고 철저한 준비를 하게 했고 부모에게도 신뢰감을 갖게 했다. 분명 거기서도 좌충우돌하였으리라. 하지만 여행의 묘미는 또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다. 의외의 상황을 만나 그것을 돌파하고 헤쳐 나가는 것에서 경험의 폭은 넓어지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로서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해준 것으로는 자신감을 갖도록 시행착오의 기회를 많이 주었다는 것이다.


계속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

교실에서, 강의실에서, 책으로 말로 세상을 다 배울 순 없다. 더구나 천변만화하는 세상을 어떻게 그렇게 안단 말인가? 그렇다고 여행이 만능이란 말은 아니다.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이다. 그 창이 많고 다양할수록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꼭 해외여행일 필요도 없다. 꼭 가족이 함께일 필요도 없다. 상황에 맞게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한다면 그만큼 세상을 보는 창은 넓어질 것이고 더 너른 세계에 대한 동경과 적응력도 커질 것이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면 더 너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 거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눈 떠가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둘째아이가 학교생활에서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고 힘들어할 때도 아내는 아이와 함께 걷기여행을 떠났고, 가정과 직장에서 지쳐있을 때 아내는 뜻 맞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난 떠나도록 도왔다. 여행이 사람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더 깊어지게 하는지, 얼마나 힘을 솟게 하는지, 함께했던 사람들을 얼마나 단단히 묶어주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모든 여행이 다 성공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실패한 여행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사실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리고 그것으로 더 나은 여행을 도모할 수 있으니까.

힘들고 불편한 여행일수록 가슴에 많은 걸 쌓아준다. 함께 고생을 해본 사람들끼리 더욱 정이 깊어지는 법이고 문제 상황을 헤쳐 나가는 힘도 커진다. 여행은 낭비이거나 힘과 시간의 소진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뜸의 기회이다. 벗어남을 통한 치유의 기회이고 힘의 비축이다. 떠나본 사람만이 떠나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알게 된다. 추상적이거나 피상적인 것이 아닌, 가슴과 몸으로 구체적으로 가족에 대한, 친구에 대한, 그리고 누려온 것에 대한 그리움을 알게 해준다. 사랑한다면 함께 떠나라. 혼자라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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