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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덤비지 말고 차근차근, 한 명씩 유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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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4-07 23:26 조회 6,35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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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한 삼척 소달초 교사


독서마저 양극화되고 있다
양극화 현상에 대한 걱정이 크다. 누리는 사람은 지나치게 누리고, 소외된 사람은 지독하게 소외되었다고 한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일까? 언뜻 부와 권력을 소수가 독점하는 문제를 생각한다. 독서는 어떤가? 최근 5년 동안 국민 1인당 평균 독서량은 10권 정도이다. 국민 모두가 10권을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국민의 35% 정도는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일부는 많이 읽고, 다수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독서에도 양극화 현상이 심하다.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으니 우리나라 독서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읽게 할까?’이다. ‘어떻게’보다 ‘많이’를 중요하게 여긴다. 독서교육의 성과를 재는 중요한 기준으로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따진다. 도서관 대출 권수를 비교해서 ‘많이’를 목표로 삼아 결과 위주로 밀어붙인다. 자연히 독서 수준이 낮아진다. 좋은 책을 오래도록 곱씹어 읽기보다 가벼운 책을 휙휙 읽게 만든다. 많이 읽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로 만든다.
어른들은 많은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려고 독서퀴즈대회와 독서골든벨 같은 행사를 한다. 그러나, 경쟁에 동기유발이 되는 소수의 잔치가 되어 버린다. 누가 이길 줄 알기 때문에 다수는 책을 읽지도 않고 포기한다. 어떤 고등학교에서 했다는 ‘책 10권 가장 높이 쌓기’라도 해야 양극화가 무너진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책을 많이 읽을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주어야 할까,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을 주어야 할까? 해결하지 못하는 고민 앞에 선 사람은 국가 정책 담당자뿐만이 아니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손짓하는 도서관을

올해 전교생이 11명인 시골 학교에 왔다. 자그마한 도서관이 있는데 전집이나 시리즈가 많고 그림책과 동화책도 꽤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책을 가져가는 건 별로 보지 못했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는 아이들의 마음을 끌 만한 자극이 별로 없다. 넓은 교실에 덩그러니 책장이 놓여 있고 가운데 소파 두 개와 탁자 하나뿐이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내가 본 여러 도서관이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도서관은 책을 원하는 사람이 찾아와 책을 빌려가는 곳이다.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장소여야 한다. 하지만 찾아올 마음이 들게 만든 학교도서관을 본 적이 별로 없다. 딱딱하고 규격화되었다. 대부분 교사의 눈으로 만들었다. 아니, 학교장 눈이라고 해야 하겠지! 아이들과 눈높이가 맞지 않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구석진 곳엔 책장이 있다. 비밀스런 공간, 바닥 여기저기에 읽을 자리가 없다. 아무리 인테리어가 좋아도 아이들은 책장을 기준으로 아래쪽에 시선이 머문다. 그곳엔 책상과 의자와 책장뿐이다. 예쁜 소파나 의자가 있기도 하지만 책 읽을 분위기는 아니다.
왼쪽 사진은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이다.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멀리 보이는 쪽엔 책꽂이를 바닥에 놓고 사이사이에 앉을 공간을 만들었다. 책상까지 왔다갔다하지 않고 바로 옆에서 책을 쓱쓱 꺼낸다. 사진에 나오지 않은 곳엔 양쪽이 막힌 담 사이에 계단을 놓기도 하고, 다락방 같은 공간을 두기도 했다. 넓은 곳과 좁은 곳 모두 ‘여기 와서 책 읽지 않을래?’ 하며 손짓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내가 읽으면서
낄낄거린 책이라야 한다. 내가 즐거워야 마음이 전해진다. 또한 아이들이 ‘우와~’, ‘신기하다’, ‘정말?’이라고
말할 책이라야 한다. 재미있어야 한다."

내가 있는 곳은 전혀 이렇지 않다. 그렇다고 또 돈을 들여 공간을 바꾸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조건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을 책으로 유혹하는 독서지도라야 한다
3월에 학급문고 책과 학교도서관 책을 샀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아이에게 맞는 책’이다. 그런데 이 학교에 온 지 얼마 안 되서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 아이들에게 맞는 ‘맞춤형 책’을 사긴 어렵겠다. 아이들은 준비가 안 되어있고, 공간도 별로이고, 내가 아이들을 모르고 있으니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음, 학년 수준보다 쉬운 책을 사야겠군! 두꺼우면 안 되겠네.’
그리고 ‘이런 걸 책으로 쓸 생각을 하다니!’라고 말하게 만들 재미있는 책을 골라야겠다. 아이들은 시골에서 문화 혜택을 받지 못했다. 엄마 없이 자란 아이들은 자극도 적다. 고르는 책들이 단순한 이야기를 뛰어넘지 못한다. 사회와 과학 영역의 책이 필요하겠다.
나는 독서를 강요한 적이 거의 없다. ‘이 빵 먹어’라고 말하지 않고 곁에서 빵 냄새를 풍기고, 맛있는 빵 이야기를 하고, 빵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며 꼬드긴다. 그러나 여기 아이들은 빵을 워낙 모르기 때문에 일부러 먹여야겠다. 그래서 맛난 빵을 골랐다. 무조건 재미있는 책! 재미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일단 딕 킹 스미스가 지은 소피 시리즈, 로알드 달이 쓴 책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쓴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을 골랐다. 사회와 과학 영역 책은 그림이 많거나 호기심을 끄는 이야기책을 샀다.
독서지도는 아침에 책 읽어 주기로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내가 읽으면서 낄낄거린 책이라야 한다. 내가 즐거워야 마음이 전해진다. 또한 아이들이 ‘우와~’, ‘신기하다’, ‘정말?’이라고 말할 책이라야 한다. 재미있어야 한다. 책을 읽어 주면 몇몇 아이가 “그 책 제가 읽어도 되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이 책도 재미있지” 하며 다른 책을 소개해 주었다. 내가 읽어 주는 책은 아무나 갖지 못한다. 책은 귀하니까 함부로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와 다르다. 전집을 떠안기고 제발 읽으라는 소리는 들었어도 책이 귀해서 줄 수 없다니 호기심이 일어 자꾸 찾는다.
책장 앞에 가만히 서서 책을 본다. 아이들이 거기 서 있는 내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추임새를 넣는다. “음, 이건 좀 아닌데~”, “이게 왜 여기 있지?”, “야~, 이걸 읽을 아이가 있을까?”, “오! 이 책이 여기 있네!” 하면서 관심을 유도한다. 아이들이 슬슬 관심을 보이면 책을 이리저리 옮기며 반으로 나눈다. 아이들이 틀림없이 묻는다. “선생님, 뭐 하신 거예요?” “응, 별일 아냐! 좋은 책과 좋지 않은 책으로 나눠봤어.” “양쪽으로 나뉘어 있네요. 어디가 좋은 쪽이에요?” “찾아봐라!” 그러면 아이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든다. 사실 양쪽으로 나눈 기준이 따로 없다. 그냥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그런 거다. ‘호기심’은 최고의 무기다. ‘이게 뭐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 고학년 남학생들이 책 10권을 높이 쌓으려고 몰려들게 만들어야 한다.


천천히 여유롭게 데려가자
1학기 내내 이렇게 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단번에 변하는 비법은 없다. 여기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늦었다. 금요일에 책을 읽으라고 줘도 주말에 다 못 읽었다고 가져온다. 한 시간이면 읽는 책인데…. 다 읽어 오라고 강요를 해야 할까? 강요는 안 된다. 경쟁도 안 된다. 우리 교실엔 책 읽기를 기록하는 표가 없다. 책은 상대방을 의식해서 읽는 비교수단이 아니다. 경쟁을 시켜 독서습관을 갖게 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부작용이 크다. 독서지도 교사나 사서교사는 아이들의 변화를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도서관에 새로운 책을 들여놓았다고 해서 당장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북적거리는 경우는 드물다. 여유가 없으면 안달하거나 실망한다. 안달과 실망은 비판을 낳는다. 자책을 하거나 아이들을 탓하게 된다.
‘책벌레 선생(내 별명)이 1학기 동안 독서지도를 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읽지 않는다.’는 주변의 수군거림이 들려온다. 괜찮다. 2학기가 있으니까! 1년은 12달, 아직도 5달이 남았다. 2학기에는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간단한 그림과 짧은 글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림책을 골랐다. 32쪽짜리 짧은 책, 그림만 잔뜩 있어서 유치원 아이들이나 보는 책을. 얕보지 마시라! 그림책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학부모 공개수업도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수업을 했다. 그림책은 앞면이 보이도록 세워두어야 한다. 제목만 보이게 꽂아두면 읽지 않는다. 그림책은 앞표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아이 마음에서 시작하자
우리반 아이들은 상처가 많다. 두 부모 모두 있는 아이가 한 명뿐이다. 아이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으니 2학기에는 책을 나눠줄 차례다. 그림책을 읽어 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상처를 꺼냈다. 도덕시간에 자신의 모습을 배우다가 울었다. 사회 시간에 가족의 종류를 배우다가 울었다. 하루는 수업시간이 끝나고도 쉼 없이 이야기하며 모두 엉엉 울었다. 그날은 아이들에게 슬픈 책을 가져가 읽으라고 했다.
다음날, “선생님, 책 다 읽었어요. 다른 책 없어요?” 한다. “슬픔에 관한 책이 집에 있는데 가져올까? 진짜 슬픈데~” 하니 아이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자기가 먼저 읽겠다고 한다. 슬픔에 관한 책이 무조건 통한다는 말이 아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골라라. ‘이 책은 공부에 도움이 된대. 이건 문장력을 길러주고, 저건 경제 용어를 이해하게 해 줘!’라는 말이 아니다. 아이 마음에서 출발하자. 어른 눈으로 ‘이건 좋은 책이다. 네게 필요하다’를 결정하기 전에 아이를 바라보자. 이게 가장 중요하다. 간단한 이야기를 길게 늘여 쓴 까닭은 이걸 귀하게 여기는 분이 드물기 때문이다.
“책은 무조건 많이 읽으면 되지. 읽다 보면 습관이 들고 그럼 저절로 될 거 아냐?” 이건 아니다. 다독은 부작용이 많다.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만들지 못한다. 제대로 읽게 만들지도 못한다. 다독은 결과여야 한다. 어찌어찌 했더니 책 많이 읽는 아이가 되게 해야 한다. 강요에 의해 많이 읽으면 자만심에 빠진 편협한 독자를 만든다. 어려운 낱말을 유창하게 쓰지만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된다. 중학생 시절을 지내면서 ‘나도 한때 책 좀 읽었지’ 하는 아이로 전락하기 쉽다.


한 아이를 유혹하고 다음에 또 한 아이를 자극하자
사람은 누구나 가만 두면 편하고 쉬운 길로 간다. 살이 찔 것을 걱정하면서도 음식을 입으로 옮긴다. 책은 얼마나 더할까! 아이들은 쉬운 책, 단순하고 재미있는 책을 찾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쉬운 책과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깊이 있는 책을 안기며 자극해야 한다.

"가장 좋은 책은 ‘아이 자신이 들어있는 책’이다.
아이가 수백 명이라서 ‘그 아이’를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나? ‘한 아이’를 알면 ‘옆에 있는 아이’도 보인다."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는 과학 책장에서 늘 기웃거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기 마련이다. 곤충도감 옆에 『파브르 곤충기』를 놓고, 곤충이 등장하는 이야기책(예: 『아더와 미니모이』)을 놓아두자. 도서분류 기준으로 ‘100 총류’, ‘800 문학’ 순서대로 놓지만 말자. 작은 책장 하나를 마련해서 곤충 관련 책을 잔뜩 꽂아 놓으면 남자애들이 기웃거린다. 나는 “이거 진짜 좋은 책인데, 네가 이걸 모르다니! 이걸 안 읽다니!” 하다가 실패한 날이 너무 많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쳤다.
공주 이야기를 모아보자. 왕비가 나오는 책도 넣고, 왕실 옷이나 예절에 관한 책도 함께 찾자. 여자애들은 공주를 좋아한다. 아름다운 만남 때문이다. 공주 이야기에 왕자가 나오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아름다운 만남이 있는 책으로 책장을 하나 채워보자. 공주에게 어울릴 만한 패션에 대한 책도 곁에 두고, 여성 위인 이야기도 함께 두자. 공주나 왕비가 나오는 역사책도 함께 두자. ‘왕실 여인 주간’을 만들어보자. 애들이 책을 읽는다.
책을 짐처럼, 고상한 것처럼 접근하면 안 된다. 초등학생들이 읽는 책은 재미나야 한다. 이벤트만 잔뜩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똑같은 이벤트는 식상해진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도서관 전통으로 만들 한두 가지는 남기되, 변화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재미에서 멈추지 말자. 아이들이 처음에는 재미를 찾지만 마음을 만져 주는 글에 닿으면 재미가 없어도 읽는다. ‘슬픈 책’을 달라고 한다.
“내가 슬프고 화날 때 나를 달래주는 건 책뿐!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고 화날 때 책을 읽으면 내 마음이 깨끗해진다.”(황민, 3학년) 3학년 아이가 이걸 느낀다. 민이뿐만 아니다. “나는 요즈음 책에 목이 마르다. 집에 그만큼 책을 넣을 자리도 없고 부모님이 항상 책은 빌려 읽고 필요한 책만 사주시기 때문이다.”(조희인, 4학년)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해적 이야기면 내가 해적이 되어 보물을 찾고 위인 이야기면 성공의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책 속의 공간이 좋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변중현, 4학년)
아이들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읽지 않으면 들려주자. 듣지 않으면 도서관이 이야기 주제가 되게 하자. “곤충주간이 뭐야?”, “왕실여인주간이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 이렇게 많았어?”라는 말이 아이들 기억에 이야기로 남게 하자. 가장 좋은 책은 ‘아이 자신이 들어있는 책’이다. 아이가 수백 명이라서 ‘그 아이’를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나? ‘한 아이’를 알면 ‘옆에 있는 아이’도 보인다. 둘은 비슷하다. 수백 명의 아이도 사실은 ‘한 아이’와 비슷하다. 아이는 아이다. 그래서 여유를 가지라 했다. 단순한 목록, 이름난 어느 추천도서, 괜찮다고 알려진 행사에 마음을 빼앗기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 한 아이부터 여유를 갖고 살피면 책으로 품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한꺼번에 모든 아이를 바꿀 수는 없다. 내겐 그런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한 아이씩 품는다. 내가 품은 아이는 내게 기쁨을 보내준다. 그러면 또 다른 아이를 품는다. 한 아이, 한 아이, 또 다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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