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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함께하는 독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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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5-02 14:33 조회 6,49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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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따분해요, 재미없어요~
지난 1년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은 “책을 읽자!”였다. 그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싫어요.” “재미없어요.” “책 읽는 거 따분하단 말이에요~!”이다.
『완득이』와 『개 같은 날은 없다』처럼 박진감 과 감동이 있는 성장소설을 권해도 ‘재미없다’ 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학년 초마다 겪어온 일이고 학교를 옮긴 첫해에는 더 애를 먹는 일이었지만 지난해 아이들은 유독 심했다. 지난번 학 교에서 비교적 쉽게 아이들을 독서로 이끈 덕에 방심하고 있었던 탓일까? 처음엔 이런 아이들 의 반응이 불쾌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요즈음은 자극이 넘쳐 나는 시대다. 하루도 쉬지 않고 사건이 터진다. 그리고 그 사건이 매체를 통해 금방 전달되고 이야기가 되어 퍼져 나간다. 뿐만 아니라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하고많은 오락거리가 넘쳐 난다. 자극적인 사건, 재미있는 오락거리가 너무 많다. 조 용히 명상에 잠길 시간이 없다. 심심해서 죽고 싶을 때 솟아나는 물음, 인생이란 무엇인가 따져 볼 시간이 없다.
이런 판에 책을 읽으라고? 학생들에게 “우리 모두 고독을 즐깁시다.”라고 외친다면 억지소리처럼 들린다.”
–졸저 『도란도란 책모임』 우한용 교수의 추천사 중에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우한용 교수의 명쾌한 지적처럼,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자’는 말은 ‘고독을 즐기자’는 말만큼이나 억지일 수 있다. 특히 심장박동이 빠른 청소년 에게 ‘책’은 따분하고 재미없을 게 당연하다. 지난번 학교 아이들을 비교적 쉽게 독서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학교에 서 도서관 환경을 개선해주고 독서동아리 계를 신설해 줄 만큼 적극 협조해 준 데다, 도서관에서 매월 재미난 독서행사를 열고, 학부모 독서모임과 교사 독서모임이 활발히 움직여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책을 읽자 했으니 그대로 튕겨 나올 수밖에!
 
‘재미’가 있거나 ‘필요’해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때 열심히 한다면, 그 일이 ‘재미’가 있거나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독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재미’가 있거나 ‘필요’할 때 독서하게 된다. 그러나 우한용 교수의 지적처럼 자극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누가
얼마나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겠는가. 때문에 지혜로운 이들은 그러한 자극에 노출되기 이전인 영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매일 밤 아이의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 주는 일, 아이의 고사리같은 손을 잡고 주말마다 도서관으로 나들이 가는 일, 초등학교 1, 2학년 교육과정에 사서교사와의 만남의 시간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일 등. 이러한 기회를 어린 시절에 지속적으로 경험한 아이들은 ‘독서의 재미’를 자연스럽게 몸으로 체득하기 때문에 애써서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처럼 교과서에만 매달린다거나 정답 하나만을 요구하는 평가를 하지 않는다. 도서관의 여러 책과 자료를 활용하여 주어진 과제를 탐구하고 보고서나 에세이를 써서 발표하고 토론하게 한 후 그 과정과 결과물을 그대로 평가에 반영한다. 이러한 교육 활동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더욱 활발해지는데, 이러면 ‘독서’를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이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독서의 ‘재미’를 수시로 제공받고 커 갈수록 독서의 ‘필요성’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 환경과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비록 따분한 독서일지라도 우리 아이들처럼 아주 못 견딜 정도는 아니게 된다.
 
‘함께하는 독서’여야 한다
“혼자 하는 독서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말을 하기에는 왠지 모를 미련이 남지만, 오늘날의 독서는 ‘함께하는 독서’일 수밖에 없고 ‘함께하는 독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독서할 때의 따분함을 혼자서 이겨내기에 이 시대는 자극이 넘쳐난다. 극소수의 타고난 독서광이 아니라면 이를 견뎌내기에 역부족이다. 그러나 ‘함께’라면 조금은 버텨낼 수 있다. “읽어!”라고 강요하면 읽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읽자!”라고 하면 그나마 책을 든다. 또한 전혀 책에 관심이 없었던 아이들도 ‘읽어 주기’를 하면 귀를 쫑긋 세운다. 도서관 자료를 혼자 찾으라 했을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아이들이 모
둠 활동을 할 때는 관심을 보인다. 어쩌면 선진 국 여러 나라에서 독서를 수업으로 끌어들이고 혼자 하는 탐구과제보다 모둠별 탐구과제를 더 많이 부여하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기도 할 것 이다.
또한,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함께’가 강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빠른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간은 스스로 위축되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세상이 느리고 단순할 때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사람은 자 신과 이웃에게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급할 것 도 없고 딱히 관심을 집중시킬 그 무엇이 없으니 자연스레 ‘사람’에게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것 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알아야 할 것과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아 ‘사람’은 늘 뒷전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다 보니 외로워질 수밖에 없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많은 일들을 혼 자 하려다 보면 애꿎게도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의도적으로라도 ‘함께’일 수 있어야 한다. 뭐든지 함께 하다 보면 혼자일 때보다 덜 외롭고, 서로를 보완하고 융합 시켜 ‘1+1=2’의 단순한 공식이 아니라 전혀 새로 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무한대의 세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 위축이 아니 라 자신감과 활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대의 독서는 ‘함께’를 강조할 수밖에 없고 강조해야만 하는 것이다.
 
‘함께하는 독서’의 시대에는 도서관의 풍경도 다르다
졸저 『도란도란 책모임』에서 말한 바 있듯, 내가 2012년까지 근무한 봉원중학교에는 한때 40개 가 넘는 독서동아리가 운영될 만큼 독서동아리 활동이 활발했다. 독서동아리 활동이 최고조 에 달했을 때는 학생 독서동아리 39개, 교사 독 서모임 1개, 학부모 독서모임 3개가 운영되었는데, 학부모 독서모임을 제외하고는 모두 학교도 서관에서 활동을 했다. 봉원중 도서관은 학교 도서관치고는 꽤 큰, 교실 세 칸 반짜리이긴 했 지만 서가와 갖가지 가구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역시 좁았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10개가 넘는 독서동아리가 와글대며 활동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우리 도서관은 날마다 ‘시장 바닥’ 이었다.
봉원중 도서관은 ‘도서관!’ 하면 떠오르는 ‘간간이 책장 넘기는 소리와 가는 숨소리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 도서관은 더 이상 ‘혼자서 조용히 책을 보는 곳’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있다. 아무리 ‘함께하는 독서’가 강조되고 도서관이 그토록 엄숙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해도, 누군가는 여전히 도서관에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고 싶어 한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2011년에 방문했던 미국 드와이트 중・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위에서 왼쪽 사진과 같은 모둠토론실을 발견했을 때,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우리 도서관에도 이처럼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모둠방을 여러 개 만들 수 있다면 함께 떠들며 토론하고 싶은 아이들도,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아이들도, 모두 도서관이 품어 안을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가슴이 아릴 만큼 그 시설이 부러웠다.
그런데 지난 1월 방문한 핀란드와 스웨덴의 도서관 곳곳에서 위에서 오른쪽 사진과 같은 소음방지용 개인의자를 발견했을 때, ‘이건 혁명이구나’ 싶었다.
몇 년 사이 우리 도서관이 시장처럼 와글거리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미국 드와이트 중・고등학교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도서관은 정숙해야 하고 ‘조용히 책 읽는 사람’이 우선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던 듯하다. 그랬기에 도서관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그들의 유리벽 토론방을 그토록 부러워한 것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곳 도서관에서는 되레 떠들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 도서관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고 사색에 잠기거나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도서관 한쪽에 놓여 있는 소음방지용 개인의자를 찾아가야 했다. 곧, 도서관의 무게중심이 ‘조용히 책을 읽는 공간’에서 ‘만남과 소통의 공간’ 쪽으로 어느새 이동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유연함과 섬세함에 오래도록 가슴이 저렸다.
 
친구와 함께하는 책모임을 권한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변하게 한다. ‘바퀴’가 조선 시대 박제가에게는 경이로움이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고, 오늘날 여성에게 도 투표권을 줘야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 면 모두 어이없어 할 것이다. 이처럼 시간은 새로운 것을 진부하게 만들고 때때로 지난날의 치열한 논쟁과 고민들을 덧없게 한다. 그러나 그러 한 발견과 감동 없이 우리는 성장할 수 없고 그러한 치열한 논쟁과 고민 없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사람을 성장시키기에 독서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오늘날 독서는 더 자극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다른 것들에 의해 밀릴 수밖에 없고, 책장마다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는 작은 글자들과 그 느린 속도로 인해 아주 어렸을 때 그 ‘재미’를 몸으로 체득한 사람이 아니라면 커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친구와 함께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따분함과 느린 속도를 거뜬히 견뎌낼 수 있고, 마음과 정신을 나눌 진정한 친구도 얻을 수 있으며, 성장에 비약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을 나 는 『책으로 크는 아이들』의 주인공들인 우리 집 두 아들과 그 친구들에게서 경험할 수 있었고, 『도란도란 책모임』에서 소개한 봉원중 학생 독서 동아리와 교사 독서모임, 학부모 독서모임 회원들에게서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내 자신에게서도! 만일 내가 우리 도서 관담당교사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8년간의 긴 외국도서관 탐방 프로젝트(우 리 모임에서는 2007년에 서유럽과 미국, 북유럽 도서 관 탐방 계획을 세워, 2008년 서유럽의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2011년 미국과 캐나다, 2014년 북유럽 의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탐방하였다. 여 행을 떠나기 1년 전에는 방문할 나라의 교육과 도서관, 역사와 문화 관련 책과 자료들을 찾아 읽으며 토론했고,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1년 동안 글쓰기 작업을 하여 책 을 출간했다.)를 실천할 수 있었을까? 또한 이처 럼 큰 배움과 성장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토록 소중한 친구와 후배들을 곁에 둘 수 있었을까?
배움과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나눌 친구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기 전에 어른인 나부터 책을 읽고, 아이에 게 독서모임을 권하기 전에 어른인 나부터 독서 모임을 해보자. 이렇게 가정마다, 학교마다, 마을마다, 곳곳에서 독서모임이 100개, 1,000개, 10,000개로 늘어나다 보면 획일화된 교육의 틀 도 바꾸어 낼 수 있고, 우리 아이들을 좀 더 행복하게 키울 수 있다. ‘나’부터 독서모임을 시작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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