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다시, 청소년 인문학 강의를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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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6-28 20:54 조회 7,543회 댓글 0건본문
박선미 전남 나주고 사서교사
학교를 옮겼다. 낯선 학교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과 어떻게 살지 요리조리 구상 중이다. 작년의 내가 아니고, 지금 만난 아이들도 이전에 만난 아이들이 아니기에 학년 초에는 계획들로 머리가 복잡하다. 처음 인문학 강의를 시작할 때는 주제 없이 분야 혹은 장르 별로 진행하다가 2년 전부터 진로와 꿈으로 주제를 정해 진행한 적이 있다. 이전 학교에서 했던 것처럼 청소년 인문학강의를 진행할 생각이지만 그 내용이나 형태는 달라 질 것이다.
주제 선정과 강사 섭외
지난해 강의 주제는 ‘삶, 놀이, 예술’이었다. 아이들이 문화를 향유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한 주제였으나, 결과는 대실패였다. 우선, 주제를 정하기까지 과정을 얘기하자면 겨울방학 중에 아트앤스터디를 비롯한 각종 팟캐스트와 유튜브로 고전을 비롯한 인문학 강의를 실컷 보거나 들었다. 그러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나온 철학자 강신주의 ‘인문정신의 내적논리, 단독성과 보편성‘을 주제로 한 강의를 듣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인 ‘나’란 사람에 주목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20분 남짓한 강의 시간 동안 단독성만 이야기하다 끝나 버렸다. 그렇다면 보편성은 무엇일까? 실연을 겪어 본 자만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 의 슬픔』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미루어 짐작컨대 문학작품을 비롯한 예술작 품에서 찾을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나 정신이 아닐까 싶었다. 어렴풋이 단독성과 보편성을 중심으로 주제를 정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뚜렷하게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4월이 지났다. 학교에서도 재촉하기 시작해서 더욱 초조한 날들을 보냈다. 나는 삶 을 놀이하듯 즐기며 스스로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첫 번째로 생각했던 분은 소위 김목수로 활동하는 김진송 선생님이었다. 1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본 <상상의 웜홀–나무로 깎은 책벌레이야기> 전시가 아주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하고 평론가로 활동하시던 분인데 나무로 자 신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다 쓸모없는 것들에 주목하고 나무 장난감 같은 것들을 만들어 전시한 것이 기억에 남았다. 댁에 가서 직접 작품을 실어 와야 하나, 혼자서 다 각도로 한 고민이 무색하게 메일을 보내자마자 거절 의사를 보내왔다. 두 번째 섭외 대상은 신영복 선생님이었다. 전년에 직접 뵙고 강연 요청을 드렸을 때 도 거절하셨지만, 그래도 이 분의 정신세계를 담은 독특한 서체를 아이들에게 보여 주 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글을 쓰면서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성공회대를 통해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리 기대려도 메일을 확인조차 하지 않으셨다. 두 번째 실 패였다. 다음 섭외 대상은 판화가 이철수였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아이들 뒤따라 올 텐데’ 를 주제로 그의 목판화 32년을 결산하는 전시회가 있었다. 두 차례 작가와의 대화가 있어서 뵙고 섭외를 시도했으나 다시 한 번 실패했다. 대신 친구 분 자격으로 오신 곽 재구 시인의 연락처를 받았으나 몇 번 고민한 끝에 섭외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광고인 박웅현을 섭외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다음으로 감성무인 국근섭의 담양 민박집을 추천했으나 아이들의 다른 선택으로 거듭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을 굳이 찾자면, 놀이하듯 가볍고 즐겁게 자신의 삶을 꾸리는 분들을 떠올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겨우 찾아낸다 해도 섭외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다양한 강사들의 색깔 있는 강의
이후 다시 강의를 기획했다. 부산으로 놀러갔던 기억을 되살려 빨강 머리 앤이 살 것 같은 인디고서원에 강의를 부탁해 인문팀장 윤한결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슬라보예 지젝, 노엄 촘스키 등 세계의 석학들을 만나고 직접 제작한 동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는 그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특히 하워드 진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또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설 『덕혜옹주』를 쓴 권비영 작가를 모셨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 프로젝트에서 덕혜옹주에 관한 전시가 몇 개 있었고, 뮤지컬 <엘리자 벳>과 같이 비운의 삶을 산 덕혜옹주를 뮤지컬로 제작한다고 해서 그 분의 삶에 주목 한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가졌다. 권비영 작가는 이러한 관심과 노력들에 주목 하고 아이들에게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신은 드림워커입니까』를 쓴 권동희 작가도 모셨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동기부 여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스스로 만든 단체에서 활동하며 꿈꾸는 모습대로 살 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 주었다. 또 스타일리스트 임혜진은 내 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노력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컬러테스트를 통해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컬러 스타일링에 대해 알려 주었다. 또 기자 강소희는 최근 정치부 기자에서 연예부 기자로 옮기면서 활동한 자신의 삶과 철학에 대해 이야 기했다.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난다. 강사들에게 주제를 정해서 강의를 부탁드리면 조금 난처해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는 업무 담당자의 고민에 주목하기보다는 행사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인문학 강의를 계속 진행하고자 하는 이유
이번에 옮긴 학교에는 예산이 없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주제를 빨리 정했다. 작년에 시행착오를 겪은 덕에 얻은 뜻밖의 행운이다. 전에 인근의 학교에서 ‘너머학교 시리즈 (『생각한다는 것』, 『탐구한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 『읽는다는 것』, 『느낀다는 것』)’로 강의를 진행한 것에서 힌트를 얻어 두 가지 시리즈를 후보로 정하고 고민했다.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땐 시리즈(『우울할 땐 니체』,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 『비참할 땐 스피노자』)’와 쌤앤 파커스의 ‘인생학교(돈, 일, 섹스, 시간, 세상, 정신)’ 중 결정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하고자 하는 걸까? 돌이켜 보니 처음 인문학을 접한 건 성공회대에서 고병헌 교수님 특강을 들으면서였다. ‘클레멘트 코스-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이란 시도는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독서는 내가 존엄한 존재라고 누군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내가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수단이다. 글쓰기야말로 말로 할 수 없는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힘이다. 학교도서관은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이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방법 중에서 나는 인문학 강의를 선택했다. 인문학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 의 단독성을 인식한다면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책, 음악, 미술 등 모든 소통의 수단에서 보편성 을 찾고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서문에서 어느 철학자의 “우리는 상대편에게 무엇인가 말해 주고 싶어 할 만큼 충분히 다르지만, 서로 이야 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비슷하다.”라는 말을 소개한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과 나는 다른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다르게 살게 되겠지만, 스스로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한 삶을 꾸려가도록 서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 것이 내가 인문학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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