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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학교에서 마을로 나온 홍동밝맑도서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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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5-02 15:07 조회 8,28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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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실이 마을도서관이 된 사연
용산서 장항선을 타고 홍성역에서 내려 시골버스로, 또는 어디서든 길라잡이로 홍동면사무소를 찍어 내린 데서 바로 보이는 홍동밝맑도서관.
홍동밝맑도서관은 건너다 뵈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도서실에서 갈라져 나왔다. 1958년에 문을 연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1층에는 15,000권의 책을 모은 학과별 이동 국어교실 겸 도서실이 있다. 문을 열면, 동네 젊은 목수가 원목으로 맞춤 단장을 해서 나무 향내가 은은히 난다. 국어교실이라 공부도 하지만 언제고 책을 꺼내볼 수 있고, 50년 역사의 <풀무> 교지며 <솔숲 작은 집>, 학급별 벽보 편집 등 동아리 활동도 펼치는 곳이다. 학생들이 즐겨 찾고, 졸업생들에게도 책과 선생님과 철따라 바뀌는 창밖 경치, 책 읽을 때의 조용함과 동아리 활동의 시끄러움 등 많은 추억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 설문을 한 적이 있었다. 잔디 체육장, 학교 생협 등의 의견도 여럿 있었지만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곳은 도서실이었다.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좋아서도 그렇지만, 책이 주는 만남과 한없이 퍼져가는 세계가 좋았나 보다. 학생들은 독서 기록장을 만들어 3년 동안 읽은 책 소감을 적는다. 100권의 책을 읽은 학생도 있었다.
‘세 눈’은 독서 동아리이다. 지혜의 눈이 하나 더 생긴다는 말인 것 같다. 매주 한 권 책을 읽고 토요일에 도서실에서 의견을 나눈다. 최근 고른 책은 더글라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인데 풍요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학기에 한 번 독서 콘서트를 연다. 독서발표 를 하는 사이사이 시 낭송과 음악 연주를 한다. 이번 학기에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여 행자의 옛집』, 『천개의 찬란한 태양』, 『콰이어 트』, 『학문의 즐거움』, 『희망』 을 발표했다. 학교 축제 때는 작품 전시나 연극 외에 주제협동학습 발표가 중심이 된다.
해마다 인권, 평화, 에너지, 흙 등 주제를 바꿔 가면서 전교생이 분담하여 자료를 조사하고 인터뷰를 하고 전시, 발표를 한 뒤 문집을 만든다. 이번 축제는 ‘두렁을 타고 세계로’라는 주제로 세계의 먹거리 문제를 다루었다. 졸업 때는 진로와 연관지어 졸업논문을 쓴다. 교장실에는 초창기부터 쓴 졸업논문이 서가에 꽉 차 있다. 축 제 때나 졸업논문을 쓰면서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을 때 요즘은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지만 결국 도서실을 드나들며 찾게 된다.
그렇게 알차게 꾸려 오던 도서실이 학교 바깥으로 나오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2007년 풀 무농업고등기술학교가 문을 연지 50돌을 맞게 되었다. “가장 뜻 있는 개교 기념 행사가 무엇일 까” 교사, 학생, 지역주민, 이사, 졸업생이 머리를 맞댔다. “그렇다. 학교와 지역이 같이 쓰는 도서관을 세우자.” 학교와 지역은 하나다, 이것은 학교의 건학이념이었다. 마침 지역에는 공공도 서관이 없었다. 홍동밝맑도서관 건축이 추진되었다. 홍동은 지역 이름이고 ‘밝맑’은 학교 설립 자 중 한 분인 이찬갑 선생의 호이다.
 
지역 학생들의 교실로,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으로
마을도서관 건축에 착수한 지 3년, 교육 가족 과 지역 주민의 모금과 추진위원의 노력으로 홍 동밝맑도서관이 2011년 10월 21일에 개관했다. 지역 주민들, 추진위원, 기관장 등 손님들이 지 역 도서관 문화를 여는 순간의 중인이 되었다. 도서관 앞 느티나무 아래서는 부지런한 동네 아 주머니들이 국수를 삶았다. 그리고 도서관이 될 새 건물 전면에 커다란 펼침막이 늘어졌다. ‘책으로 벗들이 만나고 벗들이 마을을 만든다(以書會友 以友輔鄕, 논어에 있는 말인데 鄕은 원래의 仁자를 틀었다.)
마을도서관은 학교의 도서실을 주민의 공간으로 옮긴 것이다. 개관하고 보니 마을과 학교 가 같이 쓰는 도서관은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도서관을 학생들의 역사, 교양, 생 물, 독서 여러 과목 교실과 동아리 방과 후 활동으로 쓸 수 있다. 풀무학교만 아니라 지역 내 각 급 학교에서 채 10분이 안 되는 거리라 학생들 이 동네 복판을 지나 도서관에 온다. 네모진 학 교에서 생활하다가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학 생들에게 트이는 느낌을 주는가 보다. 도서관에 서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된다.
“건물은 기능 위주가 아니라, 다소 불편한 게 좋아요. 건물과 바깥이 단절되지 않게 드나드는 여유 공간으로 회랑을 만들었고요. 밝맑 님은 바위 같이 우뚝한 분이니까 2, 3층을 비대칭으로 바위처럼 만들었어요.” 도서관 건물을 설계한 이일훈 선생의 말이다. 회랑은 장터, 동네 결혼식장, 바자회, 음악회, 놀이터 등으로 이용한다. 마당극도 할 수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두밀리방’이 있다. 두밀리는 풀무학교 교사로 있다가 전신에 화상을 입고도 꿋꿋이 살았던 채규철 선생의 ‘자연학교’가 있던 가평의 마을 이름이다. 그 밖에 지역 작가의 책을 모아둔 곳, 일반 서적과 전자도서를 열람하는 ‘아고라 방’이 있다. 지식과 사상의 광장이다.
2층에는 카페와 마을돈 실행모임, 마을문화공부모임, 국어국문학과 역사사회과학 도서 수장실, 백석 시선 초간본, 성서조선 원본 등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희귀본 전시실, 3층은 서창실과 교육, 종교 전문 서적실이 있다.
밝맑도서관은 느티나무 헌책방과 그물코 출판사와 같이 운영한다. 큰 출판사도 어렵다는데 출판사나 농사나 학교나 작으면 생명력이 있다. 출판사와 겸무를 해서 직원이 넷이다. 바쁜 세상 누가 시골에서 책을 보랴 하지만 천만의 말씀. 농촌도 농민, 곧 사람이 사는 동네다. 어디 살건 사람은 기본적인 관심 분야가 있다. 육아, 건강, 교육, 농업기술, 요리, 여행, 취미, 독서 등. 주민 관심에 맞춰 책을 모으고 강좌를 열고 모임을 만들어 마을의 문화를 높여간다.
또한 도서관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기록하고 새 지식과 생각을 홀씨처럼 사방에 날려 보내는 지역문화의 꽃받침이다.
 

책과 고향에서 용이 난다
예전에는 예상 밖의 환경에서 큰 인물이 날 때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했다. 이제는 ‘책과 고향에서 인물이 난다’는 말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이 된다. 인터넷 시대가 되었어도 책은 스쳐 지나가는 인터넷과 달리 깊게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 고향은 자연과 공동체의 인성이 자라는 바탕이 된다.
2015년부터 OECD 국제학력평가기준이 확 달라진다고 한다. 생태적 감수성, 과학의 사회적 책임, 협동문제해결능력, 창의력이 새로운 기준이 된다고 한다. 달리던 차가 급정거하듯이 도시 학원가에서는 혼란을 겪을지 몰라도 농촌 공동체 속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활동은 새 학력 기준에 안성맞춤이 될 것 같다. 책 속에서 창의적 생각을 키우고, 고향의 자연과 공동체는 사회성과 생태적 감수성을 기르는 본바닥이다. 주제 학습의 자료를 도서관에서 구하고 지역의 주민 교사와 현장 교실을 통해 학생들이 협동학습을 진행하면서 생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지혜를 길러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갖는 것이 다. 지난 6,000년 동안 조상들의 학습과 경제, 문화는 지역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학교도 도서관도 지역의 일부이다. 자본이나 권력이 거센 글로벌 시대에 자립하는 생태 공동체, 지속가능한 지역에 기여하는 교육이 시대적 과제에 응답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홍성의 어떤 초등학교에 중학교 진학을 못한 여학생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도서실 열쇠를 주고 책을 보게 하였다. 바로 그 여학생이 『마당 을 나온 암탉』의 황선미 작가이다. 초등학교 도 서실과 선생님은 작가에게 책과 고향이었다. 개천이 아닌 책과 고향이 앞으로도 많은 황선미 작가를 낳을 것이다. 작가의 마음을 가진 많은 농민들도 나오고, 많은 황선미 작가가 생태와 공동체가 숨 쉬는 고향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리나라 시골 면소재지 하면 면사무소나 지 서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제는 지역마다 도서관이 있고 협동조합, 장터 같은 문화, 생활, 자치 공간이 생겨 지역의 중심이 그리로 옮겨지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대한 주민들의 적극적 인 반응 사례를 소개해 볼까 한다. ‘앞으로 도서 관 옆에 예쁜 큐브 건물을 붙여 지어 전시실, 강 의 공간, 작업실, 지역 미디어실, 연구실, 분야별 장서실을 꾸며야지….’ 혼자 화려한 상상의 날 개를 펴다가 문득 건축비의 15%가 빚이라는 현 실에 깨어났다. “마을 신협에서 만 원, 오천 원 씩 소액 상환도 된다니 쇠돈을 모읍시다.” 이사 회 의견으로 투명 돈 통을 도서관에 만들어 놓았다. 네 살짜리 시연이는 백 원이 생기면 “엄마, 도서관에 가!” 하고 조른다. 도서관에는 시연이 가 좋아하는 동화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몇 달째 꾸준히 쇠돈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월 현마을에 사는 백은시 학생이 모금함에 쇠돈을 넣길래,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은시야, 왜 돈을 넣지” 곧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도서관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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