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독서치료의 현 단계와 나아갈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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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1-17 16:26 조회 8,122회 댓글 0건본문
한윤옥 경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1. 독서치료의 필요성과 용어의 정립
요즈음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사람의 인성과 관련된 기사가 눈에 많이 띈다. 학교 폭력, 욱하는 한국인의 성질, 왕따, 폭력 게임과 뇌, 무서운 중2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처럼 거친 단어들 못지않게 치유, 힐링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독서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웃음치료 등도 과거와 달리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치유가 담론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그만큼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대에 이룬 세계 유일의 국가로 꼽히고 있다. 참 놀랍고 세계에서 주목받을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 낸 성과 밑에 드리운 그림자가 바로 이와 같이 치유를 화두로 삼고 있는 어두운 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발전했지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만큼 고단하고 힘들고 상처받으며 아픈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경제 상황 또한 좋아져서 풍요롭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것일까? 우리 생활의 절대적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생활과학은 빠름을 강조하고, 경제와 경영에서는 효율성을 최선으로 추구한다. 빠르고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 속에 느리게 성장하는 인간이 적응하려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감성을 다스리고, 품성 훈련을 하고, 소통과 공감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정보 홍수 속에서 가벼운 채팅과 웹서핑으로 온통 머리를 채운다. 게다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많은 전자기기들은 편리함만 강요할 뿐 참을성과 진지함을 앗아간다. 분명히 생활은 편리하고 풍요롭지만 뭔지 모르게 허전하다. 그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우리 가슴을 파고드는 이런 허전함. 나는 이것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서 치유, 힐링 등을 이야기하게 된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빠름과 효율성 추구에 지친 사람들이 평안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문헌정보 학계와 도서관계에서도 독서치료가 더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보는데, 이쯤의 단계에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얼마 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일종의 공모전 심사에 참여했다. 서너 명의 교수와 현장의 사서가 함께했는데, 잠시 쉬는 중에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주로 독서치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하나는 독서치료가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에 의한 행위가 아닌데 ‘치료’라는 말을 써도 괜찮은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독서치료를 독서지도나 교육의 한 영역으로 볼 수 있는지 혹은 독립된 영역인지에 대한 의혹제기였다. 우선 독서와 관련된 용어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현재 독서와 관련하여 독서교육, 독서지도, 독서치료, 독서요법, 독서치유, 독서상담, 독서클리닉 등 용어가 혼재하고 있다. 우선 독서교육과 독서지도는 어떻게 하면 책을 좋아하고,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독자의 독서 수준이나 흥미를 고려하여 좋은 책을 선정해서 올바른 방법으로 책을 읽도록 유도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같은 목적에 의한 활동이니 독서교육과 독서지도를 혼용할 수도 있지만 굳이 구분한다면 독서지도(Reading Guidance)는 독서교육(Reading Education)의 구체적인 실천을 뜻하는 것이다. 즉, 독서지도는 독서교육의 방법론과 그 실천적 접근을 중심으로 하여 ‘독서하는 태도, 지식, 기술과 능력, 흥미, 습관 등의 형성 및 이것들의 개발을 위한 지도’를 뜻하므로 실천적 방안이 포함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독서교육이 독서지도의 상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클리닉은 읽기 부진아(정상아가 해당 학년의 읽기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나 장애아가 그 대상이 된다. 정상아가 해당 학년의 읽기 수준에 못 미치니 마음도 상할 것이고, 자존감도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독서치료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은 높지만 현재 독서클리닉은 읽기 부진에 따른 상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는 읽기 부진에 대한 적극적 지도를 더 중시하고 있다. 독서치료, 독서치유, 독서요법은 영어에서의 ‘bibliotherapy’를 번역한 것이다. bibliotherapy의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책’, ‘문학’을 의미하는 ‘biblion’과 ‘도움이 되다’, ‘의학적으로 돕다’, ‘병을 고쳐 주다’를 의미하는 ‘therapeia’가 합쳐진 것이다. Samuel McChord Crothers가 1916년에 <Atlantic Monthly>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이것을 일본에서 1937년부터 독서요법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일본식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어 독서치료를 사용하게 되었으니, 독서치료와 독서요법은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독서치유는 어떤가? 치유의 영어식 표현은 ‘healing’이다. 물론 therapy와 healing은 우리말로 번역할 때 치료라는 말로도 번역되지만 흔히 전자는 치료, 후자는 치유라는 말로 더 많이 번역된다. 굳이 따진다면, therapy(치료)는 의학적 진단에 의한 처방으로 몸과 마음이 회복된다는 의미가 강하고, healing(치유)는 의학적 처방과 함께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 의한 나아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독서치료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과의 동일시, 카타르시스의 경험, 통찰의 과정을 밟으면서 자신의 아픈 마음을 다스리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대학 명예교수이며, ‘책읽기를 통한 정신치료 연구실(책정연)’의 지도교수인 김정근은 독서치료의 적극적 치료사는 책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독서치료 모임에서 치료사라는 말 대신 진행자 혹은 조정자라는 말을 쓰도록 권한다. 사실 독서치료에서 카타르시스의 경험이나 통찰의 과정은 독자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밟을 수 있는 단계이다.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것 역시 독서치료 참여자들의 몫이다. 이렇게 볼 때 독서치료는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활동이고, 치료라는 말보다는 치유라는 말을 쓰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이 자리를 빌려 독서치료를 독서치유로 바꾸어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요즈음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사람의 인성과 관련된 기사가 눈에 많이 띈다. 학교 폭력, 욱하는 한국인의 성질, 왕따, 폭력 게임과 뇌, 무서운 중2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처럼 거친 단어들 못지않게 치유, 힐링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독서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웃음치료 등도 과거와 달리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치유가 담론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그만큼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대에 이룬 세계 유일의 국가로 꼽히고 있다. 참 놀랍고 세계에서 주목받을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 낸 성과 밑에 드리운 그림자가 바로 이와 같이 치유를 화두로 삼고 있는 어두운 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발전했지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만큼 고단하고 힘들고 상처받으며 아픈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경제 상황 또한 좋아져서 풍요롭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것일까? 우리 생활의 절대적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생활과학은 빠름을 강조하고, 경제와 경영에서는 효율성을 최선으로 추구한다. 빠르고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 속에 느리게 성장하는 인간이 적응하려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감성을 다스리고, 품성 훈련을 하고, 소통과 공감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정보 홍수 속에서 가벼운 채팅과 웹서핑으로 온통 머리를 채운다. 게다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많은 전자기기들은 편리함만 강요할 뿐 참을성과 진지함을 앗아간다. 분명히 생활은 편리하고 풍요롭지만 뭔지 모르게 허전하다. 그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우리 가슴을 파고드는 이런 허전함. 나는 이것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서 치유, 힐링 등을 이야기하게 된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빠름과 효율성 추구에 지친 사람들이 평안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문헌정보 학계와 도서관계에서도 독서치료가 더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보는데, 이쯤의 단계에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얼마 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일종의 공모전 심사에 참여했다. 서너 명의 교수와 현장의 사서가 함께했는데, 잠시 쉬는 중에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주로 독서치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하나는 독서치료가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에 의한 행위가 아닌데 ‘치료’라는 말을 써도 괜찮은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독서치료를 독서지도나 교육의 한 영역으로 볼 수 있는지 혹은 독립된 영역인지에 대한 의혹제기였다. 우선 독서와 관련된 용어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현재 독서와 관련하여 독서교육, 독서지도, 독서치료, 독서요법, 독서치유, 독서상담, 독서클리닉 등 용어가 혼재하고 있다. 우선 독서교육과 독서지도는 어떻게 하면 책을 좋아하고,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독자의 독서 수준이나 흥미를 고려하여 좋은 책을 선정해서 올바른 방법으로 책을 읽도록 유도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같은 목적에 의한 활동이니 독서교육과 독서지도를 혼용할 수도 있지만 굳이 구분한다면 독서지도(Reading Guidance)는 독서교육(Reading Education)의 구체적인 실천을 뜻하는 것이다. 즉, 독서지도는 독서교육의 방법론과 그 실천적 접근을 중심으로 하여 ‘독서하는 태도, 지식, 기술과 능력, 흥미, 습관 등의 형성 및 이것들의 개발을 위한 지도’를 뜻하므로 실천적 방안이 포함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독서교육이 독서지도의 상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클리닉은 읽기 부진아(정상아가 해당 학년의 읽기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나 장애아가 그 대상이 된다. 정상아가 해당 학년의 읽기 수준에 못 미치니 마음도 상할 것이고, 자존감도 높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독서치료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은 높지만 현재 독서클리닉은 읽기 부진에 따른 상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는 읽기 부진에 대한 적극적 지도를 더 중시하고 있다. 독서치료, 독서치유, 독서요법은 영어에서의 ‘bibliotherapy’를 번역한 것이다. bibliotherapy의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책’, ‘문학’을 의미하는 ‘biblion’과 ‘도움이 되다’, ‘의학적으로 돕다’, ‘병을 고쳐 주다’를 의미하는 ‘therapeia’가 합쳐진 것이다. Samuel McChord Crothers가 1916년에 <Atlantic Monthly>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이것을 일본에서 1937년부터 독서요법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일본식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어 독서치료를 사용하게 되었으니, 독서치료와 독서요법은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독서치유는 어떤가? 치유의 영어식 표현은 ‘healing’이다. 물론 therapy와 healing은 우리말로 번역할 때 치료라는 말로도 번역되지만 흔히 전자는 치료, 후자는 치유라는 말로 더 많이 번역된다. 굳이 따진다면, therapy(치료)는 의학적 진단에 의한 처방으로 몸과 마음이 회복된다는 의미가 강하고, healing(치유)는 의학적 처방과 함께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 의한 나아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독서치료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과의 동일시, 카타르시스의 경험, 통찰의 과정을 밟으면서 자신의 아픈 마음을 다스리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대학 명예교수이며, ‘책읽기를 통한 정신치료 연구실(책정연)’의 지도교수인 김정근은 독서치료의 적극적 치료사는 책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독서치료 모임에서 치료사라는 말 대신 진행자 혹은 조정자라는 말을 쓰도록 권한다. 사실 독서치료에서 카타르시스의 경험이나 통찰의 과정은 독자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밟을 수 있는 단계이다.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것 역시 독서치료 참여자들의 몫이다. 이렇게 볼 때 독서치료는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활동이고, 치료라는 말보다는 치유라는 말을 쓰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이 자리를 빌려 독서치료를 독서치유로 바꾸어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2. 독서치료의 나아갈 방향
독서치료(bibliotherapy)는 개인의 상처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책을 이용하는 작업을 말하는 것으로서 책이 갖고 있는 어떤 구체적 효능이 인간의 심리나 정신에 작용하여 행동 변화를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개인과 책 사이에 이루어지는 작용의 범위를 넓혀 보면 곧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는 도서관 장서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도서관이 사회적 장치로서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과 사명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 장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부터 시작된 도서관 장서를 단순히 책, 또는 도서관 장서에서 벗어나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책과 사람을 연결시킨 것은 사서였다. 도서관 자료의 내용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이용자 심리를 파악하고, 책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 사서직의 고유한 영역인 만큼 이러한 정보중개자로서의 전통적 역할을 도서관에서의 맞춤 서비스 정신에 입각하여 도서관에 도입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책을 통하여 치료해 주는 독서치료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에서 람세스 2세는 테베(Thebes)의 궁전에 상당한 규모의 도서관을 만들고, 그 도서관을 ‘영혼을 치유하는 장소(The Healing Place of the Soul)’라고 불렀으며, 스위스에 있는 세인트 골(St. Gall)의 중세 대수도원 도서관에는 ‘영혼을 위한 약상자(The Medicine Chest for the Soul)’라는 현판이 새겨져 있었다. 190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럽의 거의 모든 정신병원에 도서실이 설치되고, 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와 사서가 한 팀을 이루어 심리적 문제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독서치료를 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도서관과 장서, 사서의 이러한 역할을 일찍부터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정신분석학이나 심리상담 혹은 심리치료 등이 보편화되지 못하였던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여건상 그것이 활발하게 도서관 현장에 적용되거나 학계에서 연구되지 않았을 뿐인데, 최근에 그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독서치료 관련 연구논문과 저서가 꾸준히 출판되고 있으며, 공공 및 학교도서관 현장에서도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적용, 실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또한 독시치료에 필요한 ‘상황’의 개념과 그 목록으로서 ‘상황별 독서목록’이 확고하게 자리 잡혀 많은 도서관과 사서들이 독서치료를 위한 ‘상황별 독서목록’을 발간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분야에서도 할 수 없는 도서관만의 독자적인 일이다. 다만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즉각적이고 짤막한 의사전달 소통에 익숙해져 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호흡이 긴 책으로 끌어들일지가 관건이다.
그러면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데 무엇보다도 크게 작용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성격’이다. 사람의 성격이 다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는 방안도 각각 다르다. 어떤 이는 될대로 되라고 포기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곰곰이 되짚고 또 되짚어 볼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난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하고,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오뚝이처럼 실천에 옮긴다. 그렇기 때문에 사서가 독서치료가 필요한 독자에게 책을 권할 때에는 상황과 함께 독자의 성격을 함께 고려하면 효과가 훨씬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성격유형과 독서성향의 연관성을 입증함으로써 성격을 적용한 독서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기초 연구에 이어 에니어그램을 적용한 독서지도의 필요성과 프로그램의 개발, 성격유형별 선호 도서의 특성을 조사하여 밝혔다. 또 에니어그램을 적용한 독서지도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학위논문도 이미 국내에서 생산되었다. 이렇듯 2000년 초반에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독서치료는 상황과 함께 당사자의 성격까지 고려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적용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상당 수준 발전하였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독서치료를 발전적 방향에서 바라본다면, 앞에서 언급한 읽기 부진에 대한 독서클리닉을 독서치료 관점에서 보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제안한다. 정상적인 지능이면서 읽고 쓰기에 특히 느린 진보를 보이는 것을 흔히 ‘난독증’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주목하게 되는 연령대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다. 이때까지 아직도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당사자는 이미 자존감이 바닥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기 부진에 대한 직접적 지도도 필요하지만 이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자존감 회복에 특별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만약 이들을 방치하게 되면 청소년 범죄, 가정 갈등 등으로 사회적 부담이 증가하게 될 것은 틀림없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부산하여 주변으로부터 꾸지람을 많이 듣는 아이들이 혹시 난독증 때문은 아닌지 눈여겨보고, 난독증이라고 판명될 경우 읽기 지도는 물론, 그들의 심리적 안정과 자존감 회복을 독서치료 관점에서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독서치료(bibliotherapy)는 개인의 상처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책을 이용하는 작업을 말하는 것으로서 책이 갖고 있는 어떤 구체적 효능이 인간의 심리나 정신에 작용하여 행동 변화를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개인과 책 사이에 이루어지는 작용의 범위를 넓혀 보면 곧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는 도서관 장서의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도서관이 사회적 장치로서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과 사명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 장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부터 시작된 도서관 장서를 단순히 책, 또는 도서관 장서에서 벗어나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책과 사람을 연결시킨 것은 사서였다. 도서관 자료의 내용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이용자 심리를 파악하고, 책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 사서직의 고유한 영역인 만큼 이러한 정보중개자로서의 전통적 역할을 도서관에서의 맞춤 서비스 정신에 입각하여 도서관에 도입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책을 통하여 치료해 주는 독서치료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에서 람세스 2세는 테베(Thebes)의 궁전에 상당한 규모의 도서관을 만들고, 그 도서관을 ‘영혼을 치유하는 장소(The Healing Place of the Soul)’라고 불렀으며, 스위스에 있는 세인트 골(St. Gall)의 중세 대수도원 도서관에는 ‘영혼을 위한 약상자(The Medicine Chest for the Soul)’라는 현판이 새겨져 있었다. 190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럽의 거의 모든 정신병원에 도서실이 설치되고, 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와 사서가 한 팀을 이루어 심리적 문제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독서치료를 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도서관과 장서, 사서의 이러한 역할을 일찍부터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정신분석학이나 심리상담 혹은 심리치료 등이 보편화되지 못하였던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여건상 그것이 활발하게 도서관 현장에 적용되거나 학계에서 연구되지 않았을 뿐인데, 최근에 그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독서치료 관련 연구논문과 저서가 꾸준히 출판되고 있으며, 공공 및 학교도서관 현장에서도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적용, 실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또한 독시치료에 필요한 ‘상황’의 개념과 그 목록으로서 ‘상황별 독서목록’이 확고하게 자리 잡혀 많은 도서관과 사서들이 독서치료를 위한 ‘상황별 독서목록’을 발간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분야에서도 할 수 없는 도서관만의 독자적인 일이다. 다만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즉각적이고 짤막한 의사전달 소통에 익숙해져 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호흡이 긴 책으로 끌어들일지가 관건이다.
그러면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데 무엇보다도 크게 작용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성격’이다. 사람의 성격이 다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는 방안도 각각 다르다. 어떤 이는 될대로 되라고 포기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곰곰이 되짚고 또 되짚어 볼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난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하고,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오뚝이처럼 실천에 옮긴다. 그렇기 때문에 사서가 독서치료가 필요한 독자에게 책을 권할 때에는 상황과 함께 독자의 성격을 함께 고려하면 효과가 훨씬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성격유형과 독서성향의 연관성을 입증함으로써 성격을 적용한 독서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기초 연구에 이어 에니어그램을 적용한 독서지도의 필요성과 프로그램의 개발, 성격유형별 선호 도서의 특성을 조사하여 밝혔다. 또 에니어그램을 적용한 독서지도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학위논문도 이미 국내에서 생산되었다. 이렇듯 2000년 초반에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독서치료는 상황과 함께 당사자의 성격까지 고려한 프로그램의 개발 및 적용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상당 수준 발전하였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독서치료를 발전적 방향에서 바라본다면, 앞에서 언급한 읽기 부진에 대한 독서클리닉을 독서치료 관점에서 보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제안한다. 정상적인 지능이면서 읽고 쓰기에 특히 느린 진보를 보이는 것을 흔히 ‘난독증’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주목하게 되는 연령대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다. 이때까지 아직도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당사자는 이미 자존감이 바닥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기 부진에 대한 직접적 지도도 필요하지만 이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자존감 회복에 특별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만약 이들을 방치하게 되면 청소년 범죄, 가정 갈등 등으로 사회적 부담이 증가하게 될 것은 틀림없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부산하여 주변으로부터 꾸지람을 많이 듣는 아이들이 혹시 난독증 때문은 아닌지 눈여겨보고, 난독증이라고 판명될 경우 읽기 지도는 물론, 그들의 심리적 안정과 자존감 회복을 독서치료 관점에서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