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주 학부모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청이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에 내려 보낸 어이없는 공문에 대해 신문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공문에서는 한 보수단체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도서관별 추천도서 모니터링 결과 발표를 토대로 공공도서관에는 ‘추천도서의 적절성’을, 학교도서관에는 ‘사실왜곡과 좌편향성’을 들어 역사 관련 어린이·청소년도서 12권에 대한 폐기 여부 판단 및 처리를 요청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은 해당도서를 이미 대출하여 읽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과목과 연계하여 ‘사후독후처리’ 할 것을 요구했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도서검열, 사상검열의 시대가 다시 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해마다 3월이면 학교도서관은 진급 작업으로 바쁘다. 학교도서관업무관리시스템(DLS)에 한 학년씩 올라간 전교생의 개인정보를 새로 입력하기 때문이다. DLS에는 학생 개개인에게 부여되는 고유 아이디와 학년-반-번호 등이 기본적으로 저장되고 앞으로 1년간의 도서대출이력이 고스란히 기록된다. 이렇게 저장된 개인정보는 도서대출·반납·연체관리 등 학생들의 학교도서관 이용 지원에 주로 이용되고 다독왕 선정에 활용되기도 한다. 간혹 자신이 대출한 책 목록의 출력을 원하는 학생도 있는데 사서선생님의 단 몇 번의 클릭으로 그동안 대출하여 읽은 책의 목록이 한꺼번에 훤히 드러난다. 대출이력은 학생이 DLS시스템에 직접 접속하여 확인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개인 아이디를 입력해야 시스템 접속이 가능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개인 아이디를 잘 관리하지 못할 것이라 미리 판단하는 건지 학교도서관 아이디를 학생들에게 일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도서관 도서대출증에 기본적인 개인정보가 적혀 있지만 이것도 분실 위험 등을 이유로 학교도서관에서 보관·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학교도서관 이용 정보를 직접 열람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자기 정보의 결정권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이렇듯 학교도서관 관련 개인 이력을 보려면 전적으로 사서선생님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도서관 현장의 상황 속에서 교육 당국에 의해 특정 도서들의 폐기를 종용당하고 그 책들을 읽은 학생들에 대해서도 도서대출기록 검열을 통한 사후독후처리를 꾀하다니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와 학생인권을 교육하고 학습해야 할 학교 안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만에 하나 내 아이가 또는 내가 읽은 책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검색되고 검열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학생들의 모든 개인정보가 정보검색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거의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학교의 현실임을 감안할 때 학교도서관에서 도서대출기록을 일괄적으로 축적하고 공공연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방치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도 맞지 않다. 더구나 이로 인해 우리 아이들의 자유로운 책 읽기가 외부적 압력이나 자기검열 따위로 위축된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기본권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도서관의 통계자료를 만들거나 이용자 서비스 차원에서 도서대출기록의 보관이 필요하다면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도서관에 도서대출이력 삭제를 요구할 수 있거나 정보조회 시 개별통지가 되도록 하는 등 시스템 상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책을 통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간다. 누가 무슨 책을 읽었는가는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할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도서대출이력 등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특정 도서에 대한 접근을 문제 삼는다면, 이것은 명백히 개인의 생각을 엿보는 사생활 침해이자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있는 독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제반 권리와 의무를 가르치며 배우고 익히는 교육의 장(場)이다. 국가에 대한 의무와 충성만 가르치고 배우도록 강제할 게 아니라 학교도서관에서 인류 역사가 경험한 온갖 지식과 가치를 우리 아이들이 만날 수 있도록 구시대적 검열과 통제로부터의 자유를 반드시 보장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