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독서동아리 운영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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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02-28 14:51 조회 16,051회 댓글 1건본문
Q. 독서동아리 운영, 어떻게 시작할까?
독서동아리를 구성하기에 앞서 일단 어떻게 학생들을 모집하고 조직하며 운영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큰 틀이 필요하다. 동아리 인원은 몇 명으로 할 것인지, 만나는 횟수와 시기는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운영 기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일지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책은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 등 큰 계획을 정한 후 아이들한테 안내를 해 주어야
한다.
• 만나는 횟수, 날짜 정하기: 일주일에 1회, 요일을 정하여 만난다.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동아리도 있지만 시험 기간, 학교 행사 등을 피하다 보면 실제로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매번 활동하지 못하고 만나서 책만 읽고 가더라도 일정한 시간에 만나는 것이 좋다.
• 운영 시기: 4월~12월(3월에는 동아리 조직, 오리엔테이션으로 갈음한다.)
• 책 선정 방법: 가급적이면 동아리원 스스로 정하게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칫 흥미 위주로만 책을 고를 수 있으므로 오리엔테이션 때 좋은 예시들을 보여 주어 방향을 살짝 정해 준다.
• 동아리 일지: 공통된 양식을 만들어 제공한다.
• 예산: 학교 예산에서 사용할 것인지, 지차체 사업에서 사용할 것인지, 교육청 사업에서 사용할 것인지 어느 정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문학기행의 진행 여부도 정해야 하며, 어느 정도 예산을 확보할 것인지, 도서 구입비와 활동비, 간식비의 안배는 어떻게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학교 차원에서 독서동아리를 구성하고 각 교과교사와 협력하여 학교 전체 사업으로 독서동아리를 구성한다면야 동아리 구성이 쉽겠지만 만약 도서관에서 단독 사업으로 독서동아리를 구성하고자 한다면 충분한 홍보와 설득이 필요하다. 사서는 수업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수업 시간에 홍보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도서관에 찾아오게 만들려면 홍보를 잘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홍보포스터를 만드는 것.이때 포스터에는 독서동아리의 구성 인원, 시기, 운영 방법, 신청 방법 등이 나와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직접 와서 신청할 수도 있지만 사서가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했다가 책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불러 독서동아리에 대해 홍보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독서동아리를 하면 좋은 점을 이야기해 주고 평소 함께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면 함께 책모임을 권할 수도 있다. 뭐든 사서가 열심히 홍보하고 알려 주면 아이들은 참여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게 동아리 신청을 받을 때에는 인원 제한에 대해
반드시 안내해 주고 신청하는 아이들끼리 원하는 요일을 정해서 참여하게 해야 한다.
독서동아리 오리엔테이션은 동아리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아이들에게 독서동아리 신청을 받았다면 아이들을 모아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전년도 학생들이 했던 독서동아리 활동 모습을 보여 줘도 좋고 다른 학교의 학생 독서동아리 활동 사례를 보여 줘도 좋다.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 활동했던 내용을 보는 것은 학생들에게 적절한 동기 부여가 되며 앞으로 자신들이 활동할 동아리 내용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왜 독서 모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아이들이 충분히 느끼도록 설명해 준다.
아이들이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책을 선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리엔테이션 때에는 학생들이 읽기에 적절한 도서 목록을 어느 정도 예시로 보여 주는 것이 좋다. 인권, 진로, 평화, 왕따 문제, 가족, 사랑 등등 각각의 주제별로 좋은 책들의 예시를 보여 주며 아이들이 특정 주제나 분야의 책만 읽는 독서 편식을 방지하고 다양한 주제의 도서를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동아리별로 모여 서로 상의하여 한 해 동안 읽을 책과 활동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하도록 한다.
독서동아리 활동이 꾸준히 유지되고 아이들이 자신이 해 나가는 활동을 정리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계획서 및 동아리 일지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때 사서는 동아리 계획서와 일지 양식을 각 동아리별로 예쁘게 파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해 활동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독려해 준다. 또한 사서는 각 요일별로 활동하는 동아리 일정을 미리 메모해 두어 아이들이 잘 모일 수 있는지 체크해 주어 울타리 교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울타리 교사로서 아이들이 모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정해 주고, 소정의 간식거리를 챙겨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관심 있고 자신들의 활동을 지원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 준다. 이는 학생들의 동기 부여 및 성취감 획득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흥미를 끌 수 있는 책 고르기 방법은?
동아리 구성원인 아이들의 잦은 변동이나 교사의 업무 과다 등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재미’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독서동아리가 잘 운영되려면 동아리를 구성하는 아이들끼리의 관계나 교사와 아이들과의 관계가 재미있어야 하고, 읽고 싶은 ‘재미’있는 책이 있어야 한다. 재미도 있고 독서동아리 아이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지는 마법 같은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독서동아리 구성원을 모집한 후 아이들을 살펴보면, 분명 독서 태도나 습관을 어느 정도 심사했는데도 독서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어떤 책으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학년을 염두에 두고 중간 수준의 책을 선정해도 읽는 걸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고학년 아이들의 경우 읽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고 바빴다는 핑계를 주로 대지만 자세히 보면 수준이 조금 낮은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처음 1~2회 정도는 그림책으로 동아리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글과 그림을 같이 보며 그림책의 매력도 느낄 수도 있어서다. 아이들이 시시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책을 손에 쥐어 주고 여러 번 읽어 오라고 하면 아이들도 어느
새 묵직한 울림을 느끼게 되고 그 감동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100만 번 산 고양이』(사노 요코),『 프레드릭』(레오 리오니)
『고래가 보고 싶거든』(줄리 폴리아노),『 토끼들의 밤』(이수지) 등
이렇게 그림책으로 워밍업을 하고 나면 아이들은 책 읽기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마음을 열게 되고, 결석률도 낮아진다. 어느 정도 아이들과의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글밥이 많은 책으로 가기 전 징검다리 같은 책으로 다리를 놓아 주자. 두께도 얇고 이야기도 술술 읽히면서 토론거리가 있는 책이어야 한다.
『나는 어린이입니다』(콜라스 귀트망),『 살아 있는 모든 것들』(신시아 라일런트),『 사료를 드립니다』(이금이) 등
독서동아리를 운영하는 최종 목표는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문제의식을 깨우고 시끌벅적 토론을 하며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 주제를 정할 때부터 함께해야 한다. 마중물을 위한 도서를 4~5회 같이 읽고 토론했다면, 이제 아이들에게 방향키를 맡겨 보자. 그렇다고 망망대해에 덩그러니 두지는 말고 대주제는 교사가 정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소주제와 도서를 정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그냥 재미있는 책’이라는 주제로 책을 고를 때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나무집 시리즈’를 선정한다. 그리고 왜 이 책이 요즘 인기가 있는지 원인도 생각해 보고 기존의 베스트셀러 도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분석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중간 중간 책 선정 방법에 관해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태도도 사뭇 진지해지고, 안목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을 선정하면 안전하다. 우선 그 책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과 토론 주제를 쉽게 찾을 수 있어 교사의 수고를 덜어 준다. 또한 요즘 아이들이 읽어도 촌스럽거나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읽고 난 다음에도 아이들의 가슴 속에 오래 남아 처음 읽을 때는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도 다 읽은 후에는 재잘재잘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독서동아리 운영을 위해서는 교사가 책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교사는 아동문학 전반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새로 나온 책, 각종 신문, 잡지 속의 서평 코너 등에 관심을 기울이자. 그리고 아이들을 믿자. 믿는 만큼 자란다고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자꾸 제공해야 한다. 아이들이 고른 책이 설사 별로였을지라도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성장한다. 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각만큼 아이들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때만큼 소중한 경험도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이들의 생활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닌지 등을 생각해 보고 동아리 운영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어렵겠지만 아동문학을 읽는 교사 독서동아리도 함께 운영해 보길 권한다. 혼자 읽고 책을 고르기보다는 동료교사들과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며 도서 목록을 만들어 놓으면 양질의 도서를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것 같다. 한 해, 두 해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뒤엉켜하다 보면 조금씩 노하우가 쌓인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보다는 ‘함께 읽으며 같이 성장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조금은 가볍게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처음 시작하는 모든 독서동아리를 응원한다.
자율적 활동의 기반 만들기
독서동아리 만들기는 활동 계획서 작성하기로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마음이나 꿈의 방향이 서로 맞는 친구들 4~5명을 모아 동아리를 만들 것을 권한 다음, 친구들을 모아 오면 독서동아리 활동 계획서를 나눠 준다. 새로운 조직이 탄생했다면 맨 먼저 이름이 필요하다. 함께 모여 이름을 짓고,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의 책을 읽을지 정한다.
동아리원들이 동아리 활동 시간과 모임 주기 등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한다.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만날 것을 권하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다. 동아리 이름과 모임 주기, 날짜 등이 정해지면 도서관을 둘러보며 자신들의 활동 주제에 맞는 주제 도서를 2권 정도 정하게 한다. 이때 사전에 교사가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적절한 복권의 책들을 모아 놓은 독서동아리용 서가를 마련해 놓으면 좋다. 주제 도서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독서동아리가 만들어지면 발 빠르게 읽을 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 누구든 시작할 때는 의욕이 충만하다. 그 의욕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신속하게 독서동아리들이 원하는 책을 준비해 준다. 홍천여고의 경우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 동안은 거의 매일 책을 주문할 정도로 책 준비에 열을 올린다. 학생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을 빠르게 준비해 주는 것, 이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감동한다. 처음 시작하는 독서동아리에게 이만한 응원은 없다.
마당만 깔아준다고 독서동아리가 저절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왜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해야 하는지, 왜 함께해야 하는 건지, 구체적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이 없으면 학기 초의 불타는 의욕은 길어야 3주다. 아이들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세계를 욕망하게 하려면 강력한 유혹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매 학기 독서동아리 워크숍을 진행했다. 2015년에는 백화현 선생님과 이경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실장님, 2016년에는 김은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선생님들의 풍부한 경험과 구체적 가르침 덕에 학생들은 의욕에 실천을 더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함께할 수 있는 경험 만들어 주기
사람은 함께했던 시간의 힘으로 살아간다. 관계의 문제에 예민한 청소년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학교도서관에서 함께 읽기를 철학으로 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독서동아리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열리는 학교도서관 작은 행사는 독서동아리의 활력소가 된다. 바깥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에 떠나는 소풍처럼, 푸른 하늘 밑에서 땀나도록 뛰게 하는 체육대회처럼 동아리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준다. 5人의 책친구나 인문학 독서토론카페, 지역 독서동아리 연합 인문학 독서토론 파티 등은 함께하는 독서동아리원들로 늘 북적인다. 그저 함께했을 뿐인데, 서로에 대한 애정도가 급상승한다.
독서동아리들은 쉼없이 움직이는 세포들처럼 도서관 곳곳을 점령하고 활동하지만 다른 동아리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마련하는 것이 독서동아리 활동 발표회이다. 공식적으로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자리를 학기별로 한 번씩 마련하는 것이다. 사전에 10팀 정도 신청을 받아 발표 자료를 준비하도록 한다. 가벼운 퀴즈 대회도 준비해서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아이들은 우수한 활동 사례를 공유하고 서로의 힘을 확인하면서 독서동아리가 작은 조직이 아니며, 대세라는 것에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다음 학기 활동을 다짐하면서 마음의 각오도 다진다.
독서동아리 활동 발표회 이후 새로운 학기 활동에 의욕을 내비치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발표회를 꼭 열게 만드는 이유이다.
소소하지만 독서동아리를 유지시키는 큰 힘이 있다. 바로 ‘사랑 표현’이다. 아무리 아끼고 사랑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수시로 사랑 표현을 한다. 교무실에 독서동아리 파일철을 꽂아 두는 책꽂이를 마련하고 활동을 위해 찾아오는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요즘 읽는 책은 무엇인지, 어려움은 없는지, 얼마큼 읽었는지도 수시로 확인한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면 파일철에 예쁜 스티커도 붙여 준다. 다른 동아리 스티커가 많으면 살짝 질투도 한다. 긍정적인 경쟁심에 눈빛이 귀엽게 반짝인다. 모여서 토론하는 동아리를 찾아가 작은 알사탕과 곰모양 젤리도 나눠준다. 바뀐 머리 모양과 오늘의 점심 메뉴에 대해서 얘기하다 보면 도서관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작은 우물가가 된다. 책을 통해 맺어진 관계는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더 돈독해진다.
자랑하면 잘한다
아이들은 독서동아리에서 책 읽고 토론만 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작은 신문을 만들기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좋은 구절을 뽑아 친구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활동을 수시로 발표할 수 있는 작은 마당을 마련해 준다. 작은 칠판을 주고 책 속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게 해서 창가에 전시하거나, 게시판의 한쪽 면을 독서동아리 활동 전시 공간으로 주고 맘껏 뽐낼 수 있게 한다. 서로를 보고 배우며 독서동아리 활동은 나날이 풍부해져 간다.
독서동아리를 잘 이끌려면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어떤 문제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고민하는지 교사가 잘 알아야 한다. 책 읽기는 자기 문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재 자기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서로 공유하면서 책의 선정과 토론의 윤곽을 그려나가야 한다. 독서지도를 할 때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는 필독서나 고전들을 읽혀야 한다는 의무감에 집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책을 아이들에게 읽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좋은 책이니까 꼭 읽어야 한다는 논리로는 아이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이런 책들을 읽히는 방법도 아이들이 자기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도록 교사가 연결점을 잘 찾아주어야 한다.
아무리 고전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도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책도 사람과 같아서 그 세계에는 고유한 만남이 있다. 고전 목록이나 추천도서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별 효과가 없는 것은 읽기를 강제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신의 내적 필요와 갈증에 의하여 한 권의 책과 조우하는 과정을 생략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주지시켜야 하는 것은 ‘나는 어떤 문제의식과 물음들과 씨름하고 있는가?’를 독서의 출발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의 물음’이 부재한다면 아무리 고전과 필독서를 많이 읽었다 해도 아이를 성장시키는 지적 자양분이 되지 못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예로 들어보자. 이 책이 베스트셀러이고 유명 인사들이 많이 추천하고 대학논술 시험에도 나오니까 읽어보자고 한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심드렁할 것이다.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는 교재가 하나 더 생겼나보다며 책을 읽기 전부터 부담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대화를 통해 서로의 문제의식을 공유했다면 교사는 이 책에 소개된 철학적 관점들을 아이들에게 적절히 매개해 줄 수 있다. 아이들의 문제의식과 책을 연결하는 지점들을 발견하는 감각이 교사에게 필요하다. 읽고자 하는 책이 지금 나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탐색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대강이라도 아이들에게 알게 해야 한다. 책이 생각의 도구로서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실감을 아이들이 느껴야 한다. 이런 감이 오면 아이들은 책을 읽어 낸다.
교사는 언제나 준비돼 있어야 한다
교사는 아이들의 문제의식과 고민을 책과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기민한 감각과 예민한 더듬이를 갖고 있어야 한다. 토론 교재 선택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먼저 가능한 한 많은 책을 읽어서 아이들의 변화하는 생각들에 빨리 반응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할 텍스트를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학교가 작아서 언제나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간디학교에서도 이 문제로 다툴 때가 많다. 도서관 사용과 관련하여 그런 논쟁이 있었다. 학생회나 여러 동아리들이 모임을 가질 장소가 마땅치 않아 도서관에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공부하는 아이들의 불만이 많았다. “도서관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누구나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도서관은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공간이니 다른 모임은 안 된다.”라는 주장이 맞섰다. 이 문제를 토론하는 데 『정의란 무엇인가』가 요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이 책에 나오는 정의관으로 토론하도록 했다. 토론은 치열하게 전개됐다.
아리스토텔레스, 밀, 칸트, 롤스의 철학이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가는 데 얼마나 적절한 사고의 도구인지를 생생히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정의는 사물의 본질에 맞는지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는 관점(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 따르면 도서관의 본질은 공부하는 곳이기에 공부하는 학생이 우선이고 그들이 반대하면 누구도 모임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과, 그런 논리는 공정성의 원칙에 어긋나며 도서관은 학교의 공공시설이기에 누구에게나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존 롤스)이 팽팽하게 맞섰다.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 토론을 통해 아이들은 두툼한 책을 읽어냈고 어렵다는 철학적 사유를 스스로 해냈다.
외국문학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교사가 번역서를 미리 검토해야 한다. 오역이 많은 서툰 번역을 고르면 좋은 작품도 망칠 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걸작이 번역 탓에 범작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책의 경우는 좋은 번역이 너무 많아서 고민되는 경우이니 아이들과 먼저 어떤 번역서로 읽을지부터 정해야 한다. 시중에 있는 20여 가지 번역서 가운데 좋은 번역이라고 알려진 것 세 책을 아이들에게 추천해 주면 좋다.
그럼 아이들은 세 권의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이야기 전개가 자연스럽고 자신들의 언어 감각에 맞는 번역본을 선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부도 덤으로 하게 된다. 독서를 꼼꼼하게 하면 더 즐겁다는 점,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는 점, 번역은 외국어를 잘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말을 잘 구사해야 한다는 점 등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오래전에 참 ‘재미없게’ 읽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이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싶을 정도로 흠뻑 빠졌다. 문제는 번역이었다. 번역을 맡은 김영하는 소설가답게 과감하게 의역을 시도하면서 작가가 담은 열정과 우수와 사색을 섬세하게 살려냈다. 만약 요즘 아이들이 예전의 나처럼 밋밋한 번역으로 읽는
다면 감동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외국의 걸작 문학을 읽힐 때는 좋은 번역을 찾아서 읽히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교사가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정작 아이들이 책을 읽어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교사는 원활한 독서토론을 위해 정해진 날짜 하루 전쯤에는 아이들에게 도서명, 장소, 시간에 대해서 알리는 것이 좋다. 교사의 애정 어린 문자 한 통으로도 아이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도교사보다 사고가 유연하다. 그러니 교사의 지식과 논리로 한 수 전수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배우러 간다.’라고 생각하면 독서토론 시간이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읽은 책을 들고 아이들에게 배우러 갈 시간이다!
독서아크로폴리스는 우리학교의 독서동아리 프로그램으로 1단계 교양독서토론, 2단계 심화독서동아리로 나뉜다.
1학년 대상의 교양독서토론은 비경쟁 토론방식의 인문독서토론으로, 아이들이 독서토론을 통해 지성과 감성을 기
르는 단계를 뜻한다.
2단계 심화독서동아리는 2, 3학년을 대상으로 전공과 관련된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함으로써 전공 적합성을 높이는 독서동아리이다.
방과 후 활동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010년 처음 독서동아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매해 동아리 수를 늘리며 7년째 지속할 수 있던 건, 학생들의 자발성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연간 10시간 이상 참여, 보고서 및 운영 일지 제출, 참여성 결여 시 지도 교사의 의사에 따라 자동 해체 등 운영 규칙을 사전에 부여하되 팀 구성부터 책 선정, 토론 시간, 토론 횟수, 토론 방법, 지도교사 초빙까지 독서동아리 운영의 대부분을 학생들이 자유롭게 논의하고 정해서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토론 시간의 경우 한 책으로 2시간 동안 방과 후에 모여 오롯이 하는 것도 좋지만 항상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인 만큼 하루 30분씩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서 독서토론을 하거나, 주말에 외부에서 해도 된다. 단, 교외에 모여서 할 경우 사전에 지도교사에게 말하고 토론 내용을 녹음하고 사진을 찍어와 확인을 받도록 한다. 토론 시간만 자유로워져도 아이들의 참여율은 쑥 올라간다.
독서동아리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도교사의 독려가 필요하다. 제대로 깊이 있는 독서토론을 했는가도 중요하겠지만, 독서동아리에 참여하고자 책을 읽어 오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고, 함께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학생도 교사도 모두 부담 없고 편안한 독서동아리로 유지될 수 있다. 그러면 누군가는 진로와 더불어 삶의 의미를 그 속에서 찾아내지 않을까. 단 한 명의 그 누군가가 나온다면 성공한 독서동아리라고 생각한다.
교사 혼자, 또는 도서관에서만 작가와의 만남을 준비해야 한다는 건 힘들고 어렵다. 무엇보다 한 번하기도 벅차고 힘들다. 하지만 여러 교과와 연계하여 서로 도와가며 준비하면 훨씬 더 편하고 보람된 시간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예산의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토론의 과정을 거쳐 작가를 만나는 아이들의 감동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마도 아이들의 행복과 변화 때문에 이런 일들을 계속 꿈꾸고 진행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 학교 한 남학생은 “선생님~ 작가님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울려요!”라고 밝히기도 했다. 책과 만나는 설렘, 작가와 마주하며 느끼는 울림, 이런 게 바로 작가와의 만남이 주는 행복 아닐까.
창작동화 쓰기는 그야말로 창작활동이므로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독서하브루타이다. 독서하브루타는 책을 읽고 생각 나누기에 좋은 질문을 갖고 짝 또는 모둠 구성원들과 지속적으로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아이들의 창의적인 표현과 사고력을 증진시키기에 좋다.
창작동화책 쓰기는 학생 모두가 동화작가 또는 꼬마작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학생들은 늘 읽어 오던 동화책을 직접 써 본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창작동화 쓰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의 주제는 생활 속에서 경험한 내용으로 정해도 좋으나, 책을 읽고 생각 나누기 좋은 질문을 만든 후 개인 또는 모둠 대표 질문으로 정한다.
정해진 이야기 주제에 대해 모둠 구성원들 간에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상상력을 키우고 생각의 폭을 넓힌다. 이때 주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글로 표현한 다음 옆 사람에게 전하여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을 먼저 한 후 생각 나누기를 하면 더 활발하게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야기 구성 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 그리고 이야기의 교훈을 미리 생각해 본다. 특히 사건의 경우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순서로 구상하게 한다. 앞서 생각 나누기 과정에서 쏟아낸 생각들이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러한 이야기 구성 요소들은 실제 창작동화를 쓰면서 수정 보완되기도 한다.
모둠 구성원 4명이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을 한 부분씩 동시에 쓸 때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서 먼저 말로 이야기를 쓰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에 경청하고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조율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말로 쓰기로 이야기가 완성되면, 글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쓰기 전에 안내할 주의할 점은 아래와 같다.
• 소제목 정하기: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의 글 첫머리에 소제목을 쓴다. 소제목은 처음에 잘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야기를 다 쓴 후에 정하게 하면 아이들이 무난하게 잘 생각해 내기도 한다. 소제목은 차례를 쓸 때도 필요하다.
• 글과 그림 배치: 글을 쓰기 전에 미리 그림 그릴 위치를 다양하게 정해 두고 쓰는 것도 좋다. 글의 양에 따라 글과 그림을 짜임새 있게 배치해야 한다.
• 글자 크기 및 글씨체: 글자 크기는 교과서 글자 크기 정도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바른 글씨체로 쓰도록 강조한다.
• 문장의 어미 통일: 혼자서 이야기를 쓸 때는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네 명의 학생이 하나의 책을 구성해야 할 때는 문장 어미를 통일하면 일체감이 생긴다.(~니다, ~요, ~다) 따라서 아이들이 글을 쓰기 전에 서로 협의해 정하게 하는 것이 좋다.
책의 구성 요소인 표지(앞표지, 뒤표지), 머리글, 차례, 각자 완성한 본문 내용 등을 모아 하나의 동화책을 완성한다. 모둠 구성원 모두가 각각 책표지 꾸미기, 머리글 쓰기, 차례 및 등장인물 소개, 개인별 작품을 모아 책으로 엮기 등 네 가지를 하나씩 맡는다. 이렇게 역할을 정해 진행하는 것은 무임승차와 혼자 주도하는 것을 막고 책임감과 협동심을 높이기에 좋다. 이러한 역할을 정할 때에는 저마다 개인의 강점을 살리도록 하는 것이 좋다.
모둠 구성원 중에서 비교적 디자인에 강점이 있는 학생이 맡으면 좋다. 앞표지에는 책의 제목, 글과 그림, 저자명, 출판사명 등을 쓰도록 한다. 표지 여백에는 그림을 적절히 그려 넣어도 좋다. 뒤표지에는 작가 소감란을 만들어 모둠 구성원 모두가 책을 펴낸 소감을 돌려가며 쓰고 책의 가격과 바코드도 그려 넣게 한다.
머리글은 모둠 구성원들 중 글짓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주로 맡긴다. 머리글에는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쓴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 책을 읽게 되면 어떤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 또는 작가의 고민 등 독자와 공감하고 싶은 내용을 담는다.
차례는 각 개인의 소제목과 해당하는 쪽수를 쓴다. 대체로 한쪽에 모두 쓸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옆쪽에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도록 한다.
책 제본을 담당하는 것에 해당한다. 개인별 작품을 모아 붙이는 역할의 경우 꼼꼼하게 손놀림을 잘하는 학생이 맡게 한다. 2쪽 뒷면과 3쪽 뒷면을 붙여서 2쪽과 3쪽이 서로 이어지게 붙인다. 나머지 쪽도 같은 방법으로 이어가도록 한다. 제본은 머리글, 차례, 본문 순으로 한다.
책 내면을 모두 붙이고 마지막에 표지로 감싸 붙인다. 이때 딱풀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특히 가장자리 부분에 풀칠을 꼼꼼하게 하여 단단하게 붙이도록 강조한다.
책이 완성되고 나면 발표의 기회를 가진다.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친구들 앞에서 개인 또는 모둠별 창작동화를 발표하게 한다. 이때는‘ 도서출판 기념 발표회’라는 현수막도 붙이고 간단한 간식도 준비한다. 아이들이 발표를 하고 나면 일정 기간 전시를 해둠으로써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뒤적뒤적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았다. 그래도 여러 선생님들께 “저 이건 좀 잘 했어요~” 하고 말씀드릴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까? 하고 되짚어 보았다. 순간 책상 한편에 가지런히 놓인 『간데족족, 정선』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12월에 만든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만큼만 있는 아주 희귀한(?) 책이기도 하다. 정선고 책 쓰기 동아리 ‘기록하는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했던 활동들이 빼곡히 담겼다.
대구에서 시작된 ‘학생저자 책 쓰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움직임에 따라 나 역시 지역교육청을 통해 공모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2015년, 2016년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2015년에 『주사위』(김도균 외 5명), 2016년에 『간데족족, 정선』(김태연 외 7명) 책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학생들이 저자가 되어 직접 책을 만드는 독서동아리다.
2015년의 경험을 통해 4월쯤 공모 공문이 온다는 걸 알고 있던 나는 3월부터 책 쓰기에 관심 있는 학생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동아리 모집 포스터를 만들고 아이들이 미끼(?)를 물길 기다렸다. 옳거니! 할까 말까 고민하던 학생들을 달콤한 말로 유혹해 (“책 표지에 너의 이름이 실린다고 생각해봐~ 정말 멋지지 않니?”) 8명의 학생들로 책 쓰기
동아리의 출발을 내딛었다.
지원서를 작성하기 전에 학생들과 모여 우리 동아리에서 어떤 책을 만들지 함께 의논했다. 2015년에는 각자 쓰고 싶은 주제를 정해 단편소설을 쓰도록 했지만 올해는 통일된 주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가 사는 ‘정선’이란 지역에 집중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가장 친근하고 익숙한 주제여서 마음이 모아졌던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오히려 익숙했던 정선이 낯설게 느껴졌다.
정선은 참 독특한 곳이다.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국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던 <웰컴 투 동막골>이 정선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 실제로 정선은 산을 굽이 굽이 돌아 “이런 곳에 무슨 마을이 있을까?” 싶을 때 마을이 나타나는 곳이다. 오랜 시간 자급자족하며 살던 정선 사람들은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정선 설화와 정선아리랑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70~80년대에는 산업 전사 광부들이 아파트 100층보다 높은 깊이의 수갱에 들어가 까만 석탄을 캐내오셨다. 지금은 그 자리에 강원랜드가 들어서 일확천금의 꿈을 부축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유구한 이야기를 지닌 정선을 우리 아이들은 떠나고 싶어 한다. 뭐든지 쉽게 할 수 있는 도시살이를 꿈꾸며 고향의 아름다움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정선의 아리랑, 설화, 석탄 이야기 등 정선 지역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 동아리는 정선의 과거를 알고 계신 지역의 어르신들을 찾아 이야기 씨앗을 받아오기로 했다. 그 이야기 씨앗을 저마다의 마음에 심어 새로우면서도 정선스러운 이야기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책의 차례를 살펴보면 우선 1부 ‘정선’에 정선 5일장과 정선설화에 관련된 이야기, 2부 ‘아리랑’에 아리랑 박물관과 아리랑 보유자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 3부 ‘석탄’에 광부 할아버지와 광부 가족들의 이야기 등 총 6편의 이야기로 구성해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이야기 속 삽화와 인터뷰 페이지의 일러스트를 맡은 두 아이들의 예술적 감각이 더해져 『간데족족, 정선』 책이 완성되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주변 선생님, 학부모님께 도움을 구하니 “해주마” 하는 어르신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만남 약속이 정해지면 그 전에 모여서 함께 질문을 만들었다. 이야기를 쓸학생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 과정은 전체가 함께했다. 혼자하면 잘 생각나지 않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궁금한 점, 더 알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인터뷰도 담당 학생뿐만 아니라 동아리 학생들이 모두 함께 참여했다. 이야기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르신들이 기억하고 계시는 정선을 우리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터뷰 후에는 각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동아리 모임에서는 ①줄거리 프리뷰 ②첫 장 읽어 주기 ③중간 점검 ④최종 점검 ⑤작가의 말 쓰기 ⑥편집 단계로 책 만들기를 진행해 갔다. 중요한 것은 마감 날짜를 분명하게 정해 주는 것이다. 정해진 날짜가 애매할 때에는 자꾸만 일정이 늦어져서 “이러다 책 못 만드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를 분명하게 정하고 기한을 꼭 지키도록 약속하는 게 중요하다.
2015년에는 책 편집을 직접 했지만 2016년에는 동아리 학생에게 맡겼다. 편집이 좀 엉성하더라도 학생 스스로 하는 게 의미있다는 생각으로 맡겼는데 이게 웬걸, 나보다도 나았다. ‘교사는 아이를 믿어 주고, 맡겨 주는 게 할 일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아이들에게 한 수 배운 셈이다.
책이 가득 담긴 묵직한 택배 상자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조심조심 테이프를 제거하고 완성된 책을 손에 들었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책표지에 쓰인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마주했을 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모든 시간을 함께해준
책 쓰기 독서동아리 아이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완성된 책을 가지고 ‘대구 학생 저자 책 축제’에도 참여했다. ‘나.도.작.가’란 글씨가 있는 쿠션을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동아리 MT 때 인터뷰해 주신 어르신들께 선물했던 슈링클스로 체험 마당을 열어 부스를 운영하는 멋진 경험도 했다. 우리 동아리 학생 중 한 명은 ‘내 사랑 사북’이라는 주제로 학생 미니 특강을 하는 영광도 누렸다.
완성된 책을 감사카드와 함께 인터뷰해 주신어르신들께 보내는 것으로 우리들의 활동은 마무리되었다.
여러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계신 선생님이 있다면 동아리마다 일정 분량의 원고를 받아 한 책으로 엮어내도 좋다. 책을 만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으니 모임의 수명이 길어지고, 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 좋다. 보람도 매우 깊다. 독서동아리 운영에 실패해서 ‘기가 팍 죽어 있던’ 나 역시 할 수 있었으니 다른 선생님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