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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김순필 안동강남초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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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6-07 08:51 조회 1,30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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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하는 도서관

어린이는 자란다

김필순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뚝심. 굳세게 버티거나 감당하여 내는 힘. 때때로 한 지역에서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글을 쓰고, 수업을 개발하고, 동료들을 한데 뭉쳐 소통을 꾀하는 사서선생님을 보면 떠오르는 단어다. 그리고 뚝심 하면 떠오르는 선생님들 가운데 김순필 사서교사가 있다. 이십 년간 안동, 예천 등 경북 북부지역 학교도서관을 지켜 온 그는 전산화는커녕 먼지투성이인 고서들이 굴러다니는 불모지들을 일으켜 왔다. 숱한 재단장뿐 아니라, 어린이 이용자든 학부모 봉사자든 허물없이 대하며 상대가 편안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추는 마음에서 환대의 온도가 느껴진다. 외유내강의 전형이어서, 품고 있는 사서교사로서의 자부와 철학이 굳건하지만 늘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마력(?)이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다수의 프로 독서러보다 책이 필요한 소수의 소외된 어린이를 위한 수업을 고민하는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러, 이번에는 안동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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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교직생활 중 17년을 안동에 계셨어요. 안동 지역의 초등학교 첫 사서교사이기도 하신데, 이용자·장서·공간을 놓고 봤을 때 지금과 어떤 것들이 달랐나요?

눈이 내리던 날, 첫 출근을 한 곳은 안동에서도 외곽에 있는 길안초등학교였어요. 사과로 유명한 곳인데, 맞춤법이 개정되지 않은 시절의 책들이 창고 같은 곳에 한가득 쌓여 있었어요. 그 무렵은 도서관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던 분위기여서, 처음부터 모든 걸 만들다시피 했어요. 어린이들 발길이 닿지 않았고 방치됐다시피 했던 도서관 문을 열고, 오래된 책을 폐기하는 일부터 했죠. 표지가 낡고 시커먼 전집이 여기저기 쌓여 있던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웃음) 새책을 주문하고 전산등록이 되지 않은 책들을 일일이 등록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땐 DLS(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 나오기 전이었어요. 저희 지역에선 전산프로그램 ‘책꽂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쓰고 있었는데, 그걸로 대출·반납을 하다가 DLS가 도입되면서 다시 변환하는 작업을 거치며 장서를 갖춰 갔죠. 대부분 학생과 교사가 사서교사를 처음 본 무렵이기도 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한편으론 사서교사를 독서 전문가로 바라보며 독서교육을 책임져 달라는 관리자의 기대가 컸어요. 못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지금 신규 선생님들은 “저희는 처음이라 잘 몰라요.” 동료에게라도 말할 수 있을 텐데, 사서교사가 아예 없던 지역에 첫 발령을 받은 입장에선 ‘전문가의 자질’을 잘 보여 줘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따랐거든요. 인수인계해 주는 선배가 없었던 건 당연했고, 알아서 도서관 문을 열고 신입생을 맞이해야 했어요. 외관을 꾸미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당시 출판의 황금기를 맞이했던 동화책과 그림책 등을 꾸준히 수서하며 도서관의 틀을 점차 마련해 갔죠.


티오가 나지 않다시피 한 지역에서 홀로 근무하며 버티는 일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아요.

신규 사서교사를 하나둘 뽑으면서 현재는 안동지역의 초등 사서교사가 4명이 됐어요. 예전에 근무하던 풍천풍서초는 전교생이 9백 명 가까이 되는데, 제가 이곳 학교로 오면서 그곳 사서교사 발령이 묘연해졌고 도서관 전담인력이 미배치된 상황이 벌어졌어요. 풍천풍서초는 외곽에 있지만 교실 네 칸 크기에 공간도 잘 구성된 곳이거든요. 외지 발령을 희망하는 선생님이 없고 신규도 워낙 없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지만 애초 경북에선 5년간 사서교사를 뽑을 계획이었어요. 인력을 점진적으로 채워 나갈 계획이었는데, 3년간 뽑고는 더 이상 뽑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한 지역에서 계속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요. 안동이 속한 경기 북부에선 사서교사의 학교 이동이 잘 이뤄지지 않아요. 봉하, 영양, 청송, 영주, 예천 등은 교통이 좋지 않거든요. 가령 대구에서 안동까지 이동하기는 수월한데 안동에서 청송이나 영양 지역으로 가려면 한두 시간을 더 가야 해요. 그래서 교사들이 희망 발령지를 쓸 때 이 지역들이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요. 경북 북부로 가려면 안동을 거점 삼아 지나가야 해서 대개 안동을 경북 북부의 중심지라 부르는데, 제가 터줏대감처럼 오래 있게 되었어요(김 교사는 예천 등에서도 근무한 이력이 있다).


경북 지역 사서교사 배치율은 전남(17.4%)에 이어 18.4%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에요. 신규 시절, 동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축하셨나요?

초반에는 경북이 선도적으로 학교도서관 인력을 채운다며 다른 지역보다 일찍 배치를 시작했는데, 그 뒤로는 거의 뽑지 않았어요. 인원이 워낙 적다 보니 도서관 전담인력이 없는 학교에 저희 지역 사서교사들이 출장을 가요. 사서교사가 미배치된 학교에서 도서관 담당교사를 만나 DLS 프로그램 사용법 등 도서관 운영 전반에 대해 조언해 드리고 있어요. 폐기할 책들을 골라 주기도 하고요. 대부분 행정 업무에 치중된 순회 사서 업무를 저희 지역은 하지 않고 있어요.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를 만나며 독서수업과 수업 지원을 해야 하는데, 다른 업무로 분산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예전부터 있었거든요. 
소수의 인원은 소수끼리 뭉치기 마련이잖아요. 도 단위 교과 연구회가 있는데, 경북 지역은 다 합쳐도 오십 명이 안 됐어요. 그럼에도 선생님들이 합심해서 뭉쳤고, 서로 근무하는 지역이 먼데도 불구하고 교과연구회로 만나 왔어요. 경북은 지역이 넓다 보니 권역별로 동서남북을 나눠 부르곤 하는데, 가령 안동은 북부 권역·포항은 동부 권역에 속해요. 연구회에서도 동서남북 권역으로 나누어 매달 모여 연구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만들고, 방학 때마다 오프라인 모임을 열어요. 매년 돌아가며 권역별 대표를 뽑는데, 네 개 권역별 대표가 모여 한 해 연구를 어떻게 할지 이야기 나누고 연구해 온 과정도 발표해요. 때때로 외부 강사를 불러 연수도 듣는데, 신규 사서교사가 오면 해당 권역 선생님이 챙기며 연구를 함께하길 독려하기도 해요. ‘경북 사서교사의 모임’ 카페에 지금까지 했던 연구 결과물, 도서관 활용수업 자료를 업데이트해 오고 있어요. 교사들이 온라인에서 카페를 만들더라도 공개적으로 자료를 보여 주는 경우는 드문데, 저희는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전체 공개를 하는 편이에요. 회원 수도 삼천 명 가까이 되는데, 초창기에 카페를 만드신 김인혜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카페를 이끌고 계세요. 도서관 업무에 참고할 수 있는 정보뿐 아니라 권역별 교과연구 자료도 많아요. 각자 사정에 맞게 쓰실 수 있도록 주제별 수업 활동지도 고르게 올려 두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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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지원센터와 교육지원청 장학사, 안동 지역 사서교사가 협력해 학교도서관 지원 업무를 하고 있어요. 전담인력이 없는 학교 지원 업무는 일 년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나요?
처음 근무하던 무렵에는 안동 지역 초등학교 지원 업무를 혼자서 다 해야 하니 20~30회 정도 나갔어요. 20년 전만 해도 안동에 있는 초등학교를 거의 다 갔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인원이 네 명으로 늘었으니 사서교사들과 N분의 1로 나눠서 지원 업무를 가요. 올해엔 한 사람당 여덟 번 정도 나갔던 것 같아요. 도서관에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오는 오후 시간대에 타 학교 지원을 가는 편이고요. 구체적인 주요 업무는 독서문화 협력체제 구축 운영, 신학년 DLS 바로 지원, 현장 업무·집중 지원, 학교도서관 온라인 상담 채널 운영, 작가와의 만남 등으로 다양한 일들을 돕고 있어요. 지원을 요청하는 학교를 우선해서 가는데, 연초에 도서관 담당교사를 대상으로 도서관 프로그램 연수도 열어요. “도서 등록을 하려는데 IP 등록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등 수시로 질문에 답해 드리고요. 도교육청 아래 문헌정보과장·사서·학교도서관지원사로 이뤄진 안동권역 학교도서관지원센터가 있어요. 그리고 안동·영주·의성·청송·영양·봉화 여섯 곳 교육지원청에서 사서교사, 장학사, 담당자로 이뤄진 조직이 지원 업무를 하고 있어요. 그중 사서교사가 34명으로, 안동 지역의 경우 10명의 초·중등 사서교사가 지원 업무에 나서고 있어요.


간혹 학교도서관 지원 업무에 호의적이지 않는 교사들도 있나요?

컨설팅해 줄 것도 없는데 왜 오냐고 하는 선생님이 계세요. 저희 입장에선 도우러 갔다가 상처받고 오니 이 업무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시는 분도 계세요. 사실 사서교사를 제외한 대부분 교사는 도서관 업무를 기피해요. 도서관 업무는 쉽지 않거든요. 책 정리는 기본에다가 늘 여러 선생님들과 소통해야 하고, 수업도 해야 하고, 공간도 구성해야 하고, 프로그램이나 행사도 정기적으로 열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저희는 계속 지원 업무를 나가고 있어요. 워낙 적은 인원으로 사서교사가 배치되었고, 전담인력이 없다시피한 도서관 상황을 개진해야 하니까요. 일선 교사에게 도서관 업무를 안내해 드리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하시다가도 ‘운영의 감’을 잡고 도서관을 꾸리시는 경우가 있어요. 공공도서관, 교육청이 학교도서관지원센터로 뭉쳐서 사서교사가 없는 학교를 계속 지원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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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서교사의 문화해설을 들은 어린이들이 『몽실 언니』 활동지에 색칠 활동을 한 모습.

권정생 동화나라(경북 안동시 일직면 성남길 119)의 자세한 관람 정보는 www.kcfc.or.kr(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참고할 수 있다.



복지국가들은 일찍이 교과서 없이 수업하는 교육체계로 개편했는데, 국내에 이 체계가 도입된다면 학교도서관 활용 빈도가 늘어날 것 같아요. 미래 교육만 논해도 도서관 전담인력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낄 텐데요.

저 역시 활용수업을 기획하고자 여러 수업 자료를 참고하며 연구해 왔어요. 한 번은 힘들다고 담임선생님께 털어놓은 적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서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미래 교육에서) 목표로 하는 수업 방법을 먼저 연구하고 계시는 거예요.” 제가 하는 수업 공부가 교과서 없이 여러 단행본을 도구 삼아 수업할 수 있도록 구성해 미래교육의 바탕을 꾸리는 일이라는 걸 그때 체감했어요. 그래서 교과서가 아닌 다양한 단행본으로 수업을 꾸리는 일이 힘든 일인 것만은 아니구나 싶기도 해요.


지원센터를 통해 공공도서관과 공조하여 작가와의 만남도 기획해 오셨지요.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사서교사와 장학사, 공공도서관 사서들이 모여 안동권역 학교도서관을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정기 회의를 하는데, 사실 작가 섭외는 쉽지 않아요. 경북 북부까지 오기 힘들어서 그런지 작가들이 여기까지 잘 안 오시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 년간 도서관 운영계획을 세울 때 작가와의 만남을 추진하는 사서선생님들은 행사하기 훨씬 이른 시기부터 초청할 작가에게 연락을 하는 편이에요. ‘KTX가 지역에 있느냐 없느냐’가 먼 지역에서 오는 작가 입장에선 중요한 기준점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선지 봉하나 청송 지역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작가 섭외가 어려워 장문의 편지를 쓰기도 해요. 저는 큰 지출을 해야 하는 작가와의 만남을 선호하지 않아요. 저희 학교도서관 행사 프로그램 예산이 연 300만 원인데, 작가와의 만남을 치르고 나면 예산 대부분을 다 쓰게 되거든요. 차라리 예산을 고르게 분배해서 학생들이 도서관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열어요. 독서의 달에 다수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저는 매달 여는 편이에요. 소외되는 학생 없이 전교생이 고르게 행사에 참여하고 상품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권정생 선생님 덕후라는 입소문을 들었어요. 권정생 문화해설사로 활약하고 계신데, 그의 매력이 ‘입덕’하게 된 계기와 덕질의 내력(?)을 소개하신다면요.

경상북도교육청 안동도서관에서 『몽실 언니』를 주제로 슬로리딩 프로그램을 연 적 있어요. 저희 아이와 함께 참여했는데,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을 새롭게 접해서 재미있었어요. 프로그램을 마칠 즈음 권정생 문화해설사 3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발견했어요.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죠. (웃음) 한창 붐이었던 슬로우 리딩을 공부한 다음에는 또 무엇을 공부할까 고민하던 때였기에 자연스레 문화해설사 수업을 신청했어요. 수업을 들은 뒤엔 ‘문학기행 해설’ 실연(實演, 실제로 하여 보임)을 실기로 치렀어요. 시험을 통과한 뒤에 해설사 일을 시작했는데, 덕분에 권 선생님의 삶과 작품을 깊이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권정생 선생님께서 안동에 사셨거든요. 작품을 집필하던 곳도 이곳이었기에 운 좋게 수업을 듣고, 예전에는 흘려들었거나 단편적으로 여긴 그분의 삶을 공부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의 생을 작품과 연결 짓고, 사람들에게도 안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죠. 어느 날은 해설하러 간 장소 근처에 뱀딸기 같은 게 무더기로 피어 있었어요. 제 설명을 다 들은 한 어린이가 뱀딸기를 따서 돌에다 얹은 다음, 꽃잎과 빨간 꽃 장식을 해서 권 선생님 살던 집 문 앞에 놓더라고요. 그러곤 기도를 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 좋은 곳으로 가시라며 그의 넋을 기렸던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어요. 해설을 더 잘해야겠구나 싶었죠. 권 선생님이 살던 곳, 글을 쓰던 곳, 좋아했던 곳을 사람들과 함께 보는 일이 좋아요. 어린이들이 그분의 작품을 만나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일에 보람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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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강남초 대출대 옆에 마련된 그림책 서가. 김 사서교사는 그림책 덕후이기도 하다.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을 읽은 독자가 안동에 처음 왔다고 가정해 볼게요. 문화해설사로서 “여기 여기는 꼭 보세요” 추천해 보신다면요?

권 선생님께선 몸이 아프셔서 멀리 못 다니셨는데, 살던 집 주변에 그의 이야기가 많이 깃들어 있어요. 그가 좋아하던 빌뱅이 언덕에 먼저 가는 걸 추천해요. 권 선생님은 해질녘을 보러 갈 때도 해 뜨는 거 보러 갈 때도 이곳에 머무르곤 하셨어요. 원치 않은 손님, 예컨대 불쑥 찾아오는 기자들을 피해 도망간 곳이 빌뱅이 언덕이에요. 『몽실언니』와 『강아지똥』을 쓰셨던 일직 교회도 근처에 있으니까 꼭 가 보세요. 권 선생님께서 살던 곳 주변에 그의 흔적이 다 모여 있으니, 그의 집을 중심으로 탐방하는 걸 권해요. 교회 문간방에서 글을 쓰셨는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고요. 현재 선생님의 유품을 ‘권정생 동화나라’에서 보관하고 있는데, 그의 손때가 묻은 이야기 조각들을 엿볼 수 있으니 동화나라에도 들르기를 추천 드려요. 그렇게 세 곳을 돌면 권정생 선생님 삶의 흔적을 두루 살펴볼 수 있어요.

수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문해력 격차를 해소하고자 기초학력 부진학생과의 수업, 그림책 활용수업 등을 해 오셨는데, 근래 들어 주제와 관련한 고민이 있다면요?

예전만 해도 수업 시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써보라고 하면 쓰긴 썼거든요. “어떤 생각도 괜찮아.”, “틀린 건 없어.”라고 격려하면 아이들이 곧장 글로 쓰는 힘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 갈수록 아이들이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힘들어해요. 그나마 큰 규모의 학교에선 챙겨 주는 부모님이 있고 학구열도 대체로 높은 편이어서 읽고 쓰는 능력을 어느 정도 유지해요. 책 읽어 주는 어른이 있고, 인근에 도서관이 있어서 들르는 아이들도 있고요. 오히려 도시에 있는 아이들은 어르고 다독여야지 책을 읽는데, 외곽 지역의 아이들은 그 반대예요. 책 가지고 노는 수업을 구상해서 선보이면 정말 재밌어해요. 같이 책을 읽거나 그림책을 읽어 주는 행위를 반가워해요. 가령 제가 근무했던 한 지역은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이 많은데, 독서 흥미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해 보여요. 곁에서 독서 흥미를 끌어올리고 문해력을 향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아이들의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계기는 그 아이들의 문해력을 키워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됐어요.
 

독서 흥미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그림책 읽기를 꾸려 오셨는데, 최근엔 어떤 책들을 읽어 주고 계시나요?

15차시 혹은 30차시 등 학년별로 수업에 들어가거나 저학년만 수업하는 경우가 있어요. 지금은 모든 학년의 수업을 맡고 있는데 수업 시간이 짧아요. 그 시간 안에 두꺼운 책을 읽고 뭔가 활동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요. 그림책은 수업 시간 안에 이야기를 읽어 주고, 해설과 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수업 도구예요. 그래서 전부터 그림책 읽기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저학년·중학년별로 읽을 만한 그림책을 모아 뒀다가 읽어 준 후 반응이 좋았던 책은 다음에도 또 읽어 주고요. “부모님은 이제 안 읽어 주지?” 하면서 고학년 학생들에게도 그림책을 읽어 주는데 반응이 좋아요. 최근엔 『깜박깜박 도깨비』(권문희), 『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유진 트리비자스), 『키오스크』(아네테 멜레세)처럼 짧은 이야기책을 읽어 줘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듯해 그 책들로 아이들과 수시로 질문을 나누곤 해요. 가장 애정하는 책은 『깜박깜박 도깨비』이고, 최근에 가장 재밌게 읽은 건 『뿌리 깊은 나무들의 정원』(피레트 라우드)이에요. 책에는 “굉장한 것이 뭐야?” 하고 묻는 질문 다음에 “내 생각에 굉장한 것은 세상을 유람하는 것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야.”라고 대답하는 문장이 나오는데, 마음에 와닿았어요. 아이들에게 질문을 똑같이 읽어 주고, “너에게는 무엇이 굉장하니?” 물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깊게 나눌 수 있게 하는 책이라 수업에 어떻게 쓸지 눈여겨보고 있어요. 좋은 그림책을 선정할 때도 아이들과 활동할 수 있는 여지와 여운이 많은 그림과 이야기를 고르는 편이에요.

“또 한 명의 사서교사가 아닌 다른 한 명의 사서교사가 되라.”는 은사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는 일화가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한 명의 사서교사’란 무엇일까요?

지금은 퇴직하신 김용근 교수님은 <학교도서관저널>을 열심히 읽으시는 독자님이자 모교의 스승이에요. 요새도 ‘이달의 새책’에 실린 김 선생 글을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해 주세요. (웃음) 오래전, 임용고시 최종 합격 발표가 난 뒤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합격했다고 말씀드리니 축하하신 다음 “한 명의 사서교사가 아닌 다른 한 명의 사서교사가 되라.”고 하셨죠. 부연설명은 없었어요. 그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다른 한 명의 사서교사란 무엇일까?’ 골똘하게 생각했어요. 우선은 열심히 하라는 뜻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시 학교도서관이 제대로 구축된 시점이 아니었기에, 교수님의 말씀은 제게 황무지 같은 독서교육의 현실서 기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열심히 살았어요. 사서교사로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요. 강의를 의뢰받거나 원고 및 인터뷰 제안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않고 기회로 여겼어요. 즐기진 못했고 종종 스트레스를 받았고요. (웃음) 서평을 잘 쓰기 위해 글 잘 쓰는 법을 다룬 책을 찾아 읽고, 배경지식을 충분히 얻기 위해 다양한 책을 함께 읽기도 했어요. 저희 직업은 독서가 생명이니 언제나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주변 다른 책들을 알아가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원고 마감일을 늦지 않아야겠다는 원칙도 고수해 왔고요. 사실 저는 평범한 사서교사예요. 전국에서 워낙 뛰어난 기량을 가진 사서교사가 많잖아요. 단, 제가 일하는 지역에서 이 도서관만큼은 잘 운영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며 매진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서교사’라는 말이 저와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린이 모두에게 독서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이미 ‘다른 사서교사’이자 이용자들의 든든한 조력자이신 듯해요. 학교도서관에서 첫해를 보내는 후배가 곁에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나요?

학교도서관뿐 아니라 다른 교실에서 일손이 필요하면 적극 돕길 바라요. 내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동료가 힘을 보탤 기회로 올 수도 있으니까요. 사서교사는 원체 도서관에 홀로 있는 편이다 보니, 혼자서 판단해야 할 때가 시시각각 많아요. 조언이 필요할 때는 주변 선생님들과 의논한 뒤 학교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도서관 안에만 있으면 외롭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도서관 문간을 넘어 다른 선생님들과 만나는 시간도 많이 가지세요. 친분을 쌓으면서 내 편을 만드시면 도서관 운영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늘 하는 생각이 있는데, 같이 근무하는 동료 선생님들이 훗날 교장이나 교감선생님이 되실 분이라고 여기곤 해요. 그분들에게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필하면 ‘사서교사는 책만 보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럴 여가조차 없구나.’ 인식하게 할 수 있어요.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 또한 국회의원 등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서교사에게 교육 혜택을 받은 사람이 사회에 나가 중요 기관에서 일하게 됐을 때 ‘학교도서관에 당연히 사서선생님이 있어야지.’ 여기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을 테니까요. 늘 그런 마음으로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해요. 그리고 학교도서관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알아볼 테니, 함께하는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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