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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사적인 도서관] 이분법적인 세상에 삼분법적인 K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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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02-17 14:27 조회 2,44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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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인 세상에 

삼분법적인 

K선생님 


전은경 대구과학기술고 사서




# 불가능,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도쿄 올림픽 기간 동안 대구의 무더위는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열기보다 뜨거운 것은 열광이었다. 특히 올림픽을 준비해 온 선수들의 진정성 있는 경기는 더위 먹은 정신마저도 번쩍 들게 했다. 역시 올림픽은 올림픽이었다. 이 시국에 무슨 올림픽이냐는 비판도 많았지만 펜데믹 상황에서도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감동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번 도쿄 올림픽의 특이한 점은 여성 선수들을 응원하는 여성 관객들 의 목소리가 높았다는 점이다. 배구의 김연경, 김희진 선수에게는 물론이고 양궁 신예 안산 선수에게 고백하는 여성 팬들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SNS에서는 “산아, 언니 지금 동해바다 건너는 중이야.”라며 드레스 입고 프러포즈하는 이미지가 등장했고, “팬 중 하나가 아내가 될 수 있다고 생 각한 적이 있습니까? 일어날 수 있으니 각오해라.” 같은 멘트와 함께 진취 적인 신부들의 합성사진이 패러디되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개방 적이었던가?

개인전 결승에서조차 평온한 심박수를 유지하며 마지막 활시위를 당겨 양궁 3관왕에 오른 스무 살의 당찬 안산 선수를 보며 나 또한 언니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황선우 작가는 최근 각 분야에서 인정받은 여성들의 서사를 인터뷰로 묶어 『멋있으면 다 언니』 를 펴냈다. 방송PD에서부터 영화감독, 작가, 국회의원, 피아니스트, 바리스타, 범죄심리학자에 이르기까지 ‘센 언니’들이 이루어낸 성취와 꿈이 담겨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후속편이 나온다면 내심 운동선수 특집이 있기를 바 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반인 특집도 기대하게 된다. 우리 곁의 멋진 언니 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언니로 생각하는 한 선생님은 XY염색체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함과 친근함이 여성미를 능가하고 있다. 그 선생님을 1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고 보면 그을린 피부와 몸동작에 상남자라고 인식하게 되지만, 1분만 대화해 보면 얼마나 편안한 언니인지 금세 깨닫게 된다. 체육교사답게 운동을 너 무 좋아해서 테니스, 골프, 스키, 축구 등 많은 종목을 섭렵한 이 ‘언니’는 올림픽을 함께 보면 가장 재미있을 만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 때문 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올림픽 근대 5종 경기만큼 고강도의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 제주도 전지훈련의 추억

남자들은 군대에서의 경험을 잊지 못해 간혹 악몽도 꾼다던데, 나는 해마 다 여름이면 제주 훈련을 떠올린다. 도서관 사서에게 전지훈련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여행도 훈련으로 만들어버리는 K선생님은 그야말로 올림픽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정확히 십 년 전, 젊은 선생님들만 의 친목 모임에서 제주여행 계획이 급물살을 탔다. 그리고 한 달 뒤인 여름 방학에 우리는 물살을 가르며 제주행 배에 몸을 실었다.

남자 셋, 여자 셋이어서 시트콤을 찍기 딱 좋은 멤버였다. 그러나 장르는 코믹공포어드벤처물. 언제나 무계획이라는 계획만을 믿고 살던 우리의 유 일한 등대는 역시 K선생님이었다. 그는 전 국민이 다 아는 피로회복제 박 스 국토대장정을 세 번이나 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심지어 첫 번째는 참가자였지만, 두세 번째는 스태프로 활동했다고 하니 체력이 약하기로 유명한 교사 집단에서 그는 함께 있으면 든든한 보디가드처럼 추앙받았다.

한 사람에 대한 과도한 믿음만을 장착한 무모한 추종자들은 자신들에 게 펼쳐질 지옥훈련의 강도를 알지 못한 채, 스스로 헬게이트를 열어버렸 다. K선생님은 분명 비박 여행임을 공지했고, 하루 24시간 중 16시간을 자 전거만 탄다고 알렸으나 흥에 취한 우리는 무조건 Go를 외쳤다. 라떼만 해 도 실시간 길 찾기 서비스 같은 건 없던 시절이라 한참 가다가 이 방향이 아닌갑다, 하면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로 정처 없이 페달을 밟고 있다는 점에서 젊음 그 자체를 상징한 여행 같기도 하지 만 그건 지금에 와서 포장해 보는 소리다. 당시 우리는 각자의 힘듦 때문 에 원망의 마그마를 분출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두 가지가 있다. 우리는 제주 지형도를 펼쳐 놓고 이동 방향을 논의했는데 누가 보면 지리학회 모임인 줄 알 정도로 자신만 만했다. “뭐 둥그렇게 생겼고 조그맣네.”라며 무지를 내뿜은 것이다. 또 하 나 우스운 점은 이왕 가는 제주도이니 중간중간에 관광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전거 일주만으로도 제주의 바닷바람을 다 맞고 오는 것 인데, 어리석게도 당시 유행하던 테디베어뮤지엄 같은 곳의 입장권을 미리 발권해 버렸다. 그럴 때에만 부지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기에 지금도 면목이 없다. 심지어 그런 박물관들은 중산간 지역에 있었기에 우리는 자 전거를 끌고 오름을 몇 차례 오르고, 땀이 범벅된 상태에서 뮤지엄을 들르 고, 뽀송뽀송한 차림의 관광객들 앞에서 초라해져야만 했다. 여름 땡볕에 서 하루 10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밤에는 노숙에 가까운 텐트살이를 해 댔으니, 렌트카를 타고 온 연인, 가족들 틈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뽐내게 되었다. 아무도 우리가 대구의 모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육공동체라고 생 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남자든 여자든 그게 뭐가 중요해 

그 모든 힘겨움을 뒤로 하는 순간이 하루에 딱 세 번씩 있었으니 바로 K 언니가 챙겨 주는 끼니 때였다.(방금 K엄마라고 적을 뻔했다.) 코펠에 꽁치찌개 를 끓여주면 나머지 5남매는 허겁지겁 머리를 맞대고 먹어치우곤 했다. 그 리고 일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들어지는 직장생활 이야기가 나오면 속마 음까지 털어놓는 K선생님 덕분에 허무한 뒷담화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 한 성찰로 이어졌다. 오래 알아온 언니에게 집에 대한 고민까지 늘어놓듯 K선생님에게 속상한 일을 쫑알쫑알 일러바치는 것은 하루 중의 중요한 일 과였다. 힘든 일을 함께 겪은 동지여서인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어렵지 않게 부탁할 수 있는 언니가 나에게도 생긴 것이다.

K선생님 덕분에 나는 남자 선생님과 여자 선생님 외에도 언니 같은 선생 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해 온 것일 까. K선생님은 내가 자신을 언니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기겁하며 화들짝 놀랄 테지만, 그렇게 한결같이 심성 곱고 마음 건강한 사람을 나 는 언니라는 단어 말고는 부를 길이 없다. 어느 날 뜬금없이 만나자고 해 도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나의 친절한 K언니에게 오늘은 전화 한 통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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