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저자 [팬심과 펜심]『기소영의 친구들』 정은주 동화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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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3-07 10:59 조회 1,387회 댓글 0건본문
작가님의 전작 『복길이 대 호준이』를 보면 천생 이야기꾼의 면모가 보여요. 어릴 때부터 이야기 짓기를 좋아하셨나요?
노는 걸 좋아했어요. 책에 나오는 「옥상의 전설」의 주인공 순목이가 어린 시절 제 모습을 많이 닮았는데요. 동화에서 순목이는 옥상에서 친구들을 향해 냅다 물벼락을 내리는데, 하필 동네에서 무섭기로 유명한 할아버지가 물벼락을 맞잖아요. 전 순목이처럼 종일 노는 걸 즐겼고 책이랑 가까운 편은 영 아니었어요. 저녁 먹고 다시 나가서 밤 10시까지 놀다가 오곤 했거든요. 거짓말도 무진장 잘했어요. 성당에 다니면서 이렇게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죽어서 지옥 가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이요. (웃음)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큰 배움을 얻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소설은 거짓말, 즉 허구란다.”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작가들은 그럼 지옥에 가는 건가 골똘해지기도 했고요. 그땐 노느라고 여전히 책은 눈에 안 들어왔어요. 그럼에도 실컷 놀았던 시절들이 제가 문학을 하는 데 나름 자산이 되어 준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도서부를 하셨고 대학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했는데 러시아문학에 원래 관심이 많으셨어요?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지내던 무렵, 연합토론도 하고 합평도 열 만큼 프라이드가 센 도서부에서 생활했어요. 그 무렵에 한국 단편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사실 십 대 시절에 러시아문학에 큰 관심도 없었고,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못 했어요. (웃음) 어떻게든 서울 생활을 하고 싶은데, 아버지께서 보수적이다 보니 딸인 저를 먼 곳으로 안 보내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러시아 관련 학과를 진학하겠다고 하니 대견하셨나 봐요. 그 무렵 러시아가 전 분야에 걸쳐 개방을 하던 시기였고, 자연스레 러시아어에 대한 관심도 두터워지고 있었어요. 제가 시대 흐름을 읽었다고 생각하셨는지, 진학을 승낙해 주셨고 입학한 대학에서 제 치명적인 결함을 알았어요. 대학에서 러시아어 철자부터 배웠는데, 제가 혀가 짧아서 발음이 잘 안 되더라고요. 가령 ‘따르릉’, ‘아르르’ 같은 발음이 되어야 하는데, 러시아 교수님이 제가 발음하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하셨어요. 이후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수업들을 모조리 피해 다녔죠. (웃음) 시, 소설 등 러시아문학 수업만 줄줄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같이 자취했던 친구 소개로 문예부에 들어갔는데, 이루리 선배(북극곰 출판사 대표)를 만났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걸 썼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우리 중 가장 먼저 작가가 될 사람이 은주일 거라며 선배가 최고의 찬사를 해 주셨어요. 그때 학교에 <석순>이라는 페미니즘 잡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소설을 발표했고 학교 신문사 공모전에 투고해서 최종심까지 올라갔었어요. 신춘문예를 준비했지만 쉽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한 뒤론 문학과 다른 세계에서 일했어요. 담배 산업 분야였죠.
한 작가의 작품을 작가보다 더 많이 읽고 분석하게 되더라고요. 문장 연습도 많이 했어요. 돈 받고 하는 일이다 보니 계속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웃음) 오자를 내지 않으려고 원고를 정밀하게 살폈고,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해외 도서를 번역해서 낸 뒤 독자의 반응을 살피는 일에서 뿌듯함을 느꼈어요. 사이사이 국내 어린이문학을 공부했는데, 권정생 작가님이 쓰신 책들은 늘 눈물을 찍으면서 읽곤 했어요.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나선 동화가 다루지 못할 주제는 없겠다 싶었어요. 삶의 순환과정 중 하나인 죽음이라는 주제를 동화에서도 다룰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 동화를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제 안에 있는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장르가 동화가 아닐까 싶었죠. 『복길이 대 호준이』를 낸 뒤 복직했는데, 퇴근하고 나면 글이 안 써지더라고요. 몇 년간은 한 편도 완성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교실이에요. 제 소중한 글벗(몽메달)들도 그곳에서 만났는데, 지금도 서로 작품을 봐주고 있어요. 두 번째 단편 동화집 『산타를 믿습니까』도 그 무렵 합평 받았던 작품들을 고친 뒤에 출간한 것이에요.
그 책에 담긴 세 번째 단편 「모래 놀이터」를 쓰면서 오래 붙들었던 단어가 있었어요. 한 어린이를 지지하고 곁을 지켜주는 ‘단 한 사람’이라는 말이었는데, 생각하게 된 연유가 있어요. 하버드대학에서 한 집단을 40년간 계속 관찰한 ‘카우아이섬 종단연구’ 실험결과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머리를 쳤어요. 연구진은 범죄율이 높은 하와이의 한 섬을 표본 집단으로 세웠는데, 거기 사는 아이들의 80퍼센트 가까이가 마약을 할 만큼 우범지역이었어요. 그중에서도 기성 사회에 건강하게 ‘편입’한 경우가 있어서 그들의 공통점을 조사한 결과, 어린이 무렵에 자기 이야기를 들어 주거나 지지해 주는 사람이 꼭 한 명씩은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조부모든 부모든 선생이든 친구든 동네에 같이 사는 누군가가 그 어린이의 곁을 지켰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연구 결과에 감동받았고, 실제로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한 어린이가 자신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대하는 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계속 그려 보았어요. 「모래 놀이터」에는 주인공 주희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에 모래성을 짓고 홀연히 사라지곤 하는 한 아이, 오빠가 나오잖아요. 바쁜 부모님 대신 주희와 함께 놀아주는 오빠는 주희를 지지해 주는 ‘단 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다른 구역’에 산다며 오빠를 은연중에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오빠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던 주희도 오빠에게 ‘단 한 사람’의 이미지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친구를 기억하는 슬기로운 애도 생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친구들을 인터뷰한 기록 다큐멘터리를 보고 『기소영의 친구들』 집필의 실마리를 얻으셨다고요. 처음엔 쓰려고 마음먹기 녹록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협동조합에서 같이 활동하는 친구가 한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러 가자고 하더라 협동조합에서 같이 활동하는 친구가 한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별생각 없이 흔쾌히 따라갔어요. 그때 본 <친구들: 숨어 있는 슬픔>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 2월, 안산에 있는 치유공간 ‘이웃’과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같이 나고 자란 희생자들의 친구들을 만나 나눈 기록이에요. 다큐멘터리에 나온 아이들은 희생자 학생들과 같은 중학교를 다녔거나 초등학교, 유치원 때 어울렸던 등 각자 친구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었어요. 아이들은 다큐에서 자기 상처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어요. 하루아침에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세월호 사건 이후 차츰 부모님에게 “내년에 고3 되니까 계속 슬퍼할 순 없어.”, “추모공간 그만 가라.”는 잔소리를 들었대요. 이 아이들은 친구들의 장례식장에 가면 어마어마한 슬픔을 겪는 유족들 앞에서 쉽사리 슬퍼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지친 유족들 앞에서 편하게 울 수 없었고, 그분들을 달래느라 오히려 괜찮은 척해야 했다고 고백해 줬어요. 자기를 걱정하는 부모님 앞에선 더더욱 괜찮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어느 곳에도 자기 슬픔을 해소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치유 프로젝트를 만나서 마음속에 품었던 이야기를 꺼내는데, 저도 부모여서 그런지 딜레마에 빠지더라고요. 어른들이 아이가 슬퍼할 겨를을 막는 걸 보면서 ‘저게 뭐 하는 짓이야.’ 싶다가도 만약 내 아이가 고2고,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가 그런 사고를 당했다면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할 거냐고 말했을 것 같거든요. 제 안에 이런 혼란이 오는 게 찜찜했어요. |
『기소영의 친구들』 정은주 지음, 해랑 그림, 사계절, 2022 |
“소영이의 흔적이 사라지는 과정은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라고 쓰신 것처럼 죽은 아이의 흔적을 담담히 지우는 어른들 모습이 씁쓸했어요. 남은 아이의 감정을 어른들이 과연 돌보고 있는가 싶었고요.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사회 시스템이 갈 갖춰져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어요.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직후 우리 사회가 이를 다루고 처리하는 방식이 매번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요. 책에서 기소영의 친구들이 소영이 방구가 지독했다며 웃으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대목이 어쩌면 세월호 사건 이후 사람들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어느 코미디언도 세월호 사건을 웃음 소재로 만들 수 없어요. 죽음 이후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보고, 진상을 규명하고, 타인의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을 나누고 이야기했다면 종국에는 일상 속 코미디 소재가 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자연스러운 애도의 과정을 우리 사회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쉬쉬하기에만 급급하잖아요. 세월호 다큐를 본 이후 시간이 지나 가족들과 양평에 간 날, 단원고 학생들이 쓴 노란 손편지를 보관한 기억 공간을 다시 맞닥뜨렸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안산에서 아이들의 손편지를 보관할 공간이 없어서 거기서 일단 보관 중이었던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 아이들도 다큐멘터리에 나온 청소년들처럼 슬픔을 해소할 방법이 없어 먼 곳까지 와서 이걸 썼구나 하고 생각하니 짠했어요(현재는 기억교실로 모두 옮겨졌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죠. 제가 그 사건을 겪은 게 아니니 직접적으로 다루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고, 좀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접근해 풀어낸 동화가 『기소영의 친구들』이 되었어요.
기소영의 친구들은 소영이를 기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요. 어린이들의 애도 장면들을 쓰면서 유독 앓으셨던 장면이 있나요?
어른들에게 잔인함이 있다면, 그건 시간의 힘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는 말은 시간이 그만큼 치유 능력이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하지만, 시간의 큰 파괴력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반면에 어린이들은 거기에 대항해요. 다시 말해, 어른들이 말한 ‘시간’들이 친구의 죽음이란 사건을 완전히 앗아가기 전에 떠난 친구에 대한 무엇이라도 붙잡고 싶어 하죠. 그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여러 번 소리 내서 읽어 보고 글을 고치곤 했는데, 유독 채린이가 애도를 마치고 난 뒤 친구 소영이의 삶을 바라보는 대목에선 통증이 따랐어요.
무속인 엄마를 둔 연화, 소영을 남몰래 좋아했던 호준, 재개발구역 인근에 사는 영진 등 서브 캐릭터가 모두 생생해서 사연 없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 사연 없는 어린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신사바를 나름의 진지한 의식으로 바꿔 줄 조력자가 필요했는데, 이때 어른의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굿이나 접신을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어린이가 적합하겠다 싶어서 만든 캐릭터가 연화예요. 유튜브에 무속인들이 운영하는 채널이 꽤 많은데, 그분들이 자기 자녀들이 차별받는 모습을 본 일화를 구체적으로 말한 장면들에서 힌트를 얻어서 연화 이야기를 썼어요. 사실 소영이의 친구들 캐릭터를 구축할 때 전제 조건은 ‘그룹 내 관계에서 소영이가 빠지면 이 아이들끼리 어울릴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영진이와 나리, 채린이 셋만 있으면 데면데면했을 텐데, 소영이가 이 아이들의 끈끈한 연결고리가 되어 줬음을 부각하고 싶었어요. 아, 호준이는 제 이성상이기도 해요. 장난꾸러기에다가 순정남으로 나오죠. (웃음) |
실제로 소영이의 방구가 지독했다며 어린이들이 유머러스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백미였어요. 현실에선 죽은 친구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어른들이 대부분이죠.
저는 어릴 때부터 ‘그만해’, ‘하지 마’ 하는 제약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어요. 나의 속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어린이들에게도 자기만의 삶의 속도가 있다는 것만큼은 알아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삶의 다양한 감정을 어린이들이 온전하게 겪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마음으로그 장면을 썼어요. 어린이들이 친구인 소영이를 보낸 다음에 할 수 있는 건 뭘까, 애도를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 봤어요. 소영이가 떠난 뒤에도 소영이를 생각하면서 남은 아이들이 웃을 수 있어야겠다고 싶더라고요. 울음바다로 끝내는 건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린이들이 거리낌 없이, 죄책감 없이 웃을 수 있기를 바랐어요.
동심이란 있는 그대로의 어린이 마음
‘우리 친구’ 기소영에 대해 말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죽은 소영이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작가의 말에도 쓰셨지만 소영이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었을까요?
소영이 캐릭터가 대단한 어린이처럼 미화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른 같은 배려심을 가진 착했던 아이가 죽다니 불쌍해, 하는 느낌이 독자가 들지 않도록 주의했어요. 그건 특출한 재능이 있었던 어린이가 죽었을 때라야만 온 사회가 안타까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다만 소영이가 자기 삶을 사랑했던 아이라는 생각만큼은 전하고 싶었어요. 채린이의 말을 빌리면 13년이라는 인생을 꽉꽉 채워서 살았고, 유골함에 쓰인 ‘성도’라는 단어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다양한 색이 깃든 삶을 살았던 어린이였던 것처럼요. 소영이는 자기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친구들이 이야기해 주길 바랄 것 같아요. 특정한 사고만 떠올리면서 자기를 떠올려주길 바라진 않을 거예요. 혹여나 독자 중에서 기소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분이 계시면, 제가 망자의 이름을 썼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야 한다는 철칙을 두고 소영이 캐릭터를 구축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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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동화에는 어른이 쉬 말하지 않는 외진 풍경을 구체적으로 말할 줄 아는 어린이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작가님께서 꿈꾸는 어린이상이 있나요?
그리고 싶은 ‘어린이 상’을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바람직하고 건강한 어린이 모습을 생각하는 순간, 그 어린이가 행동해야 하는 세계를 먼저 리드하고 저에게 방향키가 생겨버리니까요. 그러면 어린이를 위에서 내려다보게 돼요. 그런 동화가 싫거든요. 편집 일도 같이하다 보니까 자신이 바라는 어린이상을 투영시킨 투고작들을 빈번하게 보는데, 질식당할 것 같을 때가 있어요.
반대로 어린이들이 바라는 어른의 모습에 관해 다룬 동화는 몇이나 될까요? 저는 동화를 쓸 때 어린이들의 마음을 충실히 이야기에 반영했느냐 아니냐를 염두에 두곤 해요. 저도 부모라는 지위를 갖고 있기에 행동 면에서는 어긋날 때가 있지만 적어도 동화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최대한의 목표는 제 이야기에서 ‘어른’을 빼는 거예요. 어른이 어린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생각보다 적다는 게 제 실질적인 가치관이거든요. 제가 관심을 갖는 건 어린이들 스스로 타고난 ‘내면의 힘’이에요. 자기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성장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그 힘에 주목해요. 그래서 『기소영의 친구들』 초반에도 부모나 선생님이 부정적으로 그려지고요. 제가 캐릭터를 묘사하다가 막히면 린드그렌이 쓴 ‘삐삐 시리즈’ 중 한 챕터를 펼쳐서 읽어요. 1945년에 쓰인 이 이야기 속 캐릭터보다 제가 표현한 캐릭터가 진보했나 하지 않았나를 판단하면 답이 보여요. 적어도 그 시절보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동화에서 순종적으로 그려져선 안 된다고 봐요. |
학교현장에서 여러 어린이를 만나실 텐데, 작가님께 주로 어떤 고민을 털어놓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