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첫 책이 기다려지는 사람] 김자영 웃는책 작은도서관장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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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1-02 15:38 조회 1,624회 댓글 0건본문
공동체 정신은 꺾이지 않는다
김자영 웃는책 작은도서관장과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삼대가 모여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의 이름은? 난센스 같은 퀴즈의 정답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자리한 웃는책 작은도서관. 마을 협력이 우수한 도서관을 손꼽을 때마다 선구적 모델로 회자될 만큼 실무자와 이용자 간 소통의 밀도가 높다. 어르신부터 학부모, 자녀로 구성된 동아리를 연령별로 꾸준히 꾸리고 해마다 여는 마을 책잔치는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팬데믹 시기 와중에도 주민들이 각자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철학 강좌를 개설하여 자생력을 키운다. 유명 그림책 출판사가 아닌 신인 작가와 신생 출판사의 그림책을 같이 읽으며 공생을 모색한다. 도서관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공부하고 싶다면, 이곳에 들르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소통하자는 말이 속 빈 유행어처럼 횡횡하는 시대, 마을의 놀이터 깊숙이 주민자치를 소상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13년째 작은도서관에서 근무 중인데, 사서의 일이 천직이라 여기신 첫 순간이 궁금해요.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시절에는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었어요. 사회과학책을 줄곧 읽곤 했고 총학생회에서 일했어요. 학생운동도 했는데,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서 일하는 걸 청년 시절부터 좋아했던 것 같아요. 졸업 후 직장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고 육아에 집중하다가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기 시작했어요. 모임에서 어린 자녀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제가 도서관을 공부하는 학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겼어요. (웃음) 아이와 책모임에 참여하면서 작은 공동체를 일궈 가는 기쁨과 감각이 다시 살아났고, 웃는책 작은도서관(이하 ‘웃는책’)에서 일하기 전에 사립도서관에서 2년 정도 일을 배웠죠. 이곳 공립도서관에서 11년 정도 일했으니, 도서관에서 총합 13년 정도 일한 셈이네요. 특히, 사립도서관에서 주민의 힘으로 재정을 마련해서 운영했던 경험이 오랜 기억으로 남아요. 당시 도서관 후원을 위한 바자회를 열었는데 후원금이 천만 원 넘게 모일 정도로 참여율이 높았어요. 많은 시민들이 도서관을 돕는 걸 보면서 작은도서관이 작지 않음을 느꼈어요.
일산에서 사립도서관으로 있다가 천호동으로 자리를 옮긴 후 공립도서관이 되기까지 행정적인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돼요.
그 도서관이 이곳으로 이동한 게 아니라 일산에서 2009년 이전에 운영을 종료했어요. 이곳 설립 초기에 도서관을 위탁 운영했던 곳이 ‘열린사회’라는 지역 시민단체였는데, 공립도서관이지만 시민단체가 민간 위탁하고 있어서 공동체로서 작은도서관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많았어요. 일산에서 도서관 운영을 종료했던 관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도서관이 문을 닫아도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현재의 도서관에 계셨던 분이 문을 닫는 그곳 도서관 서가와 각종 가구, 비품을 천호동으로 다 갖고 왔어요. 2천 권에 달하는 책과 당시 김중석 그림책 작가님이 그려 주신 현판 그림도 고스란히 가져왔어요. 2009년에 웃는책이 개관할 때는 ‘천일어린이도서관’이었는데, 구청에서 지은 행정 명칭이었어요. 웃는책은 공립도서관이지만 시민들이 조력했던 사립도서관의 정신으로 운영해 온 도서관이라는 걸 기억하고자 했죠. 이후 2019년 도서관 리모델링을 할 때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도서관 명칭 공모를 했어요. 이백 명이 넘는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하셨고, 그때 ‘웃는책 작은도서관’이라는 이름이 탄생했어요. 이 명칭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무언가를 지나치게 치열하게 하면 그것이 주는 무게 때문에 편안한 관계를 맺기 어려울 수 있잖아요. 웃는책이라는 이름에는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책으로 같이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 담겨 있어요.
도서관 프로그램 주제 회의를 할 때 협동조합 구성원들과 논의한다고요. 웃는책의 협동조합 구성을 소개하신다면요?
웃는책 앞에는 놀이터가 있는데, 주로 물 마시러 오거나 화장실을 쓰러 오는 사람이 많았어요. ‘머물다 가는 장소’라고 여기는 이용자들이 많아서 2011년부터 그 부분을 상쇄하고자 주민들이 참여하는 활동(상자 텃밭 가꾸기, 전래놀이)에 주력했어요. 2013년부터는 일상적으로 책 읽기, 힘이 되는 책 읽기, 마을과 함께 책 읽기 프로젝트를 추진했어요. 독서를 하는 이유가 학습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위해서 혹은 즐겁기 위해서 하는 행위라는 데 포커스를 맞췄어요.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읽어 줄 수 있는 주제도서를 고민했는데 그런 테마에 잘 어울리는 책이 그림책이더라고요. 한 책에서, 뉴욕 할렘가에 위치한 도서관의 사서가 거리에 책수레를 끌고 나와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장면을 본 적 있어요. 그 장면이 우리가 실천 해야 할 모습이라 여기고 ‘거리의 도서관’ 주제 프로그램을 참고해서 관련 행사도 많이 열었죠. |
웃는책 계단서가 벽면에 붙은 그림책 『프레드릭』의 주인공 모습 |
2015년에는 ‘우리 그림책이 좋아요’ 프로젝트를 열었는데, 매해 열 명의 국내 작가를 뽑아서 매달 한 작가의 그림책을 전시하고 함께 읽는 행사를 열었어요. 우선 동아리에서 20명의 작가를 선정하고, 그 작가들 가운데 10명을 가려내고자 어린이와 어른 이용자에게 투표권을 줘서 최종 작가들을 정했어요. 행사를 기획할 때 중요하게 여긴 건 그림책을 같이 읽고 난 다음에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소감, 질문을 반드시 써 달라고 한 점이에요. ‘상호 소통’을 원칙으로 뒀죠. 저희와 같이 작업하시는 오영지 작가가 그림책 작가의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들어서 어린이들이 쓴 소감문과 함께 작가님께 보내드리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편지를 써서 보내 주는 작가가 있을 만큼 호응이 컸어요. 웃는책에서 책 읽어 주는 할머니 해 주시겠다고 약속한 작가님도 계셨고요. 그중 유독 홍성찬 작가님이 기억에 남아요. 어린이들이 홍 작가님의 책을 읽고 그린 그림들을 보내드렸는데 한동안 답장이 없었어요. 병환이 있으셨다는 걸 아내 분을 통해 알았고, 병석에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을 보고 웃으셨다고 전해 주셨어요. 고맙다며 저희 웃는책에 <창비 어린이> 정기구독 후원을 해주셨죠. 오월이 되면 읽었던 그림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을 이용자들이 직접 뽑아서 공동 책 전시도 열 만큼 일상적인 읽기를 이어 가고 있어요.
신생 그림책 출판사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모르던 세계를 접하는 기쁨도 컸을 것 같아요.
그 프로젝트는 2021년에 시작한 것인데 모험한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던 것 같아요. 만만한책방, 이야기꽃, 단추··· 저희가 다 좋아하는 출판사들이에요. (웃음) 도서관 활동가가 출판사 대표를 인터뷰해서 출판의 방향이나 철학에 관해 묻고 답을 얻으면 이용자들에게 공유했고 그 출판사가 낸 책들을 도서관에 꾸준히 전시 했어요. 작가와의 만남 중간중간에 출판사 대표와의 만남도 진행했는데 작가와 만날 때에는 또 다른 느낌이 들어서 신선했어요. 천개의바람, 글로연, 달그림 출판사 등 그림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출판 환경에 대해 이해하고 출판 정보도 얻을 수 있었어요.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의 열정과 고민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우리 그림책 작가전을 5, 6년 정도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신인 작가들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 쉽게 느낄 수 없는 정서가 있더라고요. 그런 작가들과 답장도 여러 번 주고받았고 출판사, 작가와의 소통이 밀접해지니 다음 섭외도 수월해졌어요. (웃음) 저희 도서관 이름을 말하면 대부분 아시더라고요. 우호적인 마음이 생기신 것 같아요. 올해엔 그 사업을 중단했고 팬데믹 시기부터는 성인 ‘고전’ 읽기에 주력하고 있어요. |
"상처와 사랑 사이를 넘나드는 이런저런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한 북큐레이션 |
코로나19 시기부터 온라인 플랫폼을 공부하는 강좌를 여는 경우가 많았는데, 고전 읽기를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전에 관심이 싹튼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팬데믹 시기, 활동을 멈추다 보면 우울감도 오기 쉬운데 오히려 이 시간을 나와 사회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로 전환할 수 있어요. ‘우리 시대가 왜 여기까지 봉착했는가’에 대한 답을 옛사람이 쓴 이야기들에서 찬찬히 알아갈 수 있어요. 중국 여행기를 모아 『열하일기』를 낸 박지원은 낯선 환경에 주눅 들지 않고, 새로운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관계와 정보를 통찰하여 밤마다 기록함으로써 우리에게 명문장을 남겼어요. 헐벗은 삶, 낯섦에 직면한 인류는 예전에도 있었고 시대적 불안은 늘 존재했어요. 우리는 위험 요소를 안고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사회 시스템이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얼어붙은 사회가 된 이유를 권력자 몇 사람 탓으로 돌리지 않고, 우리 모두 같은 욕망을 좇고 있던 건 아닌가 하는 질문을 고전을 읽으면서 던지게 됐어요. 타인과 함께 삶을 버티고자 했던 사람들의 힘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저희 도서관의 가장 많은 이용자 연령층인 중년들을 위한 책 읽기를 고민하다가 고전을 주제도서로 정했고, 고미숙 작가의 ‘낭송 Q시리즈(북드라망)’를 읽는 것으로 세미나를 시작했어요. 웃는책 밴드에 선정한 주요 고전들을 여러 챕터로 나눠 읽자고 공지한 다음 댓글에 대댓글을 다는 방법으로 느슨하게 사람들과 고전을 탐독해 갔어요. 벽돌 깨기를 하듯이 고전 깨기를 목표로, 좋았던 구절을 페이지 수와 함께 올리곤 했어요. 글쓰기, 철학, 동화 주제 강좌도 그 전부터 시작했고요.
어르신 동아리 '왁자지껄' 사례에도 눈길이 갔어요. 절기마다 잔치를 열어 할머니들게서 송편·팥죽 만들기 강좌를 여셨는데, 초반에 섭외하시기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 저희에게 당장 시급한 문제는 ‘계약’이에요. 어쨌든 위탁으로 운영하는 도서관이기에 위탁 재계약 시기만 되면 도서관의 운영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치단체장의 권한을 따르기 때문에 철저히 갑을관계에 기반을 둔 계약일 수밖에 없어요. 섣부른 이야기이지만 이는 저희 도서관만의 상황은 아니에요. 모든 작은도서관이 직면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정치인이라면 사람들을 경쟁으로 이끄는 역할보다는 폭넓게 함께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해요. 그게 정치인의 책무라고 보는데, 마포구청장은 그런 책무를 망각한 발언을 했어요(편집자 주: 마포구청장은 지난 11월, 구청을 찾은 주민들에게 작은도서관 폐관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부모들이) 마포구를 떠나는 이유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못 가기 때문이다. 돈도 안 들어가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들어 주자는 게 제 목적이다.” 작은도서관을 입시를 위한 도서실로 전환하자 는 취지의 발언 근거는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서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고학력을 갖추기 위한 조건이 복잡다단한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때 타당치 않은 근거이다).
어린이에게는 학교가 파하면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이웃 간에 만남도 필요하고요. 우리 사회가 성장했다고들 하지만 자살률은 높아지고 안전이나 생명에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망이 느슨해지고 단축되었기 때문이에요. 때문에 우리는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주목해야 해요. 공공도서관이 독서생태계의 큰 맥락과 시스템을 만든다면, 작은도서관은 그 중간중간을 연결하는 실핏줄 같은 연결망을 지키는 장소예요. 우리 가족 외에도 나를 돕고 걱정해 주는 최소한의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공공의 장소이지요. 행정당국이 문화공간으로서 사람들에게 공동체를 회복하는 힘을 줄 수 있는 장소가 작은도서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작은도서관에서 노력하는 실무자들과 그들을 돕는 시민이 있다는 사실도요. 소수로 보일지라도 그런 사람들을 육성하고 보호하는 데에서 문화정책의 근간이 세워지니까요.
모든 세대가 어우러진 도서관을 꾸리고자 애쓴 시간들을 자양분 삼아 웃는책의 미래가 쭉 꽃길이길 바랍니다. 작은도서관을 지키는 사서들에게 바람이 있다면요?
코로나 이후로 저희 사서선생님들과 도서관을 꾸리는 조합원, 도서관 커뮤니티들이 힘들어지고 있어요. 커뮤니티성이 약해지는 가운데서도 활발하게 이 공간에서 함께해 주시는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에요. 앞으로 꽃길만 펼쳐지진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가 시절이 좋아서 이런 활동을 같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힘든 일들이 생긴다 하더라도 함께해서 기뻤던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웃의 친구로 남아서 또 다른 독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연결망을 계속 지켜 가지 않을까 싶어요. 힘주어 말하지만 우리는 단지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 읽고 쓰는 게 아니라, 소통하는 관계를 맺고 살아갈 힘을 나누기 위해 함께하는 것입니다. 나눔으로써 자기 안의 힘을 기르는 시민들이 더욱 연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깊은 감동이 있는 책 읽기들을 시도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 사명감으로 일해 왔으니까요. 힘든 한이 있어도 작은도서관이라는 공동체에서 맺은 관계는 계속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