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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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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1-03 10:08 조회 1,2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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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다면


가난으로 인해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과 만난 것을 계기로 빈곤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 오셨지요. 빈곤 대물림에 관한 논문을 쓰기까지 앓았던 시간이 깊이 서려 있을 것 같아요. 

집안이 가난하다 할지라도 양육자가 아이의 교육과 성장, 그리고 진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막상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가정에서 폭력과 방임 같은 문제가 무분별하게 발생하고 있을 때, 학교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어요. 교사의 기본적인 역할은 사고 없이 학생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교육하는 ‘통제’에 방점이 찍혀 있거든요. 고민을 이어 가던 차에 ‘학교사회복지사’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2000년 초반에 학교사회복지사 제도가 확대되다가 이내 크게 축소되었고, 정규직이 아니기에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렇게 학교사회복지사는 포기했지만 석사를 밟으면서 만난 좋은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박사 공부를 하게 됐어요. 논문을 쓰면서 출판 제안을 받았는데, 처음부터 10년이라는 기간을 상정하고 시작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어요. 중간에 연구년도 있었고, 코로나19 사태도 있었고, 책을 내려던 출판사가 바뀌기도 하면서 길어졌어요. 2~3년이 훌쩍 흐르면 인터뷰이 학생들의 상황도 많이 달라지니 그때그때 추가 인터뷰를 했고, 그러다 보니 성인기까지의 일대기를 추적하는 프로젝트가 됐어요. 처음에는 학술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빈곤 정책, 빈곤 청소년·학교밖청소년 실태 같은 주제를 다루려고 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대중서로 기획해 보면 어떨지 제안을 하면서 글의 패턴과 주제가 중간에 많이 수정되었어요. 

제 책의 모델이 되어 준 『우리 아이들』이라는 책이 있어요. 1950년대부터 현대까지 미국의 다양한 계급의 가정과 아이들의 삶을 추적한 유명한 책인데요. 저자는 이 책에서 빈곤 정책을 자세히 분석하고, 다양한 수치 데이터를 제시해요. 『우리 아이들』의 한국 버전을 만들고 싶었지만 풀타임 연구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무리였어요. 그래서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과 내밀한 인터뷰를 담은 책이 된 거예요. 생애사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인터뷰이 학생들의 마음이 집필에 동기를 많이 불어넣어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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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죄악시하는 말들이 빈곤을 둘러싼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듯해요.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라는 말처럼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요? 

‘가난’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하다 보면 소득이 얼마나 낮은지, 소득 대비 얼마나 소비하고 있는지 등 경제적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돼요. 과거에 우리나라는 기초생활수급비를 정할 때 ‘물량방식’을 채택해서 생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의 값을 더하여 산출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만 해도 합산되는 물건에 ‘스마트폰’이 없었어요. 오늘날 스마트폰은 우리 삶에 필수품이 되었음에도 품목에서 빠졌죠. 어떤 아이가 식비보다 온라인 비용에 더 많은 돈을 사용한다면 누가 그 아이를 빈곤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선생님들이 공지를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는 경우가 많아서 숙제만 하려고 해도 온라인 접속이 필수인 시대예요. 지금은 스마트폰 등 온라인 비용이 품목에 합산되어 있지만 이렇게 개정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논쟁이 필요했어요. 가난을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이러한 시빗거리가 계속 생겨요. 

그래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책에서 많이 인용한 아마르티아 센의 말을 빌린다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원을 쓰고 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복지 를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려면 경제적인 시각에서 먼저 벗어나야 해요. ‘기초 생활 수급권’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복지는 최소한의 권리예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톺아볼 필요가 있는 거지요. 가난을 돈이 없는 상태라고 말하지 말고 자신의 행복 추구권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고 재정의하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시간 빈곤, 인간관계 빈곤처럼 비(非)경제적인 요소까지 충분히 둘러볼 때 가난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불우한 가정 내 일부 청소년들의 범죄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행태가 혐오를 부추긴다는 언론인들의 자기비판이 있다고요. 처벌이 능사라는 단언을 넘어, 사회 복귀를 위한 교정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부적응 행동을 먼저 보였을 거예요. 등교하지 않는다거나 가출하는 경우처럼요. 이러한 학생들을 위기 청소년이라 한다면 이들을 지원하고 보호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촘촘해져야죠. 경기도교육청도 자퇴생을 줄이고 위기 청소년들이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학교 밖으로 나가 버리면, 시스템 밖으로 나가 버리면 손길이 닿지 않아 도움을 주기가 어려우니까요. 위기 청소년 지원 정책, 청소년 쉼터 등이 더 많아져야 해요. OECD 주요 국가의 보호관찰관이 1인당 27.3명을 담당하는 것과 달리 2021년 기준 한국은 118명을 담당하고 있으니 보호관찰관도 보충이 되어야 하겠죠. 미국에서는 학교마다 학교사회복지사가 상주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하고 있어요. 국내에도 이러한 제도가 있긴 하지만 실행이 미미한 실정이어서 교육 당국 차원에서 제도를 재검토하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학교는 또래 친구들, 선생님 등 관찰자가 많은 곳이에요. 그래서 가정 폭력에 노출된 학생,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 들을 제때 발견해서 늦지 않게 조치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학교의 이점을 적극 활용한다면, 관련된 제도와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교정이 원활히 이뤄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인식의 변화를 일구는 제도의 개선을 촉구한다


청소년들은 교우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기에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이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아요. 빈곤에 대한 학생들의 선입견을 걷어내기 위해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요즘에는 빈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요. 그래서 학생들이 빈곤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심한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휴거(휴먼시아+거지)나 엘사(LH에 사는 사람) 같은 말도 언론이 만들어낸 말을 초등학생들이 학교로 가져와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이지, 빈곤을 혐오한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학교에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가정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함양하도록 돕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이 찍히면 학생들은 부적응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대인관계도 어려워지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져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가난을 이유로 특정 학생을 지목해서 “너는 가난하니까 문제집을 무료로 줄게”라는 접근은 좋지 않은 방법이에요. 빈곤한 학생을 가려내기보다는 (경제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진로 설계를 돕고, 원활하게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해요. 게다가 오늘날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경제 상황이 어떠한지 알 수 없어요. 소득 조사를 통해 ‘원스톱 서비스’로 지원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의 경제 여건과 관련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게끔 되어 있어요.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자존감이 높고, 자기 소신이 뚜렷한 학생들은 설령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해도 위축되거나 친구들에게 휘둘리지 않아요. 책에나오는 지현이처럼 자존감이 높다면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어요. 따라서 빈곤한 학생들을 선발해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의 내면의 힘을 길러 주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사의 역할이 필요해요.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 대부분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요. 가정을 와해시키는 근본 원인은 가난일 테지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악순환을 공고하게 만드는 구조인 것 같아요. 

공고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한국 사회가 깊이 고민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해요. 어떤 역경이 있어도 가족끼리 똘똘 뭉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가족 신화’는 현실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가족은 중요한 요소이고요. 하지만 이를 반대로 얘기한다면 가족의 영향력이 과도할 정도로 강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엄마, 아빠, 자녀로 이루어진 이른바 정상가족이 아닌, 예를 들어 이주민 가족, 한부모 가족, 재혼 가족, 조손 가족 등을 가진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가능하고, 현실적으로도 그러하다는 인식에서 논의가 출발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에요. 미혼모 복지체계만 봐도 여실히 드러나요. 국가적인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은 ‘결혼하여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만 집중되어 있어요. 혼외 임신, 미혼모, 자녀를 입양한 동성 커플 등은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요. 정상가족을 이상적인 형태로 신화화하는 인식을 깨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도 보이지 않을까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사회구조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데, 아직도 정상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하니 여기서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비단 빈곤 문제뿐만 아니라 성평등, 노동 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영향을 주고 있어요. 책에도 언급되는 ‘생활동반자법’ 같은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다면 가난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이 계속 다칠 수밖에 없어요. 가족을 중요시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에 과도하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건 사회적 인식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겠죠.


가난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복지체계는 개인의 자존감을 해치는 요소로 작동해요. 가난을 사회적·구조적 문제가 아닌 “게으르고 똑똑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는 풍토 때문인데, 빈곤 문제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가난을 증명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작금의 복지체계를 수정하면 된다고생각해요.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면 매달 상당한 금액의 지원금이 나와서 별도의 경제활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요. 유럽은 주택, 교육, 양육 등 다양한 차원에서 보편적인 복지체계가 마련되어 있어요. 보편적 복지체계가 자리 잡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고요. 한국 사람들은 보편적인 복지에 익숙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졌을 때 소비 진작과 취약층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 위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경우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어요. 사이버 강의를 듣는 사회복지학과 수강생들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복지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보편복지에 부정적인 거예요. 돈이 많이 들고, 세금이 낭비된다는 거지요. 하지만 선별복지를 하게 되면 심사를 통해 지원을 받을 사람들을 거르는 데에 행정력과 세금이 훨씬 더 많이 소모돼요. 일괄적으로 모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면 훨씬 간편하고 경제적이에요. 부정 수급 이슈도 전혀 없을 테고요.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도 낮출 수 있지요. 보편적인 제도 구축에 앞서서 인식이 먼저 개선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요. 물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인식이 개선될 수 있어요.



필요한 건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지현이의 ‘성찰하는 힘’, 주도성과 자율성을 기르기 위해 ‘사색하는 시간’에 침잠했던 연우. 학생들과 인터뷰하면서 인생의 지혜를 되레 배우는 일이 잦았다고요. 

가난하든 아니든 내면이 단단하고 깊은 학생이라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한다는 이야기를 앞서 했는데요. 자신이 원하는 바가 뚜렷하고, 주관이 확실한 학생이라면 가난과 무관하게 스스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어요.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해 지현이와 연우가 ‘성찰하는 힘’과 ‘사색하는 시간’에 천착했던 것처럼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가를 성찰하는 시간은 청소년기에 반드시 필요한데, 지현이와 연우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러한 시간을 통해 성장했다는 게 놀라웠죠. 책을 읽고 감상을 들려준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복지제도를 스스로 알아보고 활용한 지현이와 건축사로서의 커리어를 주도적으로 설계해 나간 연우의 사례가 인상 깊었다는 감상이 많았어요. 가난한 가정에서 부모의 방임과 무관심속에서 성장한 연우는 행복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과 길이 많은데, 왜 부모님은 경제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는지 질문을 던져요. 십 대의 어린 나이임에도 행복의 다면적인 특성을 성찰하고 고민하는 게 대단했어요.

빈곤 대물림을 주제로 논문을 쓰면서 만난 어느 학생이 있어요.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아버지와 라포(rapport)가 튼튼하게 형성되어 있고, 역사 공부에 푹 빠져 있는 역사 덕후인 아이였는데요.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했고, 진로도 스스로 설계해서 지금은 역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고 들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빈곤’이라는 상태가 본질이 아니라 어른들이 아이의 관심사와 자아정체감을 얼마나 존중하고 북돋워 주는지가 관건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사례지요. 


지현이와 연우의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기의 적극적인 진로 설계와 자아정체감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할 수 있었는데요. 공교육도 이러한 준비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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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 년간 경기도교육청에서도 사색과 탐색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고 다양한 노력을 했어요. 예를 들어 ‘자유학기제’처럼 좋은 취지로 시행된 제도들이 있어요.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마주하는 학력에 의한 임금 격차와 근로 환경의 질이 현격히 차이 나는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도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봐요. 게다가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아정체감을 형성해 가는 건 고등학생 시기에 매우 중요한데, 중학생 저학년에게 이를 적용하기엔 다소 이르다는 한계도 있고요. 고교에서 자유학기제를 시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입 공부 때문이고요. 학생들의 진로 설계와 자아정체감 형성에 공교육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려면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점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아요. 당장 눈앞에 놓인 대입 공부 너머, 자신이 어떤 인간이며 앞으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공교육 내에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희망은 논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결단이다.”라는 잠언처럼 더 나은 삶을 향한 학생들의 용감한 결단을 지지하고,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일상 속 작은 실천이 있다면요?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나를 떠나지 않고 옆에 있어 줄 사람이 있다. 손 내밀어 주고, 내가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이 있다. 이런 존재가 되어 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나아갈 힘을 충분히 얻는 것 같아요. 학생 옆에 상주하는 교사가 그러한 역할을 해 주면 가장 좋겠지요. 부모도 마찬가지고요. 생각보다 현실에서는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부모가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내 말을 들어 주길 바라고, 아이에게 많이 기대해요. 교사라면 학생 면담을 일상적으로 실천하고, 정서적 안식처가 되어 주는 것만으로 아이들에게는 큰 힘이 돼요.  


‘나쁜 일자리’로 인한 임금 불평등, 선별 위주의 교육 제도, 자본소득이 압도적 힘을 발휘하는 사회에 만연한 무력감…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아정체감을 만들어 가는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책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학생들과 교사에게 각각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 있는데요. 교사에게는 『야누시 코르차크 아이들을 편한 길이 아닌 아름다운 길로 이끌기를』을 권하고 싶어요. 교육계의 거장 야누시 코르차크의 교육사상과 교육적 실천을 담은 책이에요. 읽어 보면 자신만의 교육 철학을 세울 때 도움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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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추천하고 싶어요. 가진 것이 없어도, 판자촌에서 살고 있어도 각각의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다채롭고 빛이 나는지 잘 보여 주는 소설이에요. 학생들이 읽으면서 깨닫는 바가 많을 것 같아요. 작가의 실제 경험이 잘 녹아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쇳밥일지』도 떠오르네요. 저는 절절하게 읽었는데, 학생들은 좋아할지 잘 모르겠지만요. 특성화고 학생이라면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인문계고 학생들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에요. 우리가 잘 몰랐던 기술노동자들의 삶을 매우 핍진하게 보여 줘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이야기가 감동적이고요. 마지막 책으로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꼽고 싶어요. 출간된 지 꽤 오래된 SF소설인데요. 재난 이후, 인간의 의미란 무엇인지 깊이 탐색하면서 큰 울림을 선사하는 책이에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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