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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이은경 경주 계림고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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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1-03 09:45 조회 74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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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를

힘껏 알리는 마음

이은경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직업을 사랑하는 일. 익힌 기술과 깊어진 사유로 타인에게 효능을 주는 일. 난관에 부딪힌 사람이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기쁜 하루를 보내는 일. 이은경 선생님을 보면서 그 하루들을 보냈을 사람의 풍경이 음악처럼 흘렀다. 인터뷰가 끝난 시간, 업무를 하러 저물녘에 학교도서관으로 복귀하는 선생님 뒷모습에 언덕처럼 쌓였을 그간 고민의 흔적들이 겹쳐 보였다. 그건 상처였을까. 훈장이었을까. 수도권이든 지역이든 언제나 소수로 존재하는 사서교사를 증명하느라 소진하는 마음. 도무지 낯설지 않다. 지리멸렬한 편견을 넘어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최신의 교육법을 연구하는 마음. 다재다능한 협력수업 경험, ‘1인 1책’을 냄으로써 학생들의 성취감을 올린 일 등 그는 이미 독서교육의 프로다. ‘쓸모’를 말하는 선생님 앞에서 마음이 쓰라렸다가 응원하는 마음을 바로잡아 본다. 그가 사서교사로서 정체성을 바로 세운 지난날들의 용기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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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가 밀집한 관광도시로 경주를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서교사로 발령받고 온 경주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청도와 경산에서 각각 일 년간 근무하고 경주 지역 학교로 발령을 받았어요. 청도전자고(현재는 경북드론고로 바뀜)가 첫 발령지였고, 이어 경북체육고에서 일하다가 외동중으로 근무지를 옮겼어요. 제 본가가 경주거든요. 여기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마침 경주에 자리가 나니까 기왕이면 집 가까운 데서 근무하자는 생각에 이곳으로 지원했어요. 2023년부터는 계림고에서 업무를 시작했는데, 일전에 사서교사가 배치되지 않은 지역 학교 출장을 통해 계림고 업무 지원을 해드린 적 있어요. 당시 도교육청에서 설립한 교육공공도서관에서 지원을 나오셔서 장서 점검을 하고 계셨어요. 도서 폐기 등 정리가 잘 돼 있길래 책 정리만큼은 안 해도 되겠다고 짐작했죠. 그것만 해도 큰일을 해결한 거니까요. 학교를 옮길 때마다 매년 서가를 뒤집고 정리해야 했던 터라 마음을 놓았는데, 막상 발령받고 와 보니 엉망이더라고요. 학교에서 공사를 하면서 다른 공간에 있는 짐을 도서관에 모조리 모아두느라 집기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고 도서 배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어요. 도서관 가구 업체, 서가의 높낮이도 뒤죽박죽이어서 처음엔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완전히 뒤바뀐 도서관 모습에 녹다운이 됐었죠. (웃음) 거의 2주 동안 책을 다 꺼내서 서가를 옮기는 작업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사서교사가 근무하지 않았던 학교에서 일을 시작하시면서 ‘독서교육 분위기’를 다지는 일도 나름 미션이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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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사가 제작한 학교도서관 200% 활용 안내서 중에서


공사하느라 도서관이 그간 문을 닫고 있어서인지 도서를 연체한 학생들이 수두룩하더라고요. 장기 연체자가 보일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가서 벌점을 주겠다고 하니까 학생들 대다수가 죄송하다면서 책을 반납해 주었어요. 분실한 경우 자기가 (책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학생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예의를 갖추는 아이들을 보고 착하구나 싶었죠. 계림고로 와서 동료 선생님들께 협력수업을 함께할 수 있다고 알리는 일부터 했어요. 감사하게도 여러 교과선생님들께서 협업 제안을 승낙해 주셔서 도서관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수업 시간을 통해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도서관에서 만날 때랑 느낌이 또 다르더라고요. 제가 어리고 여성이다 보니 남고 학생들이 무례하게 나올 수도 있다는 근심이 들었는데, 수업에 무척 집중을 잘해 줬어요. 구미에 계신 정원진 선생님이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라는 학생의 질문에 곤욕을 치르셨듯이, 저 역시 그런 말을 하는 학생들을 종종 만났었거든요. 이곳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저를 사서선생님이라고 바로 인식하더라고요. 협력수업에서 저를 만난 학생들이 도서관에 와서 더 반갑게 인사해 주기도 했고요.


계림고 발령 초기, 동료 교사들에게 협력수업을 어떻게 홍보하셨나요? 

예전에 근무한 학교에서 국어선생님과 ‘한 학기 한 권 읽기’ 국어 단원을 같이 맡아서 수업을 해 왔어요. 중학교는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주제활동이 많아서 협력형 프로젝트를 꽤 경험했거든요. 이 학교에서도 사서교사가 먼저 제안하면 ‘한 명쯤은 수락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학교도서관의 기능을 고르게 홍보했어요. 학교도서관의 주된 역할이 학교 교육과정 지원이잖아요. 계림고 도서관 현황과 교과선생님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독서프로그램을 비롯해 협력수업으로 어떻게 공조할 수 있는지 3단계로 나눠서 소개했어요. 미리캔버스로 제작했는데, 참고할 수 있는 협력수업 사례를 탑재한 사이트를 QR코드로 넣어서 알려 드렸고요. 그러자 주로 자료 지원을 요청하시던 선생님들이 차츰 수업을 함께해 보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이후 독서 수업을 고민하는 선생님과 다양한 프로젝트 수업을 했어요. 저희 학교가 과학 특성화 고등학교라 ‘과학 융합’이라는 교양 과목이 있어요. SF소설을 읽고 작가가 텍스트에 과학 이론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문학의 요소는 무엇인지 학생들과 깊이 분석해 봤어요. 현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사이언스 픽션을 학생들과 읽고, 분석했어요. 소설에서 주요한 특정 딜레마를 주제로 정해서 토론하며 작품을 이해했어요.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글을 써 보는 방식으로 마무리했고요. 고전과 윤리 과목 수업에서는 고전을 읽고 모둠별로 토론한 다음 뉴스 시나리오를 써 보는 방식으로 꾸렸어요. 내가 읽은 고전의 가치를 사회문제와 엮어서 뉴스 대본으로 발표하는 수업이었죠. 학생들이 최대한 수업을 맛볼 수 있도록 시나리오, 대본 작업 등 자기만의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수업으로 꾸리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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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지역 사서교사의 경우, 동부·서부·남부·북부 권역으로 나누어 정기 만남을 갖고 교과연구회를 진행한다고 들었어요. 경주는 어디에 속하고, 어떤 방식으로 연구회를 운영하나요?
경주는 동부 권역에 속해요.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울릉도까지가 동부 권역이에요. 울릉도에도 사서선생님이 계시는데, 초등에 한 분, 중등에 한 분 근무하신다고 들었어요. 일 년에 두 번 정도 만나서 오프라인 연수를 진행하는데, 그간 선생님들이 어떤 연구를 했는지 모여서 발표해요. 그 외에 비정기 온라인 연수를 마련해서 같이 듣기도 하고요. 전체 권역을 아우르는 연구 주제가 있어요. ‘학교도서관 활용 프로그램 개발’이 그것인데, 이를 함께 연구하면서 동부 권역에서는 ‘학생 참여 중심 모둠 독서 활동지도 방안’에 주력해서 머리를 맞대고 공부해요.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학생들이 모둠에서 책을 고르게 잘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들을 논의해요. 영양가 있는 모둠 독서 방안을 개발하기 위해 그림책 함께 읽기를 하는 선생님도 계시고요. 단편소설을 한 시간 안에 읽고 토의하는 전략, 주제별 독후 활동지를 제작해서 리스트업 하시는 분 등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초등 5명, 중등 5명, 사립학교 5명을 포함해 대략 15명의 사서교사가 경주에서 근무 중이라고 하셨죠. 워낙 소수여서 사이가 돈독할 것 같아요.

워낙 소통이 잘 되는 편이에요. 선배 선생님께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먼저 말씀해 주셨어요. 인근 서라벌여중에 이재선 사서선생님이 계시거든요. ‘경북 1호’ 사서선생님 중 한 분으로, 경북에 처음 발령 받으신 분이에요. 1998년에 일을 시작하셨는데 후배들이 선생님께 많이 의지해요. 포항에서 줄곧 근무하시다가 작년부터 경주에서 근무를 시작하셨어요. 경주 토박이들은 신기하게도 다른 곳으로 떠나도 돌아오는 성질(?)이 있는 것 같아요. 청년이 되면서 경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희한하게도 고향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덕분에 제게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들과 재회하는 일도 있었어요. 특히, 인근 신라중에 근무 중이신 김문주 선생님은 제가 교생실습할 때 곁을 지켜주신 사서선생님이에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선생님께 SOS를 치곤 해요. (웃음) 제가 2018년에 발령을 받았는데, 경북 지역에서 14년 만에 뽑은 신규 사서교사 채용이었거든요. 그나마 한두 명씩 조금이라도 뽑던 타 지역과 달리 경북은 2004년 이후 사서교사를 뽑은 케이스였어요. 당시 선배 선생님들이 저희를 다 모으셔서 밥도 사주시고 카페에도 데려가 주셨어요. 그때 얼굴을 두루 익혔죠. 다른 경북 지역에 근무하시는 선생님들과도 친해져서 연구회에서 소모임을 운영했어요. 경주와 포항에 계신 사서선생님들 중에 희망하시는 분들과 청소년문학을 읽는 모임도 했고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 『모범생의 생존법』 등을 읽고 학생들과 나누면 좋을 질문을 뽑아 보기도 했죠. 경주, 포항, 울진에 계신 선생님들과 함께요.


경주의 관광 명소인 불국사는 익숙해서 오히려 지역민이나 학생이 잘 안 갈 듯싶네요. 미처 우리가 알지 몰랐던 지역의 핫플레이스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외동중에 근무할 당시에 울산 지역 사서선생님이랑 불국사와 석굴암을 가 본 적 있어요. 불국사가 이렇게 좋은 곳이었나 싶을 만큼 새로워서 독서를 기반으로 한 유적지 답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더라고요. 경주가 새롭게 보였어요.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여행』을 학생들과 읽고 경주 내 유적지를 돌며 작은 여행안내서도 만들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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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

황윤 지음│책읽는고양이│2020 

의외의 장소를 꼽으라면, 경주 국립박물관 내부에 있는 도서신라천년서고(일정로 186)를 추천해요. 경주가 워낙 건물을 고풍스럽게 짓는 편인데, 고즈넉한 한옥에서 고요히 사색하기 좋은 책공간이에요. 학생들 데리고 꼭 가 보고 싶은 도서관이기도 하고요. 주로 경주와 신라를 주제로 한 역사서들을 진열했고, 평일에만 열어요. 작약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에 가기 좋은 도봉서당(서악4길 58)에도 가 보세요. 숨은 공간이라 현지인이 아니면 잘 모르는 곳인데, 특히 작약이 필 때 가면 출사 나온 분들이 많을 만큼 풍경이 아름다워요(편집자 주: 경주 도봉서당은 조선 성종 때의 학자였던 불권헌, 황정의 학력과 효행을 추모하고자 건립된 곳이기도 하다). 황리단길에는 소소밀밀(포석로1092번길 16)이라는 그림책방이 있어요. 작은 가정집을 리모델링한 곳인데, 그림책 큐레이션이 탁월해요. ‘엄마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 등 책방지기가 손수 써 놓은 글귀가 눈길을 끌어요. 구리지 않은(?) 예쁜 기념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으니 경주로 나들이 나오셨다면 한번쯤 들러 보세요. 북카페이자 서점인 북미(북성로 103-1 2층)에도 가보세요. 영화를 테마로 한 책들, 영화 각본집 등을 큐레이션한 곳인데, 이따금 정기 독서모임이나 영화 상영회도 열어요. 경주 읍성이 바로 앞에 있어서 통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뻐요. 커피뿐 아니라 홍차 등 차 종류도 많아서 학생들과 가서 책도 보고 다과를 나누기에도 제격이에요.  



온라인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위해 오디오북을 제작하시는 등 독서력이 낮은 학생을 위해 다양한 기획을 해 오셨죠. 최근엔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나요?

요즘은 구글 바드(생성형 AI 기술이 적용된 챗봇 AI 사이트)나 챗gpt처럼 AI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 통합사회 협력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과 단원의 주제를 표현하는 사진을 Bing(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대화형 검색 엔진)을 통해 만들어 봤어요.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Bing에서 요청하면, 해당 요청을 적용한 이미지를 AI가 만들어 줘요. 여기서 중요한 건 AI가 우리가 요청한 사항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질문을 정밀하게 제시하는 검색 능력을 학생들이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는 거예요. 논문이나 보고서를 쓰는 과제를 할 때도 글의 목차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AI한테 요청할 때 어떻게 질문해야 가장 효과적인 답변을 끌어낼 수 있을지 인식하는 게 관건이거든요. 저는 AI 도구를 학생들이 잘 활용하는 법을 알려 주고 싶어요. 그게 곧 정보활용교육이자 학교도서관의 기능이니까요. 수업 중에 ‘국제 갈등의 유형’을 조사하라는 과제가 주어지면, 단순히 주제를 그대로 입력해서 자료를 탐색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컴퓨터 시스템은 입력한 키워드가 가장 많이 포함된 데이터를 화면에 출력하는 게 기본 옵션이어서 불필요한 정보까지 제공하게 돼요. 무작정 미술, 디자인을 검색 키워드로 해서 진로 관련 책을 찾는 학생들도 많은데요. 컴퓨터 화면 상위에 링크된 아무 도서를 가져가는데, 손에 쥐어진 책을 자세히 보면 화가 라울 뒤피의 전기 같은 전문서적인 경우도 있어요. 어려운 책부터 읽으면 헤맬 수밖에 없겠죠. 이는 정보를 판별하는 방법을 몰라서일 텐데요. 학생들이 검색 키워드를 적재적소에 입력하여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도록 정보교육을 강화하고 싶은 바람이 커요. 


정보교육의 대안을 연구 중이시군요. 최근 청년층 사서선생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자기 소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하신 것 같더라고요. 선생님 마음의 날씨는 어떠한가요?

대개 교사 집단에서는 3년, 7년, 10년 차마다 고비가 온다고 하는데 저희 사서교사는 1인 체제로 일하니 더욱 극심할 수밖에요. 저는 사실 1년 차부터 고비가 왔어요. (웃음)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할 당시에도 ‘사서교사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정보 봉사, 이걸 왜 하는 거지?’, ‘디지털 도서관은 또 뭐야?’라는 물음이 저를 따라다녔어요. 이론으로만 익힐 때는 와닿지 않다가 교생 실습에 나가면서 터닝포인트를 찍었어요. 저를 이끌어주신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양질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실습을 지원해 주셨고, 그 안에서 만났던 중학생들과 즐거운 경험을 했거든요. 원래는 공공도서관 사서 공무원을 지망했는데, 교육학이 저랑 잘 맞는다는 걸 차츰 알아갔어요. 임용 준비를 하면서 교육 심리학을 접했는데, 공부하면서 때때로 위로받았고 사서교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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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사가 외동중 근무 시절 방과후마다 이끌었던 책쓰기 동아리 ‘북적북적’ 학생들과 함께.

사진에서처럼, 학생 저자들이 손에 쥔 책들을 도서관 바코드 넘버로 등록하여 다른 학생들도 빌려 볼 수 있게 했다.  


교육 이론 중에 ‘경험 학습’이라는 게 있어요. 아무리 어떤 걸 접해도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분야를 인지하는 밀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데, 학부 시절 사서의 직무를 익힐 때만 해도 큰 감흥이 없었어요. 정보활용교육을 배우긴 하는데, 시험을 위한 공부 차원에서만 접하다 보니 어떤 효능을 가지는지 알 도리가 없었죠. 고투 끝에 마음을 다잡고 사서교사가 되어 업무를 시작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열심히 해도 동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경북 지역의 경우 10년 주기로 사서교사가 배치되다 보니, 그전에 아무리 뭘 열심히 해도 십 년 동안 그전의 일들을 경험하신 선생님들은 학교를 이동하면 모든 일이 수포가 되더라고요. 또다시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요. 학교에서 아무리 다양한 것을 시도해도 대출·반납밖에 안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와장창 깨졌어요. 골똘히 원인을 생각하다가 사서교사가 각자 학교에서 지닌 대표성에 피로해진 데다 ‘내가 이 학교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서교사일 수 있다’는 사명감에 부담이 누적돼서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어떤 일을 완벽하게 잘해야만 다른 학교 가서도 동료 교사들이 ‘사서교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인식이 바로 설 것 같았거든요. 


또다시 ‘존재의 증명’에 관한 고민인 셈이네요. 왜 사서교사는 자꾸 증명해야 하는 걸까요?

신규 교사 시절을 통과하면서도 녹록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도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더라고요. 올해 실은 여러 사건을 겪었어요. 이따금 동료들(사서교사)과 만날 때 이런 질문을 나눴어요. “우리가 국어교사랑 다른 점은 무엇인가?” 여러 시기를 앓고 통과해 오면서 사서교사가 타 교사와의 차별점은 문헌학이라는 판단이 섰어요. 즉 정보를 논하는 교사라는 셈이죠. 이따금 책에 너무 매몰돼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은 어쨌든 정보를 담고 있는 수많은 매체 중 하나잖아요. 여러 형태의 정보 가운데 종이책의 물성이 있고, 온라인 자료 형태의 물성도 있기에 디지털 도서관 등 다양한 형태를 교사가 운영하는 거고요. 단순히 ‘책 읽히는 독서교육’으로만 우리의 일을 여기는 것은 협소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확한 정보 수집을 위한 독서교육이 주요하다는 걸 현장에서 부딪치며 깨달았고, 나의 일터가 그것이 구현될 수 있는 공간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할 때라고 봐요. 


그 물음들을 던지게 해 주었던 나름의 동력들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충분히 내면화하지 못한 점, 현장에서 들리는 주변의 말에 휩쓸린 점, 여전히 내가 일을 안 하고 있다고 바라보는 사람(이는 사서교사 수가 터무니없이 적은 요인에서 비롯됐음을 이 교사는 밝혔다)에게서 영향을 받은 점, 이 세 가지가 고루 섞이면서 업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학생들이 이따금 저더러 대학생인지 자원봉사자인지 물어볼 때가 있었거든요. 선생님도 대학 나온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고요. 아이들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종내엔 그 말들이 가슴에 아프게 남더라고요. 하지만 막연한 독서교육이 아닌 정보 수집을 위한 학습 독서를 하는 교사로 나의 정체성을 세우고 나니, 명쾌해졌어요. 일전에 김순필 선생님 인터뷰(<학교도서관저널> 2023년 6월호)를 보고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거기서 “사서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미래교육에서) 목표로 하는 수업 방법을 먼저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동료에게 들은 바 있다고 김 선생님께서 하셨잖아요. 선생님께서 고민해 오셨던 것처럼, 저도 여러 고민들로 출렁이면서 사서교사로서 업이 무엇인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어요. 

“멋진 전원주택에 넓은 서재를 가진 부자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퇴직 후 바람(?)을 유머러스하게 말씀하신 바 있는데요(본지 2022 7+8월호). 노년의 서재에 들이고 싶은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면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요. 마음이 힘든 일이 생기면 꼭 심리 주제 책을 보면서 위안을 받고 해결책을 얻어요. 제 노년의 서재에는 마음이 힘든 순간에 읽기 좋은 책들을 많이 들여놓을 것 같아요. 각자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위로받을 수 있는 서재를 꾸리고 싶어요. ‘I(내향)’ 성향이라서 누가 서재에 들어온다는 생각은 깊이 하진 않았지만요. (웃음) 서재에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자면… 우선 저의 바람을 살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기왕이면 위로건 해답이건 나름의 대책을 타인에게 척척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가 이은경 할머니 집에 가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도 있고, 이야기도 들어 주시면서 처방전이 되는 책 추천도 해 주시더라, 하는 사람이 된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지금 만나는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요. 어떤 고민이든 저를 거쳐서 학생들이 조금이라고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진로에 관한 풍파가 있었던 편이라, 한창 꿈을 찾아 헤매는 청소년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사람이기를 저도 꿈꿔 보곤 해요. 종종 학생들이 사서선생님이 추천해 준 책들 덕분에 과제를 잘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 기분이 좋거든요. 학생에게 쓸모가 있는 사람, 타인에게 스미듯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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