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류다혜 천안월봉고 사서교사, 이유나 천안불당고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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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11-02 10:33 조회 1,110회 댓글 0건본문
독서교육의 장을 넓히는
협력의 달인들
류다혜, 이유나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독식하지 않고 함께 공부할 때 시너지가 난다는 걸 몸소 알려 주는 교사들이 있다. 각기 다른 모양의 도서관 공간, 개성이 다른 학생들, 성향이 다른 관리자 틈새에서 새로운 교육과정을 명철하게 익히는 사람들. 약점보다 강점을 칭찬하는 동료 사이에서 지역 독서교육의 비전은 더욱 밝아질 것이다. 충남에서도 입시 열기가 뜨겁다는 천안 불당동에서 자리를 잡은 두 사서교사는 시시때때로 품앗이하듯 모여 공부해 왔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선택과목별 추천도서를 발굴하고, 융합독서토론 등 주제별 전문적학습공동체를 열어 공교육의 심장인 학교도서관의 기능을 다져 왔다. 공부하며 같이 분투하는 와중에 자연히 사서교사로서의 긍지는 살아났다. 문화공간이 더해진 책공간에서 학생들은 학습 동기를 얻어 갔다. 적은 예산에도, 24시간을 채워도 넘쳐나는 업무에도 업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 방방곡곡 그들의 곁에, 더 많은 인정과 자원이 보태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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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인근에서 일하는 데다 학교급도 같아서 주고받는 정보도 공감대도 두터우실 것 같아요. 두 분이 처음 만난 날, 그리고 천안 지역 학교 첫인상은요?
이유나 저는 원래 당진에서 일했는데 그곳에 사서교사는 저밖에 없었어요. 지역 도서관 일, 학교도서관 일을 도맡아 해야 했고, 인근에서도 문의 전화가 수시로 왔어요. 교사들 사이에선 서산, 태안, 당진 지역을 묶어서 ‘서태당’이라고 부르는데, 서태당은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자원이 적다는 인식이 많아요. 서해안고속도로가 생기긴 전에는 고립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섬’ 같다는 편견이 많았죠. 지금은 예전보다 활성화됐지만 도시인 천안으로 발령받고 난 뒤 은근히 기대를 했거든요. 신축 학교로 오니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2월에 미리 학교에 와 보니 서가가 엉망이었어요. 노란 벽 한 면을 가득 메웠던 쓰레기를 치우고, 전자칠판 공사를 하고, 서가 위치를 재조정하고, 방치돼 있던 EM(도서분실방지기)의 철로 된 안테나를 치우는 등 공간을 다시 구성하는 일에 주력했어요. 특히, 불당고 발령 초기부터 수업이 가능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며 교장선생님께 미리 말씀을 드렸어요. 온오프라인 교육이 가능한 공간을 구축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허락해 주셨어요. 자율 사업제 예산을 따내서 다양한 교과와 연계한 활용수업이 가능한 공간을 차츰 만들어 갔어요.
그 와중에 고교학점제 적용에 따른 선택과목별 추천도서를 업데이트해야 했고, 입시 정보를 어떻게 제공할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는데 천안으로 발령받고 난 이후 공유할 데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마침 류다혜 선생님이 옆 학교에 계셔서 비로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선생님과는 충남사서교사회에서 멘토-멘티 활동으로 만났어요. 류 선생님께서 강사 분들을 많이 추천하셔서 이곳 지역에 다양한 연수가 열렸고, 관련 교육자료도 공유해 주셔서 마음이 놓여요.
류다혜 저도 그랬는걸요. 저는 그간 중학교에서 주로 근무하면서 창의적인 프로그램이나 행사, 학생들 흥미를 끄는 아이디어 구현에 더 집중했다면, 유나 선생님께선 입시 노하우라든가 고교학점제, 생기부와 같은 교과 쪽 지식이 풍부하셔서 멘토-멘티로 만나면서 상호 보완이 됐던 것 같아요. 불당고와 월봉고가 위치한 곳은 천안 불당동인데, 이곳은 충남에서 사교육 시장이 가장 크게 형성된 동네예요. 천안으로 발령받고 난 이후 이곳이 입시에 관심이 높고 생활 수준도 높은데, 학교도서관이 문화적인 기능에만 충실해서는 이용자를 설득력 있게 끌어오기 힘들겠다는 예감이 들었거든요. 때마침 고등학교 담임 경력이 있는 이유나 선생님을 만나서 감사하게도 갖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류 선생님께선 몇 해 동안 ‘사서쌤의 유튜브 추천목록 100’ 연재를 통해 청소년이 볼 만한 주제별 유튜브를 동료 교사와 함께 큐레이션해 주셨지요. 동료와 조력하며 자기계발에 매진하셨는데, 왠지 여러 방면으로 공부해 오셨을 것 같아요.
류다혜 저는 기간제 사서교사로 강원에서 6개월, 경기도에서 2년간 근무했어요. 강원은 국어선생님 주도의 독서교육 분위기가 뜨거웠고, 제가 근무했던 당시엔 경기도가 기간제 사서선생님들도 전면 채용하겠다는 식으로 학교도서관을 밀어 주던 시기여서인지 다양한 연수를 도교육청 차원에서 많이 제공해 줬던 것 같아요. 책놀이, 독서동아리, 북콘서트, 황왕용 선생님의 감정 글쓰기, 스토리텔링, 이정숙 선생님의 도서관 수업을 주제로 한 연수 등 다닐 수 있는 연수란 연수는 최대한 들었어요.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학창시절부터 사서교사를 꿈꾸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기간제 사서교사로 일하면서 대출·반납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사서교사의 무한한 가능성을 뒤늦게 알았어요. 무지했던 저의 결핍을 채우고자 배움이 있는 곳이라면 무작정 찾아갔던 것 같아요. 경력이 짧지만, 각기 다른 고유한 환경을 가진 학교에서 일하면서 ‘거기선 먹혔던 행사가 여기선 안 먹히네.’, ‘거기선 호응이 없었는데 여기선 반응이 있구나.’ 체감하며 지역과 학교마다 차이점이 있다는 것도 몸소 익혔고요. 천안월봉고로 발령을 받은 뒤로도 연수에서 배웠던 걸 계속 적용하고 실험하는 중이에요.
윤혜숙 작가(『말을 캐는 시간』) 초청 강의를 열고 ‘이야기 계주’를 통해 학생들이 릴레이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등 이유나 선생님께선 매년 양질의 독서프로그램을 기획하신 듯해요. 언어 분야에 관심이 크신 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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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자리 인근에 계신 선생님이 법과 정치를 가르치시는데, 조언을 구해서 우리나라 헌법 전문(이오덕 선생님이 쓴 『우리말로 살려놓은 헌법』을 자료로 삼았으나 절판된 책이라서 이 교사는 구글 미리 보기를 통해서 글을 옮겨 쓸 수 있었다고 한다.)을 순우리말로 바꿔 보는 행사도 열었어요. 외래어,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은 후 수시로 우수 활동자를 선정해 시상했고요.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를 쓰신 김범준 작가, 『B끕 언어, 세상에 태클을 걸다』를 쓰신 권희린 작가(교사)를 초청해서 강의도 열었어요. 올바른 한글을 사용하기 위해 꾸민 엽서와 열쇠고리를 도교육청에 전시했는데, 학생들이 성취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계획하는 초반에 머리가 조금 아프긴 했지만, 장기로 행사를 여는 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도서관을 통해 문해력을 향상할 기회도 더 많아져서인지 학생들이 책을 읽는 빈도도 늘어났어요. |
지역 내 공공도서관과의 공조 방식이 궁금한데요. 천안 지역 학교도서관은 예산이나 문화자원을 교육청 도서관으로부터 어떤 경로로 지원받고 있나요?
류다혜 충남교육청 소속의 공공도서관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이 주도적으로 학교와 밀접하게 연계해 사업을 진행해요. 매 학기마다 책꾸러미 사업을 통해 학급별 혹은 수업 단위별로 필요한 도서를 보내주기도 하고요. 중학교의 경우, 최근 예술·문화 분야 중점 사업을 많이 해서 학교 연합 행사를 주도적으로 열어 주기도 해요. 홍성이나 예산을 서부 권역이라고 부르는 등 충남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권역을 나누는데, 교육청 소속 도서관도 권역에 따라 위치해요. 저희는 이곳 학생교육문화원을 거점으로 삼아 자주 소통하는데, 사서교사들을 모아서 요즘 학생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끼는지 담담자들이 적극 청취하는 편이에요. 교육청 소속 도서관이 중점이 되고, 저희들이 구심점이 돼서 지역 사서교사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교육청에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이점이 커요. 교육청 주축의 도서관 지원·소통 체계가 잘 구축된 편이에요.
이유나 충남교육청 산하의 19개 공공도서관이 공동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인 충청남도교육청통합도서관도 주목할 만해요. 이곳 사이트에서는 밀리의 서재, 윌라 오디오북 구독권을 무료로 지원해 줘요. 충남에 있는 학교 교직원과 학생이라면 이곳 통합도서관에 가입할 수 있고, 정회원으로 승급될 수 있어요. 천차만별로 시장화된 전자책을 개별 예산으로 구비하는 게 아니라, 대중적으로 보급된 전자책 플랫폼의 구독권을 도교육청 차원에서 계약해서 구독권을 고르게 배포한 셈이에요. 수업할 때 주제도서를 안 갖고 온 학생들도 있기 마련인데, 그런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다수의 학생이 동시에 대중화된 플랫폼에서 전자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 유용하더라고요. 메디치티비(클래식 음악, 재즈, 발레 주제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공연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연결돼 있어서 활용도가 높은 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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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다혜 천안 주변의 충남 홍성도 보령과 함께 책 읽는 학교라는 모임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교육청 소속 도서관과 협력해서 낭독극 등 성우를 초청해서 원작 소설을 연극으로 시연하는 등 중학생 대상 지원 프로그램이 많은 편이에요.
이유나 맞아요. 서산에서는 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에서 장서 점검이나 정배열, 서가 이동에 이르기까지 지원해 주는 드림팀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충남에 최근 또 다른 이슈가 있었죠. 일부 학부모단체가 117종에 달하는 성평등 도서를 금서로 거론하며 읽을 권리에 관한 시민의 항의가 잇따랐는데요. 이와 관련해 겪었던 민원이나 사서로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요?
이유나 이번 금서 논란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조기 성애화’를 우려해서 민원을 제기하셨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금서들을 계속 정하다 보면 기준이 불분명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학생들은 “쌤, 이 책에 성관계하는 내용 나오는데, 이거 봐도 돼요?” 하는 반복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성관계를 다룬 책을 빼면 문학책들은 살아남는 도서가 거의 없어요. 도서관인 윤리선언에도 나오잖아요(편집자 주: “도서관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 자신의 편견을 배제하고 정보 접근을 저해하는 일체의 검열에 반대해야 한다”,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인 윤리선언 2조). 이용자에 대한 차별도 검열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에요. 더구나 학생들이 (성에 대한 묘사) 그런 내용을 본다고 해서 곧바로 따라 하거나 흔히 걱정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고 해서 공산당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웃음) 다 읽고 충분히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기에, 학생들에게 읽을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봐요. 불법 영상을 보기 전에 안전한 매체로 교육받는 게 오히려 더 낫지 않나 싶고요.
지역 학교도서관 사서교사로 살면서 성취감을 느낀 순간도 많으실 것 같아요.
늘 사서교사가 없거나 짧게 근무했던 학교에서 일하곤 했는데, 그런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성공리에 이끌면 마치 황무지를 일궜다는 성취감이 생겨서 뿌듯해요. 학생들 출입이 없었던 팬데믹 시기, 돌파구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고안한 ‘책 피자’ 프로그램도 반응이 컸고요. 책피자는 진로에 관한 사연이나 고민을 구글 폼으로 접수 받아서 그 사연을 토대로 진로에 대한 코칭을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학생들과 대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땐 동아리를 참여하게 해서 친구의 사연에 어울리는 책을 서로 추천하기도 하는 등 장기적으로 프로젝트를 열었어요. 올해는 진로 상담 선생님과 같이 진로 상담 정보를 제공하는 학습 방식으로 가닥을 잡아 보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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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나 제가 가장 바라는 점은 세 가지인데 공간, 예산, 관심이라는 주제로 꼽을 수 있어요. 저희 학교도서관은 그래도 1층에 있어서 이용자가 많이 오는 편이거든요. 간혹 엘리베이터가 없는 고층 혹은 구석에 있는 학교도서관들이 여전히 많아요. 장사도 목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학교도서관도 마찬가지예요. 도서관을 학교 구석에 박아 놓고서 왜 학교도서관에 사람이 없냐고 이야기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도서관 담당자뿐 아니라 교육 공동체 안에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요?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예산이 없어서 초반에 행사를 많이 못 열었어요. 제가 공격적으로 각종 예산을 받아 프로그램을 여니까 학생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필사를 통해 책도 읽고 상품도 타면서, 나중에는 행사를 열지 않아도 책을 읽는 학생들이 생겨났고요. “선생님, 그때 필사 행사한 덕에 이제부터 책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어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보람이 들거든요. 그리고 사실 아무리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구성해도 담임선생님이나 관리자들이 관심이 없으면 학교도서관 운영자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더 하기가 어려워요. 학교 구성원들의 도움을 통해 도서관 프로그램의 질이 더욱 향상할 수 있다는 걸 함께 인지했으면 해요.
류 교사가 운영 중인 월봉고 도서부 학생들의 ‘달마루의 문단속’ 행사 당시 모습
그럼에도 학교도서관을 공교육의 허브 역할로 다져 온 두 선생님 덕분에 도서관 구석구석에 생기가 스민 듯합니다. 사서선생님의 역할을 어떻게 알리고 계시나요?
이유나 저희는 수서와 도서관 행사, 수업까지 수시로 해야 하기에 늘 시간이 부족해요. 작년부터 고등학교 선생님들끼리 수서 같이 하실 분을 ‘공동 수서 모임’ 오픈채팅방을 통해서 모집하고 있어요. 자신의 학교 편제표를 살펴보고, 선택과목을 선별한 후 국가교육과정정보센터에서 교육과정 원문 및 해설서를 다운받은 후 과목 성격을 구글시트에 요약하기도 하고요. 알라딘으로 과목 키워드를 사용해서 검색한 다음 서지사항을 체크한 뒤 고등학교 수준에 적합한 목록을 산출하곤 해요. 고교학점제가 생기면서 교과와 연계할 수 있는 도서들을 찾고 추천도서목록을 면밀하게 제작 중이에요. 올해 초에는 이 목록을 충청남도교육청에 보내기도 했고요. 천안에서 일하면서 기운을 북돋아 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도서관 공간을 바꿔 가던 어느 날 한 학생이 “쌤, 소설 같아요.”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능력 있는 선생님이 와서 도서관이 착착 바뀌는 소설 같은 모습이라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웃음) 그때 감동을 받았어요. 저희 학교 교장선생님은 누군가에게 저를 소개할 때 이유나 선생님 대신 “도서관장님”이라고 해 주세요. 관심 갖고 지원해 주시니 저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힘내서 구성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고마워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꾸릴수록 오늘의 학교도서관이 더 풍성해진다는 마음으로 일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