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양향숙 무안고 사서교사, 임지연 목포이로초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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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9-01 14:36 조회 1,151회 댓글 0건본문
목포는
사람책의 항구다
양향숙, 임지연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머리로만 아는 한 가지. 지역을 살리는 일은 교육에서 출발한다는 것. 하지만 나고 자란 지역을 꾸준히 공부하는 일은 공교육에서조차 흔치 않다. 여기, 예산이 없던 시절부터 십시일반 동료들과 활동비를 마련해 지역 문학기행을 실천하는 사서교사들이 있다. 바다가 지천인 곳으로 기억되기 쉬운 고장의 문인들을 찾고, 작품을 읽고, 소개하는 사람들. 명사들의 유산을 깊이 만나도록 매해 기획을 달리해 청소년 이용자의 흥미를 꾀하는 사람들. 살다간 민중의 행로 구석구석을 따라 걸으며 목포에 대한 자부심을 어린 세대와 키우는 사람들. 서울행을 막을 순 없다면, 적어도 고향에 대한 바탕을 돈독히 다져 주자며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서선생님들을 만났다면 나의 유년을 보낸 골목을 더 소중히 기억할 수 있었겠다. 그 특별함이 때론 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 된다는 걸 떠나 본 사람은 알지도. 살맛 나는 목포, 우리 지역 근대유산을 제대로 알려 온 두 사람책을 펼쳤다. 지난날의 통증과 유머까지 스민 두 책의 판권지는 다음과 같다. 전남의 자랑스러운 학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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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은 고등학교에 한 분은 초등학교에 근무 중이신데, 일하는 지역이 달라서 관심사가 닮은 듯 다를 듯해요. 첫해 교직생활은 어떠셨어요?
양향숙 제 고향은 광주예요. 전남제일고(현 목상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가 대구동평초로 발령 나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개교한 지 얼마 안 된 학교인 데다 제가 그곳에 처음 발을 들인 사서교사였고, 아파트로 둘러싸인 곳이라 학생 인원도 많았어요. 출근 첫날 도서관에 가 보니 교실 반 칸 크기였고, 한 달 반을 교무실 회의 탁자에서 근무해야 했어요. 안 되겠다 싶어 4층에 있는 좁은 도서관 자리에서 책상만 들여놓고 일을 시작했죠. 2003년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교장선생님께서 도서관 배치를 어떻게 할지 계획을 짜 보라고 하셨는데, 교실 반 칸 크기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왔어요. 당시 도서관 옆에 있던 미술실이 복도까지 합해서 교실 네 칸 정도 크기였는데, 고민을 거듭한 끝에 교장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어요. 미술관 자리에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요. 미술선생님께도 의견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교장선생님, 연구부장 선생님, 저까지 광주·부산·경기 지역의 선진도서관을 탐방하며 도서관을 단장하기 위해 합심했어요. 그땐 대부분 도서관 가구 색상이 갈색 톤이었는데, 가구를 회색과 흰색 톤으로 맞추고 의자도 색깔별로 구비했어요. 교장선생님께서 감탄할 정도로 만들자고 하셨거든요. (웃음) 2003년은 교육부에서 처음 학교도서관대회를 개최한 해인데, 그해에 저희 학교가 도서관 만들기 부문에서 교육부장관상을 받았어요. 이후 목포여고로 발령받아 지금까지 전남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임지연 저는 전남 지역 초등학교에 처음 배치된 사서교사예요. 2006년 나주초로 출근한 첫날, 교장선생님께서 대뜸 결혼했냐고 물어보셔서 “스물네 살입니다.” 답했는데 역정을 내셨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셔서 답을 드리니 어떤 부장선생님을 데려와서 같이 다니라고 ‘카풀’ 친구로 묶어 주셨어요. 당시 같이 근무했던 분들이 지금은 교장이나 교감, 장학사 등 쟁쟁하신 분들이에요. 그 분들은 경력직이셨고 20대 교사는 저밖에 없었어요. 팔팔한 젊은이가 오랜만에 들어와서인지 당시 선생님들이 자기 아래(?)에 저를 넣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하셨어요. 전교조에 가입하게 하려면 으레 몇 달 동안 밥을 사 주는 풍습이 지역에 있는 편인데, 한 선생님께서 대뜸 “자네는 이제 전교조야.” 하며 가입 신청서를 내미시길래 바로 신청했어요. 한 선생님께선 본인이 해금 연주 소모임에 가입했는데, 팔이 아파서 참여할 수 없으니 저더러 참여하라고 하셔서 해금도 연주해 봤고요. (웃음) 선배 교사들이 권유하던 모임에 늘 참석하는 편이었는데, 어울리는 게 재밌었거든요. 나서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나름 친화적인 편이어서 ‘아싸 중의 인싸’라고 스스로 여기는 편이에요(선배인 양 선생님께선 임 선생님을 가리켜 “은근히 끝까지 가 보는, 추진력이 강한 성실한 교사”라고 표현했다).
한 인터뷰에서 목포를 중심으로 ‘고민거리를 나누고 해결하는 8인방 선생님’이 계신다고 언급하셨어요. 정체가 몹시 궁금한데요.
임지연 8인방은 교육청 예산이나 사업에 대해 사서교사들의 소통 창구가 되어 주는 그룹이에요. 교육청에서 무턱대고 시행하라며 지침을 주면 곧이곧대로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8인방이 정밀하게 살피며 “조사해 보자.”하며 단톡방을 통해 의견을 모으거나 불합리한 것들에 관해 방패막이가 되어 줘요. 2018~2019년 사이 사서교사 충원이 대거 이뤄졌는데, 그 전까진 대략 33명이 전남 지역 온라인에서 의견을 모았고 나주, 담양 등으로 워크숍을 가는 등 꾸준히 활동해 왔어요. 오랜 세월 유지됐던 33명 사서교사가 60명이 되고, 80명을 넘어 현재는 131명 정도(목포를 중심으로 한 서부권 사서교사 모임 인원은 37명)가 되었어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교사가 많아졌는데, 아무래도 전체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녹록지 않더라고요.
양향숙 팬데믹 시기가 첨예했던 3년 동안 새내기 선생님들을 대면으로 만나 마음을 나누기 어려웠는데, 온라인으로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소통이 곧바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긴박한 사안을 얼른 해결해야 할 때 8인방이 나서서 조율하는 역할을 해요. 8년 전, 전국참교육실천대회가 광주교대에서 열렸는데요. 그때 오셨던 강사와 차를 마시면서 고전 독서모임을 결성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뒤로 지금까지 모임을 이어오고 있어요. 고전 독서모임은 전남의 대표 모임 중 하나로, 당시 만남에 참여했던 구혜진 선생님도 8인방 소속이에요. 교육청 지원이 별로 없던 시기였던 데다 관심사가 다른 사서교사들의 독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던 참이었거든요. 해외 문학탐방도 가는 등 고전 독서모임에서 몇 년을 동고동락하니 정이 많이 들었어요.
목포 지역 사서교사 일곱 분이 모여 지역의 근현대 문학자원을 활용한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셨다고요. ‘두근두근 목포’ 기획의 썰을 풀어 주세요.
임지연 목포를 대표하는 네 작가를 소개해 볼게요. 국내 여성 작가 중에서 최초로 장편소설을 쓴 박화성 소설가, 문학평론으로 이름난 김현 평론가, 『난파』, 『산돼지』 등의 희곡을 쓴 김우진 극작가, 사실주의 연극을 확립한 차범석 극작가가 목포에서 나고 자랐어요. 특히, 박화성 소설가의 『하수도 공사』(1932)는 일제강점기 시대, 목포에 자리한 유달산과 시내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하수도 공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에요. 일본인이 조선인들을 죄다 잡아서 하수도 공사를 시켰는데, 주인공이 선두에 나서서 착취에 맞서 체불된 임금을 받아내는 이야기예요. 당시 일본인들은 목포에서 ‘세 가지 흰 것’을 수탈했다고 해요. 쌀, 소금, 면화를 가리켜 ‘삼백’, 수탈로 인해 죽만 먹으며 공사를 해야 했던 사람들이 모인 동네를 ‘죽동’이라 불렀어요. 그런 대목들이 쓰인 『하수도 공사』를 읽고, 학생들과 죽동에 가서 죽을 한 그릇씩 먹고 오기도 했어요. 읽고, 체험하고, 사유할 수 있는 문학 탐방 프로그램을 일곱 선생님들께서 꾸준히 기획해 오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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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숙 목포문학관을 중심으로 탐방 코스를 짠 뒤 각종 미션을 수행하거나 희곡을 읽고 연극도 봤어요. 초중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주말에 모여 목포의 문학 유산을 두루 살폈어요. 가까운 해남에 고정희 시인의 생가가 있어 시인의 시를 읽고 낭송 대회도 열었고요. 근방 김남주 문학관(땅끝순례문학관)을 방문해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도 함께 불렀죠. 지금은 교육청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편이지만, 당시만 해도 교사 모임 내에서 돈을 걷어 지역 탐방 프로그램을 묵묵히 개발했던 것 같아요.
2022년 기준 시도교육청별 사서교사 등 전담인력 배치현황에 따르면, 전남 지역은 17.4%로 전국에서 배치율이 가장 낮아요. 지역이 가진 문화유산에 비해 지원이 적어 교육자로서 당면한 현실은 더 녹록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임지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혁신도시 주변 큰 학교에는 사서교사가 많이 배치된 편이에요. 군 단위 등의 작은 학교엔 순회 사서가 배치되고 있고요. 전남에는 약 830개교 학교가 있는데, 사서교사 131명을 제외하면 대다수 ‘담당 교사’로 채워지는 형편이에요. 교과선생님들이 업무 중 하나로 학교도서관을 맡아서 운영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규모가 큰 학교에만 사서교사를 채용하는 기준은 늘 변함이 없는데, 배치 기준이 그 정도에서 머물면 안 된다고 봐요. 전남 지역 사서교사 배치율이 ‘전국 꼴찌’라는 보도가 기사화되면서 몇 해 전 교육감이 취임 당시 순회 사서 채용을 늘리는 손쉬운 방법으로 배치율을 늘리겠다는 행보를 보인 적 있어요. 저희가 정식으로 방문해서 입장을 교육청에 분명히 전달했어요. 불안정한 계약직을 늘리기보다는 앞을 내다보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정규직 사서교사를 늘려갈 것을 요구했어요.
양향숙 올해 전남교육계에는 큰 변화가 잇따랐어요. 처음으로 독서교육 전담부서가 생겼거든요. 저희가 몇 년 전부터 요구했던 사항인데, 그동안 교육청에서 독서 업무를 다른 업무의 곁다리로 두는 편이었어요. 교육청에 학교도서관지원센터가 있는데,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던 7급 사서 주무관이 배치되어 현재 학교도서관 운영 업무를 총괄해 오고 있어요. 학교도서관 운영 전반을 모를 수밖에 없고, 교육청에서 목표로 하는 독서교육의 방향과 학교도서관의 실제 운영 방향도 다른 편이었어요. 교육청은 매번 기존에 해 왔던 일을 답습하는 편에 가까웠고, 대책 수립은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전남 사서교사들은 독서전담 부서를 만들어 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요. 사서교사 티오 문제만큼이나 부서가 하나 신설되면 발령되는 장학사 티오 문제도 예민한 사안이거든요. 사정은 이해했지만, 그 사이 기후환경교육팀이 먼저 신설되면서 저희로선 어안이 벙벙했어요. 앞장서서 교육감과 면담하며 독서교육 전담부서의 필요성을 강력히 알려 왔으니까요. 그래도 여러 분투 끝에 부서가 생겼고, 예산도 받고 워크숍, 포럼, 세미나 등을 개최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일전에 전남교육청에서 학교도서관을 행정국 소속으로 배치해 공공도서관과 통합하는 조직 개편을 추진하려고 해서 저희들 이야기를 들어줄 의원실을 수소문하기도 했어요. 사서교사와 일선 교사들과 도의회의 반대로 무선됐지만요.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의 지향점이 다른데, 여러 졸속 행정 때문에 전투하는 심정으로 버텨야 했죠.
그럼에도 지역에서 자리를 지키는 선생님들 덕분에 전남의 독서교육이 지속될 수 있었다고 감히 예감합니다. 각자의 학교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올해 학생들이 신나게 참여한 활동은 무엇인가요?
무안고에서 생태·환경 주제 독서 프로그램이 열리는 모습. 양향숙 교사가 기획해 1학년 전체 학년이 참여했다.
임지연 지금 우리가 인터뷰 중인 이곳 학교도서관은 ‘수업 전용’ 공간이에요. 바로 아래층이 체육 창고인데, 건물이 백 년이 되다 보니 하중을 버틸 수 없어 책을 빌릴 수 있는 공간은 다른 곳에 배치했어요. 저는 두 도서관을 종횡무진하며 어린이들을 만나는 셈이지요. 초등학교 도서관에는 아침에 학생들이 가장 많이 오는데, 200명 가까이 돼요. 도서관 상황이 녹록진 않지만 이용자 유인을 위해 일 년 동안 쭉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를 실천 중이에요. ‘책날개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아이들이 미션을 풀면 사서교사가 특별히 제작한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는 활동이에요. 십진분류별 도서를 한 권씩 읽으면 여행 도장을 받을 수 있는데, 전 분야의 책을 모두 읽으면 상품 뽑기 쿠폰이 주어져요. 작년까지 옥암초에 근무하신 박세진 선생님(현재 여수삼일중 근무)께서 만든 양식을 기반으로 저희 학교에 맞게 변형해 쓰고 있어요. 제가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제작한 ‘책나라 여행 탑승권’ 행사도 반응이 좋은데요. 도서관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이용자에게 도장을 찍어 주고, 가을 북마켓에서 상품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요. 탑승권에 QR코드를 넣어 우리 학교도서관이 소장한 책들을 검색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요.
두 분 모두 인권이나 생태 주제에 관심이 많으신 듯해요. 교사들끼리도 공부 중이신가요?
최근 들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는 교육 담론이 두터워졌어요. 학교도서관이 낮아진 사회적 문해력을 어떻게 향상할 수 있다고 내다보시나요?
목포이로초 도서관. 임지연 교사가 갖춘 그림책 전시공간(좌)과 동아리방(우)이 인기가 많다.
임지연 학교도서관은 정규교육을 받는 모든 학생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장소예요. 저는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꾸준히 하는데, 이따금 좋은 그림책들을 곳곳에 전시하기도 해요. 도서관에 오는 학생들이 “저 책 읽었는데!” 하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도서관이 어린이들에게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껴요. 읽은 어린이에겐 칭찬과 격려 뒤 또 다른 책을 추천해 주고, 도서관이 낯선 아이에겐 도서관이 친근해질 수 있도록 관계 지향적인 공간을 많이 마련해 주면 어떨까 싶어요. 이곳 도서관에 창고처럼 쓰던 구석이 있었는데, 어린이들이 동아리방으로 쓸 수 있도록 내어 줬어요. 알록달록하게 방을 꾸미더니 이제는 열 명이 되는 아이들이 매일 와요. (웃음) 독서동아리는 원래 인기가 없었거든요. 아이들을 믿고 도서관을 누릴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니, 이제 모든 도서관 이용자들이 저 방을 탐내요. 책 읽고 게임도 하라고 최근엔 보드게임도 지원해 줬어요. 주로 6학년 학생들이 동아리방을 쓰는데, 다른 학년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그 동아리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곤 해요. 저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독서력을 쌓고 관계도 쌓아 가겠죠?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아지트가 많이 생겨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