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홍근혜 국립서울맹학교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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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7-05 10:53 조회 1,335회 댓글 0건본문
손끝으로 읽는
도서관으로 초대합니다
홍근혜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남궁훈 기자
학교도서관 서비스는 인종, 장애 유무,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도서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서선생님들의 노고가 귀한 이유다. 배리어프리한 교육을 위해 학교도서관은 어떻게 기능하고 있을까? 국립서울맹학교에서 국내 1호 정규직 사서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홍근혜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점자책, 책 읽어 주는 AI 램프, 세이펜, 전자 자료 등을 활용해서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양질의 독서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참고할 만한 풍부한 사례도, 의지할 만한 선배 사서교사도 찾아보기 어려운 맹학교 도서관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은 고군분투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맹학교 도서관은 이용자 친화형 리모델링과 다채로운 독서 수업 덕분에 한층 더 학생들을 존중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과학고, 일반계고, 사회복지기관, 점자도서관 등과 연계하며 운용의 폭을 넓혀 가는 홍근혜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무수한 노력이 도서관 곳곳에 깃들었다. 창밖으로 신록이 우거지는 아름다운 맹학교 도서관의 밝은 내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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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농학교에 사서교사가 임용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 매우 드물다고 들었어요.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는 사서교사들의 현황을 들려주신다면요?
정확한 통계를 조사해 보진 못했지만 현재 파악하고 있는 바로는 국립서울농학교는 15년 전부터 사서선생님이 근무하고 있었고, 저는 2020년도에 맹학교로 부임했어요. 정규직 사서교사가 맹학교로 부임하는 건 전국 최초라고 들었어요. 수도권을 제외하면 정규직 사서교사가 근무하는 특수학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기간제나 계약직으로 근무하시는 몇몇 사서선생님들만 계시다고 해요. 제가 서울맹학교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전라남도에서 근무했는데 제 근거지는 서울이었어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학교의 사서교사 모집공고를 살펴보다가 서울맹학교를 발견한 게 계기였어요. 그렇게 지원을 했고, 좋은 인연이 닿아서 근무하게 되었어요. 특수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동료 사서선생님들이 거의 없는 형편이어서 농학교 사서선생님과 자주 통화하고, 긴밀히 협력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관, 국립장애인도서관, 복지관 등 다양한 기관들과 프로그램을 꾸리면서 함께 성장하기도 해요. 학교도서관계 내부에서 네트워크를 만들거나 자문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외부로 손을 많이 뻗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시각장애 학생들도 비장애 학생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니, 최근에는 일반학교의 사례를 맹학교에 맞추어 변형해서 적용하는 방안을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는 본교의 교과선생님들께 “이 학생이 전맹인데, 어느 정도의 난이도로 읽기 자료를 준비하면 될까요?”라는 식으로 의견을 구하면서 하나씩 배우고 있고요. 맹학교로 오기 전에 제가 그동안 만나 왔던 비장애 학생들과 했던 활동을 점자로 만들거나 음성으로 들을 수 있게끔 자료를 가공하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로 독서 토론방’ 같은 활동을 펼칠 때도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했어요. 전맹인 학생들을 위해 독서자료를 한소네(편집자 주: 안드로이드 운영 체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시각장애인용 점자 입출력기)로 볼 수 있게끔 전자파일을 구하기만 한다면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어요. 전자파일은 점자도서관에서 제작해 주시기도 하고, 제가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있어서 그때그때 마련하고 있어요.
최근에 도서관 리모델링을 끝내셨지요. ‘무장애’와 ‘보편적 설계’가 적용된 도서관을 만들면서 겪었던 성장통이 있었을 것 같아요.
리모델링은 작년에 진행했어요. 교실 두 칸 반 정도로 크지 않은 도서관이어서 획기적인 시도를 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보단 학생들이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영아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이 하나의 도서관을 이용해야 한다는 특이점도 있었고요. 한쪽에서 어린 학생들이 놀면서 쉬고 있어도 도서관활용수업이 동시간에 가능하게끔 별도의 수업공간을 마련해야 했어요. 이와 같은 두 가지 포인트에 중점을 두었으면 좋겠다고 리모델링 담당자님께 의견을 전달했지요. 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을 위해 이동공간을 널찍하고 구비하고, 이동을 보조할 수 있도록 핸드레일을 설치하는 작업도 이뤄졌어요. 점자책은 묵자책(잉크로 인쇄한 책)보다 상대적으로 크고, 두껍고, 무거워요. 그러다 보니 점자책을 보관할 수 있는 서가 공간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했어요.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점자책이 계속 쌓이다 보니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문제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슬라이딩 서가를 설치해서 공간을 확보했고, 점자가 찍힌 엠보싱이 상하지 않도록 밴딩하지 않고 상자에 넣어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서울맹학교는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전문기관으로도 기능하기 때문에 학교도서관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상징적인 점자도서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래서 서울맹학교 교사였고 한글 점자 창시자이기도 한 박두성 선생님의 책제목을 인용해서 ‘점자로 세상을 열다’라는 사인물을 제작해서 복도에 부착했어요. 실제로 맹학교 학교도서관의 대표성 덕분에 견학도 많이 오고, 관심을 기울이고 방문해 주시는 손님이 많답니다.
점자도서 서가를 중앙에 배치한 도서관 전경
초·중·고등학생이 모두 이용하는 도서관을 꾸리려면 수서 범위도 넓고, 독서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도 어려움을 있었을 텐데요. 선생님의 운영 노하우를 알려 주신다면요?
장애인식개선교육 관련 독서 수업, 북큐레이션, 동아리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 사서선생님들께 독서프로그램·수업 사례를 공유하신다면요?
<학교도서관저널> 칭찬릴레이 코너에 저를 칭찬해 주신 인천 부평고의 오세민 선생님과 독서 동아리를 통해서 협업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부평고 독서 동아리원들이 맹학교에 필요한 자료를 점역(點譯)해 주는 봉사를 맡고 있거든요. 여러 기관에서 제공해 주는 점자 파일이 있지만, 현장에서 활발하게 쓰이기에는 부족한 실정이에요. 예를 들어 수행평가를 할 때 영미문학, 세계사 관련 책 등이 점자 파일로 필요한데, 구하지 못하거나 부족한 경우가 자주 있어요. 그래서 필요한 자료가 생길 때마다 부평고 동아리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있어요. 파일을 전달받으면 맹학교에 있는 점자책 제작용 프린터기로 출력해서 책자로 만드는 거예요. 이런 프로젝트가 정안인(正眼人) 학생들에겐 장애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림책에 붙이는 ‘점자 라벨’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요. 혹시 이런 봉사에 관심이 있는 사서선생님이 계시다면 제게 연락을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이 썼거나, 시각장애를 주제로 하는 도서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어요.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기도 했던 신순규 선생님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한 시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많고요. ‘장애인의 날’이나 ‘흰지팡이의 날’처럼 기념일이 있는 달에 시각장애 관련 책을 모아서 북큐레이션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에 한성과학고 학생들과 교류 수업을 하는 걸 본 적도 있어요. 과학고 학생들은 화학이나 생물학을 알려 주고, 맹학교 학생들은 점자 읽는 법을 가르쳐 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어요. 앞으로는 다양한 교류 수업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는 점필(점자를 찍는 도구)이나 점자판으로 자신의 이름을 점자로 새겨 보는 활동을 기획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무엇이든 스스로 직접 경험해야 교육적인 효과가 클 것 같아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출판되는 책 중 점자책의 비중이 0.2%에 불과하다고 해요. 점자 학습 교구의 보급률도 1% 미만이고요. 모든 어린이·청소년이 차별 없이 책에 접근할 수 있는 학교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교육 당국과 출판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맹학교에서는 점자책만 수서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묵자책만 수서하는 실정이에요. 점자책은 시중에 판매용으로 나와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 기증의 형태로 들어오기 때문이에요. 출판사에서 점자책을 만들어서 학교에 선물하는 경우도 있고, 시각장애인 복지관이나 점자도서관에서 점자책을 제작해서 기증하기도 해요. 국내의 대기업에서 다양한 복지 사업을 통해 점자책을 지원하는 경우도 늘고 있고요. 정안인은 묵자책이 출간되면 즉시 볼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은 점역을 해서 점자책으로 나오거나 전자책으로 제작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러다 보니 도서의 다양성이나 양적인 면에서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죠. 최근에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책을 출간할 때 점자책이나 점자 라벨이 부착된 책을 함께 만들어 주기를 출판사 측에 요청하기도 하더라고요. 점자책의 사업성이 크진 않잖아요? 하지만 공익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시각장애인을 독자로 존중하는 움직임이 커지면 사회적인 분위기도 점차 변할 수 있을 거예요. 점자책은 100% 기증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면 큰 도움이 돼요. 저시력 초등학생들을 위한 큰글자 그림책이 부족한 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이 없으면 전맹이 아닌 초등학생이 한글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상당히 어려워요. 이런 어려움에 공감하는 출판사나 기관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도서관 자료를 활용하여 사회 수업을 받는 초등 5학년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