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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마음을 알아주는 마음』 김지호 언어치료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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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11-05 14:22 조회 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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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문턱을 같이 넘어가고 싶어서 


20여 년간 언어치료사로 일해 오셨는데, 처음 이 일을 알게 된 순간이 궁금해요. ‘이 일을 내가 하게 되겠구나’ 예감했던 찰나도 있으실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만 해도 언어치료 전공자가 많지 않아서 비전공자가 언어치료사가 되곤 했어요. 협회가 주관하는 교육을 이수하면 자격증 시험을 볼 기회가 주어지는 방식이었죠. 제 아내가 그걸 한번 해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저는 직장에서 편집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30대 중반 무렵이었어요. 아내는 몇 번 공부하더니 치료사 준비를 접었고 제가 관심이 생겼어요. 사람 대하는 일을 하는 언어치료사에 호기심이 커져서 대학원 준비를 진학하는 인터넷 카페를 수소문해 사람들과 같이 시험 준비를 했죠. 그중 제가 제일 연장자였어요. (웃음) 첫해엔 떨어졌고, 한 번 더 해 보자는 마음으로 재수해서 단국대 특수교육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렇게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다가 졸업 무렵 언어재활사 시험에 합격했어요(편집자 주: 언어치료사 혹은 언어재활사는 2012년 8월, 장애인복지법 제80조를 개정해 국가자격으로 전환됐다. 작가는 국시원에서 시행하는 1급 언어치료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치료사 생활을 했는데,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이들이더라고요. 제가 만난 아이들과 제 자녀의 연령대가 비슷해서 도움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랑 노는 게 왜 이렇게 좋지?’ 싶었어요. 이 일이 나랑 잘 맞나 여기다가 오래하게 되었어요.


아이의 집에 직접 방문하여 치료를 시작하셨을 텐데, 복지 체계가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무렵이라 낯선 장면도 상당했겠네요.

안양 지역 복지관에서 방문 치료사 공고를 냈길래 지원했어요. 당시 방문 치료사를 모집하는 데가 많진 않았어요. 바우처 서비스가 막 생겨날 무렵이었죠. 장애인복지관에 수업을 신청하더라도 대기자가 많아 몇 년을 기다렸다가 수업을 받는 상황이었고, 이를 타개하고자 보건복지부에서 바우처 방식의 지원 정책을 시행했어요. 관련 예산이 대대적으로 쓰이던 시기였고, 치료사 등의 인력이 바우처 센터에 모였어요. 사설기관과 개인도 요건을 갖추면 바우처 센터를 만들 수 있게 됐고요. 그렇게 (복지 정책이) 확산되는 시점에 일을 시작했어요. 바우처 서비스는 개인이 서비스에 대한 일정 금액을 부담하면 나머지는 정부에서 재원을 통해 부담하는 방식이에요. 소득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지고요. 다세대 주택이나 반지하 주택에 가는 일도 많았는데, 반지하 주택에 아이와 함께 앉아 있으면 묘하게 내 집에 들어온 것처럼 편하더라고요. ‘이거 혹시 체질인가?’ 싶었죠. (웃음) 일대일로 일하는 게 편했고, 아이의 반응을 관찰하고 잘 반응하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고요. 뭐랄까, 제가 분명 일하는데 일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이 일이 즐겁고 마음에 들었어요.


“명사로 채워진 집, 땀내 나는 동사로 이뤄진 놀이터, 바스락거리는 형용사가 숨은 공원”에서 언어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가르쳐오셨어요. 생애 처음 가르친 아이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한이(편집자 주: 작가의 전작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에 등장하는 아이(가명)로,그와 함께한 날은 언어치료사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첫 페이지로 기억한다고 작가는 말한다)의 집에 첫 수업을 가기 전, 발을 다쳐 뼈가 다 부스러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당시 한이의 집은 연립주택 3층이었는데, 치료받은 후 목발을 짚고 겨우 도착할 수 있었어요. 목발을 짚고 나타나자 어머님은 당황해하셨고, 제 사정을 말씀드린 뒤에야 한이를 살펴보러 방 안에 들어갔어요. 한이는 안방에서 골똘히 자기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저대로 발이 아픈 채로 가방을 풀고, 한이는 한이대로 자기 일에 빠져 있는데 신기하리만치 어색하지 않았어요. 당시 한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는데, 제 아이하고도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어요. 컴퓨터 게임에 한참 빠진 형, 거실에서 다른 일을 하고 계신 어머니를 두고 한이와 조우한 날을 잊을 수 없어요. 서로 자기 할 일을 하다가 문득 장난감과 단어 카드를 꺼내 글자 익히기를 시도했는데, 제가 언어치료사로서의 일을 시도해 봤던 첫 장면이었어요. 본래 치료 첫 시간은 관찰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면서 관계를 형성하거든요. 그렇게 한이와 퍼즐 조각을 맞추고 손뼉을 쳐 가며 지낸 하루가 기억에 남아요. “좁은 거실을 비추던 은은한 햇살이며 형과 네가 같이 쓰던 방의 오래된 가구 냄새, 그런 것들이 얼마나 정다웠는지(『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생생해요. 한이는 이제 이십 대 중반은 됐을 텐데요. 여전히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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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치료 수업을 하며 아이들이 흥미로워했던 놀이를 정리해 『말문이 터지는 언어놀이』, 『말하는 뇌를 깨우는 언어놀이 육아』 등을 쓰셨는데요. 양육자들이 이 책들을 읽고 어떤 효능을 느끼길 바라셨나요?

보통 30~40분간 수업하고 난 뒤 10분 동안 부모님과 상담을 해요. 궁금해하시는 것에 답변이나 조언을 드리는데, 이를 묶어 책으로 도움을 드리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치료를 받으면 단기간에 효과가 있을 거라며 ‘치료에 대한 환상’을 품는 등 부모님들의 성향도 천차만별인데요.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언어치료는 아이의 삶에서 극히 일부고, 살아가면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 조력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이와 가장 긴밀한 관계인 양육자들이 일상에서 자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의 (언어 혹은 인지) 능력이 좋아질 뿐 아니라 소통이 촘촘해져요. 그러면 양육자와 아이 모두에게 이로워요. 지금의 현실 안에서 아이와 소통하면서 즐거워질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늘 말씀드려요. 서로 행복해야 하니까요. 말 좀 못한다고 해서 맨날 혼나고, 부모한테 아무 얘기도 못한 채 ‘저거 어떡하냐’ 푸념을 듣는 사이에서 아이는 행복해지기 어려워요. 집에서 제가 쓴 책들을 읽고 길잡이를 따라 여러 시도를 하면, 서로를 수용하고 이해하며 경험을 쌓아갈 수 있을 거예요.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언어발달 촉진 대화법과 놀이법을 책에 실었는데, 냉장고 정리도 해 보고 양말도 같이 개면서 낱말을 익힐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특별한 교구가 필요하지 않아 읽는 데 부담이 덜할 거예요. 동네 구경을 하거나 공원에서 산책할 때, 혹은 퇴근 후 자투리 시간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활용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책들을 썼어요.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에서 정상 언어로 말하지 않는 아이들에 관해 ‘성장하는 존재’이자 ‘경쟁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하셨죠. 치료에 앞서 새기고자 하는 윤리가 있다면요? 

아이와 마주했을 때 그를 한 명의 사람으로 보려고 해요. 우리는 누구나 결함이 있으니까 같은 결함이 있는 사람,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하고자 해요. 첫째 철칙으로 ‘불쌍해하지 말자’고 마음먹죠. 그래야 저도 배울 수 있는 게 생기고, 소통이 수평적으로 이뤄져 관계를 원활하게 맺을 수 있고요. 치열한 경쟁 사회 구조를 사람들이 용인하는 이유는 나도 그 속에 속했고, 경쟁력을 가지면 내가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텐데요. 장애를 가진 아이나 그 부모님들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언제나 이 아이들이 처한 현실은 경쟁에서 배제돼요. ‘특수반’ ‘도움반’에서 따로 학습을 받는데, 그중 자아 의식이 강한 경우 ‘왜 나는 애들이랑 같이 시험 안 보고 따로 공부할까?’ 의문을 갖고, 자기들이 결함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이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처럼 시험 치는 공간에 있고 싶어 해요. ‘경쟁’해 보고 싶어 하죠. 그래서 이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보드게임이에요. 보드게임은 경쟁 게임이잖아요. 이기거나 지기도 하면서 자기와 맞는 일이 뭔지 잘 알아갈 수 있어요.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게 되고요. 물론 우리 사회에 ‘한 번 지면 끝’이라는 강박이 만연하지만, 경쟁의 과정에서 여러 감정을 느끼는 경험도 의미 있다고 봐요. ‘분명히 오늘 게임에서 졌는데, 왜 기분이 좋지?’ 하는 효능과 재미를 맛볼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임을 스스로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애 너머 아이의 마음으로 향하는 생활 일지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은 결함투성이인 우리 인간 사이에 놓인 오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기로 다가왔어요. 언어치료차 만난 아이들 중 힘껏 ‘오해’했다가 ‘이해’한 어느 순간이 있다면요?  



오해는 늘 해요. 아이들의 장애 양상이 다양하고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또한 다양하기 때문인데요. 많이 만나보면 덜 그런데, 치료 초창기에는 오해를 많이 했어요. 발달장애 혹은 자폐성장애 아이들의 특징이 감각적으로 둔감하거나 과민하다는 거예요. 그런 특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얘가 날 싫어하나?’ 넘겨짚은 적도 많았죠. 어떤 아이는 손바닥을 맞대고 하이파이브하듯 손뼉 치는 걸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바퀴처럼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릴 만한 걸 찾아다녀요. 청각적으로 예민한 아이는 소리가 큰 곳에 가면 못 견디기에 두 귀를 꽉 막는데, 처음엔 ‘쟤 왜 저러지?’ 한 적 있어요. 아이가 표출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환경 요인 등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이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아이들의 장애 특성을 파악하면 이유를 차츰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육자에 대한 오해도 있었어요. 치료사와 양육자와의 관계도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치료사인지 테스트하는 경우도 있고, 치료사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는 양육자도 있어요. 내 아이가 ‘일반적이지 않기에’ 어떻게든 강구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치료사가 자신들의 의견에 맞춰 주길 바라시기도 하고요. 초창기엔 양육자의 그런 태도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분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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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나아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을 텐데, 양육자가 그만큼 자녀에 대해 절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양육자들의 99%가 모두 어머니들이에요. 우리나라 양육 환경에서 보육은 일단은 여자가 전담하는 상황인 데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누군가는 돌봄을 전담해야 하기에 어머니들이 직업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분들이 처한 현실을 보면 지지를 받는 상황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어머님들이 겪는 고충들을 알게 되면 치료사에게 압박을 주려 하거나 치료사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절박한 상황이라 도움을 요청 중이라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 기류가 느껴질 땐 솔직하게 말씀드려요. ‘(아이와의 치료에 관해) 이 부분은 이렇게 했지만 제가 역량이 부족해서 다음에는 이렇게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저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이걸 하고 있고, 부모님께서도 치료를 통해 한 번에 원했던 모든 것이 다 이뤄진다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라고 말예요. 중요한 건 아이의 현재 언어 기능과 별개로, 부모님들이 아이와 관계를 어떻게 맺고 이 장애 상황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자신 외 다른 분들과 나눠야 한다는 걸 강조해요. 혼자 전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더불어 ‘저 치료사가 진심이구나.’ 하는 믿음이 생기면 마음을 여시더라고요.

국내 장애 서비스 체계를 들여다보면, 나라에서 예산을 정하면 개인 사업자든 누구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돈)’를 가져가는 방식이에요. 이런 개인 간 서비스 거래 방식은 한계가 있어요. 국가가 직접 복지 서비스 제공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장애를 전담하고, 통합적으로 조언해 주며, 중간중간 치료와 적재적소에 관리를 해 줄 기관과 사람이 모든 영역에 필요해요. 특수반에 장애 학생들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특수교사한테 알아서 해결하라는 방식으론 부족하다는 말과 같아요. 이런 구조 때문에 장애 아이들도, 치료사도, 특수교사와 양육자도 고립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 고립을 달리 말하면 ‘소통의 부재’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이번에 쓴 책에는 소통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등장해요. 언어장애 아동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를 알게 되면서 어쩌면 이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어린이의 경우 어린이집 입소가 종종 거절된다고 하셨죠. 영유아교육법에 명시된 ‘질병, 장애 등에 따른 시설이나 여건이 불충분한 경우’라는 예외 조항으로 고충을 앓는 가족들도 이따금 만나셨을 것 같아요.

장애 전담 어린이집에 간 적이 있는데, 뜻있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수용 인원에 비해 인력이 부족하고, 대기자도 상당히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장애 아동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고, 이를 보살필 장애 전담 어린이집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국공립어린이집이 많지 않은 데다 거리가 멀어서 입소를 못한 경우도 많은데, 그게 십 년도 더 된 일이라 최근 검색해 보니 올봄까지도 모 국회의원이 그걸 근거로 입소를 거부하는 어린이집이 있으면 징계를 하는 법령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직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겠구나 싶었죠. 국내 장애인 시설의 경우 시설은 국가가 짓지만 운영은 하지 않아요. 종교 단체나 복지법인 같은 데 다 위탁하거든요.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책임지고 운영하는 곳이 많아져야 합니다. 장애와 돌봄 전문가들에 대한 교육까지 포함해서 장애 서비스를 구축한다면 어린이집 입소뿐 아니라 지금보다는 장애 아이들이 훨씬 나은 환경을 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산이 많아져야 가능한 일이죠.


아이들은 쉽게 타인의 요구와 감정을 내면화한다며, “혼내는 말, 통제하는 말 대신 들어야 할 말”이 있다고 하셨어요. 언어치료를 할 때 무심코 하게 되는 말, 이를 바꾸어 쓸 수 있는 말이 있다면요?

못 한다는 말을 잘 안 하려고 해요. 의식적으로 노력한 건데, 대신 어려워한다는 말로 바꿔 써요. 양육자들께 아이가 뭘 못 한다는 말을 전하기 미안해서 강구한 건데, 생각해 보니 굳이 못 한다는 말보다 어려워한다는 말이 더 좋아 보이더라고요. 가급적 장애라는 말도 잘 안 쓰고요. 특히 부정적인 언어를 쓰지 않으려고 해요. ‘이거 하지 마’ 대신에 ‘이거 하자’고 말해요. 안 된다는 말 대신 아이에게 여러 선택지를 줘요. ‘사탕 먹지 마.’ 대신에 ‘사탕 말고 이거 먹는 건 어때?’ 하는 식으로요. ‘그네 타지 말자.’ 대신에 ‘시소나 미끄럼틀 탈래?’ 하고 물어보는 편이에요. 언어치료사는 말 센스와 순발력이 있어야 해요. (웃음)


치료 도중 주어진 숙제를 해내고자 눈을 감는 아이 모습을 “거대한 셔터가 내려졌다”고 표현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치료를 하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의 감정을 알아채는 연습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싶은데, 그 인내를 기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예를 들려주신다면요?


대개 어른들이 주도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눈치를 많이 봐요. 장애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보통 그래요. 방해를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고집이 세요.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다음에 못 한다는 생각에 끝까지 안 지려고 하는데, 방해를 많이 받아 온 경험 때문이에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 어떤 과제나 게임을 마주했을 때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요. 말씀드린 여러 사례에서 어른 역시 단절된 상황에 놓이는 셈인데, 사실 거절당하는 거잖아요. 아이의 감정 상태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상태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아는 것도 중요해요. 눈앞에 앉은 아이가 행동하는 바에 얽힌 내력을 미리 알아채기 어렵듯이 아이의 특정 행동에 내가 화가 나고 대치한다는 사실도 알아채기 어려울 수 있어요. 저는 아이의 행동을 보는 것보다는 거기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에 관해 많이 생각해요. ‘나는 왜 화가 났지?’ ‘아이가 나를 거절했기 때문이구나.’ 하는 짐작이 들었다면, 그 사람은 거절당하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인 거예요. 실은 누구나 거절당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데, 현실에선 (거절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기가 어렵죠. 그게 가능해지려면 그런 상황에 자주 노출이 돼야 해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많이 대하는 선생님들이 마치 보살이 되는 것처럼, 그 감정과 많이 마주쳐야 해요. 사람이 어떤 감정에 많이 소진되다 보면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고쳐먹게 돼요. 순간순간 버럭해 봐야 못 견디거든요. 그런 거구나, 하고 넘어가는 순간도 보내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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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온전히 바라보는 용기를 그리며 


책 끄트머리, “아이가 말을 잘하면 나는 할 일이 없다. 나는 이 아이의 결함에 의존”한다는 문장 덕분에 우리가 서로 기대어 산다는 자명한 진리를 되새길 수 있었어요. 작가님에게 결함이란 무엇인가요?

결함은 인간성의 일부잖아요. 취약하고 결함이 있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발전이 가능해요. 타인과의 협동이나 신뢰, 소통을 통해 우리는 결함을 채워 나가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가 많아요. “넌 도대체 왜 그러냐”는 어른의 비난 속에는 자신은 결함이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도 해요. 나도 너처럼 실수도 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랬구나, 다음엔 이렇게 한번 해 보자. 내가 도와줄게.” 말할 수 있게 돼요. 보통은 그렇게 안 하죠. (웃음) 이거 못 하면 안 되고, 이거 잘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야 할 것들을 아이에게 많이 요구하는 수순으로 흘러가죠. 요구는 할 수 있는데, 한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성취를 요구할 순 없다고 봐요. 다만, 그 성취에 도달하기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태도면 충분해요. 이는 나 역시 뭔가를 잘 못 하는 사람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니, 너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태도를 의미해요. 나 자신이 완벽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좋아요. 우리가 완벽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문화 속에서 살기에 어려운 일이지만, 살다 보면 그 완벽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오잖아요? (웃음)

 

느린학습자, 발달 장애 학생 등 학교도서관에는 다양한 이용자가 오가요. 소리 내는데 어려움이 있는 이용자를 만난다면, 어떤 에티켓을 갖고 안내하면 좋을까요?

아이가 혼자 오진 않았을 거예요. 요새는 태블릿이라든가 휴대폰 앱이 잘 구축돼 있잖아요. 사진이나 이미지를 활용해서 도서관 이용법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구성해서 화면으로 안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실제로 아이와 도서관에서 책 빌리는 법을 순서대로 알려 준 적 있어요. “첫째, 필요한 책을 고른다. 둘째,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온다. 셋째, 도서관 카드를 선생님께 드린다. 넷째, 책과 도서관 카드를 받는다.” 이렇게 순서대로 안내하면 이를 (사서) 선생님이 “자, 1번대로 우리 이제 책을 찾아보자.” 해 볼 수 있어요. 단계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 주시면 좋겠어요. 청각 장애인의 경우 시각적인 단서로, 시각 장애인의 경우 촉각 단서로 이용법을 안내할 수 있을 테고요. 장애 정도가 심해서 혼자 신변처리가 어렵다면 대리 보호자와 소통을 통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안내해 주세요. 저는 장애 아이들을 볼 때 감각적 특성과 인지적 특성 두 가지를 봐요. 감각적 특성은 아이가 잘 활용할 수 있는 감각을 뜻하고, 인지적 특성은 이해의 정도를 말해요. 가령 청각에 따른 정보를 잘 활용할 수 없다면 아이의 나머지 감각을 잘 고려해 정보를 전달하시면 돼요. 인지 능력이 갖춰지지 않았을 경우엔 반드시 보호자를 대동하고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어느 정도 인지가 되는 아이들에겐 단계적으로 반복적인 안내를 하시면 충분해요. 인지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다 싶으면 친절하게 대응해 주세요. 그럴 땐 보통의 이용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맞이해 주시면 좋겠어요.

 

“잘했어.”라는 평가의 말보다 “저 잘했어요?” 물었을 때 “그럼 잘했지!”라고 답하는 공감의 말이 지닌 힘을 이 책으로 알려 주신 듯해요. 타인에 대한 평가가 손쉬운 시대, 언어치료사로서 듣고 싶은 격려의 말은요?

저희 언어치료사들은 어떤 행위에 대해선 칭찬을 잘해요. 사실은 행위보다는 행위에 대한 결과가 좋아서 칭찬하는 거겠죠.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관해 공감받길 원하잖아요. 즉,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고 싶은 거예요. 어떤 조건을 달지 않더라도, 내가 뭘 잘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고 싶어해요. 아이들도 그렇거든요. “당신은 치료사로서도 능력이 있지만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다.” “한 인간으로서도 잘 살고 있다.” 그런 말들을 다들 듣고 싶어할 거예요. 저도 그렇거든요. 지금 시대는 성공하면 살아 온 이력이 다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반대로 뭔가에 실패하면 그간의 살아온 과정이 부정적으로 평가돼요. 우리에겐 한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언어가 필요해요.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말이거든요.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 긍정의 언어를 나누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편집자: “언어치료사이기 전에,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이에요.”라는 칭찬의 말을 건네고 싶어요. 어떤 답을 하고 싶나요?) 그걸 알아볼 수 있는 당신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 즐거워질 것 같아요. 그럼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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