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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김규미 진주 남강초 사서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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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6-04 09:07 조회 52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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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저금하며

사람을 남기는 일

김규미 사서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김상화 기자





꼬박 10년. 사서의 꿈을 품은 채 김규미 선생님이 도서관 주변을 걸어온 시간이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마흔 살에 여섯 번째 직업으로 사서가 되었다. 생의 곡절을 부단히 통과해 내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오랜 기간 사서의 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책. 당장 사서가 될 수는 없어도 그는 10년여간 책으로 동화구연 봉사를 다니며 울산 시내의 모든 도서관에서 수많은 어린이에게 웃음과 사랑을 전했다. 도서관 안에서 단 한 명이라도 평생독자를 만드는 사람이 사서라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서이지 않았을까. 올해 그는 진주 갈전초에서의 6년 근무를 마치고 첫 전근과 함께 또 다른 오랜 꿈이었던 작가로서의 도약을 시작했다. 그가 쓴 에세이 『사서쌤! 저는 100권이나 읽었어요』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도서관에서 사랑을 저금하며 사람을 남긴다.” 그가 이 사랑의 이자를 어떻게 월복리로 늘려 가는지 궁금하다면, 이번 인터뷰가 요긴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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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도서관 밖에서 다른 길을 걸어 오다 마흔 살에 늦깎이 사서로 취업하셨다고요. 그간 어떤 일을 해 오셨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말하자면 ‘프로N잡러’였어요. 첫 직업은 컴퓨터 강사였어요. 대학생 때 전공을 살리는 게 별로 좋지 않다는 조언을 많이 듣고 고민하던 차에 마침 한참 유행이던 미니홈피를 운영하다 스카웃 제의를 받아 일했어요. 그 후엔 카피라이터로도 잠깐 일하고, 컴퓨터로 일하는 게 좋아서 공부해서 웹디자이너로도 일을 했어요. 결혼하고 울산으로 온 뒤로는 울산 시청에서 식품 위생 관리원으로도 일했어요. 그 사이사이에도 매점이나 피시방 등 무수한 아르바이트들을 했지만 굵직하게 한 일들이 이 정도예요. 

사서가 되기 전 마지막 직업은 고용노동부 계약직 직업 상담사였어요. 그때의 저는 워낙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며 실패를 많이 해 본 뒤여서, 직업을 찾으러 오신 무직자분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았어요. 그래서 남의 직업을 찾아 주는 그 일에 진심을 다했어요. 제가 살아오며 도움받은 게 많았기에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그날도 한 민원인분 이력서 넣을 만한 곳을 급히 검색하고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사서 채용 공고를 본 거예요! 한시 계약직이긴 했지만, 이 진주에서요. 그래서 이력서를 급히 내서 면접을 보러 갔는데, 일한 날짜 사이사이 공백기가 있으니까 면접관분이 공백기에 뭐 했냐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쭉 했죠. 그때 그분께서 제 얘기를 듣고 ‘그냥 잠깐 왔다가 힘들다고 갈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 주신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결국 제가 사서가 되기 전 했던 그 많은 일이 저에게는 다 자양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날 제가 그 민원인의 이력서 넣을 곳을 검색하지 않았으면 저는 그 사서 채용 공고를 못 봤을 테니까요.


책에서 15년 전 갑작스런 폐암 선고를 받은 후, 세상에 닿기 위해 시작한 동화구연 봉사가 결국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긍정의 눈”을 선물했다 하셨어요. 무려 10년여간 도서관을 다니며 동화구연 봉사와 강연을 펼쳐 온 경험이 사서라는 꿈을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결혼해서 울산으로 왔을 때 한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됐어요.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도서관을 세웠는데 오픈 멤버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렇게 ‘울산 북구 기적의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며 처음 전공을 써먹었어요. 봉사를 1년쯤 하다 보니 ‘맞아, 나 이게 좋아서 전공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공부해서 사서 시험을 쳤는데 잘 안됐어요. 시험 준비를 했는데 채용 공고가 안 나거나, 시험 공부를 안 한 해에 채용 공고가 나거나, 제 몸이 아프거나 아니면 아이가 아팠어요. 계속 사서가 되고는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죠. 그래도 꿈이 있으니 도서관을 기웃거리면서 동화구연 봉사를 계속했어요. 울산에 있는 모든 도서관부터 병설 유치원, 장애인 복지관, 보건소까지 구석구석 안 다닌 데가 없어요. 그때 누가 그랬어요. “너는 그 봉사하려고 밤새도록 (동화구연) 교구 만들면, 그게 시간당 얼마 치야?” 사실 계산할 수가 없죠. 30분 봉사하려고 밤새 만들거든요. (웃음) 그분은 제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해했어요. 그런데 저는 제 동화를 듣고 애들이 까르륵 웃고 좋아하는 모습, 동화구연 후 책을 서로 읽겠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좋고 행복했어요. 그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으니 돈이 중요하지 않았죠.


사실 제가 했던 동화구연 봉사와 강연 등은 도서관 사서가 기획한 프로그램 중 아주 일부잖아요? 한시적인. 그런데 계속 봉사를 다니다 보니 저도 이용자들을 평생독자로 만들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해 보고 싶더라고요. 그게 사서의 일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 갈 때마다 ‘나도 저런 프로그램 해 봐야지’ ‘나라면 이런 걸 추가할 텐데’ 하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게 천천히 쌓여 사서 채용 면접을 보던 날 면접관님 앞에서 ‘제가 10년간 도서관 운영에 꿈을 꿨다, 그간 제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궁금하시지 않냐’ 하고 감히 말할 수도 있었어요. 돈이 안 돼도 도서관에 작게나마 기여하는 시간을 10년이나 보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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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미 샘을 따라 처음 동화구연 봉사를 시작해 보려는 선생님들을 위한, 동화구연 세계의 첫 문을 열기에 좋은 동화책이 있다면요? 

정말 추천해 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요. 책상에서 일어나 꼭 서가 앞으로 가셨으면 좋겠어요. 직접 서가를 훑으면서 자신이 직접 고른 책, 그걸 추천드릴게요. 왜냐하면 동화구연은 남에게 들려주는 거잖아요. 듣는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요. 저 사람이 지금 재미있어서 읽어 주는 건지, 그냥 읽는 건지. 그렇기에 사실상 내가 재미있어야 듣는 사람이 재미있거든요. 그런데 그 재미라는 건 사람마다 너무 달라요. 훌륭한 책, 상 받은 책, 좋은 책, 유명한 책, 베스트셀러 등을 추천해 드릴 수 있지만 그 책을 읽을 사람에게 그 책이 재미없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어요. 지금 동화구연 봉사를 하실 분의 수준과 상태, 동화구연 대상·인원·장소·시간에 맞는 책이어야 하거든요. 그걸 본인이 다 염두에 두고 상상하면서 서가에서 직접 내키는 책을 찾아야 해요. 따라서 책을 고르실 때는 인터넷에 검색해서 찾거나 남의 추천을 받을 생각보다는 무조건 일어나서 직접 도서관에 가는 걸 추천드립니다.

교과 연계 도서관 활용수업 아이디어는 "주로 (동료 교사들과) 잡담을 나누던 중에 탄생했"다고요. 이 과정에서 어떤 협력들이 이뤄졌는지 궁금해요. 
수업도 수업이지만 도서관 이벤트를 잡담에서 많이 기획했어요. 제 책에도 나오지만, 한글날마다 하는 ‘나만의 책 만들기 공모전’ 같은 경우에도 애들이 저에게 “선생님 왜 제 책은 도서관에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길래 그 얘기를 다른 선생님들께 전했는데 한 선생님께서 “아니 그럼 만들게 해 줘요. 전시하면 되겠네!” 하신 거죠. 듣고 보니 저도 ‘그러네? 안 될 것 없네?’ 하면서 A4 용지를 접어 나만의 책을 만들고 그걸 도서관에 전시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거예요. 또 어느 날은 한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연애 문제로 고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 『100만 번 산 고양이』 같이 읽으면 이 문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면서 결국 또 아이들이 도서관에 와서 저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그 시간이 원래 연간 계획표에 있었던 게 아닌데 창체 시간을 바꾸어 진행했어요. 지금 아이들이 사랑에 관해 고민한다는 걸 선생님들과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예요. 그런데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며 아이들 소식을 전해 듣다가 제가 거기에 아이디어를 보태게 된 거죠. 그런 식으로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면 서로 도와줄 거리가 만들어지더라고요.


첫 근무지였던 진주 갈전초가 경남에서 시범 운영 중인 ‘행복학교’였어요. 경남형 미래학교라 불리는 행복학교의 운영 철학이 학교도서관에 미친 영향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려 주신다면요? 

제가 일했던 학교는 행복학교가 굉장히 잘 자리 잡힌 학교였어요. 행복학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와 교직원, 학부모까지 모든 학습 공동체가 행복하면 좋겠다는 모토의 학교예요. 교육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불필요한 경쟁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화죠. 보통 학교도서관 사서들에게 많이 요구되는 게 학생 한 명당 책 몇 권 읽었는지(대출했는지), 혹은 행사 몇 번 했는지 같은 수치화된 데이터거든요. 이게 사서가 근무를 열심히 했는가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갈전초에서는 그런 걸 요구하지 않으니 제가 거기에 치중할 필요가 없었어요. 초반에는 제가 행복학교의 철학을 잘 몰라서 아이들끼리 경쟁을 부추기는 실수도 했는데, 적응하고 나니 도서관에서 1등을 뽑는 등의 행사를 하지 않게 됐고 독서교육의 질적인 부분에 좀더 집중하게 됐어요. 일부러 시간 내 아이들에게 직접 책을 읽어 주거나, 추천해 주거나, 한 아이에게 “400번대는 네 담당이야.” 하고 아이가 직접 친구들에게 책을 추천할 수 있도록 했어요. 처음엔 제가 잘나서 잘하는 줄 착각도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학교의 운영 철학 덕이었던 거죠. 학교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는 결국 학교의 운영 철학을 따라갈 수밖에 없거든요. 이게 좀 의미 있는 사례다 싶어 기록(책)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갈전초에서의 6년을 뒤로하고, 올해부터 남강초 도서관의 관장이 되셨습니다. 이번 남강초 책누리도서관에서 새로이 세운 목표나 계획이 있으실까요?

일단 기본에 충실할 생각이에요. 행복학교는 행복맞이학교, 행복학교, 행복나눔학교 이렇게 세 단계로 나뉘는데요. 직전에 근무했던 갈전초는 행복나눔학교였어요. 행복학교로 자리가 잡혀서 그 시스템을 나누고 사례 발표까지 하는 수준의 학교예요. 여기 남강초는 현재 “그럼 이제 우리도 행복학교를 한번 해 볼까요?” 하는 행복맞이학교 단계에 있어요. 그렇기에 제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내가 저기서 이걸 했는데 좋았어요. 그러니 여기서도 해 보겠어요.” 하는 건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이 학교의 교사들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학교의 문화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제가 제 마음대로 깃발 꽂고 “자 여깁니다. 따라오시지요.” 하는 건 필패라고 생각해요. 다만 기본에는 충실하자 생각하고 있어요. 도서관으로서 기능해야 하는 것들을 다듬어 가면서 제가 이곳에 적응하는 시간으로 올해를 쓰자고 목표하고 있습니다.


사서샘 대상 지역 독서모임 ‘심야비행’을 직접 만들어 운영 중이시죠. 육아와 직장이라는 방해공작(?)에도 모임원들 열정이 한결같다고요. 함께 여행도 다니고 계신데, 독서모임 유지 비결을 슬쩍 흘려 주신다면요?

코로나 때부터 시작해 이제 모임이 4년 차인데요. 독서모임은 시작부터 끝까지 배려가 있어야 유지되는 것 같아요. 모임 날짜·시간·장소를 정하는 모든 과정에서 내가 이 모임을 만든 리더니까 (일방적으로) 공지하고 올 수 없는 사람은 칼같이 자르면서 진행하면 모임 유지가 어려워요. 소수 인원이어도 다 애들 엄마고,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모임 시간도 모임원들 상황에 맞춰 앞뒤로 조정하기도 해요. 모임을 짧게 끝낼 때도 있고요. 가능한 선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 적절히 다 이용하며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어요. 그게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요. 또 처음 시작할 땐 우리가 명색이 사서니까 사서로서 읽어야 하는 책을 읽자고 목표했었는데요. 읽다 보면 지치잖아요. 가끔 재미있는 책도 좀 읽고 싶다 하면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도 해요. 그러다 또 “우리 좀 도전 의식을 가지고 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라는 의견이 나오면 『코스모스』 같은 책도 한 번 읽고요. 대화 나눌 때도 그래요. 한 사람이 시간을 독점하는 것을 지양하고는 있지만 그날따라 어느 분이 할 말이 많을 수 있거든요. 그럴 땐 그냥 들어 드려요. 그리고 보통 모임 한 번에 2시간 정도를 쓰는데, 3시간이 넘도록 얘기를 다 못 끝내는 날이 많아지면 ‘우리 한번 날을 잡아야겠다’ 하면서 여행도 다녀오고요. 물론 위기도 많이 있었어요. 제가 지쳐가지고. (웃음) 모임원이 다 선배님들이신데, 그러면 선배님들이 또 저를 다독여 주셨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확실히 서로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니까 갈수록 생각의 결이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직업적으로 만났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소울메이트가 되어 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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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대상 지역 그림책 읽기 모임 ‘그림책강정’에서도 활동 중이시죠. 어른의 그림책 읽기 문화 확산을 위해 카페를 빌려 그림책 전시회를 열기도 하셨다고요. 전시를 기획하고 실천해 낸 과정이 궁금해요.

그림책강정에는 또 오랜 경력의 훌륭한 리더분이 계세요. 전시 기획도 그분의 아이디어였어요. 성인들의 그림책 읽기 문화 확산을 위해 모임에서 같이 읽은 좋은 그림책들을 전시해 보자고요. 그렇게 해서 제가 포스터를 만들고, 누구는 가랜드를 만들고, 누구는 책 리스트업을 하고, 누구는 카페 장소를 섭외하는 등 역할을 나눠 진행했어요. 만든 포스터로 각자 지역 주민들에게 홍보했고요. 이제껏 전시는 2번쯤 했는데, 책도 나름 엄선해 한 번 할 때 50권 이상씩 큐레이션했어요. 전시는 공간 임대 문제로 한 번 열면 2∼3일만 했는데, 항상 주민분들이 다음에 또 해 달라 요청하실 정도로 좋아하셨어요. 저희가 책만 ‘띡’ 놔 두는 게 아니라, 가서 직접 읽어 드리거든요. 어린아이에게 맞는 책이 있고, 부부가 같이 보면 좋은 책이 있으니 오시는 분들에 맞춰서 읽어 드렸어요. 그러면 어른들은 되게 낯설어하면서 ‘우리 애나 읽어 달라’ 하시는데 “아니에요, 어머님. 같이 앉아 보세요.” 하고 이끌었죠. 처음에는 안 듣는다 하시던 분들도 한 권 듣고 나면 “한 권 더 들어볼까요?” 하시기도 하고, “애들 읽는 책인 줄 알았는데 어른이 읽어도 좋네요.”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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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읽어 주기 실천이 정말 하나의 독서 문화를 움트게 했네요. 그림책 읽어 주기의 가장 큰 효용이라면요?

그림책을 읽다 보면 아무도 나한테 묻지 않는 질문에 대해서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더 깊은 사유를 원하게 돼요. 그럼 그때 그 관심이 닿는 주제의 책을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안 읽던 사람도 읽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부터 “저는 책 못 읽어요. 어려워요. 시간 없어요.” 하는 분들이 그림책부터 읽기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림책 전시를 매번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책 출간하고 조금 시간이 생겨서 인스타 라이브 방송으로 그림책 읽어 주기를 하고 있어요. 그 방송에 들어오시는 분들도 전시회에 참여하신 분들과 비슷한 반응을 많이 보이세요. 읽어 주는 걸 들으니 재미있다고. 애들만 읽는 책인 줄 알았는데 어른도 읽으니까 좋다고. 다음에는 어떤 책 읽어 달라 하는 요청도 들어와요. 또 제가 늘 방송에서 “이거 듣고 집에 가서 아이들이랑도 읽어 보세요.” 하는 식으로 권하거든요. 그렇게라도 그림책 읽기 문화가 계속되면 좋겠다 싶어서 작은 실천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서쌤! 저는 100권이나 읽었어요』를 통해 작가라는 또 다른 길에 오르셨어요. 앞으로 사서로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동화구연, 그림책 이야기 등 독자들에게 책으로 전하고픈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아요.

그림책 이야기를 좀더 널리 알리고 싶어요. 그림책이 특히 좋은 이유는 ‘나’를 만나게 해 주기 때문이거든요. 어떤 자기계발서나 소설책은 뼈를 때리거든요? 주제가 명확해서 ‘넌 이래야 해’ 이렇게 말해요. 그림책은 그런 메시지가 좀 뭉뚱그려져 있어요. 그리고 여백이 많아요. 그 여백을 독자들은 보통 자기 경험으로 채우거든요. 다 똑같이 하얀색 여백을 봤는데 누구는 이걸 엄마라고 해석하고, 누구는 이걸 자기 아이로 해석해요. “이 여백, 엄마 아니었어? 어떻게 이걸 아이라고 생각하지? 아, 이걸 엄마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내가 여기에 꽂혀 있구나. 여기에 대한 결핍이 나에게 있구나.” 이렇게 스스로 나를 발견하게끔 해 줘요. 발견 못 한다고 뭐라 하지도 않고요. 그림책은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서 나를 만날 수 있는 가장 부드럽고 온화한 도구인 거죠. 이런 그림책들로 제가 변화했거나 혹은 누가 변한 걸 봤거나 한 경험들, 그 에피소드들이 다음 책이 될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선생님께서는 어린이, 어른, 때로는 동물까지 도서관 안에서 모두가 서로 뒤섞이며 자라는 지역 공동체로서의 도서관 운영을 꿈꾸고 계신다 싶어요. 구체적으로 꿈꾸고 계신 학교도서관의 상이 있을까요?

거창한 건 없는데요, 학교도서관이 학교의 중심이 되면 좋겠어요. 구석지고 높은 층에 있는 게 아니라 1층 중앙현관에 있었으면 좋겠고요. 외국은 정말 그런 사례가 많거든요. 학교도서관이 오며 가며 그냥 들를 수 있는 곳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위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로도 커뮤니티의 장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도서관에서 만나서 이야기해 보자, 도서관에서 찾아보자. 도서관에서 의논해 보자.” 만남의 광장처럼 말할 수 있는 곳이요. 마땅히 필요한 것들을 찾아보고, 의논할 수 있는 공간이자 “우리 어디서 만날까?” 하는 질문에 당연하게 “도서관 가야지.”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처럼 40대 혹은 그 이후의 나이에 사서의 길을 택하려는 분들께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요?

요즘은 수명이 원체 기니까 40살이 늦은 나이가 아닐 뿐만 아니라 너무 좋은 나이예요. (일찍 결혼해서 출산했다면) 육아 부담이 경감되면서 내 삶의 비중을 나에게로 좀 더 가져올 수 있는 시기고요. 그러나 사서의 길을 선택했다면… 우선은 관절이 나갈 수가 있으니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셨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고요. (웃음) 체력이 중요해서 꼭 운동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마음 건강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서는 많이 꺾일 거예요. 초심을 지키기 참 어려운 직종이거든요. 제가 책으로 (초년기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어쩌면 10년 뒤 나도 초심이 꺾여 방만한 도서관 운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사서는 원체 정규직이 잘 없고, 인식도 좋지 않아요. 바코드만 찍으면 되는 쉬운 자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어려우면 항상 도서관이 1순위로 후려치기 당해요. 인력 감축, 예산 감축, 도서관 리모델링 전면 폐지 이런 식으로. 그래서 자꾸 사서들이 “우리 책 대출 많이 되고 있어요.” 하고 이용자 대출 실적에 연연하게 돼요. 이렇게 사서는 꿈을 품고 도서관에 왔다가 정작 질적인 부분에 집중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할 수 있어요.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 근육을 단단히 기르셨으면 좋겠어요.

「질문하는 사서」 챕터에서 “사서는 독자가 책으로 가는 길을 질문으로 닦는 사람”이기에, 늘 호기심을 가지고 이용자에게 질문을 건넨다고 하셨죠. 오늘 김규미라는 사람을 관찰해 본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으신가요? 질문과 함께 권하고픈 책은요?

어려운 질문인데, 매일 잠들기 전에 그런 생각은 하거든요. ‘오늘 점 잘 찍었나?’ 저는 매일 하루가 점 하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암에 걸리고, 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죽음의 문턱 앞에 갔다 오고서 늘 생각하는 게, 오늘을 만족하자는 거예요. 매일 열심히 오늘 하루 점만 선명히 찍으면 그 점이 결국은 이어져 어느 방향을 가리킬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점을 오늘 한 번은 잘못 찍을 수 있지만 일 년을 잘못 찍으면 방향이 틀어지잖아요. 그래서 오늘 점을 잘 찍었는가? 그걸 저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점은 꼭 어떤 성취는 아니고, 오늘 잘 쉬었나, 오늘 행복했나, 오늘 하고 싶었던 것 다 했나, 오늘 감정 괜찮았나?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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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스펜서 존슨의 『선물』로 권하고 싶네요. 이 책은 누구나 이미 선물을 받았지만 그 선물은 누군가 내게 가져다주는 게 아니며,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라고 말해요. 나만 열어 볼 수 있다고요. 그게 현재(Present)거든요. 이것이 제 삶의 철학을 채우는 데 기준점이 되어 줬던 것 같아요. 내일 말고 오늘, 지금 여기 나를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집중할 것. 그리고 후회되는 과거가 있다면 잘 곱씹어 보고, 거기서 나한테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잘 소화시켜야 그 과거를 잘 보내 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결국 나는 늘 현재를 살 것. 저도 지쳐서 초심을 잃을 때가 있어요. 인생이 혼란스러울 때도 있고요. 그럴 때 이 책을 툭 꺼내서 휘리릭 몇 페이지 읽어요. 그러면 다시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나를 초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그 자리로 데려다주는 것 같아요. 너무 좋거나, 너무 슬프지 않고 잔잔한 호수의 한가운데 있는 나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 주는 책이라 『선물』을 고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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