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독서동아리 운영 다이어리]부끄러운 실패의 경험을 딛고, 다시 도전한 동아리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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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6-03 10:39 조회 4,056회 댓글 0건본문
독서동아리 담당자의 걱정
독서동아리를 운영하려는 사서 혹은 교사라면 다음과 같은 걱정들에 공감할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런 걱정들로 독서동아리 운영을 피하고 싶었다.
-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거나 아이들이 바빠서 모집이 잘 안 된다.
- 학생들은 물론 사서 혹은 교사조차도 독서 토론(독서동아리 활동)이 낯설거나 어렵다.
- 모임을 만들어도 한 학기 혹은 일 년간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다.
-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책을 읽고 나서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동아리 운영 실패 되짚기 1: 책 선정의 어려움
2015년, 나는 별다른 준비 없이 독서동아리를 덜컥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해마다 한두 명의 학생들이 독서동아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던 것 같다. 그해에도 독서동아리 이야기를 꺼낸아이가 있었다. 계획에도 없던 일이라 흘려듣기만 하다가, 아이에게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 방식은 각자 읽은 책을 소개하는 단순한 구성을 선택했다. 다 같이 재미있게 읽을 책을 정하기 어려웠고, 괜히 토론한다고 덤볐다가 머리 아프고 감정 상할 일도 염려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토론동아리를 했는데, 즐겁고 소중한 기억도 많지만 찬반 토론을 할 때마다 왜 그렇게 울고 싸웠던 기억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활동 방식을 설명한 후에 지도교사만 정해 오면 팀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자, 아이들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며 좋아했고 순식간에 세 팀이 꾸려졌다. 독서동아리를 기다린 아이들이 이렇게나 있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무척 놀랐다. 생각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무언가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첫 번째 도전은 과정이랄 것도 없이 두어 차례씩 모이고서는 팀이 다 해체되었다. 우선 아이들도 나도 독서 모임을 하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몰랐다. 아이들에게 각자 취향에 따라 책을 골라오라고 했지만, 평소에 책을 잘 안 읽던 아이들은 책을 고르는 자신만의 기준이 빈약했고,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은 개성이 강했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아이들에게는 맘껏 책을 권할 수 있었지만, 성향이 다른 아이들과는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책표지나 제목을 보고 끌리는 걸 가져오거나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책들을 골라왔다.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는 점만 다시 확인할 뿐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었다.
동아리 운영 실패 되짚기 2: 생각을 표현할 시간의 부재
아이들은 자신이 읽은 책이 좋거나 싫은 이유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냥 재밌어. 일단 봐봐.”, “그건 너무 노잼인 거 같은데? 넌 어떻게 그런 책을 보냐?” 하는 식으로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감정적인 표현 이상을 하지 못했다. 책에 대한 취향이 갈리면 대화가 이어지기 어려웠다. 도무지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없어 보였다. 더불어 당시에 나는 그런 아이들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도 몰랐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안 좋아하던 성향 탓에 아이들에게 기록장을 따로 주지 않고, 팀 모임을 마치면 모임 소감만 간단히 적게 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아이들을 편하게 해준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생각을 표현하고 정리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실패한 경험, 쓰린 상처로만 남았다. 그중 한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팀을 꾸려 이듬해 복직한 국어선생님을 찾아가 독서동아리 지도교사를 청했다던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고 한편으로는 후련했다. 독서동아리는 내 길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학교에 독서동아리가 있다면, 사서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학교도서관은 독서교육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독서동아리가 있다면, 학교도서관이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지원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작정하고 국어선생님과 함께 독서동아리를 모집했다.
이번엔 좀 다르게!
돌이켜보니, 이전과 지금 동아리 운영의 가장 다른 점은 ‘잘못된 길 같다면 다른 방법으로! 무조건 간다!’라는 자세였다.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뛰거나 신발을 바꿔 신거나 동행자를 구하거나 잠깐 길 밖에서 딴짓도 좀 하면서 계속 걸었다.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시작한 재도전이었기에, 시작은 비슷했다. 그런데 활동하는 팀이 많아지면서 소위 ‘경험치’가 빠르게 쌓여 문제 상황을 놓치지 않게 되었고, 곧바로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아이들 의견을 수용할 수 있었다.
앞서 늘어놓은 걱정거리에 대해 내가 찾은 대안은 다음과 같다. 현재진행형으로 계속해서 다른 답을 만들어가는 중이니 정답일 순 없다.
- 아이들이 방과 후에 바쁘다면 점심시간, 등교 전 아침시간, 주말 등 빈 시간을 찾아 동아리를 꾸린다.
-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권하자. 책을 찾는 주체는 사서나 교사이지만 책의 선정 기준은 아이들이다.
- 찬반 토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자. 비경쟁 독서토론 적용 등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아이들이 활동에 ‘적응’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 동아리 활동 격려 선물을 비롯해 조금 힘들어도 결실이 보이는 기록장, 동아리만의 특별한 행사 등 아이들의 활동을 응원하는 장치를 마련한다.
- 아이들이 독서에 느끼는 의무감에 공감하면서, 수업시간에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 책도 마음껏 권하자. ‘똑똑해지는 책’보다 ‘재미있는 책’ 중심으로 권해 아이들의 신뢰를 얻는다. ‘재미있고 똑똑해지는 책’은 얼마든지 있다.
-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해야 할지는 여전히 어렵지만, 아이들에게 맡긴다. 아이들의 말을 잘 듣고 그
안에서 질문을 이어가도록 한다.
예전에는 이런저런 외적인 장치(질문카드, 다양한 진행 방식 적용 등)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려 했으나, 이제는 아이들이 답답해하더라도 스스로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 가는 과정을 겪어 보도록 한다. 한 학기, 1년, 3년 동안 활동한 아이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뭔가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자. 기다림만이 답! 이때, 아이들이 스스로를 기다릴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여러 시행착오로 얻은 위 대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호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고자 한다.
아이들이 책 읽기를 가볍게 여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
나는 아이들이 독서동아리 활동을 통해 책을 만만하게 여기게 되면 좋겠다. 궁금한 게 생겼을 때, 좀 심심할 때, 그냥 아무때나 한번 쓱 펼쳐 보려 손을 뻗을 수 있을 만큼 책을 친숙하게 느끼길바란다. 나아가 책 안팎에서 만나는 다양한 생각들에 기대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좀더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운영을 어려워한 나만큼이나, 아이들도 활동이 걱정되고 하기 싫었을지 모른다. 용기를 낸 아이들에게 독서가 무섭고 겁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꼭 느끼게 하고 싶
다. 같은 마음으로, 독서동아리 운영을 주저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해 볼 만하다’고 느낄 만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경험을 나누고 싶다. 앞으로 여러 달에 걸쳐 운영계획부터 활동 마무리까지 소개할 것이다. 은근한 기대와 격려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