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모든 사람에게 늘 열려 있는 지식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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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6:40 조회 8,296회 댓글 0건본문
지식의 허브(hub)_ 유럽 도서관을 찾아서
도서관(library, biblioteca)의 어원은 종이(paper)이다. 종이의 재료인 라틴어 liber에서 library가, 종이가 제일 처음 발명된 곳인 biblio라는 지명에서 biblioteca가 유래했다. 종이의 발명은 인류의 지식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지식의 범주가 개인에서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서관은 이러한 종이에 기록된 모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전파하던 장소였다. 지식은 도서관에서 집약되어 분류, 정리되고, 전파되며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도서관의 먼지 쌓인 고서 위에서 철학적 사유의 지평은 넓어졌고, 비좁은 서가의 틈 사이로 예술적 상상력은 높아졌으며, 어두운 도서관의 구석에서 과학적 진보의 발자국은 그 보폭을 넓힐 수 있었다.
예부터 유럽의 현명한 군주들은 무기를 생산하고 군대를 키우기에 앞서 도서관과 학교를 세우는 일을 우선으로 삼았다. 국력이 지식과 교육에서 나옴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유럽의 도서관은 오래전부터 시민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지식이 도제식 교수를 통해 산술급수적으로 전파되던 동양과 도서관과 학교가 중심이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전파되던 서양은 국력에서 큰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서양 열강들은 모두 이러한 지식의 공유와 전파를 제도적으로 뒷받침 하던 나라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서관이 존재하였다.
다가올 미래는 지식의 공유는 물론 지식을 창출해야 하는 시대이다. 세계 각국은 지식의 허브(hub)로서 도서관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도서관은 이제 지식을 보관하고 공유하는 장을 넘어 교육과 문화와 과학을 엮어가며 지식을 창출하는 장으로의 질적인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 전남 독서토론 국외 연수단은 서유럽(독일, 프랑스, 영국)의 도서관이 어떻게 지식경영의 패러다임에 부응하며 도서관의 질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학 도시의 심장_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하이델베르크는 중세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고도古都이다. 거리의 한 켠을 들추면 중세의 먼지 낀 흔적이 묻어나는 곳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1386년에 개교를 하였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 말에 대학의 문을 연 셈이다. 대학 도시라 해서 서울의 신촌쯤을 떠올리면 안 된다. 네온사인 반짝이는 유흥의 메카가 아니라 진정한 학문의 도시이다. 어두운 적갈색 벽돌 건물들 사이로 냉철한 학문의 이성이 스며 있는 곳, 책 하나는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가지게 하는 거리, 어디서든지 토론이 이루어질 것 같은 거리의 카페들…
2차 세계대전의 광기 속에서 독일의 모든 도시들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상처를 입은 데 비하여 하이델베르크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이다. 당시 연합군 장교 중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출신이 많아 폭격을 받지 않았다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유럽의 수많은 문인과 철학자, 과학자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철학자의 거리를 걸으며 사색하고, 거리의 노천카페에서 토론하며 학문의 꽃을 피웠을 것이다.
중세의 호젓한 정취를 간직한 하이델베르크 성을 뒤로하며 고색창연한 거리를 걸어보았다. 인구의 3분의 1이 학생들인 만큼 수수하고 젊은 분위기의 거리를 걷다 보니 시계가 거꾸로 돌아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 적갈색의 수수한 건물들 사이로 유난히 호화로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처마에 화려한 금박이 입혀진 건물 - 이곳이 바로 이 대학도시의 심장이라 불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임을 한 눈에 보아도 알만 하였다. 문명의 전달자요 지식과 학문의 수호자인 프로메테우스의 조상彫像이 버티고 있는 입구를 지나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도서관 안은 외양으로 드러나는 묵직함과 달리 학문의 열기로 가득하였다. 중세적 공간과 현대적 공간이 공존하는 열람실에서는 젊은 학생 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도서관은 대학도서관일 뿐 아니라 하이델베르크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같이 하고 있었다.
Semper Apertus _ 늘 열려있어라!!
도서관의 중심인 서고까지 접근하여도 그 흔한 개찰기 하나 없었다. 매우 희귀한 고서까지 포함하여 약 22만 권이나 되는 장서를 보유한 대형 도서관이지만 완전히 개방된 시스템이다.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출입 시 학생증을 제시할 필요가 없어서 대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하이델베르크 도서관에서 책의 향연을 즐길 수 있었다. 이 도서관뿐만 아니라 독일의 거의 모든 도서관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교육과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도서관이 전국 어디에나 도보로 15~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도서관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그들의 교육철학을 실천하는 장소인 셈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보았던 거리문고(사진)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정부가 그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독일의 교육철학을 한 눈에 보여준다. Semper Apertus(‘늘 열려 있어라!’라는 뜻의 라틴어)라는 문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훈校訓이다. 하지만 이 문구는 독일의 도서관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표제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모든 도서관은 이것에 바탕을 두고 오늘도 모든 사람에게 항시 열려 있는 지식의 숲을 제공하여 그 안에서 독서와 지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 못하는 나라의 특별한 비밀
독일의 도서관은 철저하게 공교육의 연장선상 위에 위치하며, 모든 독일인에게 자기발전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가 되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교육을 학교교육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적인 틀까지 확장하여 모든 국민이 책을 읽고, 지식을 탐구하며, 깊이 사색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독일의 철저한 공교육은 70여 년 전에 전쟁의 광기 속으로 전 세계를 몰아넣었던 나찌즘 교육에 대한 원죄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국가주도의 경쟁교육이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선행학습한 독일은 다시는 그러한 비극적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에 대한 암묵적 약속을 교육에서부터 실천하고 있다. 전후 독일은 학교교육의 지향점을 상생과 협력에 두는 교육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다. 수월성에 중점을 두지 않는 교육정책 때문에 매년 대학평가에서 독일의 주요대학은 5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또한 초중등학교의 학력을 측정하는 PISA 평가에서도 항시 중하위권을 면하지 못한다. 독일이 ‘공부 못하는 나라’라는 말은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독일은 국제 경쟁력에서 늘 최상위에 이름을 올린다.
이러한 독일의 경쟁력은 보편적 복지시스템으로 보장된 평생교육 시스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누구든지 언제나 어디서든 지식을 탐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하여 전문성을 끌어올릴 수 있게 한 시스템이 독일 국가 경쟁력의 가장 큰 요인인 것이다. 교육을 시장 논리에 맡기지않고도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독일은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력은 독일의 모든 마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도서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독일에서 본 도서관의 미래
시설과 외형으로 보자면 한국의 도서관이 독일의 도서관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특히 디지털화에 있어서 한국의 도서관은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독일의 도서관도 디지털화가 되어 있지만, 그것은 독서를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디지털화가 지나쳐 독서의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의 지식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그 지식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얻어진 디지털 지식이다. 그 지식은 빠르게 대량으로 습득할 수 있지만 파편화된 지식일 뿐이다. 지식을 연결하고 통섭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독서와 토론을 통해 완성된 지식은 느리게 얻어지는 지식이지만 생산적이고 역동적인 지식이다. 진정한 지식은 손 때 묻은 지면 위에서 작가와 교감하며, 세상과 대화하며, 사색과 토론을 통해 얻어진 지식이다.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도 아날로그적인 도서관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빌리자면 책 위에서 생각의 시간은 느려지고, 세상을 향한 공간은 넓어지는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인 것이다.
세계의 교육개혁의 화두가 독서와 토론으로 모아지고 있음은 그것이 미래교육의 본질인 창의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의 경계가 무너지고 평생교육이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도서관은 독서와 토론과 사색의 장을 마련하며, 미래사회 창의적 지식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전통과 미래가 만나며, 지식과 문화와 교육이 서로 조응하며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독일의 도서관 문화는 도서관이라는 건물은 있으되 문화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미래가 아닐까?
도서관(library, biblioteca)의 어원은 종이(paper)이다. 종이의 재료인 라틴어 liber에서 library가, 종이가 제일 처음 발명된 곳인 biblio라는 지명에서 biblioteca가 유래했다. 종이의 발명은 인류의 지식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지식의 범주가 개인에서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서관은 이러한 종이에 기록된 모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전파하던 장소였다. 지식은 도서관에서 집약되어 분류, 정리되고, 전파되며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도서관의 먼지 쌓인 고서 위에서 철학적 사유의 지평은 넓어졌고, 비좁은 서가의 틈 사이로 예술적 상상력은 높아졌으며, 어두운 도서관의 구석에서 과학적 진보의 발자국은 그 보폭을 넓힐 수 있었다.
예부터 유럽의 현명한 군주들은 무기를 생산하고 군대를 키우기에 앞서 도서관과 학교를 세우는 일을 우선으로 삼았다. 국력이 지식과 교육에서 나옴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유럽의 도서관은 오래전부터 시민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지식이 도제식 교수를 통해 산술급수적으로 전파되던 동양과 도서관과 학교가 중심이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전파되던 서양은 국력에서 큰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서양 열강들은 모두 이러한 지식의 공유와 전파를 제도적으로 뒷받침 하던 나라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서관이 존재하였다.
다가올 미래는 지식의 공유는 물론 지식을 창출해야 하는 시대이다. 세계 각국은 지식의 허브(hub)로서 도서관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도서관은 이제 지식을 보관하고 공유하는 장을 넘어 교육과 문화와 과학을 엮어가며 지식을 창출하는 장으로의 질적인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 전남 독서토론 국외 연수단은 서유럽(독일, 프랑스, 영국)의 도서관이 어떻게 지식경영의 패러다임에 부응하며 도서관의 질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학 도시의 심장_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하이델베르크는 중세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고도古都이다. 거리의 한 켠을 들추면 중세의 먼지 낀 흔적이 묻어나는 곳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1386년에 개교를 하였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 말에 대학의 문을 연 셈이다. 대학 도시라 해서 서울의 신촌쯤을 떠올리면 안 된다. 네온사인 반짝이는 유흥의 메카가 아니라 진정한 학문의 도시이다. 어두운 적갈색 벽돌 건물들 사이로 냉철한 학문의 이성이 스며 있는 곳, 책 하나는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가지게 하는 거리, 어디서든지 토론이 이루어질 것 같은 거리의 카페들…
2차 세계대전의 광기 속에서 독일의 모든 도시들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상처를 입은 데 비하여 하이델베르크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이다. 당시 연합군 장교 중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출신이 많아 폭격을 받지 않았다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유럽의 수많은 문인과 철학자, 과학자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학문의 지평을 넓히고, 철학자의 거리를 걸으며 사색하고, 거리의 노천카페에서 토론하며 학문의 꽃을 피웠을 것이다.
중세의 호젓한 정취를 간직한 하이델베르크 성을 뒤로하며 고색창연한 거리를 걸어보았다. 인구의 3분의 1이 학생들인 만큼 수수하고 젊은 분위기의 거리를 걷다 보니 시계가 거꾸로 돌아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 적갈색의 수수한 건물들 사이로 유난히 호화로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처마에 화려한 금박이 입혀진 건물 - 이곳이 바로 이 대학도시의 심장이라 불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임을 한 눈에 보아도 알만 하였다. 문명의 전달자요 지식과 학문의 수호자인 프로메테우스의 조상彫像이 버티고 있는 입구를 지나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도서관 안은 외양으로 드러나는 묵직함과 달리 학문의 열기로 가득하였다. 중세적 공간과 현대적 공간이 공존하는 열람실에서는 젊은 학생 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도서관은 대학도서관일 뿐 아니라 하이델베르크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같이 하고 있었다.
Semper Apertus _ 늘 열려있어라!!
도서관의 중심인 서고까지 접근하여도 그 흔한 개찰기 하나 없었다. 매우 희귀한 고서까지 포함하여 약 22만 권이나 되는 장서를 보유한 대형 도서관이지만 완전히 개방된 시스템이다.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출입 시 학생증을 제시할 필요가 없어서 대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하이델베르크 도서관에서 책의 향연을 즐길 수 있었다. 이 도서관뿐만 아니라 독일의 거의 모든 도서관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교육과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도서관이 전국 어디에나 도보로 15~2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도서관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그들의 교육철학을 실천하는 장소인 셈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보았던 거리문고(사진)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정부가 그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독일의 교육철학을 한 눈에 보여준다. Semper Apertus(‘늘 열려 있어라!’라는 뜻의 라틴어)라는 문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훈校訓이다. 하지만 이 문구는 독일의 도서관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표제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모든 도서관은 이것에 바탕을 두고 오늘도 모든 사람에게 항시 열려 있는 지식의 숲을 제공하여 그 안에서 독서와 지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 못하는 나라의 특별한 비밀
독일의 도서관은 철저하게 공교육의 연장선상 위에 위치하며, 모든 독일인에게 자기발전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가 되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교육을 학교교육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적인 틀까지 확장하여 모든 국민이 책을 읽고, 지식을 탐구하며, 깊이 사색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독일의 철저한 공교육은 70여 년 전에 전쟁의 광기 속으로 전 세계를 몰아넣었던 나찌즘 교육에 대한 원죄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국가주도의 경쟁교육이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선행학습한 독일은 다시는 그러한 비극적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에 대한 암묵적 약속을 교육에서부터 실천하고 있다. 전후 독일은 학교교육의 지향점을 상생과 협력에 두는 교육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다. 수월성에 중점을 두지 않는 교육정책 때문에 매년 대학평가에서 독일의 주요대학은 5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또한 초중등학교의 학력을 측정하는 PISA 평가에서도 항시 중하위권을 면하지 못한다. 독일이 ‘공부 못하는 나라’라는 말은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독일은 국제 경쟁력에서 늘 최상위에 이름을 올린다.
이러한 독일의 경쟁력은 보편적 복지시스템으로 보장된 평생교육 시스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누구든지 언제나 어디서든 지식을 탐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하여 전문성을 끌어올릴 수 있게 한 시스템이 독일 국가 경쟁력의 가장 큰 요인인 것이다. 교육을 시장 논리에 맡기지않고도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독일은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력은 독일의 모든 마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도서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독일에서 본 도서관의 미래
시설과 외형으로 보자면 한국의 도서관이 독일의 도서관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특히 디지털화에 있어서 한국의 도서관은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독일의 도서관도 디지털화가 되어 있지만, 그것은 독서를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디지털화가 지나쳐 독서의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의 지식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그 지식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얻어진 디지털 지식이다. 그 지식은 빠르게 대량으로 습득할 수 있지만 파편화된 지식일 뿐이다. 지식을 연결하고 통섭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독서와 토론을 통해 완성된 지식은 느리게 얻어지는 지식이지만 생산적이고 역동적인 지식이다. 진정한 지식은 손 때 묻은 지면 위에서 작가와 교감하며, 세상과 대화하며, 사색과 토론을 통해 얻어진 지식이다.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도 아날로그적인 도서관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빌리자면 책 위에서 생각의 시간은 느려지고, 세상을 향한 공간은 넓어지는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인 것이다.
세계의 교육개혁의 화두가 독서와 토론으로 모아지고 있음은 그것이 미래교육의 본질인 창의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의 경계가 무너지고 평생교육이 화두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도서관은 독서와 토론과 사색의 장을 마련하며, 미래사회 창의적 지식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전통과 미래가 만나며, 지식과 문화와 교육이 서로 조응하며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독일의 도서관 문화는 도서관이라는 건물은 있으되 문화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미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