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한 학기에 책 한 권,곱씹으며 소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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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4 21:34 조회 8,309회 댓글 0건본문
전남 목포에 있는 항도여자중학교에서 의미 있는 독서 토론이 있었다. 창의적 재량활동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책 한 권을 집중 토론한 것이다. 대상 책은 청소년들에게 사랑과 성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주는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였다.
수업을 이끈 양향숙 사서교사는 매주 한 시간씩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했다. 한 주는 책의 한 장을 읽고 소감이나 생각해 볼 문제 등을 정리하고, 다음 주에는 감상을 나누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니까 2주에 한 장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세 달에 걸쳐 한 장 한 장 곱씹으며 소화한 것이다.
새로운 독서 토론의 동기와 책 선정
새롭게 시도된 이 독서 토론이 학생들의 독서 문화와 학교도서관 발전에 좋은 시사를 준다고 판단해 양향숙 사서교사와 인터뷰를 해 보았다. 먼저 한 학기 한 책 독서 토론을 시도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았다.
“독서 토론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대상, 장소, 인원, 또는 어떤 책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을 적용해야지요. 사서교사가 할 수 있는 독서 토론은 또 다른 방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서 토론을 하려면 우선 학생들이 같은 책을 읽어야 가능하잖아요. 창의적 재량 활동은 1주일에 1시간인데 책 한 권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너무 벅차죠. 또 읽어오라고 했을 때 안 읽어오는 학생도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시간은 책의 한 장을 읽어 내용을 정리하고, 다음 1시간은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운영했습니다.”
양향숙 교사가 고안한 방식은 현재 학교와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시도해 볼 만하다는 판단이 든다. 이렇게 방식을 정했으니, 다음은 책을 정할 순서. 한 학기 동안 읽고 토론할 책으로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이남석, 사계절출판사)를 선택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올 초 전교조 참교육 실천대회 연수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던 같은 학교 선생님이 좋은 책이라며 소개해 준 것이었어요. 읽어 보니 내용이나 형식이 창의적 재량 활동 수업 시간에 활용하기 좋겠더라고요. 여러 장으로 나뉘어 있고, 한 장의 분량도 10~15쪽 정도여서 한 시간에 충분히 읽고 정리할 만했죠. 그리고 학교 마치는 시간에 남학생들이 학교 앞에 와서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경우도 많이 보게 돼요. 즉 아이들의 이성 교제가 일상적인 만큼 사랑과 성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는 각 장이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 장마다 독서 토론을 하기에 적합했다.
독서 토론 정리를 위한 기록지 활용
양향숙 교사는 한 반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40권의 책을 구입해 도서관에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책을 읽고 나서 정리할 수 있는 기록지 양식도 마련했다. 기록지에는 어떤 내용을 정리하도록 했을까?
“우선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점을 정리하게 했습니다. 두 번째는 더 얘기해 보고 싶은 것이나 같이 생각해 볼 문제를 적게 했고요.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정리해 보라고 했습니다. 여기 적은 것들을 다음 토론 수업에 활용했죠. 제가 사용한 기록지 양식은 전국국어교사모임의 자료집(10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 국어교육분과 자료집)에 있는 것을 빌려와서 응용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적은 기록지를 보면, 학생들은 매번 새로운 장을 읽을 때마다 알게 되는 것들에 호기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한편 긴 기간 동안 학생들을 이끄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고,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토론 첫 시간은 아이들이 입을 열지 않았어요. 여중생들이라 사랑과 성에 대해 호기심은 많지만 막상 밖으로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에 무척 주저하고 쑥스러워했죠. 교사가 먼저 이런저런 예를 들어주면서 이야기를 유도하면 따라오더라고요.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이 많이 생기면 작가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그랬더니 학생들이 책을 좀 더 꼼꼼히 읽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책에 재미를 붙인 학생들이 미리 읽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나중에는 토론 위주로 진행되었어요.”
독서 토론을 잇는 작가초청강연
양향숙 교사가 작가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한 약속은 실현되었다. 5월 23일, 항도여중 도서관으로 이남석 작가를 초청해 저자 강연회를 연 것이다. 여기에는 60여 명이 참여를 신청했다고 한다. 강연회 분위기가 어땠는지 들어보자.
“독서 토론 수업의 영향으로 다른 반 아이들도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를 찾아 읽게 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강연회 참가 신청을 했어요. 그리고 학부모와 동료 교사들도 신청하여 같이 듣게 되었죠. 이남석 선생님의 차분한 진행과 깊이 있는 내용, 그리고 작가에 대한 학생들의 호기심과 관심이 어울려 진지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작가님께 궁금한 것을 묻는 시간에는 너무 순진무구한 내용이 많아 민망하기도 했어요. 이를테면, “초코 우유를 먹으면 정말 가슴이 커지나요?”라는 질문도 있었죠. 그럼에도 이남석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질문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답변해 주셨어요.”
학생들은 “사귀던 친구가 마음이 바뀌면서 가슴이 아팠는데,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요?”,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사랑이 진짜인가요?”, “섹스를 하면 정말로 아픈가요?” 등 정말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독서 토론을 마치고…
학기를 마치며 독서 토론도 끝이 났다. 학생들의 소감은 어땠을까?
“일단 책 읽기를 따로 숙제로 내주지 않고, 수업 시간에 읽고 토론해서 마치니 좋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내용 면에서는, 보건 선생님께 배우는 성교육과 다른 관점에서 사랑과 성에 대해 생각해 보아 좋은 시간이었다는 반응이었고요. 그리고 예전에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랐는데, 이렇게 독서 토론을 하니까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다고 해요. 좀 더 주의 깊게 보게 되고, 스스로 요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읽게 되었다고도 하고요. 읽기 부분에서 변화가 생긴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독서 토론을 마친 교사의 소감은 어떨까? 한번 들어보자.
“독서 토론은 교사가 ‘이것이 정답이다.’ 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나름대로 정리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학기에는 이야기식 자유 토론을 위주로 했지만, 토론 기법을 좀 더 다양하게 시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독서 토론이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책을 읽게 하고, 또 스스로 다른 책을 찾아 읽게 하는 좋은 자극이 된 것 같습니다. 관심이 생긴 아이들은 스스로 작가의 다른 책이나 관련된 다른 책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또 학생들이 요청을 해서 참고할 만한 다른 책의 목록을 도서관 게시판에 붙여 두기도 했죠. 처음 시작할 때는 걱정과 두려움이 많았는데 경험을 통해서 좀 더 성장하는 것 같아요. 자꾸 하다보면 조금씩 업그레이드될 거라 기대해요.”
독서 토론을 제대로 하고 싶은 교사들도 많을 것이다. 또 학생들도 재미난 독서 토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숙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양향숙 교사의 시도가 현장에서 열심히 고민하고 실천하는 교사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는 방법을 배운 학생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게 되는 것은 글 쓰는 이만이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