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독일 마을 도서관은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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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4 18:14 조회 9,670회 댓글 0건본문
독일은 어느 구석을 가도 느낌이 비슷비슷하다. 크게 처진 곳도 튀게 잘난 곳도 없이
기본적으로 안정이 잡혀 있는 딴딴한 바위 같은 나라다. 그 안에 살고 있으면 깨지지
않을 든든한 보호막 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인 나는 종종 불
편함을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독일에서 생활하다 가끔 우리나라에 오게 되
면 정신을 못 차린다. 우리나라의 시계는 독일보다 빨리 돌아가나 보다 느낀다. 우리
나라와 비교하면 독일은 많은 것이 느리다. 신청한 뒤 6개월 만에 인터넷이 개통되고,
소파가 가구점에서 우리 집 거실에 자리 잡기까지 2개월이 걸린다. 그러면서도 할 것
다하고 사는 것 보면 신기할 뿐이다. 아니 더 많은 것을 하고 산다.
독일마을에는 꼭! 있다, 도서관
독일의 환경 아래서 내가 겪은 독일의 도서관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살이’다. 먹고,
자고, 입는 것만이 인간이 살기위한 기본적인 ‘살이’로 알았는데 독일에 와서 보니 도
서관도 ‘살이’가 된다. 도서관이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살이’이다. 의식주
가 그러하듯 꼭 필요하지만 그 존재가 튀지 않게 자연스런 존재로 어느 마을에나 한
곳에는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마다 정육점, 빵집, 카페, 꽃집, 마트, 세탁소, 버
스정류장 등이 있듯이 도서관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반드
시 있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지하철역에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역에 오며가며
바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옆 마을 Badsoden에는 도서관이 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60년대까지 목욕탕으로 쓰던 2층 건물을 개조해 박물관, 전시실과 함께 공간
을 나눠 쓰고 있다. 공원에 산책 나간 김에 책 한권 읽어볼까 하고 찾아가면 된다. 또 다
른 마을 Liederbach은 우리 가족이 첫 1년을 살았던 마을이기도 한데 공동주택건물의
1층 일부분을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 집 바로 아래가 이렇게 도서관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바깥에 들락날락 할 때마다 덩달아 도서관에도 들락날락 할 수 있으니…
사실 독일의 마을 단위에서 단독건물을 갖춘 그럴싸한 도서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위 세 마을
도서관 모두 서울의 시립도서관과 비교하면 규모나 장서량이 한참 밑돈다. 하지만 내가 살던 마을
의 인구는 만여 명 정도에 불과하고 마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30분이면 가 닿을 수 있는 크기다.
그러니 필요이상으로 덩치가 클필요는 없는 것이다. Badsoden의 인구는 내가 살던 마을의 2배인
2만여 명인데 위에 소개한 도서관말고도 도서관이 2개 더 있다. 이렇게 독일의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꼭 있다. 우리나라의 1개 공공도서관당 인구수가 77,000명인 것에 비
하면 가히 도서관 ‘살이’라 할만하다.
거기다 도서관 ‘살이’를 맘껏 누릴 수 있도록 대출권수도 제한하지 않는다. 내가 독일에서 방문한
근처 도서관 5곳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살던 Kriftel만 8권으로 제한하고 나머지 도서관은 맘껏
책을 빌려갈 수 있었다. 도서관천국임을 다시 실감했다.
마을이 함께 만들어가는 도서관
독일은 바로 옆 마을이라도 다르게 운영하는 것들이 많다. 쓰레기 처리 방법, 가족복지
나 학교지원 정도 등. 정말 지방분권이 확실히 되어 있는 나라다. 도서관도 마찬가지로
마을마다 운영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같은 마을 안의 도서관끼리도 다를 정도다.
위에 안내한 도서관은 모두 책읽어주기, 단체견학, 독서회 등 기본적인 서비스
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밖의 서비스는 도서관마다 많은 차이가 있다. 내가 경험
한 곳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은 Liederbach 도서관이다.
Liederbach은 인구가 8,700명 정도 되는 평범한 마을이다. 이곳의 도서관은 나에게 독
일에 대한 따뜻한 기억 하나를 만들어준 도서관이기도 하다.
독일 생활 초창기, 독일어도 몇 자 모르고 아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할 때인데도 나
름 도서관인이라고 도서관을 먼저 찾았다. 사서에게 더듬더듬 영어로 이것저것 물으
니 사서도 더듬더듬 영어로 답을 해 주는데, 결정적이고 세세한 것은 통하지가 않는
거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열심히 설명하던 그
사서, 잠깐 기다려 보라며 어딘가에 전화를 해서 독일어로 라 라 하더니 끊는다.
그러고는 어리벙벙 서있는 내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린다. 잠시 후 나타난 해결사,
다름 아닌 그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동네 주민인 한국인 교포 아줌마였다. 그 분은
내가 궁금한 모든 것을 우리말로 속 시원히 해결해 주었다. 정말 고마운 그 사서, 시원
해진 내 얼굴 표정을 보더니 이번엔 본인도 말끔해졌다는 표시로 내게 시원한 미소를
보낸다. 같은 한국인을 위해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나와 준 그 분도 고마웠지만 끝까
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준 낯선 땅의 그 사서가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그 사서 얼굴
은 잊었지만 미소가 빛나던 그 입가는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있다. 그 후로
Liederbach 도서관은 나에게 무조건 좋은 도서관이 되었다. 그런 사서들이 꾸려가는
도서관이라 그런지 Liederbach 도서관은 작은 규모에 비해 좋은 프로그램을 체계적
으로 진행하고 있다.
도서관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한 가지 테마를 정하여 관련된 책 함께 읽기, 미디어
자료 함께 보기, 그림전시, 콘서트, 강연회 등을 개최한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고 마을사람 사이에 일 년 내내 공통의 화
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동네 수의사가 직접 도서관에 와서 아이들과 동물에 대
해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 지역의 학교와 연계하여 동화작가나 배우를 초
대해 함께하는 책 낭독회 등도 개최하고 있다. 또 다른 흥미로운 행사로, 이웃 마을에
사는 진짜 형사가 도서관을 찾아오는 날이 있다. 10월의 어느 밤 도서관, 10~12살 아
이들은 이 형사와 함께 3시간 동안 흥미 있는 범죄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 모든 프로그램에는 마을의 유치원, 초등학교, 직장과의 연계를 중요하게 생각
하는 도서관의 의지가 담겨있다. 그리고 마을의 교사, 교육자는 독서활동을 위해 함
께 노력하는 도서관의 동반자라는 도서관의 생각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도서관이 이
런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면서 지역사회에서 더욱더 견고하고 깊게 뿌리내리게 되리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에 개관한 이 도서관은 개관 5년 만에(2005년 당시) 마을
커뮤니티의 중심에 꽉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느끼게 했다.
우리 가족이 이사하여 그 다음 살게 된 Kriftel 마을의 도서관은 Liederbach 도서관
에 비해 서비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른 도서관에 비해 특이한
것이 있다면 보드게임 자료를 많이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친구들끼
리 또는 가족끼리 보드게임을 많이 즐긴다. 그래서 보드게임이 당당하게 도서관 자료
로 취급되고 있다. 우리가족이 이 도서관에서 주로 대출한 것도 보드게임이었다. 대
출해온 게임 판을 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재미있게 한판 놀았던 거다.
그래도 나는 우리 도서관이 좋다
독일도서관에서 겪은 황당한 일화 하나를 떠올려 본다. 두 번째로 살게 된 마을 Kriftel
에서 이삿짐이 웬만큼 정리되고 애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나니 오랜만에 나만의 한가
한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도서관을 찾았다. 문을 여는데 문이 안 열린다. 문에 붙어있
는 개관시간 안내를 슬쩍 보니 하필 문을 닫는 날(Montag)이다. ‘이런, 월요일이 문을
안 여는 날이네’ 하고는 돌아왔다.
다시 한가한 시간이 생긴 월요일이 아닌 어느 평일 오전에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
관 문을 여는데, 이런! 또 문이 안 열린다. 문이 좀 뻑뻑한가 싶어 힘껏 밀어본다. 그래
도 안 열린다. 다시 문에 붙어있는 문구를 확인한다. 이런 수요일(Mittwoch)은 오후만
문을 연다. 안되겠다 싶어 들고 있던 디카로 개관시간 안내문을 찍어놓았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라.
세 번째로 도서관을 찾았다. ‘마침내 오늘 도서관과 만나는 구나’하고 문을 여는데 또 문이 안 열
린다. 요일, 시간 모두 맞는데 도대체 왜? 살펴보니 개관시간 안내문 아래 또 다른 안내문이 새로 하나
붙어있다. 여름휴가로 2주간 문을 닫는단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도서관 만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익숙한 독일 사람들은 불편을 안 느낄지 모르지만 나는 몇 번
의 헛걸음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마구 솟구쳤다. 그 순간 주말도 문을 열고 평일에도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한국의 도서관이 어찌나 사무치게 생각나던지.
억울하고 분한 맘이 좀 삭혀지고 다시 도서관을 찾아 회원증도 만들고 이용하게
되면서 나도 독일의 시계에 적응하면서 살아야지 했다. 그리고 속내는 어느 마을에서
나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가볍게 찾아가 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독일의 환경이 부러
웠다.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도서관 생활 5개월을 넘기고 있다. 오늘도 묻어날 듯
진한 여름 초록으로 가득한 도서관 마당을 지나 책으로 아이들과 노는 나의 직장, 개
포도서관 어린이실로 들어선다. 한참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도서관에서는 많은
것이 새로 보인다. 독일 도서관에는 없고 우리에겐 있는 모습은 무엇인지, 우리가 부
족한 것은 무엇인지.
독일의 도서관을 따라가려면 우리 도서관은 문턱을 많이 낮춰야 한다. 집 앞 구멍
가게 가듯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턱으로 높이를 조정해야 한다. 제재보다는 허
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서관, 도서관 관리보다 지역주민의 편의를 우선하는 도서
관, 그리고 무엇보다 도서관 문을 나서는 사람들 정서에 따뜻함과 뿌듯함을 담아줄
수 있는 도서관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없던 5년 동안 우리 도서관이 많이 성장했다. 양적인 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간의 많은 도서관 변화를 따라잡으려니 숨이 찰 정도다. 그렇게 쑤욱 들어와 본 지
금의 우리 도서관에선 한창 청년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힘찬 숨을 만들어 내고 있는
역동이 느껴진다. 이렇게 뿜어져 나오는 지금의 힘찬 기운들이 무모한 열정으로 그치
지 않도록, 우리 도서관의 정체성에 제대로 맞춘 방향키를 놓치지 말라고 사서인 나
에게 당부한다.
기본적으로 안정이 잡혀 있는 딴딴한 바위 같은 나라다. 그 안에 살고 있으면 깨지지
않을 든든한 보호막 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인 나는 종종 불
편함을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독일에서 생활하다 가끔 우리나라에 오게 되
면 정신을 못 차린다. 우리나라의 시계는 독일보다 빨리 돌아가나 보다 느낀다. 우리
나라와 비교하면 독일은 많은 것이 느리다. 신청한 뒤 6개월 만에 인터넷이 개통되고,
소파가 가구점에서 우리 집 거실에 자리 잡기까지 2개월이 걸린다. 그러면서도 할 것
다하고 사는 것 보면 신기할 뿐이다. 아니 더 많은 것을 하고 산다.
독일마을에는 꼭! 있다, 도서관
독일의 환경 아래서 내가 겪은 독일의 도서관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살이’다. 먹고,
자고, 입는 것만이 인간이 살기위한 기본적인 ‘살이’로 알았는데 독일에 와서 보니 도
서관도 ‘살이’가 된다. 도서관이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살이’이다. 의식주
가 그러하듯 꼭 필요하지만 그 존재가 튀지 않게 자연스런 존재로 어느 마을에나 한
곳에는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마다 정육점, 빵집, 카페, 꽃집, 마트, 세탁소, 버
스정류장 등이 있듯이 도서관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반드
시 있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지하철역에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역에 오며가며
바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옆 마을 Badsoden에는 도서관이 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60년대까지 목욕탕으로 쓰던 2층 건물을 개조해 박물관, 전시실과 함께 공간
을 나눠 쓰고 있다. 공원에 산책 나간 김에 책 한권 읽어볼까 하고 찾아가면 된다. 또 다
른 마을 Liederbach은 우리 가족이 첫 1년을 살았던 마을이기도 한데 공동주택건물의
1층 일부분을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 집 바로 아래가 이렇게 도서관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바깥에 들락날락 할 때마다 덩달아 도서관에도 들락날락 할 수 있으니…
사실 독일의 마을 단위에서 단독건물을 갖춘 그럴싸한 도서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위 세 마을
도서관 모두 서울의 시립도서관과 비교하면 규모나 장서량이 한참 밑돈다. 하지만 내가 살던 마을
의 인구는 만여 명 정도에 불과하고 마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30분이면 가 닿을 수 있는 크기다.
그러니 필요이상으로 덩치가 클필요는 없는 것이다. Badsoden의 인구는 내가 살던 마을의 2배인
2만여 명인데 위에 소개한 도서관말고도 도서관이 2개 더 있다. 이렇게 독일의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꼭 있다. 우리나라의 1개 공공도서관당 인구수가 77,000명인 것에 비
하면 가히 도서관 ‘살이’라 할만하다.
거기다 도서관 ‘살이’를 맘껏 누릴 수 있도록 대출권수도 제한하지 않는다. 내가 독일에서 방문한
근처 도서관 5곳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살던 Kriftel만 8권으로 제한하고 나머지 도서관은 맘껏
책을 빌려갈 수 있었다. 도서관천국임을 다시 실감했다.
마을이 함께 만들어가는 도서관
독일은 바로 옆 마을이라도 다르게 운영하는 것들이 많다. 쓰레기 처리 방법, 가족복지
나 학교지원 정도 등. 정말 지방분권이 확실히 되어 있는 나라다. 도서관도 마찬가지로
마을마다 운영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같은 마을 안의 도서관끼리도 다를 정도다.
위에 안내한 도서관은 모두 책읽어주기, 단체견학, 독서회 등 기본적인 서비스
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밖의 서비스는 도서관마다 많은 차이가 있다. 내가 경험
한 곳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은 Liederbach 도서관이다.
Liederbach은 인구가 8,700명 정도 되는 평범한 마을이다. 이곳의 도서관은 나에게 독
일에 대한 따뜻한 기억 하나를 만들어준 도서관이기도 하다.
독일 생활 초창기, 독일어도 몇 자 모르고 아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할 때인데도 나
름 도서관인이라고 도서관을 먼저 찾았다. 사서에게 더듬더듬 영어로 이것저것 물으
니 사서도 더듬더듬 영어로 답을 해 주는데, 결정적이고 세세한 것은 통하지가 않는
거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열심히 설명하던 그
사서, 잠깐 기다려 보라며 어딘가에 전화를 해서 독일어로 라 라 하더니 끊는다.
그러고는 어리벙벙 서있는 내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린다. 잠시 후 나타난 해결사,
다름 아닌 그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동네 주민인 한국인 교포 아줌마였다. 그 분은
내가 궁금한 모든 것을 우리말로 속 시원히 해결해 주었다. 정말 고마운 그 사서, 시원
해진 내 얼굴 표정을 보더니 이번엔 본인도 말끔해졌다는 표시로 내게 시원한 미소를
보낸다. 같은 한국인을 위해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나와 준 그 분도 고마웠지만 끝까
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준 낯선 땅의 그 사서가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그 사서 얼굴
은 잊었지만 미소가 빛나던 그 입가는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있다. 그 후로
Liederbach 도서관은 나에게 무조건 좋은 도서관이 되었다. 그런 사서들이 꾸려가는
도서관이라 그런지 Liederbach 도서관은 작은 규모에 비해 좋은 프로그램을 체계적
으로 진행하고 있다.
도서관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한 가지 테마를 정하여 관련된 책 함께 읽기, 미디어
자료 함께 보기, 그림전시, 콘서트, 강연회 등을 개최한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고 마을사람 사이에 일 년 내내 공통의 화
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동네 수의사가 직접 도서관에 와서 아이들과 동물에 대
해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 지역의 학교와 연계하여 동화작가나 배우를 초
대해 함께하는 책 낭독회 등도 개최하고 있다. 또 다른 흥미로운 행사로, 이웃 마을에
사는 진짜 형사가 도서관을 찾아오는 날이 있다. 10월의 어느 밤 도서관, 10~12살 아
이들은 이 형사와 함께 3시간 동안 흥미 있는 범죄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 모든 프로그램에는 마을의 유치원, 초등학교, 직장과의 연계를 중요하게 생각
하는 도서관의 의지가 담겨있다. 그리고 마을의 교사, 교육자는 독서활동을 위해 함
께 노력하는 도서관의 동반자라는 도서관의 생각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도서관이 이
런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면서 지역사회에서 더욱더 견고하고 깊게 뿌리내리게 되리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에 개관한 이 도서관은 개관 5년 만에(2005년 당시) 마을
커뮤니티의 중심에 꽉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느끼게 했다.
우리 가족이 이사하여 그 다음 살게 된 Kriftel 마을의 도서관은 Liederbach 도서관
에 비해 서비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른 도서관에 비해 특이한
것이 있다면 보드게임 자료를 많이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친구들끼
리 또는 가족끼리 보드게임을 많이 즐긴다. 그래서 보드게임이 당당하게 도서관 자료
로 취급되고 있다. 우리가족이 이 도서관에서 주로 대출한 것도 보드게임이었다. 대
출해온 게임 판을 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재미있게 한판 놀았던 거다.
그래도 나는 우리 도서관이 좋다
독일도서관에서 겪은 황당한 일화 하나를 떠올려 본다. 두 번째로 살게 된 마을 Kriftel
에서 이삿짐이 웬만큼 정리되고 애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나니 오랜만에 나만의 한가
한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도서관을 찾았다. 문을 여는데 문이 안 열린다. 문에 붙어있
는 개관시간 안내를 슬쩍 보니 하필 문을 닫는 날(Montag)이다. ‘이런, 월요일이 문을
안 여는 날이네’ 하고는 돌아왔다.
다시 한가한 시간이 생긴 월요일이 아닌 어느 평일 오전에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
관 문을 여는데, 이런! 또 문이 안 열린다. 문이 좀 뻑뻑한가 싶어 힘껏 밀어본다. 그래
도 안 열린다. 다시 문에 붙어있는 문구를 확인한다. 이런 수요일(Mittwoch)은 오후만
문을 연다. 안되겠다 싶어 들고 있던 디카로 개관시간 안내문을 찍어놓았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라.
세 번째로 도서관을 찾았다. ‘마침내 오늘 도서관과 만나는 구나’하고 문을 여는데 또 문이 안 열
린다. 요일, 시간 모두 맞는데 도대체 왜? 살펴보니 개관시간 안내문 아래 또 다른 안내문이 새로 하나
붙어있다. 여름휴가로 2주간 문을 닫는단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도서관 만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익숙한 독일 사람들은 불편을 안 느낄지 모르지만 나는 몇 번
의 헛걸음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마구 솟구쳤다. 그 순간 주말도 문을 열고 평일에도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한국의 도서관이 어찌나 사무치게 생각나던지.
억울하고 분한 맘이 좀 삭혀지고 다시 도서관을 찾아 회원증도 만들고 이용하게
되면서 나도 독일의 시계에 적응하면서 살아야지 했다. 그리고 속내는 어느 마을에서
나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가볍게 찾아가 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독일의 환경이 부러
웠다.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도서관 생활 5개월을 넘기고 있다. 오늘도 묻어날 듯
진한 여름 초록으로 가득한 도서관 마당을 지나 책으로 아이들과 노는 나의 직장, 개
포도서관 어린이실로 들어선다. 한참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도서관에서는 많은
것이 새로 보인다. 독일 도서관에는 없고 우리에겐 있는 모습은 무엇인지, 우리가 부
족한 것은 무엇인지.
독일의 도서관을 따라가려면 우리 도서관은 문턱을 많이 낮춰야 한다. 집 앞 구멍
가게 가듯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턱으로 높이를 조정해야 한다. 제재보다는 허
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서관, 도서관 관리보다 지역주민의 편의를 우선하는 도서
관, 그리고 무엇보다 도서관 문을 나서는 사람들 정서에 따뜻함과 뿌듯함을 담아줄
수 있는 도서관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없던 5년 동안 우리 도서관이 많이 성장했다. 양적인 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간의 많은 도서관 변화를 따라잡으려니 숨이 찰 정도다. 그렇게 쑤욱 들어와 본 지
금의 우리 도서관에선 한창 청년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힘찬 숨을 만들어 내고 있는
역동이 느껴진다. 이렇게 뿜어져 나오는 지금의 힘찬 기운들이 무모한 열정으로 그치
지 않도록, 우리 도서관의 정체성에 제대로 맞춘 방향키를 놓치지 말라고 사서인 나
에게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