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도서관, ‘스스로’와 ‘함께’의 뜻을 가르쳐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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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3 16:23 조회 8,132회 댓글 0건본문
비가 들렸다. 멀리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길가에 도서관 하나, 비를 피하라고 있는 걸까?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은 너그럽게 서 있었다.
아이들은 도서관의 주인
더러는 도서관이 비를 피하러 온 사람들이 마주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도서관 입구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길 저편의 구름을 지그시 바라보며 비를 피하고 있었다. 곧 출발할 마을순환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마을 청년처럼 인사를 하고 도서관에 대해 물었다.
연세가 여든이신 황정연 할아버지는 “도서관 참 잘 해놓았다. 마을 아이들이 와서 놀기도 하고 책도 본다. 또‘어머니 학교’ 학생들도 자주 와서 책도 읽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라며 도서관을 칭찬했다. 기특한 도서관이구나 싶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려 몸을 돌리니 두 아이가 현관에 앉아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귀여운 문지기들을 통과해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관장님은 외출 중이었고, 사서 선생님의 반가운 인사를 받고 도서관을 둘러봤다. 밝고 아담한 도서관 곳곳에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작은 강당과 같은 넓은 방 안에서 엎드린 채로 만들기에푹 빠진 아이, 책장에 기대어 책에 몰두하는 아이,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저희들만의 유쾌한 이야기로 웃고 있는 아이들 등. 어른들도 보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누르던 어머니와 책장과 책장 사이 책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읽기에 취한 어른이 보였다.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사진을 찍다가 한 아이에게 딱 걸렸다. 아이는 “왜 찍어요?”라고 외치며 빠르게 다가오더니, 발길질을 한다. 매서운 일격에 당황하며 주춤하는 사이 참 많은 생각이 스쳤다.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며 되뇌었다. ‘잘못했구나.’ 아이들은 도서관의 주인이었다. 아이들은 도서관을 집처럼 편하게 여기며, 저마다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도서관은 문턱을 없애고 마을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인연을 통한 나눔과 열림의 복합 문화공간
이방인이 방문한 목적을 설명하고 다시 시선을 옮겼다. 만들기를 마친 7살 영근이가 자동차라며 만든 것을 보여주는 데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어린 아이들이 점차 집중력의 바닥을 드러내며 놀이를 하거나 떠들기 시작했다. 도서관인데 침묵으로 가득차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조용해야 하지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불러 모아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 사이 짧았지만 소란함 속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공부하고 있던 안남초 6학년 영빈이에게 다가가 도서관에 대해 물어봤다. “도서관에는 주로 숙제를 하거나 책을 보러 오는데, 친구들과 놀기도 해요. 학교도서관은 뛰어 놀지 못하는데 여기는 자유로운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이어 도서관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많지는 않지만,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꾸준하게 진행돼요. 저는 사진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가르쳐 주고, 사람들이 함께 찍으러 다니니까 재밌어요.”라고 밝혔다.
문득 어린이 도서관이 아닌가하는 내생각을 읽었는지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뒤에 만난 슈퍼를 운영하는 김현자 도서관운영위원이 의견을 보탰다. “도서관 가서 마음으로 느끼는 게 더 큰 거 같아요. 어른들도 시골에서 있다 보면 책을 읽을 기회가 없잖아요. 도서관 가서 책 표지만 봐도 책이 이런 게 있구나 싶고, 보기만 해도 흐뭇한 거 같아요. 아이들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는 도서관 가라고 하면 책 읽기 싫어서 가기 싫어했는데, 요즘엔 늘 가 있어요.”
배바우도서관은 비록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외출하고 돌아온 주교종 관장에게 들었다. 주 관장은 “도서관 관련 전문 지식이 없고,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할만한 충분한 예산이 없습니다. 형편이 되는 대로 마을 사람들끼리 편하게 하는 것이라 체계적이지 못해요. 인연이 닿아서 프로그램을 진행을 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천체 관측도 천문 관측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는 읍내의 한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서 하게 됐다. 뜨개질도 하는데, 읍내에서 뜨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저녁에 방문해 주민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뜨개질도 한다.
종이접기도 학원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이 가르쳐주고, 책읽어주기의 경우 보육교사가 와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 이밖에 사진 동아리, 어린이 주말 농장, 서예 등과 외부 단체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인문학 강좌, 초등학교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이렇게 배바우도서관은 마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하고자 하는 열의를 보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활동은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배움은 재활용되고 더욱 커진다. 욕심 부리지 않는 도서관 활동은 그저 알차고 넉넉하다.
안남면다운 자치활동을 잇다
궁금해졌다. 옥천군에서도 제일 작은 면이라는 농촌 마을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도, 내실 있게 꾸려지는 것도. 대부분의 농촌 마을은 문화 공간도 부족하고 교육 여건도 좋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러한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지만 역시 방법이 문제다. 이러한 상황은 안남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어떻게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안남면에는 오래전부터 바람이 불고 있었다. ‘스스로’와 ‘함께’라는 바람이 유행처럼. 안남면에는 주민 자치 활동이 다양하게 펼쳐져 오고 있었다. 1990년대 초부터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권리를 찾고자 했던 농민회의 활동이 있어왔고, 2002년에 주민자치센터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어 활동이 더욱 본격화 되었다. 2002년에는 주민들이 함께 꾸미고 참여하는 ‘안남면민과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가 처음 열렸고, 2003년에는 마을의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들에게 배움을 안기는 ‘안남 어머니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외에 안남면 열두 개 마을이 협력해 돌탑을 쌓고 면민안녕기원제도 지냈고, 정기적으로 체육대회도 하는 등 크고 작은 활동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마을순환버스도 운행하게 되었다. 도서관 운영은 이러한 자치 활동의 한 갈래로서 교육 문화 자치의 실천 가능성으로 절실하게 다가온 것이다. 지역 전체 속에 도서관이 자리 잡고 함께 바꾸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옥천신문의 한 기자가 작은 도서관을 지어주는 공모에 관련해 정보를 줬어요. 사업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나서서 추진할 사람과 부지가 있어야만 했죠. 당장 땅도 사람도 없었지만, 땅은 안남농협에서 지원해줬고, 도서관의 운영 가능 여부에 대해 마을의 여러 분들과 회의를 갖고, 10여 명 정도의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안남면 작은도서관 설립추진위’를 결성했어요.”라는 주교종 관장의 말과 같이 배바우도서관은 2007년 국립중앙도서관과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지원금, 안남농협의 부지 지원, 주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만들어졌다. 도서관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따른다. 쉽지않은 일이지만 안남면다운 주민 자치의 힘으로 가능성을 키웠다.
“없는 것이 생기는 것이라 어려움이 많았어요. 도서관 건립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죠. 학생이적고, 책 볼 사람도 별로 없는데 뭐 하러 도서관을 만드느냐며 미덥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 정도였고, 그동안 자치적으로 많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 정도였어요. 우리만 좋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같이 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했죠. 도서관설립추진위원회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것으로 했는데, 도서관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만들어지고 나서도 잘 지켜졌어요. 도서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뿐이라 도서관 관련 책도 많이 보고, 다른 도서관에 견학도 여러 번 갔어요.” 만일 외부 단체에서 도서관을 번듯하게 만들어 주었다면, 이렇게 잘 운영될 수 있었을까? 주민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만든 도서관이기에 더욱 관심 갖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도서관은 전진한다
어느덧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 주교종 관장은 끊이지 않는 질문에도 차근차근 꼼꼼히 답변을 해주었다.
주관장은 지역 발전을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었을 뿐, 도서관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다고 한다. 여러 도서관 찾아다니며 조언도 얻고, 많이 배우면서 도서관의 형태를 갖춰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도서관에 꾸준히 머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했고, 도서관 운영비를 마련해야 했다. 주관장은 “후원하시는 분들 100여 명이 있는데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도서관이 운영이 안 됐을 겁니다.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돈이 있어서 그나마 된거죠. 시골에서는 쉽지 않은 돈인데, 고맙죠. 이런 도움에도 살림살이가 빠듯해요.”라고 밝혔다. 몇몇 어려움 속에서도 배바우도서관은 나름의 가치를 이어가며 큰 흔들림 없이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도서관. 닫힌 도서관이 어디 있겠냐 하겠지만, 배바우도서관에서는 마을 주민이 아니더라도 회원카드만 있으면 누구나 책을 빌릴 수 있다.
반납은 빌리는 사람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다. 또한 되도록 책 기증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주 관장은 “책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도서관은 작은데 잘 읽지않는 책으로 채우기 보다는, 읽는 책으로 채우려 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읽고 싶어 하거나 필요로 하는 도서를 되도록 신간으로 서가에 세워 놓기로 했어요.”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이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이유이리라.
그리움을 닮은 도서관
이야기 중간 중간에 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옆에서 장난을 친다. 점점 어두워지는데 아이들은 왜 집에 돌아가지 않는 걸까. 이곳의 아이들, 특히 유아나 학교에 갓 들어간 학생의 대부분은 다문화 가정이거나 조손가정이란다. 집에 가도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도서관에 와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처지가 비슷하니까 구분이 없단다. 다 똑같으니까 ‘엄마 없는 아이’ 이런 게 없단다.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밝고 명랑하기만 해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길을 나서기 전에 주교종 관장이 밑줄을 건넸다. 어느 책에도 쓰여 있지 않은 살아있는 몇 줄을.
“마을에 활력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도서관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가 덜 늙고 덜 우중충해지도록 만들 수 있기를 바라지요. 이런 아이들이 커서 30년 후에 이 지역에서 일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나와 주면 이 도서관의 역할은 충분해요. 여기서 이렇게 노는 아이들이 장난만 치고 엉망인 것 같지만 나름대로 책 다 읽고, 책제목도 다 알아요. 이런 아이들이 자연과 어우러지고, 도서관에서 형 누나 동생들과 사이좋게 놀던 기억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따뜻하고 행복한 추억이 돼서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도서관의 주인
더러는 도서관이 비를 피하러 온 사람들이 마주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도서관 입구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길 저편의 구름을 지그시 바라보며 비를 피하고 있었다. 곧 출발할 마을순환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마을 청년처럼 인사를 하고 도서관에 대해 물었다.
연세가 여든이신 황정연 할아버지는 “도서관 참 잘 해놓았다. 마을 아이들이 와서 놀기도 하고 책도 본다. 또‘어머니 학교’ 학생들도 자주 와서 책도 읽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라며 도서관을 칭찬했다. 기특한 도서관이구나 싶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려 몸을 돌리니 두 아이가 현관에 앉아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귀여운 문지기들을 통과해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관장님은 외출 중이었고, 사서 선생님의 반가운 인사를 받고 도서관을 둘러봤다. 밝고 아담한 도서관 곳곳에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작은 강당과 같은 넓은 방 안에서 엎드린 채로 만들기에푹 빠진 아이, 책장에 기대어 책에 몰두하는 아이,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저희들만의 유쾌한 이야기로 웃고 있는 아이들 등. 어른들도 보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누르던 어머니와 책장과 책장 사이 책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읽기에 취한 어른이 보였다.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사진을 찍다가 한 아이에게 딱 걸렸다. 아이는 “왜 찍어요?”라고 외치며 빠르게 다가오더니, 발길질을 한다. 매서운 일격에 당황하며 주춤하는 사이 참 많은 생각이 스쳤다.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며 되뇌었다. ‘잘못했구나.’ 아이들은 도서관의 주인이었다. 아이들은 도서관을 집처럼 편하게 여기며, 저마다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도서관은 문턱을 없애고 마을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인연을 통한 나눔과 열림의 복합 문화공간
이방인이 방문한 목적을 설명하고 다시 시선을 옮겼다. 만들기를 마친 7살 영근이가 자동차라며 만든 것을 보여주는 데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어린 아이들이 점차 집중력의 바닥을 드러내며 놀이를 하거나 떠들기 시작했다. 도서관인데 침묵으로 가득차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조용해야 하지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불러 모아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 사이 짧았지만 소란함 속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공부하고 있던 안남초 6학년 영빈이에게 다가가 도서관에 대해 물어봤다. “도서관에는 주로 숙제를 하거나 책을 보러 오는데, 친구들과 놀기도 해요. 학교도서관은 뛰어 놀지 못하는데 여기는 자유로운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이어 도서관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많지는 않지만,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꾸준하게 진행돼요. 저는 사진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가르쳐 주고, 사람들이 함께 찍으러 다니니까 재밌어요.”라고 밝혔다.
문득 어린이 도서관이 아닌가하는 내생각을 읽었는지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뒤에 만난 슈퍼를 운영하는 김현자 도서관운영위원이 의견을 보탰다. “도서관 가서 마음으로 느끼는 게 더 큰 거 같아요. 어른들도 시골에서 있다 보면 책을 읽을 기회가 없잖아요. 도서관 가서 책 표지만 봐도 책이 이런 게 있구나 싶고, 보기만 해도 흐뭇한 거 같아요. 아이들 같은 경우에도 처음에는 도서관 가라고 하면 책 읽기 싫어서 가기 싫어했는데, 요즘엔 늘 가 있어요.”
배바우도서관은 비록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외출하고 돌아온 주교종 관장에게 들었다. 주 관장은 “도서관 관련 전문 지식이 없고,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할만한 충분한 예산이 없습니다. 형편이 되는 대로 마을 사람들끼리 편하게 하는 것이라 체계적이지 못해요. 인연이 닿아서 프로그램을 진행을 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천체 관측도 천문 관측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는 읍내의 한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서 하게 됐다. 뜨개질도 하는데, 읍내에서 뜨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저녁에 방문해 주민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뜨개질도 한다.
종이접기도 학원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이 가르쳐주고, 책읽어주기의 경우 보육교사가 와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 이밖에 사진 동아리, 어린이 주말 농장, 서예 등과 외부 단체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인문학 강좌, 초등학교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이렇게 배바우도서관은 마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하고자 하는 열의를 보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활동은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배움은 재활용되고 더욱 커진다. 욕심 부리지 않는 도서관 활동은 그저 알차고 넉넉하다.
안남면다운 자치활동을 잇다
궁금해졌다. 옥천군에서도 제일 작은 면이라는 농촌 마을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도, 내실 있게 꾸려지는 것도. 대부분의 농촌 마을은 문화 공간도 부족하고 교육 여건도 좋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러한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지만 역시 방법이 문제다. 이러한 상황은 안남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어떻게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안남면에는 오래전부터 바람이 불고 있었다. ‘스스로’와 ‘함께’라는 바람이 유행처럼. 안남면에는 주민 자치 활동이 다양하게 펼쳐져 오고 있었다. 1990년대 초부터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권리를 찾고자 했던 농민회의 활동이 있어왔고, 2002년에 주민자치센터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어 활동이 더욱 본격화 되었다. 2002년에는 주민들이 함께 꾸미고 참여하는 ‘안남면민과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가 처음 열렸고, 2003년에는 마을의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들에게 배움을 안기는 ‘안남 어머니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외에 안남면 열두 개 마을이 협력해 돌탑을 쌓고 면민안녕기원제도 지냈고, 정기적으로 체육대회도 하는 등 크고 작은 활동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마을순환버스도 운행하게 되었다. 도서관 운영은 이러한 자치 활동의 한 갈래로서 교육 문화 자치의 실천 가능성으로 절실하게 다가온 것이다. 지역 전체 속에 도서관이 자리 잡고 함께 바꾸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옥천신문의 한 기자가 작은 도서관을 지어주는 공모에 관련해 정보를 줬어요. 사업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나서서 추진할 사람과 부지가 있어야만 했죠. 당장 땅도 사람도 없었지만, 땅은 안남농협에서 지원해줬고, 도서관의 운영 가능 여부에 대해 마을의 여러 분들과 회의를 갖고, 10여 명 정도의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안남면 작은도서관 설립추진위’를 결성했어요.”라는 주교종 관장의 말과 같이 배바우도서관은 2007년 국립중앙도서관과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지원금, 안남농협의 부지 지원, 주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만들어졌다. 도서관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따른다. 쉽지않은 일이지만 안남면다운 주민 자치의 힘으로 가능성을 키웠다.
“없는 것이 생기는 것이라 어려움이 많았어요. 도서관 건립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죠. 학생이적고, 책 볼 사람도 별로 없는데 뭐 하러 도서관을 만드느냐며 미덥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 정도였고, 그동안 자치적으로 많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 정도였어요. 우리만 좋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같이 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했죠. 도서관설립추진위원회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것으로 했는데, 도서관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만들어지고 나서도 잘 지켜졌어요. 도서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뿐이라 도서관 관련 책도 많이 보고, 다른 도서관에 견학도 여러 번 갔어요.” 만일 외부 단체에서 도서관을 번듯하게 만들어 주었다면, 이렇게 잘 운영될 수 있었을까? 주민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만든 도서관이기에 더욱 관심 갖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도서관은 전진한다
어느덧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 주교종 관장은 끊이지 않는 질문에도 차근차근 꼼꼼히 답변을 해주었다.
주관장은 지역 발전을 위한 활동을 해오고 있었을 뿐, 도서관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다고 한다. 여러 도서관 찾아다니며 조언도 얻고, 많이 배우면서 도서관의 형태를 갖춰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도서관에 꾸준히 머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했고, 도서관 운영비를 마련해야 했다. 주관장은 “후원하시는 분들 100여 명이 있는데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도서관이 운영이 안 됐을 겁니다.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돈이 있어서 그나마 된거죠. 시골에서는 쉽지 않은 돈인데, 고맙죠. 이런 도움에도 살림살이가 빠듯해요.”라고 밝혔다. 몇몇 어려움 속에서도 배바우도서관은 나름의 가치를 이어가며 큰 흔들림 없이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도서관. 닫힌 도서관이 어디 있겠냐 하겠지만, 배바우도서관에서는 마을 주민이 아니더라도 회원카드만 있으면 누구나 책을 빌릴 수 있다.
반납은 빌리는 사람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다. 또한 되도록 책 기증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주 관장은 “책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도서관은 작은데 잘 읽지않는 책으로 채우기 보다는, 읽는 책으로 채우려 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읽고 싶어 하거나 필요로 하는 도서를 되도록 신간으로 서가에 세워 놓기로 했어요.”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이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이유이리라.
그리움을 닮은 도서관
이야기 중간 중간에 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옆에서 장난을 친다. 점점 어두워지는데 아이들은 왜 집에 돌아가지 않는 걸까. 이곳의 아이들, 특히 유아나 학교에 갓 들어간 학생의 대부분은 다문화 가정이거나 조손가정이란다. 집에 가도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도서관에 와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처지가 비슷하니까 구분이 없단다. 다 똑같으니까 ‘엄마 없는 아이’ 이런 게 없단다.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밝고 명랑하기만 해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길을 나서기 전에 주교종 관장이 밑줄을 건넸다. 어느 책에도 쓰여 있지 않은 살아있는 몇 줄을.
“마을에 활력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도서관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가 덜 늙고 덜 우중충해지도록 만들 수 있기를 바라지요. 이런 아이들이 커서 30년 후에 이 지역에서 일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나와 주면 이 도서관의 역할은 충분해요. 여기서 이렇게 노는 아이들이 장난만 치고 엉망인 것 같지만 나름대로 책 다 읽고, 책제목도 다 알아요. 이런 아이들이 자연과 어우러지고, 도서관에서 형 누나 동생들과 사이좋게 놀던 기억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따뜻하고 행복한 추억이 돼서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