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활용수업 [학교도서관협력수업 초등] 문해력을 키우는 '기획 독서'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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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12-01 15:22 조회 3,043회 댓글 0건본문
문해력을 키우는
'기획 독서' 수업
정보활용교육에 한 권 읽기를 더하다
강은영 광명 안서초 사서교사
조사 학습의 출발은 주제를 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무엇을 조사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동안 교과서를 살피고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 이걸 궁금해서 찾고 있을까? 수동적으로 주어진 주제, 단순 나열된 항목 채우기 같은 방식의 조사 학습으로 ‘배움’이 이루어질까?
이런 고민은 2018년 교육부에서 실시한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한
학기 한 권 읽기’(이하 한 권 읽기) 원격직무 연수를 들으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 연수는 그간 현장에서 해 왔던 다양한 사례를 보여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중 유독 최재천 교수님의 강의가 인상 깊었다. 최 교수님은 미래 사회에선 평생 직업 개념이 사라지고, 우리 아이들은
평생 동안 적게는 세 가지, 많게는 여덟 가지에 이르는 일들을 하게 될 거라고 내다 보셨고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으려면 ‘기획 독서’를
많이 하라고 하셨다. 가벼운 독서보다는 모르는 분야에 대한 다소 전문적인 책을 읽으며 머리에 쥐가 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의에서 착안해서 시작한 비문학 기획 독서 수업을 매해 실천하고 있다. 실행과 보완을 통한 수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수업 준비
매년 2월 말, 학교는 당해 연도 교육과정을 계획한다. 사서교사의 연간 수업 계획도 이때 윤곽을 잡는데, 대개 그 순서는 6학년 기획 독서 > 5학년 뉴스 리터러시 수업 > 그림책 활용수업(전체)으로 이뤄진다. 우선 6학년 부장선생님과 만나 국어(사회) 교과와 연계하여 진행하는 기획 독서에 관해 설명한다. 국어 선생님에게 수업에 관해 소개할 때 국어과 독서 단원을 익힐 수 있는 것은 물론, 사회 여러 현상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볼 수 있으므로 사회과와도 연계해 온 수업임을 밝힌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선생님들께 수업 참관을 부탁드린다. 물론, 참관 후에는 더 나은 수업을 위한 피드백을 요구한다. 선생님들께서는 관련 조언도 해 주시지만 대체로 두 가지로 반응하신다. 차분하게 책 읽는 아이들 그리고 교과 수업 적용에 관한 감탄. 특히, 6-2 사회 1단원 ‘세계 여러 나라의 자연과 문화’를 가르칠 때 아이들이 기획 독서 수업 시간에 읽었던 책을 토대로 토론하는 학급도 있었다.
첫째, 주제도서 선정
수업에 앞서 사서교사는 읽을 책과 활동지를 준비한다. 수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책 선정이다. 사회 문제를 다룬 책 가운데서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익힐 수 있는 다소 전문적인 책으로 정해야 한다. 도서실 서가를 둘러 보고 바로 답이 나왔다. 분량도 적당하고 내용도 좋지만 좀처럼 딱딱한 보도문 형식이라 아이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책.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교양’ 시리즈(이하 세더잘). 내인생의책 출판사에서 만드는 이 책은 2020년 기준으로 85권까지 나왔다.
기획 독서의 대상 도서인 ‘세더잘’ 시리즈는 6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어려울 수 있지만, 수업 시간에 함께 읽기에는 적합하다. 문제는 책 읽는 것 자체를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아이를 수업으로 잘 이끄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 전체를 책 읽기만으로 보낸 경험이 거의 없다(필자가 보기에는 그
렇다. 읽기 활동을 짧게 병행하는 경우는 많지만 수업 시간을 오롯이 책 읽기로 채우는 경우는 드물다). 수업 시간에 뭘 해도 심드렁한 아이도 종종 있다. 기획
독서가 고역인 아이들을 위해 주제도서로 조금 더 쉬운 책을 선택지에 넣었다. 풀빛출판사에서 나온 ‘세계 시민 수업’ 시리즈이다. 주제에 관해 인물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듯이 구성이 이뤄져 있고 초등 중학년 이상부터 읽기 적절하다. ‘세더잘’ 시리즈를 읽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책이다.
둘째, 협력수업 과정 세우기
책 선정이 끝나고 활동지 자료를 만들었다. 1차시 활동지에는 자기가 읽을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안내하고 고른 책에 관해 써 보게 하는 문항을 넣었다. 2∼4차시에는 읽은 책에 관해 서술하는 문항들을 넣었다. 작년부터는
각자의 문해력을 활용할 수 있는 문항을 넣어 왔다. 또한 기획 독서(도서 선택 목록), 뉴스 리터러시 관련 문항도 추가했다. 화이트보드에 활동지를 붙여 놓고 수업 시간 내내 활용할 도서목록을 만들기도 하는데, 목록에는 주제어·도서명·독자로 칸을 나누고 누가 어떤 책을 읽는지 확인하게 한다.
수업 실행
1차시: 읽을 책 스스로 정하기
1차시에서는 아이들이 자기가 읽을 책을 고른다. 우선 교사의 주제도서 목록을 고르게 선정해 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안전한 울타리는 치는 것과 같다. 그 울타리 안에서 선택지를 많이 주는 게 관건이다. 한 학급당 평균 25명이라고 가정할 때 학생 수의 3배수 이상의 책을 준비한다. 최소한 2배수 이상은 되어야 한다. 첫해 30종 85권을 준비했고 올해에는 35종 103권을 준비했다. 목록은 해마다 조금씩 달리해서 준비한다. 새로 출간되는 ‘세더잘’ 시리즈 책을 포함했고, 너무 인기 없는 책은 제외하는 식으로 변화를 주었다.
작년에는 ‘세계 시민 수업’ 시리즈를 넣었다. 아이들에게 1차, 2차에 이어 최종 선택한 책을 매주 1시간씩 3주 동안 읽을 거라고 안내했다. 시작은 ‘교사의 도발’이다. “우리가 하게 될 책 읽기는 기획 독서이고, 하는 도중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 나는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어리둥절해하는 아이, 어이가 없는 아이, 시작 전부터 포기를 선언하는 아이 등 반응이 다양하다. 예상했던 모습이다.
도서 1차 선택은 선생님이 읽어 주는 책제목을 들으면서 읽고 싶은 책을 ‘찜’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교사는 화이트보드에 크게 출력해서 붙여 놓은 책 목록을 하나씩 읽어 준다. 활동지에 1순위∼3순위까지 책제목(주제어)과 그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쓰게 한다. 귀가 솔깃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 많아서 아이들은 이내 집중한다.
도서 2차 선택에서는 실제로 책을 보면서 책을 고르도록 한다. 뒤표지, 목차 정보, 작가의 말 등을 꼼꼼히 보면 무슨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대략 파악할 수 있으니, 책을 자세히 보고 선택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교사가 선정한 주제도서들을 도서실 한쪽 책상 가득 펼쳐 놓고 ‘시작!’을 외친다. 아이들은 우르르 흩어져서 읽을 책을 고른다. 두 번째 시간은 실제 책을 보고 고르는 데 대부분을 할애한다. 아이들이 책 사이에서 충분히 헤매고 고민하게 하기 위함이다. 결정을 끝낸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책 목록의 주제어 부분을 하나씩 읽어 주면서 최종 선택을 마무리한다. 원하는 책의 주제어를 읽을 때 아이가 손들어 의사를 표시하면, 미리 나눠 준 포스트잇에 이름을 써서 제출하게 하고 교사는 목록의 독자 칸에 그것을 붙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다음 시간에 왔을 때 자기가 선택한 책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는 아이들을 돕기 위함이다. 다른 반 아이들과 도서 선택이 어떻게 다른지 한눈에 파악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도서실을 이용하는 다른 학년 학생들, 학부모, 교직원 등에게 수업 현황을 알릴 수 있는 홍보 효과도 있다.
도서 목록을 붙인 화이트보드
도서 목록을 붙인 화이트보드
2~3차시: 읽고 기록하기
모든 학급의 책 선택이 끝나면 화이트보드에 붙인 포스트잇을 기준으로
목차 개수별로 활동지를 여러 개 만든다. 아이들은 지난 시간에 자신이 고른 책과 활동지를 들고 자리에 앉는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고른
책의 목차 개수를 확인하고 거기에 맞는 활동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미리
안내한다. 활동지에 서지사항(책제목, 글쓴이, 출판사 등)을 쓰고 각 목차 제목을 다 쓰고 나면 비로소 ‘읽기 시작’이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을 활동지에 기록하며 읽게 된다. ‘세더잘’ 시리즈는 각 장마다 내용 요약정리가 실려 있다는 점을 주의하자. 실제로 책을 읽지 않고 이 부분을 옮겨 쓰는 얍삽함(?)을 발휘하는 아이가 간혹 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며 미리 단속한다. 뭘 해도 심드렁한 아이들이 요약정리를 옮겨 적는 것만으로 나름 애쓰는 중이라는 걸 안다. 다만, 그것을 공식적으로 용인하지 않겠다고 학생들에게 미리 말하는 것은 필요하다.
매시간 5분 전에는 읽은 내용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하게 한다. 활동지 앞면 위쪽에 읽은 날짜와 쪽수도 기록한다. 그러면 다음 시간에 와서 어디서부터 읽어야 하는지 기억해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읽은 책을 책상 위에 정리해 두고, 활동지는 교사에게 제출한 뒤 교실로 돌아간다. 교사는 아이들의 활동지를 모두 살핀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볼펜으로 색을 달리해 가며 활동지에 밑줄을 긋거나 별표, ‘OK!’ 또는 짧은 메모를 남기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활동지 기록을 더 열심히 한다. 물론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고 책을 읽고 기록지에 쓰는 활동을 하다가 졸음과 싸우는 아이도 있다. 졸음을 몰아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일어서서 잠시 돌아다니는 것이다. 책 읽는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도서실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잠이 깨면 다시 앉아서 책을 읽으라고 당부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전체 내용을 요약하게 한다. 각 장을 읽으면서 알게 된 내용을 기록한 것을 토대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4∼5문장을 골라서 쓰면 된다고 알려 준다. 올해 만든 활동지에는 용어의 뜻풀이를 쓰는 행복을 추가했다. 책을 읽다가 자꾸 손들고 단어 뜻을 물어보는 아이들이 있는데, 교사가 다 알려 주는 것보다 스스로 찾아서 정리하며 알아가도록 하려는 의도이다. 초등학생용 국어사전은 표제어가 워낙 부족 해서 찾으려는 단어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성인 국어사전을 참고하도록 했다.
지난해 수업부터 추가한 내용을 덧붙인다. 첫 시간에는 ‘문해력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영상을 보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영상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시청한 뒤 본 내용을 정리하게 했다. 이어서 영상 스크립트를 나눠 주고 빠진 내용을 채우도록 했다. 보기와 읽기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둘 중 어느 것이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쉬운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다음 시간부터 할 책 읽기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안내했다.
선택한 책과 연계하여 뉴스 내용을 분석하는 활동지
목차별 활동지와 아이들이 읽을 책을 전시한 모습
4차시: 뉴스 내용 요약하고 가치평가 그리기
마지막 시간에는 자기가 읽은 책과 관련된 뉴스를 검색하여 내용을 요약하고 뉴스 가치평가 그래프를 그리게 했다. 뉴스와 연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5학년 때 필자와 함께 뉴스 리터러시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의 주제어로 검색한 결과 중에서 비교적 최근(3개월 이내)에 보도된 뉴스를 선택하여 정리·평가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내가 읽은 책이
실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인식하게 된다.
수업 평가는 아이들이 활동지에 쓴 소감을 통해 이뤄졌다. 모르는 내용을 정리하면서 책을 읽은 경험이 어땠는지 솔직하게 써 달라고 했다. 매년
고맙게도 85퍼센트 이상의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수업을 평가했다. 많은
아이들이 반 친구들과 책을 읽는 경험이 신선하고 좋다고 했다. 힘들었다고 한 아이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드물지만, 두세 명은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적었다. 짧지만 진심이 담긴 글을 모두 저장해 두었다.
수업을 끝내고:
이로운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마음
처음 기획 독서를 시작할 때 마음은 ‘한번 해 봐?’였다. 잘되면 계속하고, 잘 안되면 그냥 조용히 접을 생각으로 발을 내디뎠다. 나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읽기 방식이라 자신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들이 열심히 수업에 임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던 에피소드를 한 가지 소개한다.
2018년 5월 말 즈음, 아침을 먹으며 출근을 준비하는데 마침 듣고 있던 라디오에서 사회 현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룬 이야기였다. 모르는 말이지만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기획 독서 목록에 있던 책제목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확인하고 메모했다. 그날은 첫 반의 기획 독서 수업 마지막 날이었다. 출근해서 아침에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시 듣기로 그 부분을 확인하고 수업 시작 전에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용어를 설명하지 않고 이 사회 현상을 한참 설명하고 잠깐 멈췄다. “이게 뭐지?”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책을 읽는 아이가 반에 2∼3명 있었는데,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답해 주었다. 라디오를 마저 들려주고 반 전체 아이들은 정답을 확인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던 “오!” 하던 탄성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머지 일곱 학급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리고 확신했다. 기획 독서는 할 만하고 꼭 해야 하는 읽기 수업이라는 것을.
작년에는 유독 마음이 어려웠다. 나는 왜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읽기와 쓰기를 하는 것일까. 수업을 계속해야 할 다른 이유가 필요했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그때 찾아낸 “이것은 실제상황(두문불출, 얼굴이 피다. 이건 뭔 뜻? 날로 떨어지는 문해력)” 영상을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전 세계의 디지털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모인 미국의 실리콘밸리 안의 한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 없이 생활하는 아이들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모습을 대비하여 문해력이 떨어지는 현실에 대해 다룬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여 주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재미없고, 어려운 기획 독서는 정말 가치 있고 꼭 필요한 수업이야.” 변화를 향해 나아가도록 또다시 아이들을 채근한다. 최근에 읽은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조병영 교수의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평상시’에 다양한 경로로 글 읽는 법을 배우고 경험합니다.
평소대로 하는 일은 익숙하기 때문에 편하고 쉽습니다.
그러나 심신이 편한 상태에서는 변화가 일어날 일이 없습니다.
‘변화’는 언제나 ‘불 편함’에서 시작되며
그것을 느끼고 자각하는 일 역시 의식과 노력을 요구 하는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여러분은 불편해져야 합니다.”